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i과목

[스크랩] 영성훈련의 이론과 실천

주거시엔셩 2011. 5. 5. 18:18

제목 : [영성훈련의 이론과 실천]

         메조리 J. 톰슨  /  은성


영성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지만 가장 기본은 영성의 역사와 훈련의 기본적 개론이다. 은성 출판사가 기독교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3권의 책을 내어 놓았는데, 이것은 영성사를 개관하기에 좋은 책이다. 계열은 매우 다르지만 영성훈련의 이론과 실천은 훈련의 기본적 개론이다. 사실 우리가 널리 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어쩌면 여기까지일지 모른다. 그 다음의 훈련은 개별적 접근과 전수가 중요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영성 수련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것도 생활 가운데서 시작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냥 혼자만 읽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그 기본 내용을 요약하여 보았다. 이 기본 요약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며, 정말 이런 훈련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1.영혼의 갈급함

17-8세기 유럽 경건주의 운동(필립 야콥 슈페너와 프랑케로 대표됨)이나 18세기 미국의 대각성 운동 때와 같은 영적 갈급함이 오늘 세계에 일고 있다. 누구나 입만 열면 영성을 말하는 것이 영성의 상투화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이 요구가 널리 확산된다는 것은 새로운 영성을 요구한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은 인생 가운데 목마름이 있고, 이것을 영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스스로 종교인이라 생각하기는 싫어하지만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영의 여행?, ?영성 회복?, ?피정?등에 열을 올린다. 정신 치료사들은 사람들이 영에 대하여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하며, 학교에서는 영성적 과목에 대한 요구들이 일어나고 있다.

갈급함의 원인
첫째 하나님은 특히 과학성이 강한 오늘의 합리주의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마음의 안정을 원하기 때문이며, 셋째 그럼에도 오늘 세상은 계속하여 피상적인 것에 가치를 둔 채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며, 넷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태 등 여러 분야에서 위협과 불안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요인
첫째는 사람들이 고통과 비극을 느끼기 때문이며,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조차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을 원하나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교회 내에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적 요인
사회학자들은 영적 갈급함조차 사회심리적인 이유로만 풀이하지만, 이는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창조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영적 갈급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가 영적 갈급함의 진정한 원인인 것이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1)우리 시대는 경건 혹은 헌신이라는 말을 두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영성이란 말을 선택하였다. 2)영성생활이란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 안에 생명력이 충만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의 영성이 형성되는데, 이는 우리가 창조되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형성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여 우리 모습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일치는 개인적인 것도 있으며 공동체적인 것도 있다.

영성생활의 특징
영성은 활동적인 특성을 가지며, 전과정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바다와 바람 속에서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키와 돛으로 항해하는 항해사와 같다.

영성 훈련의 역할
영성훈련은 생활 속에서 어떤 행동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 협조하는 것이다. 이는 때로는 가혹하다 할 만큼의 노력과 연습을 요구한다. 훈련은 즉 하나님의 명령에 접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우리의 선택 가운데서 영적 발달을 얻는 것이다. 영성 훈련은 영적 성장의 열망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성령과 관련을 맺고 그 안에서 성장하여 가는 것인데, 그러나 영성 훈련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며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영적 생활이다.

먹을 것과 마실 것
우리는 영성에 있어서도 전통에서의 연역과 삶의 체험을 같이 가져야 한다. 이 훈련에 망설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거들떠보시기나 할까하는 불신과, 불필요한 세상과 천국의 이원론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성훈련을 통하여 내적 삶과 사회의 현실 모두에 성화를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로워질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떤 희망을 제시하며 어떤 새로운 삶을 제시하겠는가?


