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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국인 유학생 사역의 활성화 방안

주거시엔셩 2015. 6. 30. 16:05

 

국내 중국인 유학생 사역의 활성화 방안

 

하나님의 관점

조선시대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지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과 중국에서는 더 이상의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절대적인 영역에 있던 많은 것들이 위협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인 영역에 있던 것들도 탈바꿈하여 절대적인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선교현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전에는 ‘문화를 초월하여 나가는 것’이 선교의 일반적 정의였다면 이제는 지구촌화, 글로벌화의 시대를 맞으면서 ‘나의 영역 속에 찾아온 타문화를 돌아보기’라는 개념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다.


한국의 선교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문화를 초월하여 나가는 것’에 다분히 편향되어 있는 것 같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지면 여전히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와 힘들고 어려운 나라에 더 많은 선교사가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점에서 선교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 자신도 선교에 관한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방향을 전환했다. 선교의 디딤돌을 놓았던 영국과 유럽 일대는 지금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광고문들을 게시하고 있다. 또한 창조론의 진부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진화론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무슬림의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19세기 많은 선교사를 배출했던 영국과 유럽이 냉랭해졌음을 보고 누구보다 더 통탄해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헌신된 자를 통해서 그 땅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실 것이다.

선교대상은 나라가 아닌 민족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선택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향한 배타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경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방인일지라도 이스라엘에 거하며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선민으로 편입됨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중국 대륙만을 품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갈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내 의지는 좌절되고 이 땅에 남아서 그 곳의 영혼들을 섬기게 하셨다. 혼동을 겪고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했다. 하나님은 마침내 마태복음 28장 19절을 통해 나라가 아닌 민족을, 다시 말하면 나라가 아닌 영혼을 품으라고 하셨다. 나의 선교대상을 나라로 국한할 때는 지리적인 제약이 동시에 따르지만 민족을 품을 때, 그 영혼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은 나의 선교대상이요 내가 섬길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하셨다. 그 때부터는 ‘중국선교사가 왜 한국에 있느냐?’라든지 ‘우리는 국내에 있는 선교사를 후원할 수 없다’라는 후원자들의 반응에도 자유할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거리에 외국인들이 지나가면 한참을 쳐다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문화 가정도 많고, 외국 투자자들도 많으며, 관광객과 유학생이 참으로 많아서 더 이상 낯선 부류도 아닐 뿐더러, 이러한 외국인들도 이제 우리나라의 직 ․ 간접적인 구성원이 되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대학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특별히 중국 학생들이 가장 많다. 이것은 중국선교를 하는 우리들에게 선교의 주권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증거이다. 타문화권으로 직접 나가는 선교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찾아온 타문화권 영혼들을 섬기게 하는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열어 주셨다. 최근 10년 동안 이뤄진 선교현장의 변화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 시기에 한국 땅에 담아두신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세계의 민족과 열방이 그들의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 속히 도래하기를 고대하신다. 그것을 위해서 이전에는 선교사들을 중국으로 부르셔서 중국 영혼들을 변화시키시더니 이제는 세계 각국에 중국인들을 내보내시고 분산배치 하셔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들을 만나시고 만지신다.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중국으로 부름을 받고 달려 나가던 일에도, 내보내진 중국인들을 품는 데에도 한국이 동일하게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신앙공동체의 중요성

