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도서관

(20부작) 소설 천로역정.

주거시엔셩 2015. 12. 11. 20:45

  [1]
  십육세기 영국 베드포드 촌에 한 은장색이 있었는데, 그는 무식한 부랑자 번연 요한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디 갈 때에 무슨 소리가 있어 은근히 귀에 들리니 “네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것이 좋으냐? 죄를 그냥 짓고 지옥에 빠지는 것이 좋으냐?” 하는 소리를 듣고 회개한 후에는 순박한 그, 영민한 그 심성은 인생의 신성과 존귀함을 깨닫는 때에 힘을 다하여 심중의 마력을 멸하고자 한즉 회개의 눈물은 그치지 않고,애걸의 호소는 듣는 자로 하여금 저를 불쌍히 여길 만큼 되었답니다.
  위로 하늘을 쳐다본즉 태양은 그 광선을 저 같은 죄인에게 발휘하는 것이 참으로 가석하고, 굽어 땅을 바라본즉 산천초목 금수의별은 주의식을 제공함이 참말로 황송하게 생각되었으며, 양심없는 금수를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순례자의 고통이어서..., 그러나 미구에 십자가 밑에 나아가 등에 있는 무거운 짐이 떨어짐을 감각할 때에 요한의 눈에는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그 가슴에는 하늘의 평강이 충만하였소.
  저는 후일에 이 경험을 말하기를, “아! 그리스도! 그리스도! 나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 제하고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의 매장, 그의 부활, 귀중한 사실을 이것저것 하나하나 나의 마음속에 다 실험시켰다고, 나의 몸에 받은 은혜는 마치 부귀한 사람이 금괴를 은행에 저축하고 그 주머니에는 용돈만 조금 가지고 가는 것 같은 것이라고, 나의 전재산은 예수께 저축했다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내가 하나님과 합체되는 깊은 뜻을 나에게 알게 하사 나는 그에게 속하여 나는 그의 육에 육이 더했나니 만일 그가 나와 일체가 되면 그의 의, 그의 공, 그의 승리는 다 나의 것이라고 할렐루야를 불렀습니다. 나는 나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에 있는 자요, 나의 육체로서는 땅에 있는 자이다. 나는 그를 의지하야 의로워지고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리를 항상 찬미하노라”고 외쳤습니다.
  이 구원의 경험이 철두철미한 번연 요한은 불타는 가슴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정부의 박해를 받아 12년간의 옥중생활에서 얻은 단순한 복음의 진수가 바로 이 천로역정이랍니다.
  본서의 내용은 장망성에 살던 기독도가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 갈랫길이 많으므로 때를 따라 쓰러지고, 때를 따라 곁길로, 어려운 산, 험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여러가지 희노애락을 돌파하고, 마지막에는 사해를 건너 천성에 들어가는 여러가지 인생의 일로요, 신앙의 노선이랍니다.
  본서에는 인명과 지명이 많이 나오는데, 사람 이름과 땅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신구약의 진리요, 우리 신앙생활의 적절한 비유로 되었습니다.
  본 강화 중에는 종종 노래가 나오는데, 곡조는 대개 합동찬송가 456장 곡조로 부르면 좋을 것입니다.

  장망성을 떠난객이 천성향해 가는길에
  갈랫길이 많으므로 그릇걷기 쉬웁도다
  그러하나 우리구주 천성가는 길이되고
  성신우리 인도하니 안심하고 따라가세
  오늘은 이만침하고 그치겠습니다.

  천로역정의 첫대지는 장망성에서 좁은 문까지,
  둘째 대지는 좁은 문에서 미궁까지,
  셋째 대지는 미궁에서 허화시까지,
  넷째 대지는 허화시에서 낙산까지,
  다섯째 대지는 낙산에서 천성까지...

  번연 요한은 옥중에서 비몸사몽간에 한 이상을 보았는데, 황막한 광야에 한 사람이 남루한 옷을 입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집은 등지고 돌아서서 그 책을 읽다가 울다가 떨며 슬퍼하며 근심하는 사람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는 장망성 사는 기독도의 상태요, 장망성 떠나 천성 가는 제 일계단은 심령이 각성된 사람, 각성된 심령...
  사람이 비록 존귀한데 거하나 깨달음이 없으면 멸망할 짐승과 같도다고 하였소, 아바지의 품을 떠난 탕자는 받은 재산 탕진하고 마지막 돼지 치는 목자였습니다. 자기 신세를 깨닫고, 자기 장래 멸망을 깨닫고, 자기 아바지집 모든 풍성함을 깨달아 돌아올 때에 아바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이외다.
  탕자 같은 인생아  깨달아라 깨달아라
  첫째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자기의 진상을 깨달았습니다.
  첫째로, 기독도가 남루한 옷, 등에 무거운 짐을 진 것은 자기의 진상을 깨달음이예요, 남루한 옷은 무엇인가? 이사야 64장 6절을 보세요, “우리가 다 깨끗하지 못한 자와 같으며 우리의 모든 의가 더러운 옷과 같다”고 하였으며, 시편 38편 4절을 보세요, “내 죄가 내 머리에 넘치니 무거운 짐과 같아야 내게 너무 무겁다”고, 시편 40편 12절에를 보세요, “내 죄가 나에게 미쳤으매 내가 능히 머리를 들 수가 없으니 내 죄가 내 머리털보다 많기로 내가 낙심하였나이다”. 욥기 40장 40절을 보세요,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되 보소서 나는 천한 자라 무엇을 주께 대답하리까 오직 손으로 내 입을 손으로 가릴 뿐이로소이다” 하며 저는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지요.
  천성 가는 기독자의 자격은 먼저 자기의 죄를 깨닫는 것이외다. 이전에는 자기가 잘나고 깨끗하고 의롭고 얌전한 줄 알았지만, 이제는 추하고 불의하고 흉악한 자인 줄 알게 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다윗이는 내 죄가 내 머리털보다 많다고 하였고, 바울 선생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사야는 내가 화가 있으리라고 자복하였고, 어거스틴은 어려서 어머니 젖빨다 젖꼭지 깨문 죄까지 회개했다고 합니다. 이 천로역정을 지은 뻔연 요한도 참회록에 “아이고, 나는 더러운 자이다 내 죄가 내 속에서 솟는 것이 마치 샘물이 샘에서 나오는 것과 같구나 이 세상에 내 마음과 짝할 것은 아마 나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악마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옳소! 아무리 교회 출입을 하고 잘 믿는다고 하는 신자, 교역자까지라도 한번은 자기의 진상을 철두철미하게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문둥이 같고 추악한 자임을 인식하지 못한 자는 천성갈 자격이 진실로 없는 것이예요.
  예수는 죄인의 친구라고 했소, 죄인의 친구, 죄를 아는 대로 예수를 알고, 예수를 아는 대로 죄를 압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예수 몰라요, 예수를 모르면 죄를 철저히 깨닫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죄가 너무 많아서 예수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많이 믿겠느냐”고, 내가 어떤 때 대구서 어떤 청년 보고 목욕을 가자고 그러니까 “난 목욕 못 가요”, “왜” 그러니까, “때가 너무 많아서요”, “아, 이 사람아 목욕이야 때 있는 사람이 가지 때 없는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발에 때가 너무 많아요”, 아마 발이 까마귀 발처럼 된 모양이요, 내 그래서 때가 너무 많아 목욕 못 가겠다는 사람, 죄가 너무 많아 예수 못 믿겠다는 사람 마찬가지라고 했소.
  둘째는 뭘 깨달았는가? 인생관을 깨달았습니다.
  둘째로, 황막한 광야에 집을 등지고 있는 것은 인생관을 절실히 깨달은 것이외다. 이 세상의 부귀공명은 뜬구름과 같고, 가고 오는 이 세상은 뜻 붙일 곳 전혀 없다고, 쓸쓸한 광야에 적막한 상황을 깨달은 것이요. 솔로몬의 부귀영화도, 바벨론의 장한 경치도, 오늘날 간 곳이 없고요. 고금세계의 천만 사정은 꿈과 같이 지나고, 만고역대의 흥망성쇠가 물레바퀴 돌아가듯 하는구나. 춘삼월에 피는 저 꽃은 열흘의 짧은 목숨을 한탄하고 있지 않은가요. 가고 오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장망성 같은 이 세상은 무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산다면 늘 살까, 사람 살기 백년 가기 잠깐이요. 뒷동산에 한 무덤 이룰 때에 일생 수고는 흔적이 없구나. 고해 중에 지나는 나그네, 일엽편주 어디로 갈 것인가요.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썩어져 버리고 세상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쇠잔하리라. 멸망의 기차는 고동을 틀면서 달려 오는데, 죄악의 술을 마시고 허영의 꿈을 꾸는 인간들은 장망성을 아마 자기집 아랫묵으로 아는 모양이지요.
  세상 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음에 디디면 일장의 춘몽이 아닌가. 토지 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삼척광중 일장지 넉넉해, 의복 많아 무엇해 너 떠나갈 때 수의 한 벌 관 한개 족지 않은가, 세상에 인생관의 허무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는 생명의 존귀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까 하는 기독도, 자기 생명의 존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얼 주고 제 생명과 바꾸겠느냐. 생명은 참으로 귀합니다.