2.말씀의 양식을 먹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정보를 얻기 위해 바쁘게 훑어보는 태도보다는 오랜 친구의 편지를 읽는 것처럼 고요하게 하나 하나 음미하며 읽는다. 그래서 영적 독서는 묵상과 같고 기도와 같다. 양보다는 그 깊이와 이해가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information)를 쌓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형성(formation)시켜가는 것이다. 이 변화는 개인의 행동과 인간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위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하며 어느 정도는 안정된 시간과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기꺼이 말씀에 응답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영적 독서의 주된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성경이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거룩한 문서들이며 참된 믿음과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신뢰할 만한 인도자이다. 성경은 물론 인간의 언어를 통해 들려오지만 성경은 결코 인간의 말이 아니다. 토마스 머튼은 “우리는 성경 속에서 우리를 초월해 있으면서, 신비스럽게도 우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사건과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성경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게 되며, 가장 은밀한 동기나 의도까지도 알아보게 한다.(시139편;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이리하여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를 완벽하게 파악하시도록 하는 행위이다. 그러고 보면 성경 읽기는 처음에는 정보를 얻는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 나의 형성에로 돌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주님 말씀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라는 태도를 가질 일이다. 6세기 베네딕트는 영적 독서(Lectio Divina)를 중요한 훈련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읽기, 묵상, 구송, 관상(lection, meditation, oration, contemplation)의 4단계로 되었다. 읽기는 천천히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며, 묵상은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우리의 삶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이며, 구송은 이 때에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기도이며, 관상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휴식하는 것으로서, 나의 생각을 바라봄을 통해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보고, 그 결과 일치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을 말한다. 독서를 위해서는 성경이 기본이지만, 고전적 경건 서적이나 종교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영적 독서는 결국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결정적인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충만해지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 힘을 인식하고 기꺼이 그 분의 말씀을 듣겠노라고 우리의 마음을 여는 행위인 것이다.

3.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

우리의 모든 사랑과 열망, 희망, 그리고 갈급함,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 안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갈구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이것들에 대한 갈급함을 느끼도록 만드셨습니다.-마리아 보울딩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성령님은 이미 우리 속에서 탄식하며 친히 간구하신다(롬8:26). 우리는 자유로운 가운데 헌신해야하고, 그 내용이 진실해야 하며, 시간이 많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이것은 먼저 듣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바로 그 곳에 계신 분이다.

듣기
우리 영혼 속에서 성령님이 이미 말씀하고 계신데, 어쨌든 출발점은 성경이다. 성경에서는 또 자연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을 듣도록 이끈다(시19편).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혹은 우리의 상황을 통해서, 또는 꿈을 통해서(우리 내면의 상징들은 영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영적 일지를 기록함으로써, 묵상함으로써, 또 하나님께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공부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말하기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감정을 다 드러내면서 말한다. 감정이 풍부한 시편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오히려 성령님은 숨어있는 우리를 드러내신다.

중보기도
이 기도는 사람이 가진 공동체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기도이다. 기도의 응답은 더딜 수 있지만, 그런 가운데도 우리는 여전히 “내가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 뿐입니다”라는 견고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중보기도는 1)하나님께 간구하여 설득하는 일이고 2)기도의 몰두로써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며 3)하나님의 의지와 행동을 기다리는 일이며 4)살아있는 모든 것과 삶의 에너지를 나누어 가지는 일이며 5)우리가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가 되는 일이며, 6)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일이며 7)기도의 응답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일이며 8)우리의 모든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을 향한 복종과 믿음의 결합
기도는 결국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은혜를 요구하는 일인데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1)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다가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는지, 내가 그리스도께 꼭 붙어 있는지, 2)그리고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은혜를 성취시키시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1)먼저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하고 2)믿음을 갖고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3)그래도 응답이 없다면 더 합당한 기도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4)직접적인 응답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명백히 주어진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보기도는 또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기도는 행동할 수 없을 때 하는 대체품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균형을 위해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해 오히려 우리 기도를 사용하신다.

실천방법

중보기도의 상상
1)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숨쉬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낀다 2)하나님의 현존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3)그 사람을 빛 속으로 끌어올린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 4)아름다워진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5)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계획하신 모든 일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한다

시편 쓰기
1)감정을 담아서 내 나름의 시편을 쓰는 것이다. 2)성경의 시편을 내 나름으로 다시 쓸 수도 있다 3)예수님과 나와의 대화로 다시 써 볼 수도 있다 -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성경 말씀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체험이 된다

교제로서의 기도 - 초월적 하나님과의 관계

관상기도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인데, 노력을 통해서 얻는다기보다는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조용하며 부드럽고 명료하며 활기차고 감미롭고 즐거운 것이다. 영혼의 안식이다. 말과 일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존재만이 명백한 사실로 남아서 사실은 우리 자신도 우리 자신의 존재가 된다. 이 기도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실천방법

