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부동산개발을 위한 금융조달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양적 확대' 에서 `질적 향상'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진데다 주택재고가 충분하고,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기존 주류를 이루던 아파트 대량 공급방식의 필요성이 약화됐다. 대신 다양한 취향과 수요 특성에 대응해 임대주택사업 도시재생사업 소규모 개발 방식을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개발을 위한 금융조달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시행사는 금융권으로부터 초기 토지매입비 등에 대한 프로젝트파인내싱(PF)대출(사업비의 30-40%)을 받고, 시공사는 PF대출에 책임 준공과 지급보증 형태의 신용을 보강했다. 분양대금이 들어오면 PF대출금을 분할 상환하고 공사비도 충당했다.
그러나 주택시장 장기 침체에 따라 분양리스크가 커지고 금융기관의 PF대출 심사기준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금융조달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PF우발채무에 대한 부채 인식으로 건설사들은 부채비율 증가에 따른 부담으로 PF대출 지급보증을 기피하고 있다.
조병준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최근 PF대출 조달방식 트렌드는 시행사가 도급 공사비 지급재원을 충분히 확보해 기성액에 따라 공사비를 지급하고, 시공사는 본연 업무인 책임준공 의무만을 부담하는 것”이라며 “시공사 부도시에도 사전 확보된 공사비 재원이 있으므로 시공사를 교체해 담보물건을 준공하는 게 쉬워졌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새로운 금융조달 방식이 꽃피고 있다. 먼저 PF보증의 주체가 건설사에서 대한주택보증과 같은 공공기관, 증권사 등으로 바뀌고 있다.
지급보증을 대신해 대한주택보증이나 주택금융공사의 PF보증을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분양보증과의 연계성, 보증대상, 보증금액, 보증요건 등에서 상대적으로 조건이 양호한 대주보의 PF보증 이용이 늘고 있다.
대주보는 지난 6월 2일 표준PF대출상품을 출시해 업계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표준PF대출이란 대주보가 PF원리금 상환을 보증해 모든 사업장에 대출기간별로 동일한 저금리를 적용하고, 각종 수수료도 면제하는 PF상품이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이 주관 금융기관으로 선정돼 지난 6월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대출 기준금리는 양도성 예금증서(CD)다. 표준PF대출이 출시된 지난 6월 2일 이후 9월말까지 대한주택보증의 보증 승인을 받은 사업장은 7곳, 5060억원에 이른다.
대출 주선기관별로는 우리은행이 경북 안동 379가구 단지를 포함해 4곳 3270억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농협은행이 대방건설의 경남 양산신도시를 비롯해 3곳 1790억원의 대출을 집행했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공사 지급보증 방식의 한계로 대주보의 PF보증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시공사의 기업신용도 중심의 보증체계로 사업실적 및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사의 활용에 한계가 있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차주 신용도보다는 사업성 중심으로 보증대상과 기준을 완화하는 등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증권사가 건설사를 대신해 신용을 공여하는 금융 구조도 신(新)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상반기 말 기준 증권사의 누적 지급보증액은 5조2281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증권사 지급보증은 PF 유동화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지급보증은 물론 시행 특수목적법인(SPC)에 대한 자금보충, SPC가 발행하는 사모사채에 대한 인수확약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전무는 “증권사들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자본금(에쿼티) 투자는 물론 후순위 대출, 지급보증 등 다양한 신용을 공급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주거래 은행처럼 주거래 증권사를 만들어 종합 금융 컨설팅을 받고 금융 비용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부동산신탁사 위탁개발, 리츠 활용방식도 보편화
부동산신탁사를 통한 위탁개발이나 리츠(부동산투자회사) 활용방식도 이제는 보편화된 부동산 개발기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차입형 토지신탁방식'에 의한 개발방식이 증가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 시행사는 자금조달 여건이 여전히 좋지 않아 신탁사가 주도하는 차입형 토지신탁 개발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사업기획부터 자금조달, 시공사선정, 공사 발주 및 관리, 분양 등 사업 전반을 신탁사가 대행한다. 신탁사가 사업비용을 조달하지 않고 개발만 대행하면 관리형 토지신탁, 사업비용도 조달하면 차입형 토지신탁이 된다.
