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로마서 5:1-1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법!
여름때만 되면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풍입니다. 태풍이란 초속 17m의 강풍으로 바다에 있어도 그 위력이 엄청나서 어민들이나 해상을 오가는 배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이 육지로 올라오면, 논이며 밭이며, 그리고 빌딩이나 마을들까지 지나간 자리면 초토화되어버리는 아주 두렵고 무서운 자연현상입니다. 그래서 이 태풍, 나비던 글라디스건 어떤 것 하나라도 경험한 사람이면 이 태풍에 대한 공포로 악몽을 꾸거나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태풍은 어느누구 나를 가리지 않습니다. 태풍의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딱히 어떠한 잘못이 있기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태풍의 지나가는 자리에 있다 보니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태풍을 경험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 또는 그 피해 상태를 본 사람들은 태풍만큼은 절대로 다시 만나거나 경험하기 싫어합니다. 이렇듯, 이 태풍은 사람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커다란 고난과 환란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풍에게도 장점은 있습니다.
첫째, 태풍의 강한바람이 물속 깊은 곳까지 영향을 주어 해수를 섞어주는 기능을 한답니다. 섞인 해수로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해수를 정화하는 기능을 한답니다.
둘째로, 적조 현상을 제거해 준답니다. 영양분 과잉으로 생긴 적조현상을 바람과 물로 적절하게 만들어 주기까지 합니다.
이 두 가지 현상으로 바닷물 속에 사는 생물들은 깨끗한 물과 적절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고, 육지에서는 정화된 물로 끌어올려져 만들어진 구름이 비로 변하여 내려지면, 농사가 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의 숨쉬며 사는 환경과 식수가 정수된 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적도에서 생긴 대량의 에너지를 분배시켜 지구의 균형을 만듭니다. 에너지가 보존되듯이 적도에서 생긴 태풍의 에너지가 극지방으로 이동되며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도의 뜨거움이 더 뜨거워지지 않도록, 북극과 남극의 추움이 더 추워지지 않도록 하여 우리가 이 지구에서 4계절을 잘 누리며 살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마지막으로, 바다에 모인 쓰레기, 오염된 물 등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강풍과 폭우로 모인 쓰레기를 흩어내고, 물로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답니다. 물론 플라스틱 같은 것이 녹아버린다는 건 아니지만, 인간이 함부로 버리고 낭비해버린 잔여물들을 최대한 정화할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태풍은 매해 우리 주위에 나타나며,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하지만, 태풍이 없다면, 우리의 지구는 더 우리가 살기에 힘든 환경으로 변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며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그 분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행복하고 늘 화창한 날씨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환란과 어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환난이 뒤따른다는 사실은 누구나 무시하거니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환난에 대하여 잘못 인식하고 환난에 성경적으로 대처하는 슬기로운 생활을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환난은 신앙생활의 파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생애에 찾아오는 환난을 통하여 놀라운 영적인 풍성한 결실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3절의 말씀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은혜의 자리에 들어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생활을 할 뿐 아니라 비록 우리 앞에 환난이 온다고 해도 오히려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환난이란 말은 ‘들립시스’로 억누른다. 괴롭힌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환난이란 고통이 따라오는 것이기에 그 자체를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필요 없이 아무에게나 환난을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처음에 인간에게 고통이 생긴 것은 죄때문입니다. 아담이 이마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라든가 하와가 잉태하는 고통을 받은 것 등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왜 고통을 당하고 사는가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인 양,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서 생긴 것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우리에게 더 굳센 믿음과 축복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통일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더 좋은 것을 예비해두시기 위하여, 이 더 좋은 것에 합당한 우리를 만드시려 환란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받을 만한 그릇, 담기 적당한 그릇에 우리도 더 많은 음식을 넣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면, 우리의 그릇대로 그 축복을 가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란을 만나면, 우리가 고통의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불평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불평하는 자는 그 고통의 자리에 더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더욱 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야합니다.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해야합니다.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해야합니다.(시18:6, 34:17). 그러면서 고통의 상황은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성급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평안함을 얻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된 우리들의 가장 수준 높은 신앙적 자세는 바로, “즐거워하는 자세”입니다. 야고보서 1:2~4절만 보더라도,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렇습니다. “환난은 인내와 연단을 이룹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환난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맨 마지막에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소망 가운데 그 과정이 몇 가지 들어가 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환난은 성도들로 어려움 속에서 인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환난은 일정한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찾아오고 나서기까지는 일정한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그 환난의 기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인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시련을 통해 성장한 많은 인물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요셉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런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며, 애굽에서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등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어려운 환경들을 이겨냈습니다. 결국 어려운 어린시절과 청년시기를 지낸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가족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인내하고 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라고 순종하며, 소망을 붙들었던 결과입니다.
이렇게 환난 중에 인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그 환난을 인내로 이길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눅8:15).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인내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내의 훈련을 통해서 소망의 경주에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견디어 나가라고 하는지 1,2절에서 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은 이미, ‘환란을 인내로, 인내를 연단으로 연단을 소망’으로 아주 완벽히 바꾸어 내신 분입니다. 그 분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환란을 당하시고, 그 가운데 인내하셨습니다. 이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인내가운데 연단을 당하시고, 연단 이 후,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자들의 소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모범의 이 과정을 겪어내셨기에 우리는 그를 의지함으로 소망의 경지까지 이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즐거워하며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8~11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최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 주셨고,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죽으셨는지, 어떻게 죽으셨는지, 언제 죽으셨는지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에는 너무나 온전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기꺼이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그 옛날 하나님께 제사지낼 때 제단 위에 있었던 소나 양같은 제물처럼, 우리대신 그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대신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거룩함의 조건에 맞추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 모든 조건에 맞추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시간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당시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만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받는다는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참혹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분신과 같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하신 것은 자기 아들을 포기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관련있는 사람이 되었기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하고 또한 즐거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자녀, 상속자가 되는 일입니다. 이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 로마서 8장 17절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시는데, 이는 시련이 바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 밭이 귀한 것처럼 시련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시련은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련은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련은 축복을 받는 과정입니다. 한결같이 변하지 말고 어려움이 있을수록 하나님의 백성 된 본 자리로 돌아와 굳건히 견뎌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그 과정을 겪으셨고, 또 축복의 상징인 요셉도 그리하였습니다. 고난과 축복의 사람인 욥도 그리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모든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견디어 내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할 때 온전히 인내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 인내가 연단이 되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품은 그 위대한 영광의 소망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를 주 안에서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그 자식에게 더 많은 훈련과 가르침, 그리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견고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 늘 의지하며 따라가고자 하오니, 우리에게 환란을 인내로, 인내를 연단으로, 연단을 소망으로 바꾸는 승리의 삶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늘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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