임재의 기도
1)긴장을 풀 수 있으면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의자에 엎드린 자세등) 2)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3)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주목한다 4)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의식 속에 충만히 차고 넘치게 한다 5)받은 은사가 무엇이든간에 그 선물에 감사하며 기도를 끝낸다
마음의 기도
성경 구절이 기도말을 되뇌이면서 점차 머리에서 마음으로 옮겨가는 기도이다. 이 때에는 예수기도(?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를 사용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한 단어에 집중하는 집중기도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물을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1)예수를 그려본다 2)내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잘 쓰는 말을 찾아본다 3)산책을 하거나 움직이면서 계속 이 기도를 반복한다
실제적인 문제들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알맞은 시간을 할 수만 있다면 많이 내는 것이 좋다. 이 때는 개인적인 생활 리듬도 고려해야 하며, 한 번 정한 기도처는 자주 사용함으로써 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의 집중력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사래를 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무엇인지 적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4.성령 안에서의 모임(예배)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봉사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봉사한다는 것은 찬양과 감사로 희생을 드리고, 또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것으로서 말씀을 듣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나 자신을 내어드리겠다는 결심을 통해서 희생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봉사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분의 용서로 인하여 우리가 용기를 회복하게 되고 또한 갈급한 마음에 촉촉한 말씀을 공급하셔서 삶에 새로운 목적을 얻게된다는 뜻이다. 이리하여 우리가 우리 전 존재를 바쳐서 하나님께 주목하고 응답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막12:29-30에서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예배는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그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이 때 마음은 감정만이 아니라 이성과 의지를 포함하며 그래서 일어나는 우리의 모든 상상력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예배를 마음으로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다 바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에 응답한다는 의미가 된다.

모임의 필요성
예배의식은 하나님을 그 중심에 놓으면서 동시에 우리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준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지만 이 모임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받은 유산이 무엇인지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강림절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을 맞을 때마다 예수의 삶이 갖는 의미를 우리 자신과 연관지어서 생각하게 된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엡6:12)과 세상 권력은 본성적으로 연합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합하여 빛과 진리 그리고 평화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져야한다.

주일 성수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다. 안식일에 휴식을 취하는 목적은 자유로운 가운데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함께 창조해 놓으신 평온에 참여한다.

예배의 문제점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 찬양이 힘들다거나, 마음이 갈급하다거나 그런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방안
예배준비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거나, 예배 하루 전에 한 시간 정도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거나, 혹은 이 준비 자체를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방법도 있다.
예배 드리는 동안
적어도 10분 정도 먼저 와서 성경을 봉독할 때도 찬송을 부를 때도 시편 말씀을 읽을 때도 누가 기도를 할 때도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인다. 어떤 의미있는 부분이 발견되었다면 잠시 멈추고 그 부분에 주목할 수도 있다. 예배 중에 하나님께 응답할 때는 울고 웃고 감정의 표현에 자유로워야 한다. 몸동작을 사용할 수도 있고, 교회의 상징물들을 가지고 묵상할 수도 있다.
예배 드린 후에는
망설이지 말고 그러나 정중하게 예배 인도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예배 지도자들에게 주는 조언
예배 순서를 정할 때에는 통일성을 기하여 성도들이 영적 체험에 이르도록 이끌어야 한다. 예배 중에 묵상할 시간을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경봉독은 형식적으로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성도들도 미리 그 본문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또 예배실은 창문이나 소리 향기 성화등을 통하여 영적 체험을 이끌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교제에 있어서도 단지 악수만 하기보다는 말로써 부르고 인사나누는 것이 더 친화감을 준다. 성찬을 나눌 때도 손을 들어 “우리가 주님께 우리 자신을 높이 올려 드립니다”하고 말하는 것도 좋다. 짧은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배를 인도하면서 예배를 체험하는 것
무엇보다도 철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주간의 개인기도이다. 특히 성례를 베풀기 전에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예배시간 동안 기도를 드려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인식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는 나의 체험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5.자기를 비우는 훈련(금식)

