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세계

어떤 공인중개사 이야기.

주거시엔셩 2008. 4. 3. 04:29

Wellbeing Life 공인중개사 이완식씨

은행지점장→보험설계사→공인중개사
“베스트셀러 작가가 인생 최종 목표”

퇴직 후 창업 두려워 직장 ‘전전’
대리시절 취득한 자격증이 창업 밑천
소주 들고 찾아오는 이웃에 ‘흐뭇’

상고를 졸업하고 30년 가까이 뱅커로 살아왔던 이완식씨(56). 40대 중반에 지점장으로 승진할 만큼 인정 받던 그는 갑작스러운 가족의 사업 실패로 생긴 빚 때문에 명예퇴직을 신청하게 된다.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그만두고 자본금 한 푼 없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재취업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4년 간 서너 곳의 직장을 다녔지만 어떤 일은 생계를 이끌어나가기에 수입이 너무 적었고 또 어떤 일은 자존심이 상해 할 수 없었다.
명퇴 후 4년이 지난 뒤 그는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뛰쳐나올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은행에 근무하던 시절 취득했던 공인중개사 자격증이었다. 자격증에 쌓인 뽀얀 먼지를 털어 내는 순간 명퇴 후 힘들게 일했던 시간들이 함께 공중으로 흩어졌다.
2002년 그는 자본금 900만원으로 당고개역 부근 세 평 남짓한 공간에 소양공인중개사를 오픈했다.

수필가는 또 다른 직업, 책 3권 출간
이완식씨의 또 다른 직업은 수필가다. 벌써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을 3권이나 출간했고 1991년 한국수필을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바 있다.
전주상고 시절 은사였던 신석정 시인에게 지도를 받고 각종 문예공모전에서 입상한 그는 사무실 한 켠에서 낡은 스크랩북을 꺼내  교내 백일장부터 시·도가 주최한 글짓기 대회에서 받은 빛 바랜 상장들을 보여준다.
“은행에 입사한 후에도 글을 쓰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어요. 등단 후 1996년 첫 자전적 수필집 ≪논두렁 올챙이 서울에 오다≫를 출간했죠.” 명퇴 후에는 MBC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두 번째 책인 ≪나는 아직 나를 퇴출시키지 않았다≫를 출간했다.
퇴직 후 막막한 심정을 다잡고 재기하겠다는 의지를 책으로 엮은 그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섰다. 조흥은행 수유동 지점장이라는 타이틀 대신 무학신협 상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월급은 비교가 안됐죠. 지점장 시절 월급이 500만원 가까이 됐는데 더 적게 자고 많이 일해도 절반은커녕 3분의1 수준의 급여가 돌아올 뿐이었죠. 이를 악물고 일을 했지만 돌아오는 수입이 적다는 것에 점점 의욕이 꺾이더군요.”
그렇게 인생의 2막 1장의 초반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라종금·자산관리공사에서 근무하다가 일한 만큼 수입이 보장되는 새로운 일을 찾게 됐다. 보험설계사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게 된 그. 월수입이 많게는 600만원을 넘기도 할 만큼 유능한 설계사로 자리잡아가던 그였지만 동료와 후배의 한 마디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은행에 있는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보험가입을 유도했는데 그 모습이 좋게 비쳐지질 않았던 모양이에요.”
동료 하나는 보험에 가입하며 “내가 가입해줄테니 후배들은 찾아가지 말라”고 했고 후배 하나는 “선배를 보면 미래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설움이 북받쳐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2막의 1장을 접고 2장을 열어갈 돌파구를 찾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바로 그 돌파구였다.    