  살아 있는 개는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이지요. 6.25때 보니까 무던히도 살을라고 애씁디다. 집도 내버리고, 부모처자도 내버리고, 요리장롱도 내버리고, 훌륭한 가장집물 다 내버리고 거저 자기만 살겠다고 달아나는데, 무던히들 살을라고 그래요. 고것이 영생 있는 증거요, 욕망이 있으면 대상 있소, 식욕 있으면 밥 있고, 색욕 있으면 이성 있고, 지욕 있으면 학문 있지요. 사람에게는 고렇게 살고저 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으매 영생의 대상이 있는 것이랍니다.
  이 생명을, 잠깐 있는 이 육적 생명을 위하여 애를 쓰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참으로 애쓰는 사람은 많지 않소.
  나는 어떤 날 아침에 새벽기도 가다가 담배가게 앞에서 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둘러서서 야단법썩인지 “저 뭘 그러느냐”고 그러니까, “담배 배급 타러 왔다”고, “그 얼마나 남느냐”고 그러니까, “한 갑에 십원 남는다”고, 십원 남는 담배 배급 타려고 새벽에 나와서 그 야단인데, 하나님의 말씀, 귀한 생명의 배급을 타러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 너무도 적은 것을 생각할 때에 맘에 안타깝기 그지 없었소.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까.
  사람에게 제일 급선무는 구원이요, 구원, 물에 빠진 사람에게 급선무가 무어요? 구원이예요. 물에 빠져 죽어가는데, 떡을 주어도 소용 없고, 옷을 주어도 소용 없고, 돈을 주어도 소용 없소. 물에서 구원 받아야지...
  인생들은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꿈결 같은 세상에, 죄악의 세상 헤메다가 속절없이 멸망하는 인간들...

  꿈결같은 이세상에 산다면 늘살까
  인생의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세상 고난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데로 달려가느냐

 

  [2]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먼저번에 천로역정 강화, 첫째로, 하늘나라 가는 사람은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진상을 깨닫고, 둘째는 자기 인생관을 깨닫고, 셋째는 생명의 존귀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넷째로, 손에 들리워진 책 한 권이 있었는데, 기독도는 이책을 보고 자기의 진상과 황막한 인생관, 그리고 생명의 존귀함을 깨달은 것이예요.
  그 책은 무슨 책인가? 잡지 소설책인가? 역사 과학책인가? 두 말할 것 없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과연 사람의 진상을 알려 주는 거울이요. 시대와 사회상을 잘 알려 주는 망원경이요. 우리 생명을 밝혀 주는 현미경입니다. “이는 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요, 이것으로 주의 종이 경계를 받으며, 이것을 지킴으로 큰 상을 얻으리로다”
  기독도의 손에는 성경 한 권이 들리워진 것이 참으로 행복이었습니다. 우리 책장에 만권 책이 있어도 성서가 없는 책장은 죽은 책장이예요. 온 세상이 다 불타고 이 천지는 변하여도,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묵시하신 바니 이 성경은 너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정직케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을 행하기에 더욱 온전케 하느니라.
  이 성경은 지금 일천 이백 방언으로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글은 시대를 따라 변하지만 이 말씀은 변하지 아니해요. 세상의 글은 환경을 따라 변합니다. 아이 보는 글 따로 있고, 어른 보는 글 따로 있고, 늙은이 보는 글 따로 있고, 젊은이 보는 글 따로 있고, 동양 사람 보는 글 따로 있고, 서양 사람 보는 글 따로 있고, 부자 보는 글 따로 있고, 가난뱅이 보는 글 따로 있지마는 이 성경은 누가 보든지, 참으로 양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처럼, 누구에게도 필요합니다.
  성신의 충만은 말씀의 충만이라고 했어요. 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애독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스럽소.
  그 다음에 다섯번째는 참회의 눈물,
  다섯째로는, 기독도는 근심하고 애통하고 안타까워하는 그 심정,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천성 가는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는 것이요.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바꿔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울라고 해서 덮어 놓고 울지 마세요. 언젠가 충청도 의산 가서 부흥회를 하는데, 어떤 늙은이가 심히 울기에 물어 보니 죽은 영감 생각이 나서 운다고 합디다. 신세 타령, 팔자 타령해서 우는 눈물은 몇 동이를 쏟아도 소용 없소. 죄를 슬퍼하라구요. 죄를 자랑하는 것은 마귀새끼, 죄악에 빠지는 것은 인간들이요, 죄를 슬퍼하는 것은 성도라고, 어떤 성도는 명담을 하였습니다.
  참회의 눈물은 진주보다 귀해요. 다윗이는 통회의 눈물이 요를 썩이고 침상을 띄운다고 하고, 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을 주의 책에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랴고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눈물이 마르고, 신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말랐소. 내 자신을 위하여 울고, 이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눈물은 참으로 행복스럽소.              
  여섯째는 구원은 개인문제,
  여섯째로 한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이요. 황막한 광야에, 적막한 광야에, 쓸쓸한 광야에, 외로운 광야에 한 사람이 서 있소.구원은 개인문제...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예요. 어떤 노인에게 전도하니 “여보, 내게는 전도 그만 두시요 난 예수 안 믿어도 일 없소”, “어째 그런가”하니, “우리 마누라 잘 믿고, 아들 딸 잘 믿고, 며느리 손자 다 예배당에 잘 댕기오, 천당 갈 때 나 하나 못 들고 가겠소” 한다. 한심한 일이지요. 마누라 밥 먹어서 영감 배 부를까요.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할 것이요. 사람을 바라지 말고 인생을 기다리지 말라구요. “여호와 가라사대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체를 믿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고, “저는 황야의 노가주나무와 같이 좋은 일이 이르는 것을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자기 진상을 깨닫고, 인생관을 깨닫고, 생명의 존귀한 것을 깨닫고, 구원의 급선무를 깨닫고, 성경의 존귀한 것을 깨닫고, 개인적 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당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인생들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니 스스로 망하는 자식들이로구나 하였소.
  기독도의 이 형편을 본 가족들은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나 믿지 않고 오히려 정신병 들었다고 했소. 조롱도 하고, 책망도 하고, 상관치를 않았지요.
  정말 우리가 신앙생활의 참된 은혜를 받아보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예수를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했으니 그 제자된 자들이리요. 현대 신자는 너무나 똑똑해서 걱정이요. 예수 미치광이인가 보구료.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다 미쳐 산답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은 돈에 미치고, 허영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미신에 미치고, 글에 미치고, 사업에 미치고, 오락에 미치고, 명예에 미치고, 정치에 미치고, 먹는데 다 미쳐 산답니다. 미칠 바에는 예수에 똑바로 미쳐야 할거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그때에 고통하고 근심하는 기독도에게 전도가 찾아 왔습니다. 선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당신의 택한 사람을 위해서는, 구원할 백성을 위해서 전도를 보내 주신답니다.
  보세요.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 주셨고,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는 베드로를 보내 주셨고,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하든 나다나엘에게는 빌립을 보내 주시고, 구스 내시에게는 빌립이 광야로 찾아 갔었고, 빌립보 강변의 자주장사 여인들에게는 바울이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당신을 위해서는 누가 찾아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야 이 큰 구원을 알고 받았습니까? 그리고 이 장망성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 고통하는 기독도가 이 구석 저 구석에 그 수를 알 수 없으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하여 가겠느냐고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가요.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 다니엘12장3절에 그런 말씀이 있지요. 동방박사를 끌어다가 예수께 절 시킨게 무에요. 별,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가서 예수에게 황금을 드리고, 유향을 드리고, 몰약을 드려서 절하고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황금은 왜 드렸어요? 동방박사들은 황금만능주의자들이요. 황금을 사랑하던 저희들은 참으로 보배로운 주님을 만났으매 황금 사랑하든 마음을 주께 드린다는 것이요.
  유향은 왜 드렸을까요? 유향은 이방 사람들 우상 섬길 적에 향불 피워 놓고, 입은 덕도 만만하거니와 새로 새덕을 달라고 코이 나부라지게 절을 하던 것이요. 이제는 참신 되시는 주님을 찾았으매 미신 섬기고 우상 섬기던 이 진정을 주의 앞에 드리는 토색이 아닐까요?  