역사를 통해서 아는 금욕은 고행, 짐승 털옷, 정조대, 채찍질 같은 비실제적인 개념에 연관되기 쉽다. 오늘에 이르러는 건강을 위한 금식 등의 개념도 있으나 이 또한 기독교의 금식 개념은 아니다. 고대 유대에서는 금식은 민족과 개인의 죄를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새 일을 위해 힘을 얻기 위한 두 경우에 하였다. 예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금식하셨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경건을 나타내기 위해 정기적으로 금식하였으며 루터 칼뱅 웨슬리 죠나단 에드워드 같은 이들도 정기적 금식을 권고하였다. 금식은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존하도록 하기 위해 하는 훈련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내적 세계를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음식이 없는 상태가 끔찍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음식이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금식은 어떤 영성 훈련보다 효과적이어서, 금식을 실천하게 되면 물질에 집착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고, 세상적 사유를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요6:35). 먹을 양식이 없을 때 우리는 우리를 지탱시켜 준 것이 양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순절에 대한 관점
사순절은 고난과 부활을 앞두고 금욕하는 기간이다. 그리하여 사람들 마음에는 제약과 통제와 회개라는 두려운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사순절은 단지 초콜렛, 팝콘, 껌등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나 용기가 진정한 것인지 시험해보는 기간이 아니다. 초대 교회 때에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며 인간이 타락하기 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했다.
천박한 소비행위는 우리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들은 이런 것을 배경으로 자신에게 아무런 한계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시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순절(Lent)은 원래 “샘, 원천”을 뜻하는데, 즉 인간의 영혼이 새 힘을 얻는 원천이라는 뜻이었다. 즉 하나님이 행복의 원천이며, 그리스도는 또 다시 우리가 그 행복에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이시다. 아담의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파기되었다. 예수께서는 금식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셨으며, 우리도 그 예수를 따라 훈련함으로써 그런 힘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음식의 절제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자 알렉산더 슈메만은 금식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영적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허술한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금식한다는 것이다. 금식은 부분적 금식, 일반적 금식, 절대적 금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일반적 금식은 일정기간 물 외의 모든 음식을 끊는 금식이다. 이 동안에는 병중이거나 여행중이거나 강박에 시달려서는 안된다. 평소의 활동도 줄여야 한다. 금식은 원래 부분적인 금식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한 주에 24시간 이상이 되지 않게 행하는 것이 기본이며, 오렌지 쥬스를 마시지 않는 류의 금식도 한 방법이다. 이런 부분적 금식으로 몸을 길들인 후에 36시간 이상의 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서 일반적 금식에로 들어가게 되는데, 일단 36시간 이상 금식을 한 후에 얼마나 더 금식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 좋다.

다른 형태의 금식
음식만이 아니라 문명의 모든 요소에 대해 절제하는 것을 금식의 개념에 포섭할 수 있다. 음식, 음료수, 섹스, 마약, 총, 자동차, 의복, 에너지, 발명품, 텔레비전, 컴퓨터, 비디오, 유행, 이데올로기, 이벤트, 노동과 여가까지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면서 이것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일에 있어서도 너무 나태한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열중하고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중용을 취할 수 있어야 하며, 점진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절제이다. 자녀를 빡빡한 일정에 옭아매는 것도 금해야 한다. 그래서 금식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혼을 치유하시고 이끌어 가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영성훈련인 것이다.

훈련방법
금식 중 영적 일지 기록하기
금식 기간 중 자신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않고 있어서 큰 성취감을 얻었다/ 금식의 진정한 목적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강박적인 행동들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욕망과 욕구에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금식을 할수록 먹고싶은 충동은 더욱 강력해졌는데, 6개월정도 금식을 계속하면서 처음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묻기 시작했다/ 금식과 기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회개와 금식의 재발견
금식은 회개를 나타내는 수단이다. 칼뱅은 자연적인 재해가 하나님의 메시지라 보았다. 그래서 전쟁 가뭄 기근이 있으면 모든 국민들은 스스로 겸비하고 죄를 고백하여야 하며, 성직자들은 성도들에게 금식을 하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개인적인 악과 사회적인 악이 가득할 때 교회는 회개하여야 한다.

영혼의 봄
가장 단순한 금식이라도 규칙적으로 실천하면 자신을 지배하고 탐욕이나 충동을 통제할 힘이 생긴다. 금식은 우리를 정결케 한다. 또 참으로 배고픈 채로 잠자리에 눕는 사람들을 생각하게도 한다. 그리하여 금식은 우리를 다른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리하여 금식은 하나님께서 활동하실 공간을 넓힌다. 우리는 자신에게만 몰두하던 습관을 버리게 된다. 이런 까닭에 금식은 우리를 내적으로 정결케 하는 샘물이다. 금식은 어둡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밝고 즐거운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본성에로 되돌아 간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6.양심과 의식에 대하여(양심성찰과 의식성찰)

때로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시선이 두려운 것은 나의 더러운 것이 다 드러나는 것이 싫은 까닭이지만, 이 더러운 것들이 치유 회복되는 것도 하나님의 눈길 아래서만 가능하다.