세금, 법률 상담…당고개 분쟁 해결사
은행 대리 시절 주택담보 대출 업무에 도움이 될까 해서 취득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수중에 자본금 900만여 원. 저렴하면서 권리금이 없는 점포부터 찾았다.
당고개역 부근에서 발견한 3∼4평 남짓의 공간은 그가 가진 돈으로 보증금을 치를 수 있었다. 남들은 비좁다고 하지만 이곳은 그에게 희망의 공간이다.
소양공인중개사사무소를 처음 개업하고 한 달 평균 8건의 계약이 성사되었고 인심 좋은 이웃분들은 사무실로 쿠션이며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법정수수료를 다 받으면 금세 부자가 됐겠지만 동네 인심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때로는 산 오징어에 소주 한 잔으로 수수료를 대신하기도 했고 법정수수료보다 턱없이 낮은 금액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계약시 생긴 분쟁을 조정해 줄 때면 수수료 이상의 금액을 봉투에 넣어 건네는 고객도 있다.
은행원 출신이라는 것은 공인중개사가 된 이후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주택담보 대출이나 집주인의 채무 때문에 보증금을 언제 돌려 받을지 막막한 세입자가 찾아오면 법률상담도 해준다. 상담에서 그칠 때도 있지만 집주인의 부채가 있는 금융기관에 세입자 명의로 보낼 내용증명을 작성해 주기도 하고 충분히 대출 자격을 갖춘 이에게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는 경우에는 지점을 찾아가 담판을 짓기도 한다.
가끔은 인근 부동산에서도 이 사장을 찾아와 상담을 하기도 한다. 공인중개사사무소 개업 4년째, 그에게는 당고개 해결사라는 거창한 닉네임이 생겼다.
직장인에서 어엿한 사장이 된 그. 수입은 얼마나 될까? 최근에는 월평균 150만원 남짓으로 초창기보다 수입이 줄었다. 뉴타운 호재로 당고개 주변에도 일명 떴다방들이 들어서서 골목 안쪽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을 찾는 이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지 손님이 아닌 이웃들은 꼭 그의 사무실을 찾는단다. 분식집을 운영하려고 가게자리를 의뢰한 한 고객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사장을 만나면 분쟁이 안나. 돈 떼일 염려가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길 이유 있나?”라고. 요즘은 한 달 평균 5∼6건 정도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 에피소드 32가지》펴내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동안 뜸했던 책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이전까지 자전적 수필만 썼던 그는 후배들을 위해 무언가 해답을 주고 싶었다. 자신이 창업하기까지의 어려움, 그리고 처음 공인중개사가 되어서 막막했던 일들을 회고하며 초보 공인중개사들을 위한 지침서를 기획하게 됐다. 몇 달의 산고를 거쳐 탄생한 책이 지난해 출간된 ≪부동산중개업 에피소드 32가지≫다. 그간 만나온 고객과의 일화를 통해 생생한 경험을 전달하고 뒷페이지에는 부록으로 좋은 매물 고르는 법, 경매시 유의사항 등 정보와 매매계약서부터 내용증명, 위임장, 매수인변경의뢰서 등 30여 종의 부동산 관련 서식을 담았다.
책을 출간하고 석 달 만에 2쇄에 들어갔다. 그 사이 부동산중개업소창업을 준비중인 사람이 상담차 여럿 다녀가기도 했다.
이 사장은 그 중 지금은 강서구 화곡동에 사무실을 연 사람이 기억에 남는단다. 조목조목 주의사항을 묻던 그는 나중에 흰 봉투 하나를 건네고 갔다. 돈을 바라고 상담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 있던 10만원에서 이 사장은 정을 느꼈다. 지금은 그와 사업을 하며 간간히 전화를 하고 만나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가 되었다고.
은행에 있던 동료나 후배들도 책을 구매해 주었다. 어떤 후배는 혼자 50권을 사주기도 했다. 작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전직 지점장 선배는 온라인 카페에 그의 책을 소개해주기도 했단다.
이 사장은 실제로 은행원 출신들이 중개사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10명이면 6∼7명은 1년을 버티지 못한다.
“은행에서 대접받던 추억을 잊지 못해서, 셈에 강한 사람들이다보니 정(情)이 넘치는 동네 부동산에 적응을 못해서 문을 닫게 되는 거죠. 처음 은행에 입사했을 당시 그 초심을 기억해낸다면 은행원도 중개사로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후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는 곧 3쇄가 나오는 ≪부동산중개업 에피소드 32가지≫ 이후 ≪풍수와 중개업(가제)≫이라는 책도 써볼 요량이란다.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쓰느냐고요? 저도 베스트셀러 작가 한번 돼보고 싶어서요.”(허허) 그의 웃음이 당고개 골목골목에 울려퍼진다.

□ 부동산중개업 창업 성공 노하우 □
1. 추억을 잊어라.
과거에 높은 지위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낮춰야만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 
부동산중개업은 내가 사장이면서 청소부도 하고 사원 역할까지 해야 한다.
2. 직장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미련 버려라.
직장인들 중 창업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창업 아이템을 찾는 것이 인생 2막의 성공을 앞당겨 줄 것이다. 
직장에 대한 미련은 퇴직 후 최대한 빨리 버려라.
3. 돈보다 정(情)이 우선이다.
야박하게 돈을 쫓지 말아라. 고객을 정으로 대해야 관계가 지속되고 이미지도 좋아진다. 
돈을 구하면 당장은 수입이 늘어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 있다.
4. 발품을 팔아라.
직장시절 알던 지식(은행의 경우 대출 관련 문제 등)을 최대한 활용해 사업에 접목하고 이웃을 찾아다니며 친분을 쌓아라.

창업정보
·자본금 : 900만원
·사무실 임대료 : 보증금 500만원 월 40만원
·월 평균 매출 : 150만~200만원
·순수익 : 사무실 임대료와 세금 외 수입의 70% 가량이 순수익

유현희 기자 (yhh1209@ermedia.net)

 

출처 : http://www.ermedia.net/news/newsdetail.php?uid=6378&ho=307&categor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