  몰약은 왜 드렸는가? 몰약은 죽은 시체에다 발라서 미이라를 만들어 가지고 유리곽 속에 네 가지고는 죽은 영감 생각나면 그 말리워 둔 영감 보고 위로를 받고, 마누라 생각나면 그 말리워 둔 마누라 보고 위로를 받고, 아들 딸 생각나게 되면 그 말리워 둔 아들 딸 보고서 위로를 받든 저들이나, 이제는 생명의 근원이요, 진리의 근원이요, 평강의 근원이요, 만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저들에게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려서 예수를 자기 구주로 믿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도는 기독도에게 “왜 여기서 그대는 그대로 울며 근심하느냐”고 하니, 기독도 가라대 “나는 내 손에 든 책을 보고 죽을 죄를 깨닫고 죽음의 심판이 올걸 생각하니 무거운 짐에 눌려서 죽을 뿐 아니라 지옥에 빠지게 되었나이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잠시 괴롬을 견디기 어렵거든 하물며 지옥에 빠지는 그 심판을 차마 어찌 받으리까” 전도는 그 말을 듣고 깊이 공정하면서 “살 길 찾을려면 왜 여기서 방황을 합니까? 속속히 이 장망성을 떠나서 장래 노하심을 피하시오”라고 주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기독도는 “장망성을 떠나면 어데로 피하여야 되겠나이까” 하니 전도는 손을 들어 가르쳐 “저기 저 높은 문으로 들어가라” 합니다. “저 곳에 있는 좁은 문이 뵈이지 않느냐”하며, 또 “저편에 훤한 빛은 보이는가?”, “보인다” 하니“그 빛을 바라보며 그리로 향하여 달려가면 거기에 좁은 문이 있을 것이니 그 문을 두다리면 당신의 행할 바를 가르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 그렇습네다. 우리가 처음에는 예수의 깊은 진리를 보고 분명히 따른 것은 아니예요. 거울 속으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고 여러가지 동기로 교회에 나왔지만 믿고 나아가면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이요. “너희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하였고, “이제는 따라오지 못하나 이후에는 따라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좁은 문, 우리 천성 가는 길은 좁고 험한 것이예요. 기차 철로가 길기는 길어도 좁아요. 기차는 철로가 좁아도 철로로 가야지, 철로가 좁다고 넓은 데로 가면 어찌 될 것이요. 곧 탈선이 되고 전복이 될 것이요.
  모든 인생은 왜 이 길로 오지 않는가? 종교생활은 자유가 없다고, 좁다고, 신앙생활은 건조무미하고, 부자유하다고 오지 않는 것이예요.
  주의 법도와 그 계명, 또 절제생활, 도덕생활은 다 부자유한 것 같으나 이 길은 참말로 사는 길이요, 자유방종은 사망이요, 멸망이랍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그러한 것이지요. 가령, 밥을 세 공기 먹어야 그 식량에 알맞은 사람이 반찬 맛있다고 한 공기나 두 공기 더 먹으면 넓은 길로 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탈선이 되어서 배병이 생기고 설사가 난다고 병원에 가서 의사의 신세를 지느라고 야단이 아니예요. 모든 질병은 대개 절제 없는 생활에서 생기는 것이예요. 또한 일남 일녀는 좁은 길인데, 왜 많은 여자에게 내게는 한 사람뿐인고 하고 많은 여자를 취해 보라구요. 또 많은 남자에게 왜 내게는 한 사람뿐인고 하고 많은 남자를 친해 보라구요. 이 사회가 어찌 될 것인고, 저 아라비아에 가보며는 코 떨어진 여자가 많다고 해요. 그 사회는 다처주의라 여자끼리 강샘을 해서는 서로 코를 잘라 버려서 그리 된 것이라고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커서 그곳으로 가는 사람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야 찾는 이가 적으니라” 그 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는 자유를 얻고 생명의 꼴을 얻으리라”하였고,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눈을들어 산을보라  만산초목 우겄구나
  곳곳마다 가시덤불  굴러있는 해골떼라
  재목없어 집못짓고  살곳없어 방황하나
  맹수밥이 되는영혼  주의종아 어찌할꼬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3]
  여러분 그동안 또 안녕하셨습니까?
  하룻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길른지 알 수 없는 험악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우리를 이렇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전번에 장망성 살던 기독도가 광야에서 헤메다가 전도의 전도를 듣고서 “좁은 문으로 가라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커서 그곳으로 가는 사람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야 찾는 자가 적으니라”고 하는 전도를 듣고 기독도는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기독도는 이제 귀한 복음을 듣고 큰 보화를 얻은 것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달아나기를 시작합니다. 거기서 그 집이 멀지 아니하니 그 처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 울며 불며 돌아오라고 따라가며 부르짖었으나 저는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하면서 달아납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달아납니다.
  천성에 가는 사람은 귀를 틀어 막아야 되는 것이예요. 귓구멍이 넓은 사람은 천성 가기 어렵대요. 이 사람 이러니 이럴듯, 저 사람 저러면 저럴듯, 바람에 불리는 갈대처럼, 무정견, 무골충 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성공 못한답니다. 하늘나라에서 요구하는 사람은 의지가 돌같이 강하야 대소사에 마음 두지 않고 어떤 문제든지 일정한 의견을 가진 인물을 요구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부자가 당나구 끌고 가다가 물에 빠친 얘기 들었을 거예요. 부자가 빈당나구 끌고 가는데, 한 동네 지나가려니 사람들이 보구 “저런 미련한 사람, 빈당나귀를 끌고 가느니보다 한 사람타고 가지 않나” 그 말이 그럴듯 해서 아들을 태우고 아버지가 경마를 들고 가지요. 또 한 동네를 지나 가노라니 사람들이 “저런 못난 영감, 아들을 태우고 아버지가 경마를 들어, 예이 망할 영감, 이담에 효도받겠다. 자식 참 잘 가르친다”하면서 비난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것 참 그렇겠다, 이번에는 내가 탈 것이니 네가 끌어라”하고 바꾸어 타고 갔답니다. 또 한 동네 들어가니 사람들이 “저런 무심하고 무정한 영감 보라 어른 애비가 타고 어린아이를 경마를 들렸다? 예이 영감 편안하오?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소”합니다. 그 말을 들으매 참말 안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둘이 다 타자”하고 약한 나귀 등에다가 두 사람이 올라 앉았답니다. 어린 나귀는 삐뚝삐뚝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요. 또 한 동네 지나 가노라니 “저런 악한 영감, 말 못하는 짐승이라구, 둘이 타는 법이 어디 있느냐 그 나귀 허리 안 부러지느냐”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큰일 났다. 이래도 말썽, 저래도 말썽, 이번에는 당나귀 네 다리를 결박해서 둘러 메고 건너가자”하고 돌다리를 건너다가 나귀가 요동하는 바람에 그만 물에 빠쳐서 죽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말많은 세상이요.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우리는 이 세상의 잡음을 귀막아 물리치고 신령한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힘차게 달아나야 합니다.
  “달아나라, 너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들에도 머물지 말고 생명을 위하여 산으로 도망하여 불사름을 면하라” 소돔과 고모라 멸망할 때에 롯에게 천사가 와서 경고한 말씀이예요. 달아나라, 언제나 긴장한 태도이요. 가면 가고, 말면 말고, 되면 되고, 말면 마는, 이런 상태는 아무것도 성공 못하는 거예요. 먼저 위험을 피하고 사망을 피하야 달아날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마라톤에는 허다한 간증자들이 구름같이 둘러 있고, 의의 면류관을 들고 속히 오라고 부르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따라서 모든 거리끼는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참음으로 믿음으로 주장하사 완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힘차게 씩씩하게 달아가서 개선의 영광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가며는 완행차가 어떻게나 많은지... 이놈의 완행차는 가면 가고, 말면 말고, ‘삑’ 하고 다음 정거장 우두커니 섰다가 또 심심하면 삑 하고...  신자들이 완행차가 되어서 예배시간에도 그저 늦게 늦게, 예배 다 본 후에, 거의 다 본 후에 오는 신자도 있어요.
  어떤 장로의 아들, 장로가 병들어 예배당에 못가면서 아들 보고 “너 아무쪼록 예배 잘 보고 오너라”, “예”, 갔다 온 다음에, “너 예배당에 갔댔니?”, “예 갔댔어요”, “오늘 목사님 성경 어디 보시든?”, “성경 다 본 다음에 들어갔어요”, “목사님이 설교 문제는 뭘로 하고 설교 내용은 뭘로 하던?”, “설교할 때는 졸았어요”, “광고는 무슨 광고를 하시던?”, “광고 하기 전에 나왔디요”, 장로가 기가 맥혀서 “원 세상에 어떻게 저런게 내 새끼가 되어 내가 속을 태운다”고 그만 병이 더 생겼답니다. 그 아이만 그런게 아니예요. 오늘날 신자 가운데 완행차 신자가 참 많아요. 통일호와 같이, 태극호와 같이, 성신의 불이 충만해서 힘차게 달아나는 급행차들이 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독도는 벌써 벌판 가운데로 귀를 막고 달아나는데, 동네에서 두 사람이 따라 온답니다. 하나는 고집이요, 다른 사람은 변하기 잘하는 이천이, 고집이, 굳을 固자, 잡을 執자, 굳게 잡는..., 이천이, 쉬울 易자, 옮길 遷자, 변하기 잘하는..., 고집이 하고 이천이가 따라 옵니다. 고집이는 기독도를 붙들고 강제적, 위협적으로, 이천은 사정적으로 돌아갑니다. 기독도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음이라”고, 고집의 위협도, 이천의 사정도 다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고집이 가라대 “이 사람아 거기 가면 무에 그리 좋아서 이 좋은 장망성을 버리고, 그 귀여운 처자를 다 버리고, 친절한 친구를 다 버리고 딴고집을 부리면서 간단 말이냐”고 하였습니다.  