출발점
자기 성찰을 올바르게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1)가장 기본적인 믿음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2)하나님 앞에 선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 두가지이다. 이리하여 자신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은혜가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이 전환점을 우리는 회개라 부른다. 이런 성찰은 양심의 성찰과 인식의 성찰 둘로 나눌 수 있다. 양심 성찰은 한 주에 한 번 인식 성찰은 매일 행하는 것이 좋다.

양심성찰
한 영혼이 하나님의 눈 아래 놓여지면 그 영혼의 가장 중요하고 깊은 곳을 꿰뚫어보게 된다. 예를 들어 성찬도 이런 성찰 가운데서 준비되어야 한다. 양심 성찰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때에는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금물이다. 정직한 자기 평가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우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이며 가지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도덕적 일람표”를 숨김없이 철저히 작성하여야 한다. 이것은 자신을 알아내는 것이다. 이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여러 날 혹은 여러 주가 걸릴 수도 있다 2)두려움, 죄책감, 당황, 부끄러움과 같은 불편한 감정이 찾아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 때문에 성찰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3)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여 자기 성찰을 하여야 한다 4)남의 행동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렇게 양심 성찰을 실행할 때에는 한 번은 자신의 단점을 생각하고, 한 번은 장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야 나를 온전히 알게 된다.

삶에 대한 회고
기록할 종이를 몇 장 가지고 각 장의 상단에 두려움, 분노, 심적 안정, 물질적 안정, 사회적 승인, 성, 신앙등 한 가지 중심 주제를 기록한다. 그 다음에는 각 주제를 회고하는데, 가장 초기적 기억부터 되짚어와서 현재로 접근하는 방법이 좋다. 이 때에는 “나”라는 말을 분명하게 써서 자아 성찰이라는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ex.분노→이유→결과→나의 대처). 혹은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적거나 감정이나 심적 안정에 영향을 미친 사람의 이름을 적는 데서 시작할 수도 있다(ex. 사람→감정→원인→영향). 물질적인 안정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나 경험을 회고할 때에는 금전적인 문제도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성의 문제에 대하여는 동기를 살피라. 이런 회고를 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신앙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미지가 어릴 때와 지금은 어떤가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이런 과정 속에는 나는 나의 결점을 발견하고 장점도 발견하게 되며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다.

매일 행하는 자기성찰
매일 목록을 작성하는데, 여기에는 이기심, 부정직, 분노, 두려움, 질투, 자기 연민, 탐욕, 부러움, 미움 같은 성격적 결함이 나타나게 한다. 이리하여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버리고 자주 나타나는 결점을 찾아서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 생각한다. 정교회에서는 진복구단(팔복말씀)을 로마 카톨릭에서는 10계명을 사용해 왔으며, 오늘 개신교 교회는 이 양자를 겸할 것을 권한다. 이리하여 은혜에 감사하고 통찰력을 위해 기도하며 특별한 자시 성찰과 일반 성찰을 하고 통회한 후 더 나은 행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개인적인 고백과 공중의 고백이 균형을 이루면 좋으며 이를 위하여 교회가 공중 예배 시간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영적 친구
영적인 형제나 자매가 있어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다. 리차드 포스터는 진지한 친구에게 문제를 토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고백을 한 바 있다. 어렵기는 하지만 얼굴을 마주 대하고 죄를 고백한 것은 엄청난 해방감으로 다가온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죄의식으로 고통받기 보다는 앞 가슴에 십자가를 달아서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의식의 성찰
이것은 한 단계 더 나가서 여러 사건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다 성찰해 보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재하였는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의식의 성찰은 내적 외적 성찰이 병행하여야 한다. 육체적인 증상을 통해서 내면을 알 수도 있다. 머리의 통증을 통해서 자신이 놀라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어깨의 긴장을 통해서 충격받고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두려움, 자존심, 탐욕...... 그리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입니까?” 예라고 할 수 있다면 은혜에 감사하고, 아니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면 자신의 실패를 고백하고 새로운 힘을 달라고 고백해야 한다. 잊지 말 것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려는 열망이 있어야만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천방법
성찰의 첫 과정은 “삶을 중심으로 드리는 기도”이고 두 번째 과정은 “매일 일지를 기록하는 행위”이다.

삶을 중심으로 하는 기도
하루를 정리하고, 되돌아보며, 감사하고, 죄를 고백하며, 그 너머 사건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매일 영적 일지 기록하기
이는 그 날의 단편적인 삶들이 하나님 안에서 통합되도록 이 일지를 기록한다.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은혜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임재하셨는지 찾아야 한다. 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그리고 타인에게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주목하면서,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품는다. 그리고 감사로 하나님께 미소를 짓는다. 한편 하나님의 은혜에 잘 응답하였는지 무시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록한다.

