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7일 금요일
탁스쿠르칸의 공안과 마주하다.
파키스타니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러 흩어졌고, ‘재패니즈’는 언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침에 복마니가 싸준 김밥이 남아있어 그것을 먹어야 하겠기에 식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파키스타니들은 버스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혼자서 식사를 할 기분도 되지 않아 복마니의 김밥을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
김밥과 과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잠시 주변을 돌아보려했지만 시간이 늦어 캄캄한 밤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불이 켜져 있는 건물조차도 몇 개 되지 않았다. ‘탁스쿠르간’은 정말 중국 변방의 도시고, 국경마을 일 뿐이었다. 여기에 머무를 작정으로 자료 준비를 하였다면 나름대로 보고 싶은 것이 있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 앞 벤치에 앉아 군것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저곳 눈에 보이는 풍경과 건물의 사진을 찍고 보니 밤하늘의 달이 보름쯤인지 휘영청 밝았다. 달을 보니 문득 가족 생각도 났다. 아무 생각도 없이 밝은 보름달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한 무리 5-6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그 중 한 남자가 여권을 보자고 한다.
“싫다. 당신이 누군데 내 여권을 달라고 하냐. 나는 외국인이다. 한국 사람이다.”
“나는 공안(公案)이다. 당신의 여권을 볼 수 있다.”
그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경찰제복을 입지 않았다. 생각에 몇 명이 모여 술 한 잔 걸치고 나오는 듯 약간 얼굴이 불그레했다. 나는 잠시 어떻게 할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싹 앞으로 나오면서
“이 분은 폴리스 맨이야. 폴리스 맨-”
내가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영어로 ‘폴리스 맨’이라고 하는데 그의 표정과 행동에는 ‘이분은 아주 높은 분이다.’라고 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경찰이 여권을 보자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여권을 넘겨주니 여기저기서 불을 비춰준다. 그는 여권을 찬찬히 처음부터 한 장 한 장 끝까지 넘겨보더니 돌려준다. 그러더니
“너 조금 전에 사진 찍었지! 그 사진도 봐야겠다.”
“안 된다. 공안이 내가 찍은 사진까지 볼 이유는 없다.”
“그래도 봐야 한다. 나는 공안이다.”
“그래 이분은 공안이다. 공안이다.”
이 부분에서 왜 ‘맨인 블랙’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나보다. 그랬더니 공안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다. 할 수없이 종이를 꺼내 한자로 필담까지 하며 영어단어를 섞어서 ‘외국관광객의 카메라를 보자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는 외국인으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으나 벌써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20여명으로 늘어난 것 같다. 맨 처음 공안을 따라 나왔던 그 무리들에 버스를 타려고 온 파키스타니들 까지 구경꾼으로 모여 들었다. 나는 재빨리 상황이 불리한 것을 깨달았다. 이제 공안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다면 공안으로서의 체면이 구겨질 것인데, 그것을 용납하겠는가!
“좋다 그러나 카메라는 내가 들고, 당신이 보자는 대로 보여는 주겠다. 그러면 되겠냐?”
“그래 보여 달라.”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공안 앞에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사진을 보는 사람은 공안보다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더 디밀었다. 아침에 새 메모리를 갈아 넣었고, KKH를 넘어오는 동안 주변의 풍경을 찍은 것이니 몇 장 되지 않았다.
“자- 여기가 끝이다. 이제 됐냐?”
“음 - 수상한 사진은 없는 것 같다. 됐다. 어디에 묵을 예정이냐?”
“아니다, 여기에서 자지 않을 거다. 바로 ‘카슈가르(Kashgar)’로 갈 거다.”
“잘 가라!”
공안은 뒤끝 없이 그의 추종자들에 쌓여 휭하니 사라지고 파키스타니들만 시끄럽게 남았다. 그때 어디선가 운전수가 나타나 버스 문을 열어 주었다.
“먼일이냐? 봉변은 당하지 않았냐?”
“괜찮다. 별일 없이 끝났다.”
아마도 버스 운전사는 내가 공안에게 당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있었던 듯하다. 이곳을 늘 다니는 그는 사복을 입었더라도 그가 공안인 것을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는 무슨 일인지 자기까지 말려들까봐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일은 내가 크게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공안이라고 밝혔을 때 공안 대접을 해 주며 그의 말에 따랐더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카메라라고 해야 손바닥만 한 중국제 똑딱이 카메라인데 뭣하러 그걸 안보여주겠다고 버티었는지…
하지만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공안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깨닫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런 시골동네에서 공안이란 절대 권력의 상위에 있는 포식자 였던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고 해도, 중국 공안에 비하면 ‘민중의 지팡이’가 틀림없었다.
버스는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저녁까지 먹고, 이제는 더 이상 검문검색도 없고하니 사람들은 하나 둘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과 같이 잠을 청했다. 더 이상 검문은 없었고, 어느 곳에선가 버스가 서는 느낌이 나서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운전수만 가서 신고하면 된다고 한다. 기회를 잡아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아무 곳이나 앞이 막힌 곳을 택해 생리적 욕구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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