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
카톨릭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 모든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에게 , 예수님으로부터 마리아에게, 마리아로부터 우리 자신에게 전해오고 있다고 가르쳐 왔다. ”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이 수도를 통해서 흘러 오는 것처럼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다.
성 버나드의 말을 기억해 보자 :
모든 선물들 , 유덕들, 그리고 모든 은혜들은 마리아의 손에서 어느 때나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주어지고 있다. 오 성모님, 모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여, 구원의 은혜는 오직 당신의 손을 통하여 베풀어지는 연고로 우리의 구원은 당신께 있나이다.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 성 버나드는 “ 과거와 현재 , 미래의 모든 인류는 구원의 수단으로서 그리고 구원의 중재자로서 마리아를 의뢰하여야 한다 ” 고 주장한다. 여기,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카톨릭 성인들의 증언들을 들어보자:
성 보나벤투어는 말하기를 “ 마리아의 보호에 신뢰를 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문들이 열릴 것이다 ” 라고 했다 . 성 이프렘은 성모에 대한 헌신을 “ 하늘의 예루살렘 문들을 여는 길 ” 이라고 했다 . 또 블로시어스는 “ 오 부인이여 . 당신께 천국의 열쇠들과 보화들이 맡겨져 있나이다 ” 라고 고백했다.
그러므로 카톨릭 교인들은 성 암브로스의 말과 같이 마리아에게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 오 마리아여 . 낙원의 문들을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이는 당신이 그 열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
아니, 그 이상으로 교회는 말하기를 “ 당신이 바로 낙원의 그 문입니다 ” 라고 한다 . 왜냐하면 성 풀겐티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고 , 마리아를 통하여 인간은 세상에서 하늘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 오 나의 부인 (My Lady)이시요. 당신의 충만한 은혜로 인하여 당신은 우리들의 구원의 길이 되셨으며,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수단이 되셨나이다. ” 라고 성 아타나시어스는 말하고 있다.
“ 오 하나님의 어머니시요 . 당신을 아는 자들이 복이 있는 자들이옵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아는 지식은 영생에 이르는 대로이며 당신의 덕을 전하는 것은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라고 성 보나벤투어는 말한다. “
궁극적으로 마리아는 하늘의 여주인이시다 . 이는 그가 원하시는 대로 명령을 내리고, 그녀가 원하는 자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라고 성 로렌스의 라차드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에릭 수도원장은 “ 마리아를 섬기는 자는 그를 위해 마리아가 중보하심으로 그는 이미 천국에 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이 보장을 받은 자이다 . 마리아를 섬기지 아니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 라고 했다 . 성 보나밴투어는 “ 오 민족들이여 . 귀를 기우리라. 천국을 원하는 모든 자들이여, 마리아를 섬기고 공경하라. 그리하면 반드시 영생을 얻으리라 ” 고 외쳤다 .
“ 오 부인이여 . 당신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우리의 구원은 확정됩니다. ” 라고 성 앤섬은 말하고 있다. 성 안토니어스는 “ 마리아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는 영혼들 , 마리아는 이 영혼들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 라고 하였다.
최근의 어떤 저자는 성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 “ 교회와 성인들은 마리아를 이렇게 영접하고 있다 . ‘ 오 마리아여 .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당신은 우리를 속죄합니다. 오 마리아여, 우리의 구원은 당신의 손에 있나이다. 마리아는 온 인류의 공동 구속주 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탄의 권세로부터 인류를 속량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 몸의 피로, 마리아는 그 심장의 고통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
어떤 카톨릭 전단지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리아를 세번 부름으로 하늘문이 열린다 .
구원을 위한 가장 위대한 수단이며 선택의 표적 중 가장 확실한 것 가운데 하나는 최상의 복을 받은 동정녀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 교회의 모든 거룩한 교사들은 다 한결같이 이렇게 일치한다. “ 마리아에게 심신을 봉헌한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 ” 나는 당신 마리아에게 내 심령을 드린다.
