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행문집을 대본으로 하여 태사랑에 올렸던 중국 기행문을 다시 복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올리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겟습니다.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 중국 국경을 넘다.
‘옴 스리 가네쉬 나마하’
중국 국경에서 세관의 철저한 짐검사를 받다.
위 사진은 여행전에 인터넷에서 받은 파키스탄 중국 국경부근의 지도입니다. 파키스탄 쪽에는 '소스트'에 출입국 관리소가 있고, 중국 쪽에는 '탁스쿠르칸-타쉬쿠르칸'에 줄입국 관리소가 있습니다. 즉 이 두개의 출입국 관리소 사이에서는 버스에서 내릴 수가 없습니다.
아침부터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중국 가는 국경버스를 탔다. 고갯길을 숨차게 올라온 버스는 파미르고원의 눈안개를 뚫고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파키스탄 초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중국 초소는 그냥 통과하였다. 아니 그냥이 아니라 파키스탄에 비하면 거저먹기로 통과하였다. 파키스탄이여 아듀, 이제부터는 일단 먹을거리가 훨씬 나아질 예정이다. 적어도 한 숟갈 먹고 물 한 컵을 먹어야 하는 그런 식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하면 ‘한류(韓流)’라 하여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고 들었다. 또 일단은 테러, 납치, 이런 소식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여기가 쿤자랍패스 꼭대기에 있는 실질적인 중파국경의 마지막 파키스탄쪽 초소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국경통과 검문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국경무역을 다니는 파키스타니들이니 국경의 검문은 다분히 형식적이다.
카라코룸을 올라오던 구비길 과는 다르게 중국 쪽의 도로는 아주 깨끗하게 포장 되어있다. 마치 새로 포장한 것과 같이 차선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파키스탄 쪽에서는 힘든 구비길 을 올라왔는데, 중국 쪽은 파미르고원의 완만한 길이다. 버스는 내쳐 달려가다 길 한편에 정차 했다. 길 건너편 시멘트벽돌로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에는 중국의 오성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렇게 소란스럽던 파키스타니들이 일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중국 정복을 입은 군인이 올라와 버스 안을 휘돌아 본다. 커다란 모자아래 얼굴은 옷과는 어울리지 않게 스물이나 되었을까 하는 앳된 얼굴이다. 나름 눈에 힘을 준 것 같으나 그것이 오히려 어색하였다.
그는 버스를 안을 돌아보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며 언제 떠나려나 초조해하는 순간 또 한명의 군인이 버스 문을 열고 올라온다. 이 사람은 나이도 있으며, 키도 크고, 목소리에서부터 버스 안을 압도한다. 짐작에 계급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여권을 달래 찬찬히 여권의 기재사항을 넘겨보고, 얼굴을 뚫어져라하고 쳐다본다. 나도 예외 없이 여권을 넘겨주었다.
“음- 한꿔린- ”
약간 미소를 띠는가 하는 야릇한 얼굴로 다른 질문 없이 여권을 돌려주고 뒷좌석의 파키스타니의 여권을 받아든다. 한명 한명 모두의 여권을 검사한 다음 앞으로 나와 선다. 흔히 검문소의 초병이 그러하듯이 이제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내려가야 할 차례인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 군인은 얼굴의 미소를 싹 가시면서 - 우리표현으로 안면몰수(顔面沒收) - 뭐라고 낮은 소리로 말했는데 내가 느끼기에 무언가 명령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곱지 않은 표현으로, ‘개새끼들 모두 짐들고 내려…’ 아마 이정도 되지 않았을까 한다. 버스안의 파키스타니들이 모두 굳은 자세로 후닥닥 일어나 자기 짐을 들고 뛰어내려 길 건너 우중충한 회색 스레트지붕의 건물 앞으로 가서 줄지어 선다.
이 건물이 중국 국경검무소다. 새로 단장해 지은 티가 팍팍나는 붉은 벽돌의 단정한, 그러나 웬지 멋없는 건물이다. 쓸쓸한 주변의 풍광과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버스에 타고있던 사람들이 소지품 검색을 당한곳은 사진속의 건물 앞에 있는 작은 회색의 우중충한 가건물이다. 이 사진은 아직 중국 병사가 버스에 타기 전에 몰래 찍은 사진이라, 문 앞에는 아무도 없다.
