기독교 선교와 세계관
글쓴이 : 주태근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유는 (1)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견해들이 있고 (2)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다양하며 (3) 많은 세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문화권에서 선교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선교지의 문화와 언어를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복음의 수용자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
세계관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며, 우리로 하여금 주변 세계를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 세계관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즉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해 낸다. 따라서 세계관은 세계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며, 그 모델은 세상에 있는 그 추종자들을 인도한다. 어떤 점에서 각 세계관은 삶을 인도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종말론, 즉 미래에 대한 이상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 사회가 어떤 특정한 세계관에 의해 지배를 받을 때, 하나의 문화형태(정치활동, 법, 경제활동, 결혼, 가정과 자녀양육, 예술 등)가 형성된다. 문화의 상이한 측면들이 중심 세계관으로부터 나오며 지배받는다.
1. 세계관의 이해
1) 세계관의 종류(C. S. Lewis)
ㄱ. 물질적 세계관 : 인간의 행동은 기계적이고 모든 것은 우연의 결과로 본다. 그것은 우 주의 고유적 의미를 감소시킨다.
ㄴ. 종교적 세계관 : 우주는 기계 이상의 정신과 같다는 것이다. 우주에는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한다.
ㄷ. 중간의 견해 : 생명과 힘의 철학으로서, 우주는 정신과 기계 양면으로 본다. 종교적이 며 물질적인 견해이다.
2) 세계관의 이해
보통 세계를 보는 방법을 세계관이라 한다. 즉 세계관이란 사람들이 세계를 보며 인식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본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와 부분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합쳐 하나의 실재, 세계관을 형성한다. 세계관이란 개념이 애매 모호하다. 이유는 원래 “문화” “풍토” 그리고 “국민성” 등의 개념과 함께 그것은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 사회의 신념, 가치관 및 행동 양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개의 문화 속에는 그 문화의 구성원들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물을 바라보는 일정한 관점이 있다. 이것을 흔히 세계관이라 부르며, 이는 한 문화의 심장과도 같다. 이 세계관으로부터 한 문화의 신념과 가치관들이 나오며, 이것들은 다시 구성원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행동에서가 아니라 그 문화의 심장부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짐츄). 세계관은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실체를 인식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기본적인 가정이며 중심적 통제 수단이다.
세계관은 넓은 의미에서 한 인간 혹은 한 집단이 개별적 혹은 집단적으로 가지는 우주관, 자연관, 인간관, 사회관, 신관, 내세관 등을 종합한 신념체계(belief system)이다. 세계관은 사람의 눈과 같아서 그것에 만물의 현상에 투영되고 의미가 부여됨으로서 그 사람의 형태가 형성된다. 즉 세계관은 모든 관(觀)-인생관, 물질관, 우정관, 가정관, 정치관, 교육관 등-의 모체이며 주형(鑄型)이다.
3) 세계관의 특징(David Burnett)
ㄱ. 관념들과 가치들의 조직체이다.
ㄴ. 가정들의 집합체이다. 세계관은 선행적 증명 없이 그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진리로 받아 들여 진다.
ㄷ. 세계관은 실체를 설명하는 모델이다.
ㄹ. 학습된 것이다. 세계관은 “사람이 문화를 습득할 때에 어린 시절에 무의식적으로 배운 것이다.
ㅁ. 세계관은 행동의 유형이다.
4) 세계관의 기능(Kraft)
ㄱ. 모든 행동 양식에 대하여 이를 해석한다 : 세계관은 언어의 사물의 인식에 대한 개인의 인식론적이고 정서적이며 윤리적인 판단의 지침을 내려 주며, 이것은 각기 종류에 따라서 범주화 되고 의미가 부여되어서 구조적인 형태를 갖춘 언어로서 나타나게 된다. 또한 풍습이나 종교적 의식으로 공동체적 행위가 나타날 때, 이것은 세계관의 반영이며 상호 분리된 의미가 아니라 서로 결속되어 있는 총체적인 세계관의 부분적인 반영인 것을 알 수 있다.