  기독도는 가라대 “이 책을 좀 보아라, 거짓말 없으신 신실한 주님의 말씀에 천성 가면 근심도 없고, 눈물도 없고, 질병과 사망의 고통이 없는 참평안한 곳이요, 천군천사 성도들과 같이 영세무궁 복락을 항상 누리는 곳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이니라”.
  고집이가 이천이더러 “이천이 돌아가세, 세상에 저렇게 고집 센 놈은 처음 보갔네, 친구들이 그만큼 사정하면 금수가 아닌 바에야 모를 이가 있나 미친 주제 넘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이천이 가라대 “그런 욕설은 그만 두게 이 사람 기독도 말이 참말이라면 나도 따라갈 맘 있네”
  고집이 가라대 “얘 이놈아 너도 또 미치느냐? 그런 미친 놈 따라가다가는 장차 무슨 봉변 당할 줄을 누가 아느냐. 그러면 너희들끼리 잘 가서 복받아라 나는 그런 얼빠진 놈과 작발하지 않을터야”하고 고집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천이는 결심하고 기독도를 따라 옵니다. 기독도와 이천이는 벌판으로 벌판으로 같이 걸으며 얘기합니다. “고집이도 이런 귀한 도리와 장래 재앙을 알았더면 그렇게 경하게 돌아가지는 않았으련만...” 하면서 탄식하였소.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지요. 어린아이에게 금덩어리를 주고 사탕을 주면 금덩어리를 내어버리고 사탕을 먹을 거예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귀한 진리를 몰라서 무시하고 반대하고, 몇날이나 살겠다고 썩어질 세상, 썩어질 허영에만 끌리워 죄악에 빠져 멸망의 길을 걷는 자, 그 수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 옛날 독일의 광물학자가 아프리카에를 갔더랍니다. 새까만 흑인종 계집애가 돌 네개를 가지고 공기를 놔요. 그게 뭔가 하니 금강석이예요, 얘가 얼마나 돈이 많아서 금강석 가지고 공기를 놓는가 너희 집 어딘가고, 그 광물학자를 데리고 가니 움막집에서 새까만 흑인종 부인네가 필끼죽을 쑤고 있더랍니다. “얘 당신네 아이요?”, “예”, “미안하지만 얘 가지고 노는 돌 나한테 팔으세요”, “예? 야 그 양반 별 양반 다 보겠다. 돌을 팔긴 뭘 팔아 그 양반 그냥 드려라” 이 계집애가 절을 깝싹 하고서는 돌 네 개를 갖다 드렸답니다. 이 광물학자는 지갑을 꺼내서 돈을 벌컥벌컥 삼십원을 꺼내 줘요. 그 흑인종 부인과 계집아이는 입이 대장이나 벌어졌더랍니다. “아야! 그 양반 무던히도 돈 많은가 보다 돌 네개에 삼십원을 주어?”하고 놀랬지만 광물학자는 그거 가지고 와서 여러 백만원 샀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 정부에다 그 말을 해서 거기서 채광을 한 것이 독일 정부의 재산 절반 이상이나 캐냈다는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고 하지만은 모르는 흑인종에게는 돌 네개 같고, 돈 삼십원 받고 금강석 네개를 주고 말았지만, 광물학자는, 아는 광물학자에게는 자기만 아니라 자기의 전 국가에까지 큰 보화가 된 것처럼 예수의 귀한 진리, 이 귀한 복음은 우리 인생의 근본문제, 현재 문제, 미래 문제, 적은 문제, 큰 문제, 가정 문제, 세계 문제, 국가 문제가 전부 이 안에서 해결되건만은 사람들이 다몰라서 흑암의 길에서 방황하는 것을 볼 때에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천이는 기독도다러 “우리 두 사람만 있어 조용한데 좀 자세히 이야기 해다오, 그 가지고 있는 책이 무슨 책인가? 그 다 참말인가요?”
  기독도 가라대 “그렇고 말고요, 천지는 변해도 이 말씀은 영원히 불변하실 진실한 말씀이요, 우리가 가는 곳은 영원한 나라가 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보다 먼저 간 성도들과 천군 천사들이 서로서로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은총을 누리고, 금면류관을 쓴 장로들이며, 금거문고를 타는 성도들이며, 주를 위하야 충성되야 그 계명을 순종하다가 죽은 순교자들이 다 평안한 영생 복락을 누린다”고 그러한 나라를 방금 눈 앞에 보는 듯이 열심으로 말했답니다.
  이천이는 그 말을 듣고 “아 어서 갑시다. 그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을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모르지요. 빨리 갑시다”.
  기독도는 “여보, 그대는 짐이 없어 잘 가지마는 나는 내 짐에, 내 등에 있는 이 짐, 무거운 짐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구려” 하니,
  이천이 말하기를 “그대는 무슨 짐을 밤낮 그렇게 지고 다니오”하였다.
  이천이는 같이 따라 가기는 가지마는 도무지 자기 죄에 대한 깊은 느낌이 없이 천박한 신자요, 돌작밭의 씨와 같이 싹이 곧 나오기는 하지마는 해가 나서 쪼이며는 곧 말라지는 것이요.
  이렇게 재미롭게 얘기하며 가던 두 사람은 별안간 뜻밖의 수랑통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우울리(憂鬱里) 절망소(絶望沼)라는 곳이예요. 저희는 거기서 한참 딩굴어서 진흙 투성이가 되었소. 대단히 위험한 곳이어서 저들은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서 능히 있을 곳이 없나이다 내가 깊은 물에 들어가니 파도가 나에게 넘쳤도다”한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기독도는 등에 짐이 무거워 더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이천이 기독도다러 말하기를 “여기가 어덴가? 이제는 어찌 하려는가?”
  기독도 “글쎄 나도 모르겠다”
  이전이 벌컥 성을 내며 가라대 “이 사람아, 이것이 종일 나에게 말하던 복이냐? 이 첫걸음에 이 모양이 되니 나중에는 무슨 일, 무슨 봉변을 당할른지 알겠는가, 내가 정신 빠진 자이지, 왜 이런 미친 놈을 따라 오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는고” 기독도를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그 수렁은 뒤로 서서 내려오면 나오기 쉬운 곳이지요.
  이천이는 겨우 빠져 나와서 기독도를 저주하며 “에 이놈아 어서 네나 혼자 천성 가서 내 받을 복까지 다 받아 먹어라. 나는 다시 너 따라가는 자, 너 같은 자에게 속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빨리 집으로 돌아 갔답니다.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 일이 참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고 칭찬하는 이도 있고, “이 사람아, 그러기에 내가 가지 말라고 하지 않더냐. 그런 미친 놈을 따라가는 것이 대단히 잘못이다”라고 책망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따라가려면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모험을 시작하였다가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다고 중도에 피하는 비겁쟁이라, 너는 아무것도 성공 못할 놈이 아닌가, 뼈 없는 무골충과 같은 신용 못할 놈이다“라고 하야 온 동네의 조롱거리만 되었답니다.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4]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장망성 살던 기독도가 좁은 문을 찾아서 귀에다 손가락을 틀어막고,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 하고 힘차게 달아날 때에 고집(固執)이와 이천(易遷)이가 따라가다가 고집이는 중간에 돌아가고, 이천이는 따라가다가 그만 수랑통에 빠져서 이천이는 기독도를 원망하면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따라가다가 타락하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환영 못받는 것이예요.
맛 잃은 소금은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힘이 되리라고 했지요.
  이천이는 어드런 신자인고 하니 경기적 신자,
  이천이는 왜 그렇게 속히 돌아갔는가? 경기적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불경기가 될 때 물러가는 거예요. 기독도를 따라갈 때는 좋은 것만 생각했지, 가는 길에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을 예상치 못한 것이에요.
  강원도 춘천에 어떤 노파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자 석달 동안 예배당에 잘 다니다가 주일날 예배당 간 사이에 도적놈 와서 꼬추 서말 도적질해가 교회 아니 나오므로 그 교회 목사가 심방을 가니, 그 할머니, “나 이제 예수 안 믿을 테예요”, “왜 그러냐”하니, “하나님 있으면 왜 꼬추 도적놈 못 지켜 주겠소”한다. 자라 모가지 신자들, 자라 모가지가 평안 무사할 때는 쑥 나오다가는 뭐이 건드리면 쑥 들어가는 것처럼 오늘도 그런 신자가 많아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려면 여러가지 환란을 겪어야 하리라”, “만일 뒤로 돌아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하신 우리 주님의 간곡히 부탁하신 귀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왜 이들은 이 절망소(絶望沼)에 빠졌는가?
  절망소(絶望沼)에 빠진 원인.
  첫째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까닭이예요. 성도의 생활은 말을 조심하여야 해요. 밑천 안먹는 말이라고 공연한 말 너무 하다가는 실패의 원인이 되는 거요. 다윗이는 “내 입에 파숫꾼을 세워 주시옵소서” 하였소. 이사야도 “내가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처하야 입술이 더럽다고 회개했습니다.