순식간에 버스 안에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외국인 두 명만 달랑 남게 되었다. 앞에 앉아있던 중국인 병사가 우리를 가르치며 뭐라고 한다. 아마 ‘너희도 내려’라는 말일 것이라고 짐작한 우리 - 코리언과 재팬 - 는 비실비실 일어나 버스를 내렸다. 운전수가 재빨리 달려와 버스 짐칸을 열어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의 배낭은 버스아래 작은 짐칸에 따로 싣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짐을 들고 파키스타니들의 짐 뒤쪽에 가져다 놓았다.
가끔 앞쪽의 문이 열리면서 한사람씩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서야 여기가 어딘지 알게 되었으니, 이번 여행에 내가 완전히 넋을 놓고 다니는 것이 확실했다. 여기는 중국 측 세관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눈치를 보아 쿤자랍 패스 쪽의 사진을 찍었다. 지대가 높아서 인지, 일기가 나뻐서 인지 파미르고원의 봉우리들이 흰눈을 쓰고 내려다 보고 있다. 아니 아마 저 눈들은 일년내내 저모양으로 있는 만년설인지도 모른다. 지금이 7월달인데, 지금 저모양이면 언제 녹을 날이 있겟는가?
파키스타니들 뒤에 서 있는데 찬바람이 정신없이 분다. 여름옷에 방풍잠바 하나만 걸친 나는 몸이 덜덜 떨렸다. 눈비는 그쳐서 하늘은 맑은데 주변을 돌아보니 눈이 쌓여있다. 눈앞에는 흰 눈을 이고 있는 파미르고원의 봉우리가 아련하게 서 있다. 재팬친구는 어느 비행기에서 슬쩍 들고 나왔는지 항공담요 같은 것으로 몸을 감고 있고, 파키스타니들도 삼삼오오 모여 쭈그려 앉아 천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허름한 건물이 있어 화장실 같아 보였다.
“토일렛?”
설마 이 정도는 알아듣겠지, 옆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병사에게 손짓하며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웬 군인이 뭐라고 지껄이고 있다.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니 아래 있던 군인에게 쫓아가라고 시킨다. 여기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마저 감시를 받아야 하나보다.
얼마를 기다려 내 차려가 되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양쪽으로 길게 테이블이 놓여 있고, 두 패로 갈라서서 한쪽에 두 명씩 짐검사를 당하고 있다. 나이가 조금 있고, 계급도 높은 듯한 사람 앞에 짐을 올려놓았다. 그는 우선 여권을 보고 ‘한국사람 이군요!’하고 웃어 보인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어느 곳을 보았는가, 어디를 갈 예정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이게 웬일인가? 이렇게 대접이 좋을 수가!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대접은 그럴지라도 검사는 매우 철저하게 했다. 신발을 벗어달라고 하여 깔창까지 들어보고, 배낭을 풀어 빨래하지 않은 옷가지까지 하나하나 꺼내보며, 배낭 옆에 찔러둔 팻트병에 담긴 가루비누까지 무어냐고 물어보고 손가락으로 찔러 냄새를 맡아 본다. 그러는 동안 의자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테이블에서는 파키스타니들의 짐 검사가 한창이다.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엄청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국경무역 보따리장수들이니 짐 보따리가 크고 물건도 많다. 물론 규정에 맞게 가지고 왔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 검사를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았다. 물론 어디에나 있다고 하는 나름대로의 통과방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짐검사를 마치고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 ‘재팬’이 나온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어휴!’ 하는 듯이 어깨를 추슬러 보인다. 그러나 그도 특별할 것 없는 여행자니 그렇게 고생한 것도 없었을 것 같다. 하여튼 중국 국경의 소지품 검사는 내가 당해본 중 최고로 철저한 소지품 검사였고, 여기는 인권이니 항의니 이런 것은 아예 실종된 곳이었다. 아무리 변두리의 국경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국경이고, 그 나라에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첫 대면 하는 얼굴인데, 아직도 X-RAY 검사기 같은 것을 준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국경을 다니는 사람은 가난한 파키스탄 사람들뿐이라는 생각에서일까?
검문소를 지나 고도가 조금 낮아지자 눈에 보이는 풍경이 조금은 덜 을씨년 스럽기도 했다. 소지품 검사를 하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가 파미르고원은 어둠에 싸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시간에 쫓기듯 속력을 내서 달렸다. 내려가는 길이고, 도로 상태도 좋아서 파키스탄과 같이 불안한 느낌은 없었다.
