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기독교관련

[스크랩] 윌리엄 케리

주거시엔셩 2007. 2. 1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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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기 짝이 없는 구두 수선공. 그러나 이후에 '현대선교(운동)의 아버지'로 불리운 사람, 윌리엄 케리. 현대역사에서 세계복음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개인이며,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어려움을 이기고 그리스도를 위한 세계선교에 공헌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살아있는 모델이다. 그는 보통 사람이지만 가진 잠재력을 통해 고난의 40년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나는 꾸준히 걸어 나갔을 뿐입니다. 나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성품은 선교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근면하고도, 인내하는 성품이 바탕이었다.

그는 1761년 영국 노스햄프튼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하고 수수한 가정생활을 했다. 산업혁명기의 공장에서 알레르기성 체질을 가졌기에 정원사가 되려 했지만, 이런 수수한 꿈조차 좌절되었다. 그는 16세에 구둣방 도제로 28세까지 그 일을 했다. 그리고 그 때에 회심하여 침례교인이 되었으며, 여가시간은 성경공부와 평신도 목회에 주력했다.
1781년 그가 20세가 되기 직전 주인집 처제와 결혼한다. 아내 도로시는 5살 연상으로 문맹이었다. 처음부터 삐끗했던 결혼생활은 케리의 학식만큼 그 간격이 벌어졌으며, 신혼은 빈곤과 비참으로 이어졌다. 아내와 늘어나는 자식, 전 주인의 미망인과 아이들까기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케리는 공부와 평신도 목회를 감당했고, 1785년 작은 침례교회의 목사직을 맡았고, Leicester의 큰 교회로 부임해 갈 때까지 봉사했다. 그러나 Leicester에서조차 가족부양을 위해 직업을 가졌다. 목회하는 동안 세계선교비전이 구체화 되었고, '쿡선장의 항해기'(Captain Cook's Voyages)가 그의 선교열을 뜨겁게 자극했다. 선교적 시각으로 성경을 보니 해외선교야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당시만해도 지상명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므로, 이방인을 개종시키는 일은 식민지 사업과 관계없는 한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목사들의 모임에서 캐리는 해외선교에 대한 그의 원대한 계획을 설명하자 한 사람이 "젊은이,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개종시키려고 하신다면 자네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걸세." 그러나 그 무지의 말은 케리의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1892년 87페이지의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이 강구해야할 수단을 찾아봄」(An Enquirey Into the Obligation of Christian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을 발간했다. 이 책은 개신교사에 있어 루터의 95개 조항과 같은 영향력을 미쳤으며, 선교사에 있어 해외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선교사를 보낼 필요가 없음을 논리적으로 공박하고 해외선교를 고무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펴낸 후 노팅검(Nottingham)의 침례교연합회에서 이사야54:2-3을 설교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결과를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Excep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다음날 그의 설교에 감동받은 목사들이 새로운 선교회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침례교 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결성했다.
결성이 끝은 아니었다. 캐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목사들은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었는데, 막대한 재정이 요구되는 해외선교를 하려면 자신과 자신들의 가난한 교인들의 호주머니로부터 재정이 조달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캐리의 계획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앨드류 풀러(Andrew Fuller)가 선교회 초대총무가 되고, 초대 선교사로 평신도 John Thomas가 추천되었다. 토마스는 의사로 제국함대에 근무해 인도에 간적이 있고, 선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와 복음전도자로 선교사역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런 그를 캐리가 동역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천거하자 이를 열렬하게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캐리가 선교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해외선교사로 자신이 나가겠다고 한 것은 너무 성급한 짓이었다. 그의 교회가 갑자가 목회자를 읽고 상심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미친놈'이라 했으며, 그의 아내조차도 반대했다. 프랑스가 영국에 선전포고까지 하자, 3명의 어린아이와 또 한명의 자식을 데리고 5개월의 항해를 도로시는 방대했다. 그리고 일생을 뜨거운 적도에서 보내야 함에 도로시는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케리의 결심을 바꾸지 못했다. 캐리는 아내의 반대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긴 했으나, 혼자서라도 이 일을 감당하고자 했으며, 계획을 추진해 8세의 아들 펠릭스의 표까지 예약했다.
1893년 수개월 간의 우여곡절 끝에 캐리와 토마스는 선교회의 파송을 받았으며, 한달 후 캐리는 펠리스와 토마스는 아내와 딸과 더불에 탬즈발 인도행 선박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여행은 영국 Portsmouth에서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토마스가 돈관리를 잘못해 재정상태가 악화되었으며, 여행허가증을 얻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예화 1)
인도의 선교사인 윌리엄케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선생님 나는 언제쯤이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나라에는 종교를 위해 도 닦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처럼 저는 몇 년 동안이나 도를 닦아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목사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초와 성냥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람에게 말합니다.“성냥을 켜서 초에 불을 붙여 보십시오”그래서 이 사람은 성냥을 켜서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에게 또 묻습니다.“그러면 이 초에 불이 붙은 것은 언제 부터입니까?”그는“언제부터라니요 성냥 불을 그은 그 순간부터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언제부터 그리스도인이 됩니까? 예수를 믿은 즉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 즉시 우리의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따라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출처 : 푸우도사 자료실~!^^
글쓴이 : 조광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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