  둘째로, 우울리(憂鬱里)에는 징검다리가 있는데, 그 징검다리를 보지 못했어요. 징검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예요. 우리가 어려운 일 당할 때에 침착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상고하야 말씀에 서서 나아가야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환란을 받으나 안심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네가 물에 들어가도 같이 하고 불에 들어가도 같이 하리라” 이런 말씀을 기억해야 해요. “내가 주의 말씀을 감춘 것은 범죄치 않게 하려 함이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나이다” 예수님께서도 마귀 시험을 당할 적에 말씀으로 승리하셨거든요. 말씀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주 너의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다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승리한 것이예요.
  기독도는 아무리 어려워도 돌아서지 않고 죽어도 천성이나 바라보고 죽겠다고 생각한 것이요. 혼자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어요. 울어도 할 수 없고, 힘써도 할 수 없어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빠져 들어갑니다.
  이때 마침 은조라, 은혜 은(恩)자, 도울 조(助)자, 은조란 분이 와서 건져 주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다”라고 하였소. 시험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날 구해 주실 이는 주 예수시니 오직 예수뿐이 아닌가
  베드로도 갈릴리 바디 풍랑을 보고 무서워 빠져 들어갈 때에 주님이 오셔서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면서 붙들어 건져 주셨습니다.
  우울리(憂鬱里)에서 나온 기독도는 내 짐이 점점 무거울 때에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시니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찬송을 부르면서 걸어간 것이랍니다.
  세지(世智)의 유혹, 육정부(肉情府)에 사는 세지(世智)란 자가 기독도를 만나 “그대가 수고로이 어디를 가느냐”하니, 기독도는 대답하기를 “나는 장망성(將亡城) 살던 사람인데, 진실로 곤고한 사람이라, 좁은 문으로 와서 이 무거운 짐을 벗고 영생을 얻으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지는 “허허... 이 사람 큰일 났구만 세상에 이 길처럼 험하고 괴롭고 어려운 길은 없는데, 그대가 오다가 한판 굴려났네 그려, 이제 앞으로는 얼마나 더 어려운지 모르는데, 곤하고 어둡고 위태하고 기갈과 추운 곳, 죽음의 곳이라고, 우리 동네 육정부 사람들도 한 때 간다고 하더니 다 돌아 왔다네. 김 목사도 돌아오데, 이 장로도 돌아오고, 홍 권사도 돌아오고, 양 권찰도 돌아오고, 그대로 가다가는 죽나부대. 주 기철 목사도 옥중에서 죽었다네, 손 양원 목사도 삼부자 한꺼번에 죽었다네, 이 판일 장로 열 세 식구 한꺼번에 죽었다네, 그리카고는 숱한 고통을 당하는 모양이데, 오늘 날 참 잘 만났네, 이제라도 속히 돌아가게, 내가 경험도 많고 지식도 많은 사람이니 내 말만 들으면 행복일세” 한다.
  기독도는 “아니요, 아무리 어려워도 이 짐만 벗는다면 아무데라도 가겠소이다”
  세지는 “그 짐 있는 줄은 어찌 알았나?”
  기독도 “이 성경책 보고 알았지요”
  세지 “예이, 무식한 사람은... 그렇게 맘이 약해 어찌해, 그거 다 사람 쇡이는거야, 그대 처자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무정히 살겠다고 하는 것은 인정도리상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니, 정히 그 짐 벗기 원하면 내가 좋은 길 하나 가르쳐 줄테니 저기 보이는 시내 산 아래 도덕촌 찾아 율법 선생한테 가서 수양을 하고 도를 닦아 보게, 거기는 물건도 싸고 집도 많아 처자를 데리고 재미난 생활을 하는 곳이야”.
  기독도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게 좋은 길이 있어요” 하곤 가던 길을 버리고, 복음의 길을 떠나서 시내산 율법 선생을 찾아 갑니다. 갈수록 짐은 점점 더 무겁고 공포와 의심에 싸여 죽게 되니 죽게 되니 진퇴양난이요. 산에서는 화광이 일어나고 불꽃이 그 몸에 미치려 할 때에 그제야 세지에게 속은 줄을 알고 후회하고 더 가지 못하고 전신에 땀만 흘리고 있었답니다.
  그 때에 마침 전도가 다시 찾아와서 엄숙한 말로 경계하고 바른 길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주님의 지극한 사랑이지요.
  전도가 가라대 “왜 내가 좁은 길을 가르쳤는데 이렇게 속히 곁길로 들었는가? 율법이나 도덕이나 인간의 수양으로 그 짐을 벗고 천성의 생명길로 능히 가는 줄 아는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 눈앞에 십자가가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이더냐 너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신을 받았느냐 율법의 일을 행함으로 성신을 받았느냐 너희가 이렇게도 어리석으냐”했습니다.   
  기독도 가라대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희망이 전연 없읍니까?”
  전도는 다시 여러가지 주의 말씀을 뵈주며 “이제라도 회개하라”고 명령햇습니다. 세지의 말 들은 것 통탄히 여겨라 정도를 떠나서 미혹의 길을 간 것...
  둘째는 십자가를 떠나 평안한 육신의 평안함을 구하는 것, 셋째는 죽음의 지배를 계속하는 곳에 발을 디디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하고 사람의 뜻을 순종함이요.
  기독도는 벌벌 떨면서 “나는 화를 받을 자요 멸망을 받을 자”이라고 슬피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세지 만난 것도 불행이요, 그 말을 경솔히 믿은 것도 나의 어리석음이요, 사욕으로 미혹하는 길을 좇은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였소.
  전도는 다시 주의 긍휼과 사죄의 말씀을 주어 위로하고 바른 길에 세워 주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성취해라 이단을 삼가라 우리 가는 길에 복음에 서지 못한 어린 심령들은 율법주의, 도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자유주의자들에게 괴롬을 많이 당합니다. 사이비한 소위 종교 이단지도로 끌고 나갑니다. 좀 신령하게 잘 믿어 보려고 하는 자가 근본 문제는 알지 못하고 지엽문제를 주창하다가 미혹에 드는 일이 많아요.
  바른 성신 받는 일은 먼저 빛 아래서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성결을 받으며 또 참사랑이 내 맘에 성취하야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함이 급선무이련만, 무슨 이적이나 묵시나 금식이나 방언이나 신유나 예언을 주창하다가는 탈선이 됩니다.
  물론 성신의 역사에도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고 하니 이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성신으로 오는지, 마귀에게로 오는지 분간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아는 거예요. 신비주의로 주의 말씀에 서지 못하고 극단적 감정과 자기 노력을 믿고 특별한 무얼 보고 들으려고 사람의 정욕으로 구하다가는 성신은 받지 못하고 마귀의 영에 속아 자기도 속고 사람을 속이는 일이 많답니다.
  율법주의자들 가운데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이라 주장하야 하나님의 계명을 엄수하는 것 같으나 밤낮 날타령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녜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면, 당나귀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당나귀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당나귀는 사람이 타고 다니자고 있는 것이지, 사람이 당나귀를 머리에 뒤집어 니고 다니라는 말이 아니라는 말이예요. 이제는 날타령 그만치 하고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산 예수를 그대로 받아 당신 심중에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시기를 진실로 바라는 바이예요. 일언이폐지하고 순복음적이요, 정통 건전한 신앙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통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은 이지 방면이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사랑은 도덕 방면이예요, 하나님은 생명이예요, 생명은 신비 방면인고로 이지(理智)와 도덕(道德)과 신비(神秘), 삼자가 구비한 신앙이 건전한 참종교요, 참그리스도인입니다. 이지(理智)와 도덕(道德)이 결함된 신비(神秘)는 미신(迷信)에 빠지고, 신비의 체험이 없는 이지(理智)는 너무 냉냉하고 쌀쌀합니다. 이지와 신비가 없는 도덕가들은 너무도 건조 무미(乾燥無味)하고 싱거워요. 언제나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냉정하라구요. 신비의 가슴이 뜨겁다가 머리까지 뜨거워지면 큰일이요 라고 기독도를 위로하고, 다시는 곁길로 들지 말라고 신신부탁하고, 좁은 길로 가는 길을 다시 한번 분명히 가르쳐 주고 흔연히 작별하였습니다. 재차 사명의 사람이예요. 당신의 택한 사람을 위해서는 자주자주 전도를 보내 주신 주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더라는 말씀 그대로요.
  엘리야가 사명에 낙심하고 호렙산의 동굴에 있을 때에 재차 사명을 주셨고, 요나가 불순종하고 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여호와 다시 나타나서 재차 사명을 주시고,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떨어져서 삼년 전에 내어 버렸던 그물을 다시 가지고 삼년 전에 떠났던 갈릴리 바다에 나간 베드로를 다시 찾아 새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아직 감복하지 않는 자야 어찌 사람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죄악에 타락된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사랑이 아닌가.
