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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오른 팔이 되신다" 왼손잡이 사사 에훗의 교훈...

주거시엔셩 2014. 7. 3. 16:19

왼손잡이 사사 에훗
그의 약점이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는 요소로 활용돼

▲ 사사 옷니엘 시대 이후 하나님 앞에 ‘또!’ 범죄한 이스라엘 그리고 에글론을 통한 징계

이스라엘이 ‘또!’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했다. 사사기 본문은 이스라엘이 범한 악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다만 “또 악을 행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에 구산 리사다임의 침공을 불러왔던 범죄인 우상숭배와 유사한 종류의 죄악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사사 옷니엘의 시대가 지나자 또 다시 범죄하였고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시어 그의 손에 이스라엘을 붙이셨다.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 등 요단 동편의 여러 종족들을 규합하여 연합군을 형성한 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여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18년간 압제했다.
아마도 종려나무 성읍이란 여리고 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요단강은 깊이가 상당히 깊기 때문에 이곳을 건너려면 거의 반드시 여리고 성이 나오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선택한 길도 역시 같은 곳이었다. 여리고를 지나면 바로 이스라엘의 주요 거주지가 있는 고산지대로 올라가게 되고, 여기에서 그대로 서진하면 베냐민의 영역이며, 조금 남쪽으로 향하면 유다지파가, 북으로 향하면 에브라임지파의 땅이 나타난다. 아마도 에글론의 압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지파는 베냐민일 것이다. 베냐민지파의 땅은 여리고에서 가깝기도 하고 인근의 두 지파인 유다와 에브라임이 강력한 지파인데 비해 베냐민은 상대적으로 약소한 군소지파이기 때문이다.

▲ 소규모 지파인 베냐민 출신의 사사 ‘에훗’, 전대 사사인 옷니엘과 여러모로 비교돼

그래서였을까? 이스라엘이 에글론의 18년간의 압제에 신음하고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사 역시 베냐민지파인 에훗이었다. 에훗은 전대 사사였던 옷니엘과 여러 모로 비교되는 사람이다. 옷니엘이 강력한 유다지파의 명문가 갈렙 집안의 조카이자 사위였던 데에 비해 에훗은 소규모 지파인 베냐민에 속해 있었다. 옷니엘이 전쟁 영웅으로 전장에서 용감히 싸워 적을 물리친 장군이었던 데에 비해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부역하는 자였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치는 공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시대에 일본에게 부역하여 그 앞잡이를 자처한 친일파 같은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에훗은 그런 인물로 비쳤을 것이다.
게다가 에훗은 왼손잡이였다. 오늘날은 왼손잡이로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절 전설적인 존재였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은 왼손잡이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에 빛나는 투수인 랜디 존슨이 왼손잡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나폴레옹, 베토벤, 마크 트웨인 같은 인물들은 역사에 족적을 남긴 왼손잡이들이다.

▲ 왼손잡이 사사 에훗과 왼손에 관한 동서고금의 부정적 인식들

그러나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은 대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적이었다. 우리말에도 오른손은 올바른 손이란 의미가 있는 데에 비해 왼손은 잘못된 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어도 마찬가지여서 오른손은 ‘right’, 즉 올바르다는 의미를 갖지만 왼손의 이미지는 대개 부정적이다. 힌두 문화권에서 오른손은 음식을 먹는 손이고 왼손은 뒤처리를 하는 데에 쓰이는 손이다. 이런 곳에서는 실수로라도 어린아이가 귀엽다고 왼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큰 실례이며 모욕으로 여겨진다.
고대 이스라엘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 왼손잡이라는 것은 오른손이 불구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그러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왼손잡이에 대한 모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본문에서 에훗이 왼손잡이라는 것 역시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전사로서는 실격이라는 말이요,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율법이 흠 있는 양, 흠 있는 예물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본다면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인 개념인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에훗이 속한 베냐민지파의 이름은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이다. 즉 권능이 있고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름과는 달리 베냐민지파에서는 에훗 이외에도 왼손잡이 용사들이 유난히 많이 나타났던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던 사사 에훗, 당시 부와 권력의 상징인 비둔한 몸매의 적장(敵將) 에글론과도 비교돼