ㄴ. 세계관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 : 세계관은 문화 형태를 통해서 세계관에 따른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적절한 행동을 유도한다. 여기에는 정서적이며 윤리적인 판단이 작용하여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하는데, 개인적이며 구조적으로 나타난다.
ㄷ. 민족적 동질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 동일한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비슷하게 정서적으로 또한 의지적으로 행동하도록 하게 함으로써, 집합적인 유사성이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ㄹ. 사물의 변화를 통합하고 이에 적응한다 : 문화권 속의 사람이 기존의 세계관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관의 도전을 받았을 때는 세 가지의 반응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기존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세계관에 대해 거부 반응을 가지고 외래의 가치관을 전폭 수용하는 태도이다. 세 번째는 기존의 세계관과 외래의 가치관을 창의적으로 혼합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려는 태도이다.
세계관은 사람들의 신앙 체계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급격하게 세계관을 바꾸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선교사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2.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이해
복음 전파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다. 그것은 기존 문화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문화의 핵심은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의 변화 없이는 문화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1) 선교지 사람들의 세계관을 먼저 이해하기(데이비드 헤설그레이브)
ㄱ. 선교지 사람들에게 그들의 세계관을 버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거나 또는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선교지 사람들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지 사람들의 세계관에 비추어 복음의 메시지를 재검토하여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적절히 각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쉽진 않지만 가능하고 도한 실제적이다.
ㄷ. 선교지 사람들의 세계관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여 중간 지점에서 만나 서로의 세계관을 교환함으로써 공통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복음의 내용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어떤 종교이든 전체로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셀 그레이브는 두 번째 방법의 현실적으로 보나 선교의 측면에서 보나 적합하다고 말한다.
2) 세계관의 변화의 유형(Alan R. Tippett)
ㄱ. 퇴폐(붕괴 현상) : 너무 강한 외부적 압력으로 인해 그 사회와 종족적 결집력을 지속시킬 수 없을 때 그들은 퇴폐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급진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의 한 유형).
ㄴ. 침수 : 변화가 수용자들의 의지에 반대하여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인 힘에 의해 강요되었을 때 그 사회는 세계관의 침수를 경험하게 된다(변화를 억지로 강요 받게 될 때 자신들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변화의 외부적 형태만을 받아 들인다).
ㄷ. 회심 : 집단개종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자신들이 섬겨오던 신들 보다 더 강하다고 인식했을 때 충성의 대상을 바꾸게 된다.
ㄹ. 재활 : 퇴폐, 침수, 회심이 일차적 반응인데 비해 재활은 이차적인 반응이다. 재활은 기존 상황에 대한 심각한 불만으로부터 시작된다.
3) 패러다임의 변혁(토마스 쿤)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이란 적어도 22가지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본다. 그의 정의는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들, 가치들, 기술들 등의 총체성‘을 뜻한다. 반면 한스 큉은 ”해석, 설명, 이해의 모델”로, 토랜스는 “인식의 틀”로, 히버트는 “신념체계”로 이해 한다. 그런데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들은 갈등과 고통을 경험한다. 옛 패러다임에서 새 패러다임에로의 전환을 “회심,”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경험,” “번쩍이는 직관”과 같은 종교적 경험에서 비유한다.
ㄱ. 패러다임은 문화 공동체에 있어서 그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공유된 가치 체계와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반화된 상징의 의미 체계이다.
ㄴ. 세계관의 변혁은 반드시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변화 되어지지 않았는데 표면적인 문화 형태만 변화시킨다고 진정한 세계관의 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ㄷ. 타문화권 선교에 있어서 그 문화권의 패러다임이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성경적 세계관의 세 가지 차원
1) 삼위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초자연적인 영역이다(고등종교의 가치관).