  기독도는 전도를 작별하고 이제는 누구에게나 말도 하지 아니하고, 누가 물어도 대답도 아니하고, 이전의 잘못만 걱정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좁은 문만 바라보고 걸어가다가 좁은 문에 다달으니 그 위에 간판을 썼는데, “문을 두다리라 또한 열어 주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5]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제 2장, 좁은 문에서 미궁까지,
  기독도가 문을 재삼 두드리니 인자(仁慈)란 사람이 마중나옵니다.    
  인자는 “그대는 누구며, 어데서 왔으며, 무얼 구하는가?”고 했습니다.
  기독도 말하기를 “나는 가련한 죄인으로 장망성을 떠나 천성 갈려는 사람인데 이 문을 지나야 그리로 가게 된다고 하므로 왔사오니 잘 지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했지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두다리면 열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여 문을 열고 속히 들어오라고 손을 잡아서 끌어 들입니다.
  기독도는 “왜 이처럼 급히 재촉하십니까?”
  인자 “여보시요, 저기 보지 못하시요? 이 근방에 강도 둘이 있는데, 강도 굴이 있는데, 마귀 왕 사탄이가 여러 부하들을 거나리고 이 문에 들어오는 사람을 화살로 쏘아 죽이는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말로 이 문에 들어 갈려면 용단성 있게 들어가야지 우물쭈물 하다가는 차차 마귀의 화살에 찔리우는 것이랍니다. 하늘나라에는 용단성, 결단성이 필요한 것을 보여줍니다.
  옳아요. 어떤 날, 마귀들이 회의를 하는데, 회장 마귀가 말하기를 “여러분 이 인생들을 어찌 하여야만 하겠소?” 하니, 한 마귀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내 좋은 방법이 있소,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에게 무신론을 가르쳐 주면 잘 될 것이요”하였다. 다른 마귀가 “아니요, 그 말에는 반대요, 아무리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쳐 주어도 사람들이 평안할 때에는 무신론을 주창하지마는 어려움을 당하며는 임사호천(臨死呼天)으로 하나님을 찾으니 소용이 없어요” 다른 마귀가 “회장, 내 좋은 방법 들어 보세요 하나님은 계시다 그래도 지존 지엄하시고 거룩하시고 신령하신 분이니 너 같은 더러운 죄인이 가까이 할 수 없다고 가르치면 잘 될 것이요” 다른 마귀가 “아니요, 그 방법도 틀렸소, 그러기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죽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이 무섭다 해도 그의 십자가를 부여잡고 그의 공로를 힘 입어 바싹바싹 들어가니 그도 소용이 없소” 다른 마귀가 “회장, 내게 제일 좋은 방법을 들어 보시요, 하나님도 계시다. 또한 십자가의 사랑도 있다. 그래도 아직 남은 때가 많으니 지금부터 믿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차차 믿어라 차차 회개하라 내일로 미루고 내달로 미루다가 지옥에 툭 차 쓸어 넣으면 된다”고 하였소. “아 그것 참 좋은 방법이라”고 만장일치 가결하였다는 말이 있지요. 진실로 차차 마귀가 고약합니다. 오른눈이 범죄하면 그 눈을 빼어 버리고 오른손이 범죄하면 그 손을 끊어버리라고 한 것은 용단성 있게 결단성 있게 회개하란 말이요. 기회는 올 때에 붙잡아야지 갈 때는 붙잡지 못한 답니다.
  영국 박물관에를 가보면 이상한 게 있다구 그래요. 대가리는 말 대가리, 꽁지는 새 꽁지인데, 거기다가 “기회는 올 때에 붙잡아야지 갈 때는 못 붙잡는다” 그렇게 써 놨답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하면 말대가리가 앞에 있어서 터렁구가 있어서 앞에서 잡아서 얼마든지 흔들 수 있지만 뒤에는 새꽁지가 돼서 쥐면 쪽 빠지고, 쥐면 쪽 빠져서 잡을 재간이 없답니다. 기회는 앞에 올 때 잡아야지 뒤로 갈 땐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회는 앞문으로 와서 뒷문으로 나간다고 그래요.
  둘째는 효시(曉視)의 칠 교훈,
  기독도는 인자와 여러가지 문답을 하고 인자의 안내를 받아 효시(曉視)의 집에 들어가서 일곱 가지 진리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효시는 한 손에 등불을 켜 들고 기독도의 손목을 잡고 진리의 궁전에 들어가서 일곱가지 구경을 시켰습니다.
  효시는 진리의 영으로 충만한 참된 전도자를 가리키는 것이요. 참된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이요.
  일곱 가지 교훈,
  첫째 방에 들어가니 엄숙한 전도자의 화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상 일은 등에 두고 손에는 가장 좋은 책 한 권을 들고, 그 눈은 하늘을 향하여 있고, 입술에는 진리의 율법이 써 있고, 머리에는 황금의 면류관을 쓰고, 많은 사람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이는 참전도자의 상태를 보여줌이예요. 세상이 그를 향하여 못 박고 그는 세상을 향하여 못 박혔소. 그의 소망은 하날에만 있어 우에 있는 것만 생각합니다. 손에 들린 책은 물론 성서가 그 손에서 떠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도를 전하기를 쉬지 않는 것이요. 부지런히 열심으로 많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만나야만 그대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했소. 오늘의 전도자는 세상을 등지는 대신에 세상과 짝하는 음행하는 여인과 같은 너희들아 세상과 벗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을 알지 못하나뇨, 하는 말씀을 잊어버리는 것이요,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땅두더쥐처럼 땅만 내려다 보고 손에 성경 대신에는 소설 잡지가 떠나지 않고, 입을 열어 진리를 말하는 대신에 무익하고 허탄한 말이나 없는지 반성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어요.
  율법의 사명과 복음의 은총,
  둘째 방에 들어 갔더니 대청에 먼지가 가득히 찼는데, 한 사나이가 빗자루로 쓸면 쓸수록 먼지는 더욱 일어나요. 숨이 맥힐 지경이요. 그때 한 소녀가 물을 가지고 와서 물을 뿌린즉 먼지가 다 깔아 앉고 정결하여집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니 이는 율법의 사명과 복음의 은총을 보여 주신 것이요, 대청에 먼지가 가득찬 것은 항상 풍진 세파에 잼긴 우리의 마음이 죄로 더럽힌 심령을 가르치며, 모세의 율법으로는 쓸면 쓸사록 죄가 다시 일어나나니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사명은 있으나 깨끗케 할 힘은 없습니다. 소녀가 물을 가지고 뿌리는 것은 은혜를 가르치는 것으로서 예수의 피와 말씀으로만 우리를 정결케 하심을 알려 주는 것이요.
  율법과 은혜의 대조,
  율법은 은혜로 말미암아 오고, 은혜는 예수로 말미암아 왔나니라.
  율법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 하고,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이라 하였소.
  율법은 범죄한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 하고, 은혜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였소.
  율법은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고, 은혜는 사랑은 여게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야 그 독생자를 주사 화목제가 되게 하셨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은 네가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은혜는 네가 빚진 것을 탕감하리라 합니다.
  율법의 선언은 정죄와 죽음이요, 은혜의 반포는 칭의와 생명입니다.
  율법은 새 심령과 새 정신을 가져라 하고, 은혜는 내가 너희에게 새 심정을 주리라 하였소.
  율법은 하나님을 위하야 사람이 무얼 할까 함이요,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위하야 무엇을 하였는가 함이외다.
  율법은 하나님의 무서움을 보여 명령을 순종하게 하고, 은혜는 하나님의 긍휼로 사람을 권면합니다.
  율법은 사람에게 거룩을 요구하고, 은혜는 사람에게 성결을 줍니다.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세째 방에 들어 갔더니 두 아이 급욕(急慾)이와 인내(忍耐)를 보았소. 어떤 아이가 재물 든 보따리를 주니 급욕은 혼자 다 지나가고 매우 기뻐하나 미구에 다 없어지고, 인내는 마지막까지 불평불만 없이 지내다가 더 좋은 상을 받았소.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천성 가는 성도는 급욕이가 되지 말고 인내가 되라는 말씀이예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이라. 일시 눈앞의 정욕으로 영원한 장래 기업을 잃지 말라는 것이요.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기업을 팔아 먹은 것처럼 되지 말라구요. 잠깐 향락의 무정한 부자는 영원의 지옥 형벌을 받고, 모든 고난을 견디면서 의를 지킨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영원한 천국 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네째는 마귀의 냉수와 성신의 기름,
  또 한 곳에 다다르니 담 안에는 불이 나오는데, 왠 한 사람이 물통에다 물을 끼얹어 불을 끕니다. 그러나 불은 거의 꺼지다가는 또 다시 일어나고 꺼지다가는 다시 일어 납니다. 왠일인가 하고 돌아가 보니 담 밖에서 기름을 붓는 사람이 있어요. 이 불은 신앙의 불, 은혜의 불입니다. 악마는 이를 미워하여 각양의 시험 냉수를 끼얹습니다.그러나 배후에서 부어 주시는 성신의 기름은 오날까지 우리의 믿음을 보전시켜 주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요. 마귀의 냉수와 보혜사의 역사를 알려 주시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직 감사할 뿐이요.
