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자 박사의 교육선교 이야기
69세. 이제까지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 혹은 남은 생애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몰두하는 시간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공식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김윤자 박사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상담 전공의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 그것도 삶을 통한 경륜과 노련한 연배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럼에도 열정과 기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끝끝내 학위를 받은 김윤자 박사. 그에게 박사학위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부호는 김윤자 권사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보아도 사라지게 된다. 뒤늦은 나이에 새롭게 공부한 지식과 함께 그의 일생을 견인해온 복음을 품고 가난하고 기회가 소외되었던 몽골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김윤자 박사. 그의 열정과 사랑이 한글과 몽골어 합본의 상담학 입문서로 탄생했다. 잠시 한국을 방문한 김윤자 박사를 만났다. _편집자 주
몽골어로 출간된 ‘기독교상담입문’
김윤자 박사는 1967년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1968년 캘리포니아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여 병원에서 RN으로 근무했다. 교회에서는 40여 년 동안 소그룹 리더로 봉사했다. 다양한 소그룹 활동을 하면서 상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절감하고 만학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코로나 소재 HIS University(양은순 총장)에서 기독교상담학 석사 및 상담전공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2년부터 미국, 한국, 베트남 등지 여러 교회의 초청으로 간증과 소그룹 리더십 훈련과정 세미나 활동을 했으며, 2015년부터는 몽골 후레 대학에서 영어 교수와 몽골 감리교 신학교에서 기독교 상담학 교수로 교육선교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몽골의 신학교에서 기독교 상담학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들었습니다. 제가 상담자가 되어 아이들을 상담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상담자와 내담자로 나눠 역할 활동을 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상담학 개론서가 필요한데 몽골의 어느 국립도서관에도 상담학 서적이 없었습니다.”
몽골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김 박사로서는 몽골어로 책을 낸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있음을 믿고 나아가 보기로 했다. 이러한 믿음에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리라는 전적인 의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김 박사는 한글로 쓴 원고를 몽골어와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학생에게 번역을 맡겼다. 이 학생은 몽골에서 김 박사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통역을 하던 학생이었다. 일정 기간 함께 생활하다 보니 김 박사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 번역 이후에는 감수가 필요했다. 몽골어 번역이 잘 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몽골에서 20년간 선교 사역을 하신 선교사님과 연결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정식 출간까지 물이 흐르듯 전개되었다고 김 박사는 고백한다.
김윤자 박사는 『기독교상담입문』이라는 상담학 개론서를 한국어와 몽골어 합본으로 출간했다. 초판 1쇄의 절반은 몽골로 보내져 전국의 각 도서관으로 배본될 것이다. 이 책은 몽골에서 상담학과 관련된 첫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글과 몽골어 합본으로 된 상담학 도서라는 점이다. 또한 성경의 이야기를 상담학으로 풀어내어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큰 특성이다.
“성경의 인물을 보면 상담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다혈질이면서 담즙질로 볼 수 있습니다. 다혈질은 쾌활하지만 규칙을 지키지 않는 습성이 있고, 담즙질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모험적 기질이 있지만 남에게 관대하지 못하고 용납하는 데 서툽니다. 이런 사람에 대한 이해는 곧 성경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말로 복음을 전하는 데 서툴지만 상담학이라는 한 학문의 분과를 통해 기독교 문화의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상담입문』이 나오기까지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검토하여 퇴고하는 과정은 지난한 책상과의 싸움이며, 간장을 끊어내는 아픔을 수반한다. 650쪽 분량의 원고를 약 100쪽 가량 덜어내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김 박사는 이 과정을 겪으며 위장병이 생길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제게 단순히 상담학 개론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제 일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집필하는 것에서부터 편집하고 제작하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책으로 나올 원고는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 결과였다. 여기에 제작 과정에서도 여러 손길이 등장한다. 김 박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지만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선교를 목적으로 한 책이었다. 김 박사는 책 출간과 관련된 그간의 이야기를 담아 미국의 네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정동제일교회에도 편지를 보냈다. 감사하게도 정동제일교회에서 선교후원을 하여 제작비용이 충당되었다. 김 박사는 책에서, 도와주신 분들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제가 처음 기도할 때,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기에 하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드렸지요. 그리고 일체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족문제로 상처받은 몽골 아이들을 상담하다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인간적 만남이 기본이 된다. 이러한 상담은 우리 일상 가운데에도 많이 일어나는데,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도 어떤 면에서는 상담과 다를 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문제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전념하며, 이 이야기 속에서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상담’이라고 김 박사는 말한다.