한 영혼이 예수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회로 연결되어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전도자와 신앙공동체가 일원화되지 못할 때 회심한 영혼들이 유실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국내 중국인 유학생 사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 대학마다 예배가 시작되어야 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며 희열과 감사를 체험하고 헌신을 결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과 윤리, 입으로 복창하는 행동강령 등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약적이다. 예배를 통해서 성령님의 임재를 몸소 체험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전국의 대학 가운데 기독교학교인 경우 예배가 존재한다. 그러나 예배참석을 의무화 하거나 학점으로 연결하면 도리어 반감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무신론을 전제로 하기에 예배참석 의무화의 적용범위를 중국 학생에게까지 확대할 경우 학교와 학교와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의무사항이 아닌, 개인전도에 의한 자발적인 모임은 어떤 경우에도 저촉(抵觸)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들의 신앙생활을 정착시키고 도울 수 있다. 섬기고자 하는 대학이 기독교학교가 아니어도 대부분의 학교에 기독 교수회가 조직되어 있고 도리어 기독교학교보다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사역을 진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독 교수회의 연합과 헌신을 통해 각 대학마다 예배가 열려질 수 있고 나아가서는 단기간 동안 우리 가운데 머물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자국 선교사로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각 대학 내의 기독 교수들이 목회자의 사명으로 교내의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연합하여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들의 필요에 맞는 섬김

우리가 외국인 유학생들을 돌보며 관심을 가질 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그들을 경시하거나 은연중에라도 우월감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어떤 사역자이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을 하겠지만 외국인을 섬기는 과정에서 민족감정으로, 국가대립으로 치닫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또한 그들을 섬기되 그들의 필요를 잘 알고 섬겨야 한다. 이전에 한 중국인 유학생이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때에 한국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한 뒤 이쑤시개를 찾았는데 갑자기 따라오라고 하더니 차에 태워 치과에 데리고 가더라는 웃지못할 경험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중국인 자매를 만난 적이 있는데 겉모습만 보아도 중국인임을 알 수 있어서 그냥 다가가서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자매는 30여분을 쉬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의 일주일의 어려웠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한참동안의 교제 끝에 자매는 나의 직업을 물었고 나는 목사라고 대답했다. 자매는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 그 후로 자매는 신학까지 공부하여 중국으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 주위 분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를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를 통한 우정전도

중국인 유학생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의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본다면 그것은 그들의 한국어 수준을 향상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각 대학의 정책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학부생일 경우 졸업 전에 한국어 능력시험 3급 이상을 취득하여야 한다. 중국 학생들은 존대어가 없고 조사가 없는 언어구조에서 존댓말과 무수히 변화가 많은 조사의 언어체계의 세계로 들어와서 큰 혼동을 겪는다. 많은 학생들이 나를 지칭할 때 ‘너’ 혹은 ‘당신’이라고 한다. 이 때 ‘당신’이라는 용어는 대부분 ‘여보’와 함께 부부간에 상대방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는 용어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가 곧 우리들에게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임을 알려준다.


한국어 수업을 할 때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을 하는데 처음 한 시간은 한국어 능력시험을 대비하는 내용으로 진행을 하고 다음 한 시간은 전공수업과 관계된 용어들을 정리해서 설명해준다. 많은 학생들이 한국에서 전공 공부를 하면서 알아듣는 정도가 50%를 넘지 못한다고 하니 일차적으로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손해이고 나아가서는 함께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과 해당 대학의 강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손실을 가져오므로 개선되어야 할 절대적 필요가 있다. 한국어 수업에 대한 필요는 유학생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의 조직으로 가장 견고하고 튼튼하게 하는 요소는 상호간의 신뢰일 것이다. 한국어 수업을 통해서도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하면 그들도 마음 문을 열고 우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복음을 직접 전달하지는 않으며 인격적인 신뢰를 쌓는 시간을 갖는다. 그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인식되면 유학생활 가운데 겪게 되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찾아온다. 그 때 복음을 제시하고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준다. 그 과정에서 위로와 큰 힘을 얻게 된 친구들은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게 된다. 친구로부터 전도를 받게 된 친구들은 처음에는 선뜻 예수를 믿을 수 없지만 자신의 친구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게 된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회

국내에 유학생들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을 아무도 몰랐듯이 언제 유학생들의 발걸음이 묶일지도 또한 예측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하나님께서 한국 땅에 기회를 주시고 중국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하나님의 때로 알아 최선을 다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정일도│전주 우석대학교 교수

출처 | 중국어문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