카톨릭 교회 지도부는 마리아 우상 숭배를 장려한다 . 주교들과 추기경들, 사제들과 교황들 자신이 가장 돈독한 마리아 숭배자들이다. 그 중 교황 요한 바울 2세를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1251년에 성 시몬 스탁에게 나타나서 “ 위대한 약속 ” 을 준 “ 갈멜산의 우리 부인 ” 이 1322년 교황 요한 22세에게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성 시몬 스탁에게 나타난 갈멜산의 우리 부인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남겼다. “ 누구든지 이 망토를 착용하는 자는 영원한 불을 피할 수 있다 . ”
이러한 갈멜산의 우리 부인이 요한 22세에게 다시 나타나서 그녀의 망토를 입은 자들에게 “ 안식일의 특권 ” 을 다시 확인하였다고 한다 . “ 은혜의 어머니인 내가 그들이 죽은 후 토요일에 연옥에 내려가서 그녀의 망토를 입은 자는 누구나 다 자유롭게 하리라 ” 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알렉산더 5세, 클레멘트 7세, 비오 5세, 그레고리 13세 및 바울 5세 등이 확인했고, 그 이후 수 천만에 달하는 망토 착용 카톨릭 인들은 이 말을 믿어왔다. 드리구오리는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교황 바울 5세는 1613년 회칙을 발표하여 망토를 착용한 그리스도인들은 “ 복 받은 동정녀께서 그녀의 끊임없는 중보와 공력과 특별한 보호를 인하여 그들이 죽은 후 , 그들을 도우실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 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선하신 어머니의 동일한 은혜를 바라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 그리고 만약 우리가 특별한 사랑으로 그 분을 섬기면 연옥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사후에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많은 카톨릭 신자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성 시몬 스탁이 “ 갈멜산의 우리 부인 ” 에게 드린 그 기도를 드리고 있다 . “ 망토를 입은 모든 자를 보호하는 여 수호자여 .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옵소서. 망토를 입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되시는 이여,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옵소서. 오, 인자하신 마음의 마리아여.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옵소서. ”
이제 구원은 마리아를 통해서 오는 것이고 , 카톨릭 교회는 하나의 은혜가 아니고 “ 은혜들 ” 을 가르친다 .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얻으신 “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은혜들 ” 을 “ 점진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 “ 적용 ” 하며 “ 수여 ” 하는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 그러나 “ 은혜들 ” 이라는 복수를 성경에서 한 번도 찾을 수 없다 . 성경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았다고 한다. 그 은혜는 오직 어린양으로부터 온다.
“ 은혜들 ” 에 대한 카톨릭의 개념은 구원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조금씩 성례를 통하여 주어진다 .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도 단 번에 죄 용서와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의 길을 가면서 계속 더 많은 은혜를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은혜는 대가를 지불해야 받는 은혜들이다! 카톨릭의 은혜들은 구매하는 것들이다.
카톨릭교 내에는 “ 은혜들 ” 을 얻기 위한 많은 행위들이 있다 . 규칙들이 있다. 은혜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우리는 분명하게 로마 카톨릭 교회와 성서적 가르침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전자의 경우, 은혜들은 신실한 카톨릭인의 행위에 따라서 마리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후자의 경우, 은혜란 그리스도의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묵주 기도, 마리아 방문, 교회가 시키는 선행을 수행하여야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모욕이다. 또한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죄 사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형벌을 완전히 다 지불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죄를 용서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신다. 이러한 믿음과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하려 하심이라 ” 고 하기 때문이다 (롬 3:26).
그러면 선행이란 무엇인가 ?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선행을 성경은 언급한 적이 없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 구원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종의 열매가 나타난다. 즉, 구원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선행이다.
선행이란 사람들이 보는 개념이 아니다. 선행은 그 동기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이어야 한다. 죄사함에 대한 기쁨이어야 한다. 선행을 행하는 이유가 구원 받기 위한 나의 공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구원은 선물이며 선물을 받은 주의 백성들은 선행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에 풍성하며, 선한 일에 힘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게 된다.
구원받은 카톨릭 교인이 있을 수 있는가 ?
최근 스페인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2천 가정 중에 오직 두 사람만이 복음을 알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개신교였다. 나머지 1,998가정은 카톨릭 교인들로서 선행과 교회 출석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의 친구는 스페인에서 선교사인데 15년을 있었다. 카톨릭 교인들을 만날 때 마다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카톨릭 교인 중에 구원의 길을 아는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한편 복음을 알고 카톨릭을 떠난 수 많은 카톨릭 인을 알고 있다 . 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카톨릭에서 참 복음을 들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였다.
혹자는 “ 분명 카톨릭인 중에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다 ” 는 주장을 한다 . 물론 누가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될지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로마교 내에는 복음이 없다. 즉, 교회 내부에서는 복음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끝까지 속을 수 밖에 없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어떤 사제가 바른 복음을 깨닫는다면 로마교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바로 이러한 탈출이 중세 교회에서 나온 개혁자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복음을 안 이후에 카톨릭 내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단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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