진정한 영적 고백
진정한 고백은 겸손으로 나타나지만, 거짓된 고백은 걱정 근심 교만으로 표현된다. 아빌라의 테레사는 이렇게 수녀들에게 경고하였다, “딸들이여 악마가 준 거짓된 겸손에 대항해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런 거짓된 겸손을 갖게 되면, 자신의 죄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굉장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불안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을 괴롭힐 수 있는데, 심지어는 성찬받는 것을 포기하거나 개인기도를 포기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 악마가 이 모든 것들을 쓸모없는 것들로 여기도록 여러분들을 조종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모두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너무나도 악화되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자신의 처참함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비로움에 눈을 돌려서 하나님의 은혜에 주목하여야 한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을 계속하여 쳐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화와 기쁨, 평정을 가져다 준다. 결국 자기 성찰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든지 간에 우리는 새로운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성찰의 열매
자기 성찰은 자신을 건전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게 하여 말할 수 없이 많은 유익을 준다. 자기를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맞물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더 진실해 진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거나 방어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순하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긍휼을 갖게 된다. 자기 성찰 속에서 자신의 실패를 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인정하게 된다. 이리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과 평화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결점이 치유된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과 그 은혜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마음 속에 활동 하시는 성령님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7.영적 순례의 동반자(영적 지도의 선물)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을 이성으로는 알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을 외면한 채 살고, 그래서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기도를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기도생활이 무엇인지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오늘에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만나고 싶다. 영성훈련을 오랫동안 실천해 온 사람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도움도 받고 싶다. 사람들은 이렇게 영적 지도자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영적지도의 역사
여러 종교에는 모두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있다. 선지자, 제사장, 랍비, 구루, 장로, 선생 등, 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거나 어느 정도 완벽한 영성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모아서 가르치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상당히 상호 반응적인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요15:12-17; 21:15-17). 바울은 스스로 복음의 아버지라 하였고(고전 4:15), 사막의 교부들은 영적 아버지로 불렸다. 개신교에서는 목회 상담이라는 말로 이 영적 상담을 하여 왔는데, 개인 보다는 그룹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하였다. 성령은 말하자면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성직자만 스승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영적 지도자는 정통한 자는 없으며, 영성 생활에 놓인 표지들을 이해할 수 있고, 어려움을 만날 때 우회할 수 있고, 또 그 고통이나 유혹에 어느 정도 친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겸손 지혜 긍휼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무슨 일을 하는가?
영적 지도란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간접적 신앙을 벗어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지원하고 용기를 주고 기도하며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는 1)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하나님에 대한 느낌 의문 경험 등에 대하여 우리의 말을 듣고 인도해 준다 2)우리가 어떤 것이든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나님의 고요하고 낮은 목소리를 그래서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3)우리가 자유롭게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4)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성훈련을 제시해 준다. 5)우리를 사랑하며,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

영적 지도의 종류
수도원 전통에서는 영적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보다는 좀더 편안한 형태의 관계를 가지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이 때에도 한 사람이 지도를 받는 것이라면 그 관계는 잘 지켜져야 한다. 한편 친구와 같아서 스승과 학생의 위치를 번갈아 가면서 바꾸는 방법도 가질 수 있다. 영적 우정의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적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영적 지도의 시작
도움을 얻기를 원한다면 원하는 도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하고 거기에 맞는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이 때 영적 지도자의 자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열거할 수 있다. 1)신앙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한 기독교인을 찾는다 2)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을 찾으라 3)남의 이야기를 인내를 가지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4)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5)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할 줄 아는 사람을 찾으라 / 그리고는 자신에게 적절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와의 만남
어떤 형태의 만남, 횟수, 시간 등을 의논하고, 두 사람이 갖고 있는 희망과 기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두 사람은 어떤 일보다 이 영적 만남을 우선해야 한다. 만나서는 짧은 시간 담소를 나누고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간단한 기도를 드리고 학생이 자신의 체험이나 의문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영적 지도자가 통찰, 이야기, 충고 등을 통해서 대답을 주거나 나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는지는 여섯 번 이상은 만나야 알 수 있고, 그런 다음에 영적 지도자로 결정할 수 있다. 그 과정에 내린 결정은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