  다섯째는 선한 싸움,
  또 한 즐거운 곳에 이르러 굉장한 궁전을 보았습니다. 거기 들어가는 사람은 문 앞에서 성명을 기록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일변 무장한 폭도들이 방해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놈들이 무서워서 뒤로 물러가는데, 어떤 다른 무장한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결사적으로 그 놈들과 싸워 이기고 궁전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궁전 안에 노래 소리가 있어,  “오라 오라 들어오라 영원한 영광은 네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려면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워 영생을 취하라 가르치는 것이요” 너희가 죄를 대적하되 피 흘리기까지 힘쓰지는 아니하였나니라. 마귀로 더불어 싸우고, 죄로 더불어 싸우고, 자기로 더불어 싸우고,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요.
  여섯째는 배교자(背敎者)의 말로(末路),
  다른 방에 들어가니 캄캄한 감방 철통안에 있어 고랑을 차고 신음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에게 물으니 나도 전에는 주님의 제자로서 덕행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천성 가든 사람인데, 점점 게으르고 사욕을 좇아 귀한 도리를 거역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저바리고 큰 죄악에 걸려 아주 타락하여 소망 없는 자가 되었다고 자백하였소. 배교자의 말로를 보여 주신 것이요.
  평양 모란봉에는 20년간 목사 노릇 하다가 타락해서 지금 사주장책 보는 점쟁이가 되어 마귀 전도자 노릇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서 너희 가운데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떨어질까 염려하라.
  일곱째는 대심판(大審判)의 꿈,
  마지막으로 한 침실에 들어가서 한 사람이 자다가 깨어 벌벌 떨고 땀을 흘리며 공포 중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제 꿈을 꾸었는데, 하늘이 캄캄하고, 천둥번개를 무섭게 하고, 검은 구름이 일고, 나팔 소래가 나고, 화염이 충천하고, 하늘에서 소래가 있어 불러 이르되 “죽은 사람들은 다 일어나 심판을 받으라”고 하니, 많은 사람을 갈라 악인은 지옥에 잡아 넣고, 선한 사람은 천국으로 보내는 광경을 보고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차 이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에 서서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쟁이는 꺼지지 아니하는 불에 던지리라. 면양과 산양을 갈라 놓는 날이 있을 것이요, 선과 악이 혼동되고 의와 불의가 지금 당장에 보증이 없다고 안심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요. 태양에 구름이 가리웠다고 태양이 없어지나요.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6]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번에 장망성 살던 기독도가 좁은 문까지 가서 두다릴 때 좁은 문에 들어가서 효시네 집에 가서 일곱가지 교훈을 배웠지요. 참전도자, 율법의 사명과 복음의 은총, 급욕과 인내, 마귀의 냉수와 성신의 기름, 선한 싸움, 배교자의 말로, 대심판의 광경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곤 그 효시네 집에 가서 모든 것을 구경하지마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돌아다니면서, 그 진리는 재미가 있지마는, 이 무거운 짐은 언제나 떨어지겠느냐고 말씀할 때에 이제 저편으로 돌아가면 구원이라는 담 모퉁이 돌아가서 십자가를 만나야 당신의 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십자가를 언제나 만날까 하고 구원의 담 모퉁이를 돌아가니 거기에 흔연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환상이 나타납니다. 그때 기독도는 동경하던 구원의 십자가 담 모퉁이 갈보리 언덕에 서 있고, 그 안에는 무덤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다가가서 십자가를 붙안을 때에 기독도의 무거운 짐은 십자가 밑에 이르자 뚝 떨어져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뵈이지 아니합니다.
  기독도는 너무도 씨원하고 깨끗하고 기쁘고 즐거워서 “우리 주님께서 괴롬을 받으심으로 나에게 쾌락을 주시고, 우리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나에게 생명을 주셨도다” 하고 불렀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절로 흐릅니다.
  이때에 천사 세 분이 나타나서, 첫째 분은, “소자야, 안심해라 네 죄를 사햇다”하시고, 둘째 분은 나타나서, 남루한 옷을 벳기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갈아 입혀 주시고, 세째 천사는 나타나서 이마에다 인을 쳐주면서 구원의 증표를 주셨는데, 그 구원의 증표에는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하는 이사야 43장 1절에 있는 그 말씀이었을 거예요.
  천사 세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대표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부의 대표로 죄를 사해 주시고, 성자의 대표로 우리의 의가 되어 주시고, 성신의 대표로 우리에게 인을 쳐주셔서 구원의 확증을 준 것이요. 너는 내 것이다. 잘 났어도 내 것이요. 못 났어도 내 것, 내 것은 애착심이 있어요. 내 것은 잘 간수하는 것이요,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요, 우리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나의 것이니 위대한 교환이 되는 것이요, 이 귀중한 체험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느니라,
  우리 죄를 소멸하시는 권능, 하나님과 화목시키시는 권능,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주시는 권능, 우리 생활에 성결을 주시는 권능, 마귀를 박멸시키시는 권능입니다. 할렐루야!
  이 십자가에는 세 방면의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는 나를 사랑하야 나를 위하야 몸 바리신 대속의 십자가,
  둘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체험의 십자가,
  셋째는, 내가 지고 사는 십자가,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은 나무깽이 해서 지고 다니거나, 십자가 패를 차고 다니는 그것이 아니예요, 십자가의 정신에서 사는 것이요, 용감한 십자가, 인내의 십자가, 공의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겸손한 십자가, 평화의 십자가, 이 십자가의 정신으로 하루하루 살게 되는 것이예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누구든지 자기를 이기고 주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를 말살시키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찬송을 부르면서 기독도는 기쁘고 감사에 넘쳐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길가에 가다가 언덕 아래에 내려가 보니 잠쟁이 세 사람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 잠쟁이 이름은 뭐인고 하니, 우멍이, 어리석을 우(愚)자, 힘입을 몽(蒙)자, 멍텅구리란 말이요, 해타, 해타(懈惰)는 게으름뱅이, 자신, 스스로 자(自)자, 믿을 신 (信)자, 자신이란 세 사람이 지금 잠을 자고 있습니다.
  기독도는 깨워 줄려고, “우몽아, 왠 잠을 이렇게 자냐, 위험하구나” 하니,
  우몽이, “위험하기는 무얼 위험해” 하면서 그냥 자고 있습니다.
  기독도, “해타야 일어나거라” 하니,
  해타, “아이고, 조금만 더 자고” 합니다.
  기독도, “자시야, 일어나거라”하니,
  자신, “얘 이놈아, 너는 네 걱정이나 하지 남의 걱정은 왜 하니” 하고 그냥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이런 잠꾸러기가 많이 있는 것이예요.
  우몽이, 너무 몰라서 잠을 잡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감각이 둔해서 깨닫지를 못합니다. 밤낮 잠을 자는 신자가 있어요.
  둘째는, 해타, 게으름뱅이가 잠을 잘 잡니다. 안일에 취해서 잠을 잡니다. 잠언26:13절에 보면 “문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나니라”, “게으른 자는 손을 그릇에 넣고 입으로 들어 올리기를 괴로워 하나니라” 아무리 은혜를 주어도 못 받는다는 말이지요.
  셋째는, 자신, 되지 못하고 된 줄 알고,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고, 없고도 있는 체 하고, 밉고도 고운 체 하고 잔뜩 체증이 나서 잠을 잡니다. 밤낮 들어도 그 소리지, 목사들 밤낮 하는 소리, 내 다 알아, 내 다 알아, 하면서 자고 있는 것이예요. 성경에 실패한 잠쟁이들이 참 많지요. 성경에 잠 자다가 실패한 사람 들어 보세요.
  노아는 잠 자다가 벌거벗고 아들들한테 망신했지요.
  롯이는 잠 자다가 자기 딸들한테 범죄하고,
  다윗이는 잠 자다가 우리야의 아내에게 범죄하고,
  삼손이는 들릴라 무릎 베고 잠 자다가 눈 뽑히고 연자 맷돌 돌리게 되고, 
  요나는 배 밑창에서 잠 자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고,
  시스라는 야엘의 장막에서 잠 자다가 귓구녕에 말뚝 박혀 죽고,
  이스보셋은 잠 자다가 배 찔리워 죽고,
  솔로몬때 미련한 여자는 잠 자다가 아이 깔리워 죽이고, 웃방 여자는 제 아이 도적 맞고 솔로몬에게 재판 왔답니다.
  유두고는 삼층 다락에서 떨어져서 목아지 부러질 뻔 하였고,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 자다가 말고의 귀 깎고,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못 맞았답니다.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해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구나
  이때는 자다가 깰 때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마땅히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라
  이 잠쟁이들은 길가에 누워 저도 안 가고 남도 못 가게 천국 문 가로 막고 방해하는 자가 교회 안에 많이 있음을 보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없는 신자,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자들, 기독도가 이 잠쟁이들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내버리고 갔답니다.