얼마를 내려가 버스는 주차장이 크게 마련된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은 4층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깔끔한 외관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검문소에서부터 타고 온 그 앳된 중국병사가 먼저 내리고 파키스타니들이 줄줄이 내린다. 이제는 이곳이 입국심사소라는 것을 알겠다. 건물로 들어가 두 줄로 서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버스에서 내리기도 조금 늦게 내렸지만 여기에서도 파키스타니는 새치기를 한다.
내 차례가 되어 심사관 앞에 여권과 입국서류를 내어 놓으니 자꾸 내 얼굴과 여권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도장을 찍어 주지 않는다. 물론 여권사진과 지금의 얼굴은 같지 않다. 여권에는 정장차림의 점잖은 얼굴이 있지만, 지금의 나는 보름간의 파키스탄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친, 그리고 수염을 기른 전혀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도 간단히 얼굴인식 프로그램으로 동일인임을 알아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자꾸 동일인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수염을 길렀다.’하며 수염을 가려보고, 컴퓨터로 확인하라고 해도 자꾸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미그레이션에서 늘 보아오던 조그만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는 아직 카메라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파키스타니들은 다른 쪽 창구를 통해 모두 입국심사를 마쳤다. 나 하나 남은 것이다. 나는 ‘그래 맘대로 해봐라.’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서 있으려니 창구 안에서 저희들 끼리 내 여권을 보며 뭐라고 의견을 나눈다. 아마 내가 여권과 동일인인가 아닌가 저희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듯한데, 뒤쪽에 있는 사람이 뭐라고 조금 큰 목소리를 낸다. 중국어를 몰라도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 같은 놈이면 어떻고 다른 놈이면 어때, 우리가 잡아내지 않더라도 다른 놈이라면 어디선가 걸릴 것 아니야! 지금 몇 시야 이제 그만 퇴근 좀 하자!”
우리 버스는 파키스탄에서도 늦게 출발하였고, 세관 소지품 검사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 같이 탄 병사의 안절부절못했던 표정에서도 이미 이미그레이션 도착시간이 많이 늦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또 시간을 끄니 짜증이 났었겠지, 담당은 송구스런 표정으로 재빨리 입국도장을 찍어 내 주었다. 나는 일부러 그 앞에서 천천히 입국도장의 날짜가 오늘이 확실한가 확인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모두 탔는지 인원점검을 하고, 버스를 출발시키는데 버스보다 앞서 건물의 불이 먼저 꺼지면서 그들이 탄 자동차가 건물을 빠져 나간다. 오늘은 정말 힘들게 보낸 하루인 것 같다. 파키스탄 출국에서부터 중국 입국까지 정말 어렵게 보냈다. 그러나 이젠 중국에 들어왔으니 더 이상 어려움은 없겠지.
입국 사무소는 탁스쿠르간(Tashkurghan)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인지 모르게 버스가 달려 허름한 마을로 들어선다. 여기가 도시인가? 하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시골마을 치고는 집이나 도로가 번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파키스타니들이 계속 한두 명씩 앞으로 와서 운전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있다. 한참을 시달리던 운전수가 마지못한 듯이 고개를 끄덕여 승낙의 표시를 해 주자 버스에서는 환호성이 나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것 같다.
자리로 돌아가던 파키스타니가 무슨 일인지 설명 해 준다.
“원래 이 버스는 ‘탁스쿠루간(Tashkurghan)’에서 하루 밤 자고 내일 ‘카슈가르(Kashgar)’로 떠난다. 그런데 우리가 운전수한테 부탁해서 ‘탁스쿠르간’에서 머무르지 않고 바로 ‘카슈가르’로 가기로 했다.”
말 뒤에는 ‘나 잘했지?’하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원래 국경버스는 파키스탄의 ‘소스트’에서 중국의 ‘카슈가르(Kashgar)’까지를 1박 2일에 주파한다. 이것이 모든 곳에 나와 있는 정보다. 그런데 ‘길깃’에서 출발하는 국경버스는 ‘카슈가르’까지 쉬지 않고 간다고 했다. 내가 처음 타려고 했던 버스가 바로 ‘무박버스’였는데 파키스타니들이 이 버스운전사에게 무박으로 ‘카슈가르’까지 가자고 졸라댄 것이다. 사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을 보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버스는 ‘탁스쿠르간’의 어느 호텔 한쪽 귀퉁이에 선다. 여기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진행된다면 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이 호텔이나 맞은편의 빙산빈관(氷山賓館)에 묵고 내일 아침에 모여야 한다. 나는 ‘탁스쿠르간’에서 머무를 예정이 없었으니 바로 ‘카슈가르(Kashgar)’까지 가는 것이 잘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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