영적 지도자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영적인 문제가 섹스와 같이 개인적인 문제라 보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 둘 다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나의 삶이나 일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더 잘 인식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등의 생각을 나누어야 하고, 지도자는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말하게 하고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적 지도자의 장점과 문제점
영적 지도자에게 화가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때에는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이 때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플레너리 오코너는 이런 말을 하였다, “모든 인간은 온 힘을 기울여 은혜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키려 하는데, 그 변화는 우리들에게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와 성격의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 때는 서로가 새로운 관점을 얻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다. 지도자가 맞지 않는 방법을 강요한다고 생각되고 고집하면 맞지 않는 지도자일 수도 있다. 계속하고 싶다 하더라도 끝내는 것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지도자와의 사이에 성적인 문제는 솔직하게 말하되 절대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

영적 동반자 관계 테스트
먼저 영적 지도자를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데 그와의 관계가 도움이 되는가? 나의 생활과 신앙을 연결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의 삶을 하나님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들이 괴롭히는 것은 없는가? 등등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영적 지도의 갖치
물론 영적 지도가 없을 때에는 영성에 관한 책들을 지도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고 나의 문제에 관심을 써주는 사람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이런 때에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경험담이다, “나는 신앙의 여정을 가던 중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힘을 주었으며, 나를 가치있는 자로 대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정확하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함께 지켜봐 주었다. 또한 그 사람은 나를 위해서 항상 진심으로 기도해 준다. 나는 영적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8.환대

환대는 많다. 1)졸업 여행을 간 사람이 관광지에서 모텔을 얻지 못해서 비를 맞으면서 오락가락하였다. 한 집에서 가족이 의논하더니 없는 방을 하나 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여관 주인 부부의 침실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내는 하루 동안 너무나 친절하였다. 2)여행 중에 고열로 고생하는데, 병원에 데려다 주었을 뿐 아니라 과일 바구니까지 가지고 왔다 3)한 여학생이 멕시코 어느 마을을 지나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랬더니 그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초대를 했다. 매우 커다란 잔치를 벌여 주었는데, 알고보니 자신들의 얼마 안되는 음식을 다 내어놓은 것이었더란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서의 환대
환대가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행은 환대였다. 왜냐하면 지나가는 적을 대접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천사를 환대한 후에(창18:1-10; 히13:2) 아들을 얻었다. 초기 기독교인은 환대를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베네딕트 규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도원을 찾아온 모든 손님들은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것처럼 환영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예수께서 ‘내가 낯선 자되었을 때 당신이 나를 맞아들여 주었다’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실은 이런 환대를 통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환대의 본질
환대란 나의 공간 속으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이 때 공간이라 함은 방이나 아파트같은 물질적 장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정신적 감정적 공간이기도 하다. 즉 환대는 우리 마음속의 하나님 은혜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 내부 세계 즉 생각과 감정의 세계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다. 환대는 또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꼭 해야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환대는 음식은 물론 피난처와 휴식, 보호와 돌봄, 즐거움과 평온을 제공하여, 육체적 감정적 영적 욕구를 다 채워주는 것을 말한다. 환대는 뜻밖인 경우도 있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어렵사리 전화를 하였는데, 임종을 앞둔 사람이 오히려 부활신앙으로 위로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환대: 은사와 은혜
하나님은 환대의 근원이시다. 무엇보다 창조가 환대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쁨의 동산에 거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환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무엇보다 음식이다. 알렉산더 슈메만은 “지금까지 세속화가 계속되어 왔지만 먹는 것을 실용적인 의미로 세속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음식을 대하고 있다...... 식사도 하나의 의식으로 즉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하는 자연스런 성찬으로 여기고 있다” 하였다. 우리의 타락은 이 은혜에 감사함이 없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선악과사건은 그런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두 번째 환대를 베푸셨으니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지만 어떤 질병이든지 고쳐 주기 원하는 의사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는 것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이다. 왠가하면 죄인 된 인간들이 하나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은 용서와 치유, 화해, 휴식, 평화, 기쁨, 교제 이 모든 것을 소유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환대: 수용과 응답
우리가 하니님의 환대를 받아 우리가 드릴 수 있는 환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초라하다. 왜냐하면 이 환대 마저도 다시 되돌아와서 오히려 우리가 더욱 환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환대는 이렇다. 첫째는 하나님의 환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이고, 성령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만 들었던 것도 그래서 좋은 환대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또 환대이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환대: 동정과 공동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밤이 끝나고 아침이 시작되는 여명의 순간의 특성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 랍비는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가 형제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이 형제는 제한된 어떤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겸손으로 환대할 수 있고, 이데올로기 주장에 빠지지 않음으로 환대할 수 있다. 그래서 환대는 타인을 타인인 채로 두는 것이다. 함께 가까이 일하던 사람이 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래도 환대하여야 한다.