이들은 절대적인 존재나 궁극적인 실재를 믿고 있으며, 교리적이고 규범적이며 윤리성을 강조 한다(이슬람교, 정통주의 유대교, 소승불교).
2) 초자연적이나 절대적이지 못한 천사와 사탄의 영역이다(중간영역의 세계관).
신은 너무 초월적이고 절대적이므로 인간의 삶에 간섭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영적 피조물인 중간적 존재들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천사, 선한 영, 귀신, 조상신).
3)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문화 영역이다(자연주의 세계관의 영역).
초자연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중시 한다(합리주의, 경험주의, 불가지론주의, 공산주의, 이성중의 등).
성경적 세계관은 이 세 가지 세계관을 전부 포함하는 총체적인 세계관이요, 모든 기존의 세계관의 불완전함을 채워 주는 완전한 세계관이며, 도한 그 자체가 선교적 세계관이 된다.
4. 세계관에 의한 개체적 문화 분석
예일대의 레드필드는 모든 세계관을 초자연, 사람, 자연 등 세 가지 요소(삼각형의 요소)에 관계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모든 문화의 시간관은 과거, 현재, 미래이다. 세계관을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으로 보고, 세계관의 종류를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이를 문화 분석에 사용한 선교학자가 데이비드 헤셀그레이브 이다. 이 여섯 가지의 세계관을 모델로 개체적 문화분석을 하게 된다. 그것들은 자연주의, 부족주의, 힌두․불교적, 중국인, 일신교적, 혼합주의 세계관들이다. 여기서는 종교별로 나누어서 다룬다.
1) 자연주의자들의 세계관
자연주의자들의 세계관은 초자연적인 어떤 것도 인정치 않는다. 저들은 인간의 합리성, 경험, 이성, 과학적 발전, 기술 등을 신봉하며 인간의 계속적인 진보를 추구하나, 결국은 현실적으로 생태계의 파괴와 인간 심성의 황폐화와 도덕성의 하락 등으로 인하여, 인류 생존의 위기와 삶의 허무와 염세주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ㄱ. 초자연 : 여기에서 초자연은 기각된다. 그런 것은 인간 진화의 덜 발전된 단계의 흔적에서 생긴 개념으로 본다.
ㄴ. 자연 : 우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적대적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자연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꽤나 편안하게 하는 왈도파(12세기에 프랑스인 피터 왈도가 창시한 기독교의 일파)사람들의 서식지 같은 곳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ㄷ. 사람 : 인간은 과정의 종(種)이며 발전하고 있고 인간의 도덕은 습관의 산물로 간주된다. 인간성은 자연의 다른 것과 함께 계속적인 것으로 본다.
ㄹ. 시간 : 과거는 무한하고 미래도 무한하여 충분하다는 것으로 본다. 현재는 무한을 끌어들임으로 다시 불을 붙인다. 시간(역사)에 의미와 목적을 불어넣음으로 역사를 의미 있는 것으로 본다.
커뮤니케이션 : 자연주의자들에 대한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서 선교사의 자질은 교육 수준이 높아야 할 것을 전제하고, 일반 학문이나 신학에 있어서 깊은 지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선교 내용에 있어서는 접촉점으로서의 선별을 중요시하는데, 기독교의 역사성과 사실성에 근거해서 메시지를 준비하며, 이것을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
2) 부족적 세계관
부족적 세계관은 다신교적이며 정령숭배적인데, 자연과 초자연이 구별되지 않는 총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세계관은 인격적인 초자연적 존재를 믿고 있는데, 최고의 신의 개념이 있으며 수많은 귀신들과 정령들과 조상신의 개념이 있다. 또한 비인격적 존재이지만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세력이 있는데, 이름이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전 세계의 인구의 40%가 이 세계관에 속해 있다. 주로 이 문화권에 민속 종교가 흥왕 한다.