“상담자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됩니다. 상담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내담자의 속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내담자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내담자는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상담은 몽골에 매우 긴요하다. 몽골인은 유목민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돈이 필요하면 남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어떤 이들은 다시 돌아와 가정을 건사하기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버림받은 가족, 유리된 가족이 많다. 여자가 가정을 버리고 나가는 경우도 많아서 부모와 함께 사는 대학생이 채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동체성을 배울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에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아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에게 상담은 필수적이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부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자기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모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가정에서 교육 자체가 없다 보니 악순환은 늘 반복되기 일쑤다. 기본적인 윤리의식조차 희박한 아이들이 많았으며, 자신의 부모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출간하게 된 책의 중요 내용도 가족상담과 부모상담, 이혼과 재혼 등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나이 들어 공부시킨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거예요. 공부 마치고 몽골에 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어요. 한국말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몽골말은 더더욱 보잘것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셔야 했어요. 이 불쌍한 아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었던 거죠.”
뇌종양으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 때, 10년간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께서 김 박사를 이 길로 안내했던 것이다. 김 박사는 하나님이 사막에 강을 내주시고 길을 만들어 주셨다고 말한다. 그의 또다른 바람은 몽골의 대학교에 상담학과가 개설되는 것이다.
몽골 선교 Q&A
- 몽골에서 강의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그간 변화를 체감하신 것이 있으신지요?
- 저는 몽골에서 가을학기만 강의하고 있지요. 올해로 3년째입니다. 짧은 기간 있었지만 몽골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룬 변화보다 더 압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몽골이 아닐까 합니다. 그 변화 중에 유의미한 것은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과 기독교 문화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변화는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이 있을텐데요, 박사님께서 체험하신 변화는 어떤 것인가요.
- 몽골엔 기독교 문화에 의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산업의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기독교문화를 자주 접할수록 마음이 오픈되는 것을 느낍니다. 영어교육이나 기독교 색채가 뚜렷한 영화를 감상할 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영화를 보고,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해 주면 많은 아이들이 가슴 아파합니다. 자신의 가정을,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면 영화 내의 기독교 가정과 정말 다른 모습인 것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끝나면 아이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착해지나요? 좋아지나요?’라고 말이죠.
- 몽골이 갖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이 있을까요? 몽골에서 기독교 문화를 통한 선교는 어느 정도 가능합니까.
- 몽골의 경우, 교내에서 종교활동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 공산당이 정부를 맡게 되면서 선교사에게 비자를 주는 일도 까다롭게 바뀌었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그들 특유의 샤머니즘적 요소도 문제가 됩니다. 라마불교가 국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처럼 사람들이 굿이나 점치는 것을 더 많이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반발심이 강합니다. 직접적인 복음 제시는 물론 그와 관련된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우선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도 좋아하는 영화, 싫어하는 영화가 있을 수 있는데, 학교는 다양한 것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는 라마불교와 관련된 몽골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으로 기독교 영화를 보여줍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다양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켜 줍니다. 그 이후는 아이들의 몫입니다. 저는 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복음은 그 무엇보다 강합니다.
-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 영화 감상이 끝나면 몇몇 아이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저도 교회 가야 하나요?’ 저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여줍니다. 부부관계,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기독교 영화가 대다수입니다. 그중에 <블라인드 사이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주인공 여성이 덩치 큰 흑인 아이를 마음으로 보살펴서 나중에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를 키워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친아들도 아닌 흑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몽골 아이들, 부모의 사랑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의 내면 속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갈급함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그 사랑을 경험하고 베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대학시절, 간호학을 공부한 김윤자 박사는 누구보다 봉사에 열심을 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나가 의료봉사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꿈도 품었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그 꿈은 오랫동안 미루어졌고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의 꿈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 박사의 마음 깊은 곳에 세월을 넘어서는 복음에의 열정과 영혼사랑을 읽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 후반전에 새로이 열어주신 소명의 길. 그는 그 길을 기쁘게 걷고 있다.
“제가 몽골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은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크고도 넓은, 끝이 없는 사랑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몽골에 와서 한 학기를 보낼 때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주시는 한 계속해서 몽골에 올 것이라고 다짐했었지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고 건강을 주셨습니다. 또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도 믿음과 용기를 주셔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 날들의 작은 열매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이 책은 상담학 책일 뿐 아니라 몽골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증표입니다.”
moleebless@yahoo.com 김윤자 박사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