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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C.T.스터드

주거시엔셩 2007. 2. 18. 03:30
학생 자원자들 중에서 명성이 높았던 사람 중 하나는 챨리 스터드(C.T.Studd)이다, 그는 모든 부와 특권을 기꺼이 포기하고 세계복음화의 과업 앞에 철저히 헌신한 학생 자원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친인 에드워드 스터드의 철저한 신앙교육 가운데 회심한 스터드는 당시 복음전도자였던 D.L. 무디의 집회에서 자신의 일생을 해외선교사역에 헌신하기로 결단하였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크리켓 선수”로 지칭되고, 캠브리지 11인 팀 최고의 만능 선수이자 주장이었던 그의 헌신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하게 했다. 그와 함께 헌신한 6명의 머리 좋고 재능 많은 캠브리지 대학생들, 이른바 “캠브리지 7인”은 모두 중국내지 선교회(CIM, 오늘날 OMF의 전신)의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당시의 한 신문기자는 “선교역사상 이렇게 머리 좋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선교사로서 해외로 나간 일은 없었다”고 기록했다.
 
스터드는 중국에서 10여년 정도 사역하였는데, 큰 유산을 상속 받는 그였지만, 그것을 모두 포기하고 여느 내지 선교회 선교사들처럼 믿음으로 생활을 유지하며 심각한 재정난을 겪기도 했다. 중국의 사역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는 아내 프리스킬라와 여성들, 아편중독자들 사이에서 사역을 잘 감당했다. 건강 악화로 영국에 돌아가서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학생자원운동(SVM)을 대표하여 선교에 대해 강연하였다.
 
그런 와중에 그는 어느 문에 새겨진 “식인종은 선교사를 원한다”는 글귀를 보며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를 맞는다. 중앙 아프리카의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 전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그는 아내의 만류, 50살이 넘었고, 신체적 병도 있었고, 후원자도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을 확신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조사작업을 마치고 후에 사위가 된 알프레드 벅스톤이라는 조력자를 데리고 벨기에령 콩고에 들어가 아프리카의 마음(Heart of Africa Mission :HAM)이라는 선교단체를 구성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감당하며 동역자들이 늘어갔지만, 그에 따른 갈등도 많이 발생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사역을 감당하였는데 그의 동역자이자 사위였던 노만 그럽에 의하면 “휴식하는 일도 없었으며.. 한눈 파는 일도, 휴일도 취미 생활도 없었다.” 그에 더하여 스터드는 유럽식의 풍요한 생활은 피하고 아프리카 인들과 똑같이 살도록 사역자들에게 요청하였다. 그런 태도는 동역자들과의 마찰을 불러 일으켰고, 교리적인 내용의 마찰 등도 피할 수 없었다. 후에 HAM은 WEC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고, 스터드의 사후 그의 사위였던 노만 그럽에 의해 체계를 잡게 되었다.
 
스터드는 영국사회에서 촉망받는 젊은이에서 촉망받는 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하였는데, 그의 강렬한 헌신은 때론 동역자들과의 관계의 어려움, 현지인들과의 문제 등을 일으킨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헌신의 모습은 학생자원운동의 헌신자들의 특징이었고 이로 인해 여러 구설수에도 올랐지만 특별한 업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스터드는 “우리에게는 열심이 필요하며 그 열심은 점점 뜨거워져야만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광신’이나 ‘극단’으로 보이기도 하여 배척을 받기도 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던 C.T. 스터드라는 한 사람의 비전과 헌신으로 시작된 WEC 선교회는 복음주의적 국제 선교 단체로서 현재 한국을 비롯 50개국에서 모인 2000여명의 선교사가 80개의 나라에서 사역하고 있다.
출처 : 푸우도사 자료실~!^^
글쓴이 : 조광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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