차입형 토지신탁의 수수료는 총 사업비의 4~4.5%로 일반 신탁보수 0.06% 대비 수익성이 크게 높이 신탁사들도 이 시장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신탁사들은 사채 발행이나 은행 차입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장에 빌려주면 이자 수익도 얻게 된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부동산개발에서 리스크 관리와 안정적 수익이 중요해지면서 신탁사들이 주택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부상했다"면서 "부동산시장 내 헤게모니가 시공에서 금융으로 이전됨에 따라 차입형 토지신탁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신탁이 차입형 토지신탁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한국토지신탁이 진행하는 차입형토지신탁 사업장은 총 1만9000가구, 분양 매출은 3조7000억원에 이른다.
사업 수익성 판단 역량과 자본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차입형 토지신탁의 진입장벽은 높은 편이다. 지난 2월 국제자산신탁 무궁화신탁 코리아신탁 등 후발 3사에 관련 업무를 허용하면서 전체 전체 11개 신탁사가 차입형 토지신탁을 할 수 있다.그러나 실제 실적이 있는 곳은 8곳으로 생보부동산신탁 국제자산신탁 코리아신탁의 실적이 없다. 김찬호 연구위원은 "토지신탁 활용방식은 신용도가 열악한 중소사업자의 대체수단으로 중요하다"면서"다만 높은 신탁수수료로 인해 시행사 수익이 축소돼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임대주택사업 관련 리츠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리츠를 활용한 주택시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임대주택리츠란 주택기금이 ‘연기금·보험사·시중은행’ 등과 공동 투자협약을 맺고 리츠를 설립한 뒤 민관 협력을 통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주택기금과 토지주택공사(LH)가 리츠를 설립해 민자를 유치한다면 ‘공공임대리츠’가 되고, 민간 사업자가 출자해 리츠를 설립하고 주택기금의 출자·융자를 받으면 ‘민간임대리츠’가 된다.
국토부는 지난 8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공공임대리츠 1·2호(7141가구)를 설립해 민자유치(7550억원)에 성공했으며 공공임대리츠 3호(5000가구)도 연내 설립을 준비중이다.
민간 제안형 임대리츠 사업도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국토부는 민간 제안 임대리츠 1호 사업으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오피스텔 1개동을 선정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국토부는 이달 중 사업제안자가 리츠를 설립하면 대한주택보증의 투자심사를 거쳐 11월까지 출자 여부를 확정하고, 연내 기관투자자를 선정한 뒤 내년 상반기께 임대주택 공급에 나설 예정이다. 국토부는 2017년까지 공공임대 리츠로 5만가구, 민간제안 임대리츠로 2만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국토부가 주도하는 임대주택리츠가 아니어도 건설사들이 자체적으로 리츠를 활용하는 방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코람코자산신탁은 지난해 경기도 광교신도시 상업지구 개발을 위한 시행사로 개발리츠를 선보였다. 대우건설은 이 사업에서 오피스텔 분양에 대한 위험을 분담하는 조건으로 시공권을 획득했다. 미분양이 발생하면. 공사도급 계약을 맺은 대우건설이 5년간 또는 분양 완료 때까지 마스터리스(책임 임차)를 하고 임차료를 납부하는 구조다. 지난 6월 인천 남구 도화지구 4블록에서 100% 임대 완료된 ‘누구나 집(인천도화위탁관리리츠)’은 분양시장 침체의 돌파구를 위해 준공공임대주택과 임대주택리츠를 결합해 성공한 주택사업으로 평가된다.
서민석 코람코자산신탁 실장은 “리츠가 개발 운영하는 사업에 건설사가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담하면 시공권을 획득하고 적정 공사비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정호기자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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