ㄱ. 초자연 : 제신들과, 선과 악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영적 존재를 뜻한다. 그들은 변덕스러우며, “올바른” 의식, 성육화, “치료”와 은밀히 관계하고 있는 개개인들로부터 부추김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ㄴ. 자연 : 영적인 존재들과 함께 산다. 자연은 살아 있으며 자신의 본능적인 힘을 소유한다. 자연은 인간의 물리적인 환경뿐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환경도 구성한다.
ㄷ. 사람 : 피할 수 없는 단일의 체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자연 위에가 아니라 자연 속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초자연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초자연 속에 현재 있으며 미래에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ㄹ. 시간 : 성장과 쇠퇴, 씨뿌림과 추수의 계절이 이어지는 순환 속에 있다. 그러나 시간은 현재로부터 종족의 그 중대한 기원과 신화에까지 거슬러 간다는 점과 독특한 미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직선적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 : 이 세계관을 대상으로 선교를 수행할 선교사는 우선적으로 힘의 충돌에 익숙해 있어야 한다. 선교사의 메시지의 내용은 저들의 세계관 속에서 바울처럼 접촉점을 찾아야 하는데(행 14, 17장), 저들이 숭배하는 대상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저들로 하여금 분명히 깨닫도록 말씀을 전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의 수용성이 형성된 이후의 진리 충돌의 과정이다.
3) 힌두․불교적 세계관
힌두―불교 세계관을 범심론이라 할 수 있다. 즉 범심론이란 총체적으로 인식된 우주는 신이고 궁극적 실재이다. 범신론의 다른 하나의 형태는 일원론이다. 일원론은 우주 가운데 하나의 통일된 실재만이 있다는 것이다.
ㄱ. 초자연 : 모든 것이 발산되는 근원이며 지향해 나아가는 목표이다. 그것은 전체에 퍼져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실재”를 구성한다. 초자연은 인격적이고 비인격적이라는 인식을 초월한다. 그것은 절대이며 결코 묘사될 수 없다. 우주에 수많은 신들, 영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것들은 절대의 표현인 것이다.
ㄴ. 자연 : 독단적 창조물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자연은 환상적이며 우리가 관심을 둘 가치가 없다. 또 다른 면에서 자연은 올바른 이해를 가져다주는 깨달음이 일어나고, 그 깨달음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환경이다.
ㄷ. 사람 : 궁극적인 의미에서 개별적으로 실존하지 않는다. 그 또한 절대자로부터 나와서 결국 절대로 돌아간다.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된다면 그 영혼은 브라만이나 내부에 존재하는 절대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만인과 만물은 존재의 근원인 브라만 혹은 공(空)으로 돌아간다.
ㄹ. 시간 : 순환적이다. 시간은 끝없는 세월(끝없는 실존과 이주의 연속)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월 동안 깨달음을 얻은 후 구도자들은 그들을 내리누르는 나쁜 업으로부터 해방되어 점차 “위를 행해” 진보해 나간다.
커뮤니케이션 : 힌두교 세계관 지역에서 선교사의 자질은 성품에 있어서 인자하고 조용해야 하며, 거친 모습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 힌두교인들은 종교적 선생을 존경하며 그 삶을 세밀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는데, 선교사는 행동에 있어서 성실하며 물욕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불교 세계관 지역에서 선교사의 자질은 무엇인가? 불교의 세계관은 사물의 실제를 고통이라고 규정하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진지하게 추구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며 규율에 엄격하고 삶을 엄숙하게 대한다. 선교사는 이런 불교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외부로 나타나는 모습에 있어 모든 일에 성실하며 진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4) 유일신 세계관
고대에 있어서 하나님 중심 세계관의 출현은 정신사에서 가장 큰 혁명이며 코페르니크적 대 전환이었다. 자연을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영원한 실재로 보지 않고 피조물로 본 데서 그 특이성이 있다. 토인비가 언급한 21개 문명체 가운데 유독 히브리 문명만이 자연을 비신격화하고 인간을 특수한 피조물로 보는 특유한 세계관의 탄생을 보았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으로 역사 속에 직접 나타남으로서 인류사의 의미가 명확해 진다. 이슬람교의 세계관도 유일신을 믿는 데서 자연 중심성을 초극(超克)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는 데서 기독교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유일신적 세계관을 공유한다. 무슬림 또한 그러하다. 이슬람교는 기독교 이해에 대한 어떤 다른 도전을 제시한다.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모하메드) 선지자의 종교이다.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통파의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다. 무슬림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 사이의 차이는 이러하다. (1) 기독교 하나님은 자 희생적이며 은혜의 하나님이다. 쿠란(코란)에서는 아가페 사랑을 찾을 수 없다. (2) 쿠란에서는 알라의 주권으로 약한 자가 어찌할 수 없다는 운명론을 말한다. 이슬람의 책임이라는 다섯 기둥은 신앙의 고백, 매일 5회의 기도, 구제, 라마단의 금식, 메카성지 순례 등이다.