가정에서의 환대
환대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가정은 안정과 사랑이 있어야 하고 아울러 자유도 있어야 한다. 아이의 성장 시기에 맞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육체적 공격이나 거짓말, 도둑질, 속임수등 특정한 행동들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이해되지 않는 면까지도 수용해주어야 한다. 가정생활이란 서로 다른 성격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매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다. 갈등과 상처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남을 용서하는 것이 환대의 핵심이다. 아이들과는 함께 놀아주는 것도 환대이다. 어른이 관대하고 믿음직하며 여유를 가지고 용서할 줄 안다면 아이들도 환대를 배우게 된다. 가족끼리 환대하면 밖에 나가서도 남들에게 환대를 베푼다. 가정에서 타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할 수도 있다.

직장에서의 환대
사무실은 정기적으로 개방되어야 하며, 잘 꾸며져서 찾아온 사람이 안락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다. 스스로가 부서장이라면 일터가 좀더 아늑하게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용기와 적당한 칭찬을 주고, 건설적인 제안을 할 수 있도록 자주 접촉하여야 한다.

이웃관계에서의 환대

교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대
궁극적인 환대의 장소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불구자 정신지체아 정신적으로 허약한 자, 이혼한 사람들, 동성애자등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중보기도도 환대이며, 목사의 필요, 고독, 과로, 영성 생활의 고갈 등 요소에 대하여도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환대 행위
학교, 치료시설, 휴양시설 등에서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 환영마차 같은 것이 있어서 처음 이사온 사람을 안내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결론적으로 환대는 신앙을 통해서 받아들인 하나의 모험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을 때에만 베풀 수 있는 하나의 희생 행위이다.


9.모두 합하여-생활규칙 세우기

우리의 생활과 신앙이 성숙해 감에 따라 마음도 넓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달콤한 사랑을 가지고 걸어가게 된다. 그의 인도하심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으면서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게 되며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R.B.)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체계나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영성적 생활 규칙이 필요하다.

생활규칙이란 무엇인가?
영성훈련의 한 형태로서 거룩하게 성장하려는 사람들을 이끌어 주고 그들에게 체계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는 규칙이다. 생활 규칙은 마음을 다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만, 구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훈련과 연습이다. 우리는 이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요일3:2). 이 규칙은 개인적인 것이 있고, 함께 하는 규칙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R.B.이다.

개인적인 생활규칙의 실례
교황 요한 23세는 1)아침에 일어나서 15분 동안 조용히 기도 2)15분 동안 영적 성경 묵상 3)잠자리 들기 전에 자기 성찰하고 곧바로 고백, 다음날 아침에 문제되는 것을 기도 4)이 규칙들을 매일 실천할 수 있도록 시간 조정. 기도와 연구, 재충전, 그리고 잠잘 시간을 특별히 정해 놓을 것 5)기도할 때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일 것.
또 어떤 이는 한 달에 한 번씩 24시간을 조용히 독거하였다. 도로시 데이는 매일 성찬, 매일 성서, 매일 일지를 실행하였다. 마틴 루터킹의 규칙 1)예수의 생애와 가르침 매일 묵상 2)비폭력 운동은 승리가 아니라 정의와 화해를 추구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3)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을 가지고 걷고 이야기하라 4)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얻는 데 내가 사용되기를 기도하라 5)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하여 개인적인 바램을 포기하라 6)평범한 관용의 법칙을 가지고 친구와 대적을 바라보라 7)육체의 폭력, 말의 폭력, 마음의 폭력을 삼가라 8)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라 9)주최측 지시를 따르고 데모의 지시자를 따르라

선택
1)영성 훈련들 중에 내가 가장 호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훈련은 어떤 것인가? 그 이유는?
2)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부분에서 좀더 성장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는가? 3)내 생활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가?

꾸준히 실천하기
일단 자신이 전념할 수 있는 생활 규칙이 무엇인지 결정했다면 그것을 기록하라. 영성훈련은 곧 영성생활의 통합을 이룬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에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 자신의 목적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정리/ 안영혁

출처 : MOSDONG
글쓴이 : 모스동댁 원글보기
메모 : 영성훈련, 언어훈련, 선교적사업기지수행능력 중 하나. 영성훈련의 개론지침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