반면 에글론은 비둔한 자였다. 오늘날에는 뚱뚱한 사람이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지만, 이 당시에 몸집이 거대하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생산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영양소만으로 살아남아야 했고 대개가 육체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몸집이 거대하다는 것은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게다가 뚱뚱하다는 것은 육체를 사용할 일이 많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니만큼 이것은 극소수 권력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사회에서도 다이어트 열풍이 불어 닥친 것은 불과 수십 년 안쪽의 일이다. 독자 중에는 과거 한국 사회에 있었던 우량아 선발대회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시절만 해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크기를 바랐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몸집이 큰 남자가 풍채가 좋다고 대우받던 시절이 있었고, 중년의 남성이 배가 나오는 것을 소위 ‘사장님 배’ 혹은 ‘인덕’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마른 남자는 가난해 보인다고 결혼 대상자로서 기피대상이었고 심지어 여성 역시 너무 마르면 없어 보인다고 여겨졌다. 그것이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사사 시대 당시 비둔한 자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는 지를 의미한다.
게다가 모압 족속은 전사들 역시 큰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도 자기 왕 에글론 같았다고 하니 그 거대하고 잘 먹은 용사들을 보며 이스라엘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 에글론 암살 계획 후 길갈 근처에서 가진 혼자만의 시간, 그 이유는?

에훗 역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사사가 되었을 것이지만은 성경 기록상에는 에훗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언제부터 사사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에글론을 죽인 다음의 일이었는지 혹은 길갈에서 돌이킬 때인지 우리는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어쩌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이후에도 오랜 시간 두려워하며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느 날 에훗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길이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칼을 준비해서 오른 다리 옷 속에 감추었다. 아마도 에글론을 암살하려는 시도는 다른 공모자가 없이 에훗 혼자서 계획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공물을 운반해서 에글론에게 바친 이후 그는 공물을 메고 온 짐꾼들을 돌려보냈다. 자기 혼자만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 하필 길갈이었을까? 길갈은 오히려 여리고보다 더욱 요단강에 가까운 곳이다. 그곳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이후 눈앞에 대적을 두고서도 먼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광야에서 하지 못했던 할례를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성인 남성이 일제히 할례를 받았으니 만약 이 시점에서 여리고나 다른 성읍에서 적들이 출병하여 이들을 공격하였더라면 큰 위기에 빠질 일이었다. 군사적 안목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여기서 할례를 받고 난 이후 전쟁에 임한다.
이와 같이 길갈은 오히려 여리고에서 더욱 요단강 쪽으로 나아간 곳이니 공물을 다 바치고 베냐민지파로 돌아가야 하는 에훗의 일정에서 보면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에훗은 거사를 앞두고 여호수아와 조상들이 순종했던 그 장소를 보려 했던 것일까? 혹은 이후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어디에서 모압과 싸울 것인지 전투 장소를 미리 정찰했던 것일까?

▲ 연약한 자 에훗을 들어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신 하나님

어찌됐든 에훗은 길갈까지 나아갔다가 여리고로 돌아가 에글론에게 나아가서 조용히 독대할 것을 청했다. 에글론이 그 독대 요청을 받아들일 만큼 신뢰가 있었던 것을 보면 평소에 에훗이 모압인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모압사람이 볼 때 에훗은 완전히 자기편으로 여겨지는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에훗은 에글론을 암살한다.
오른손잡이라면 당연히 왼편 허리에 칼을 찰 것인지만 에훗은 왼손잡이였던 탓에 오른다리 안쪽에 칼을 감추었고 그래서 그는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 그의 연약함이 그의 은밀한 습격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에글론을 칼로 찌르자 칼에 지방이 엉키어서 칼을 빼낼 수 없었고 그에게서 대변까지 나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에훗이 여리고를 탈출한 이후에도 이 대변 냄새 때문에 에글론의 부하들은 왕이 은밀히 대변을 보는 줄 알고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에훗은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소집하여 모압과의 전쟁에 임했다. 이 전쟁에서 모압 사람 1만 명을 죽였고 에훗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그는 옷니엘보다 부족한 사사였다. 그는 베냐민지파였고 왼손잡이였다. 그는 모압이 의심하지 않을 만큼 모압에게 부역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