커뮤니케이션 : 유대인의 경우처럼 기독교인들은 세계관의 면에서 무슬림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인격적이며 거룩한 한 하나님을 믿는다. 둘 다 하나님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피조물들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믿는다. 양쪽 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셨고 그들을 책임지고 지키신다고 믿는다. 또한 두 종교는 다 심판의 때에 회개의 마지막 날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접근 방법들 중에는 이 두 종교가 역사와 공통적인 세계관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유사점들이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역사 속에서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증오가 있기에 적대감을 지니고 있다. 십자군 전쟁, 서구의 제국주의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의 옹호 등이다. 기독교 신앙을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에게 전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이 유일신적 관점내에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의 차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어려움은 기독교인, 유대교인, 이슬람교인들이 상호 낯선 자들로 대면하는 것도 아니며 친구로서 대면하는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5. 타문화권에서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1) 신뢰관계를 형성한다(신뢰관계 형성).
상호간의 신뢰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전도자는 먼저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을 알아야 하고, 또한 선교지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는 또한 새로운 문화 속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자신의 모든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부단히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은 받는 사람과 동일시하기 위하여 받는 사람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만 한다.
2) 이해의 단계이다(이해).
수신자가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 싶소” 라고 말할 때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받는 사람이 “당신이 말하고 있는 바를 알아듣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 전한 메시지에 대한 ”이해“가 일어난다.
3) 동일한 반응을 하는 단계이다(동일한 반응).
수신자가 ‘당신이 전한 메시지가 이제 나에게도 당신에게와 똑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라고 응답한다. 전도자가 전한 메시지의 내용이 그에게 개인적인 의미를 띄게 되고 적극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4)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양육의 단계이다(양육).
복음의 메시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메시지로 인하여 그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고 진정한 회심이 있게 된다. 이 단계를 양육의 단계라고 부를 수 있다.
5) 성숙한 동역 관계로 제자화된 단계라고 할 수 있다(제자화).
복음을 받은 사람 자신이 이제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책임을 맡게 된다. 진정한 상황화가 일어 날 때 복음은 선교지의 문화 전통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채로 계속 퍼져 나가고 유지 된다. 이제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메시지의 “새로운 전달자”가 된다.
나가는 말
복음의 메시지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선교지에서 복음의 진리를 전달하려면 네 가지의 핵심적인 과정-정의, 선택, 적응, 적용-이 있다. 정의: 전달자는 먼저 자신이 쓰는 용어의 뜻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선택: 한 순간에 복음의 전반을 다 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복음의 어떤 요소를 먼저 다루어야 할지를 선택한다. 적응: 선교사는 듣는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 영역이 무엇인지 잘 알아 둘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관심에 적합할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적용: 최종적인 목표는 복음이 듣는 사람 개인의 것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적용될 때 성령님이 깨달음과 확신을 주신다. 여기에는 전하는 사람의 사랑의 인내와 진정한 관심과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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