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영광의 길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 길,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하네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취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 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 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기 원하네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하네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넓고 평탄한 길이요, 또 다른 하나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역사 이래로 사람들은 길을 닦고 넓히면서 살아왔습니다. 한 때 이 세상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주변 나라들의 길을 모두 로마로 통하도록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말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누구든지 크고 평탄한 길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두 가지 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이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넓고 평탄한 길을 가기 원하지만, 잠시 편안한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반면에 멸시와 고난과 오해 받는 길은 잠깐은 힘들고 지치지만 기쁨과 영광의 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53장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은 고난의 길 뿐이었을까요?
1. 멸시와 고난의 삶(3, 5절)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인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합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나사렛이라는 시골에서 메시아가 날 수 있느냐며 비웃습니다(요1:46). 심지어는 예수님의 형제들 조차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요7:5).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멸시 받습니다. 남의 집 사는 주제에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고 조롱하고 주일이라고 일도 안하고 교회 간다고 놀립니다. 하지만 결코 약해지면 안됩니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예배드리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제자들과 당시 병 고침을 받은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따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적들을 베풉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다스리는 위치에 있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러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합니다. 재판장에 끌려 다니며 로마 병정들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제비뽑기를 당합니다. 머리는 가시에 찔려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옆구리는 창에 찔립니다. 온 몸은 채찍에 맞아 상하고 손과 발은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대항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결박하고 고문하는 로마 병정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따르던 군중들이 이번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군중들의 심리는 파리 떼가 냄새를 찾아 모이는 것처럼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이 끌려 다니며 고난 당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기 보다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당하실까요?
2. 오해 받는 삶(4, 9절)
아버지학교에서 한 아버지에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오후, 핸드폰이 울립니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전화를 받았습니다.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가 ‘여기는 시내에 있는 OO마트인데, 아버지께서 빨리 와보세요’라고 합니다.‘왜 그러느냐’고 해도‘빨리 와 보면 안다’며 전화를 끊습니다. 급히 차를 몰고 도착한 아버지는 벽에 등을 대고 두 손을 들고 있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켜 도둑질을 했으니 저를 경찰에 고발해 주십시오. 그리고 훔친 물건은 두 배로 갚겠습니다” 라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오히려 ‘제가 잘 타일러 보냈어야 하는데, 이렇게 아버지를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하고, 아이에게도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가 계신데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며 그냥 돌려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이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트 주인 말처럼 이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아버지입니다. 결코 도둑질 한 아들을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분명 아들이 도둑질했지만 아버지가 잘못 가르쳤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 것입니다. 아들의 잘못을 아버지가 대신 잘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진정한 십자가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지는 것입니다. 투덜거리거나 마지 못해서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낌없이 주저 없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바로 이런 십자가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잘못으로 아버지가 대신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채찍에 맞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창과 가시로 찔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렸다고 조롱하고 비웃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우리는 자신이 처지가 친구들보다 못하다며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자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신 것처럼, 부모님 또한 우리들 때문에 더 힘든 일들을 겪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때, 여러분은 자랑스럽습니까? 아니면 부끄럽습니까?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잠깐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장래에는 그 고난 때문에 큰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영광 받는 삶(10절)
예수님은 2천 년 전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짊어지시고 갈보리 산을 오르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주님의 옷을 벗기시고 침을 뱉으며 머리에는 가시관을, 손과 발에는 대 못을 박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리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셔서 주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이 주님 발 앞에 엎드리게 하셨습니다(빌2:9,10). 사람들이 씌웠던 십자가는 잠시 고통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3일 동안 무덤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지는 것입니다. 앞의 노랫말처럼 자기 길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길을 비추는 것입니다. 저기 높은 솟은 산이 되기 보다는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막8:34). 그 십자가는 잠시 우리를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그릇으로 만들어 가는 데 따른 연단이지만, 그 연단을 벗어난 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분명 십자가는 무겁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를 주님께 내려 놓으시면 됩니다. 그럴려면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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