  천로역정 하권에 보면은 이들은 강도들을 만나서 다 큰 봉변을 당하고 끝내는 나무에 목 매달아서 죽였다는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잃으면 후회막급이예요. 볼찌어다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서 벌거벗고 다니지 말고 자기 옷을 지켜 부끄러움을 뵈지 않는 자가 복이 있나니라
  기독도는 그대로 길을 가는데, 갑자기 담을 넘어서 껑충껑충 뛰어 들어오는, 담 넘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웬 사람인가 하고 물으니 “우리는 허영촌(虛榮村)에 사는 위선(僞善)이와 시의(是義)라고 합니다. 허영촌에 사는 위선(僞善)이, 거짓 착한 체하는, 시의(是義), 자기 의를 믿는 시의, 시온산으로 가려고 합니다.
  기독도가, “여보, 천성 갈려면 법대로 문으로 와야지 왜 담 넘어 들어오오. 담 넘어 들어오면 성경에 절도요 강도라고 하지 않았소”
  “흥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우리 동네에서는 좁은 문이 어디라고요, 당신들은 돌아갈 꾀하면 우리는 질러갈 꾀 합니다” 위선이와 시의는 일약 천국에 들어갈 껑충쟁이랍니다. 껑충쟁이, 신자들 중에는 잠꾸래기도 걱정이지만 껑충쟁이도 걱정이예요, 늙은 노인네들은 대개 항상 잠자고 깔고 뭉개지만, 젊은이들은 대개 교회안에 들어온지 몇일도 안되 가지곤 벌써 제가 다 한다고 껑충거리는 껑충쟁이들이 많아서 걱정이예요. 교회 말썽꾸러기는 위선이와 시의가 이 껑충쟁이들 까탄에 걱정이요. 교회에서는 이 사람의 정도도 보지 아니하고, 신앙정도도 보지 않고, 은혜의 경험도 보지 않고, 좀 열심이 있어뵈고, 돈푼이나 있고, 좀 지식이나 있고 똑똑해 뵈이면 그대로 설익은 걸 갖다가 교회 성직을 맡겨 놓으면, 직분을 주면, 종래 실패하는건 십상 팔구는 이 위선이와 시의가 그렇게 하는 거예요. 위선이와 시의를 삼가라.
  두 사람은 기독도다러 “당신은 문으로 들어온 것이나 우리가 담 넘어 들어온 것이나 다른거 무어 있소?”
  “아, 자세히 보구려”
  “아, 그 옷이 다르구려”
  기독도, “여보, 옷만 다른 줄 아쇼, 이런 증표 당신 있소? 증표, 증표, 너는 내것이라는 증표 있소?”
  두 사람은 그 증표는 없지만 그대로 간다고 합니다. 고집을 부리며 따라가는 것, 천성 가는 것 같지만 나는 성도 많은 저 천국을 가는 길이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서 따라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위선이와 시의를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요, 그러나 그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 것이지요, 조만간에 판결날 것이예요.
  그 양인은 같이 찬송하면서 나아가는데, 그 험준하고 위험한 산 꼭대기에 다다르니 이름은 간난산, 어려울 간(艱)자, 어려울 난(難)자, 간난산(艱難山), 몸을 애끼어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쉬운 길 갔던 껑충쟁이들이 어찌 이런 산을 넘어갈 수 있나요. 좀 쉬운 길 찾아 산 허리를 돌아보니 한 길은 위험한 길이요, 또 한 길은 패망의 길이라, 두 사람은 다 곁길로 가다가 실족하여 굴러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7]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룻동안에 무슨 일이 생길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또 다시 말씀드릴 기회 얻은 것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장망성 살던 기독도는 좁은 문 지나가 그 무거운 짐 십자가에서 떨어지고 구원의 확증표를 얻어가지고 나아가는데, 간난산을, 그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독도는 그 간난산에 올라가는데, 너무도 힘들어서 휴식정이라는 정자에서, 쉴 휴(休)자, 쉴 식(息)자, 쉬는 정자 휴식정(休息亭)에서, 거기에서 십자가 밑에서 천사가 입혀준 의복을 만져보고, 특히 거기서 얻은 증표를 꺼내 쥐고 쉬면서, 좋아하면서 스르르 잠이 들어 증서를 그만 떨어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깨와 가라대 “갈 길 바쁜데 왠 잠을 저렇게 자는고, 개미에게 가서 공부를 좀 해야겠구만”합니다.
  기독도는 화닥닥 일어나 깨보니 밤새도록 잠을 잤습니다. 그만 새정신이 들어 급히 달려 뛰어 올라가는데, 산마루에 거의 올라가니 왠 두 사람이 숨이 하늘에 닿아서 급히 맞으러 달려 내려 옵니다.
  그 달려 내려오는 사람의 이름은 뭐인고 하니, 심경(心驚)이, 마음 심(心)자, 놀랠 경(驚)자, 경풍쟁이, 회의(懷疑), 의심쟁이, 품을 회(懷)자, 의심 의(疑)자, 회의(懷疑),
  그들이 말하되 “우리는 천성가던 사람인데, 가는 길에 사자 두 놈이 있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구, 사람이 살고 봐야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래서 우리는 돌아갑니다. 당신들도 같이 돌아가자”고 하니,
  기독도는 “나는 돌아가지 않겠소, 돌아가도 죽고, 나아가도 죽을 바에는 차라리 나아가다가 죽겠다“고 했소.
  심경이와 회의는 “너 혼자 잘 살아라, 잘 가거라 우리는 돌아간다” 하면서 막 달아내려가 “걸음아 날 살려라 코 떨어지면 뱀 주워가자” 하면서 막 달아납니다.
  기독도는 마음을 진정하려 해도 무서움과 의심은 점점 더 속을 설레이고, 그때는 천사가 주신 증표를 꺼내보고 위로를 받을려고 아무리 찾아보나 아무리 뒤져보나 간 곳이 없어요. “야 이것 큰일 났구나 이거 웬일인가, 어데서 떨어졌는가 생각해 보아라, 어데서 떨어졌는가 생각해 보아라” “아! 내가 휴식정에서 그때 꺼내보면서 졸다가 떨어졌구나, 이거 어떻게 하나”, 그만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번민하고 애통하나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다시 찾아야지. 무릎을 꿇고 자기의 그 우매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왔던 길을 도로 내려갑니다. 여러 시간 올라왔던 길을 도로 내려가니 공연한 헛걸음이지요. 내려가면서도 간절히 그 증표를 도로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내려갑니다. 혼자 탄식하기를, “잠깐 쉬라고 하는 정자에서 내 육신 평안과 향락을 위하야 방심한 것은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로구나” 마침 쉬던 정자에 와보니, 아멘, 할렐루야, 잃었던 증표는 떨어진 그곳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밝은 대낮에도 가기 어려운 그 간난산 길, 밤중에 어떻게 넘어갈까, 주저 앉아서 통회하고 아무리 해도 아니갈 길 못 되니 용기를 내어 올라갑니다.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목은 마르고, 피곤할대로 피곤하여 죽을 지경이예요.
  참으로 실패하기는 쉬워도 회복하기는 힘들어요. 격언에 ‘일 분 동안에 실패한 것이 백년에 회복하기가 힘들다’고 했지요. 한푼 동안에 실패한 것이 백년 동안에 회복하기가 힘들어요. 주께서도 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말라고 부탁하였소. 주님은 그렇게 피땀 흘리면서 기도하시는데, 베드로는 그 날 밤에 왜 그렇게도 무심하게도 잠만 자느냐, 은사 선생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고, 은혜 회복을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가요. 전설에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그 실패를 생각하야 울었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교역자와 신자들 중에도 한 때는 그렇게 주 위하여, 교회 위하여 나아가던 형제 자매들이 잠시 쉰다고 하다가 아주 타락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예요. 다시 회복하려고 하여도 삼손이 머리털 깎이우듯이 힘을 잃고 허덕이는 신자를 많이 봅니다. 자전거 탄 사람은 잠시라도 쉬지 않고 발틀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정거하는 때는 나가 넘어지는 것이지요.
  여름에는 덥다고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간다고 야단을 하는 동역자 여러분들 조심하시라, 어떤 목사는 강에 나가서 낚시질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답니다. 미신 사회에서 비방거리가 되고, 또 주일날 뱃놀이 나갔다가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욕을 돌리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로 동행, 동거 동락, 예수로 만족하사이다.
  내가 만주에 순회 전도할 때에 부흥회 앞자리에서 어떤 자매가 아이를 업고 와서 자기 진상을 고백하면서 애통해 합니다. 고국에 있을 때 어느 교회에 장로의 따님으로 보육학교를 졸업하고, 그 교회 유치원 보모로 있으면서 교회 찬양대를 지도하다가 미혼 처녀로서, 같은 찬양대 아내 있는 집사하고 사랑이 지나쳐서 까빡 실수를 해서 불의의 관계의 소문이 나자 두 남녀는 만주로 와서 아이를 둘 씩이나 낳고 살림을 하지만 남자는 아주 타락하여 방탕하고 술주정뱅이가 돼서 밤낮 그 여자를 때려 주면서 나는 너 때문에 망했노라고 고통을 주니, 집에 돌아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아직 그 양심은 살아 있어서 그 속에서 발버둥이를 치는 것이요. 가문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고, 자기의 신세를 망친 일을 백년 아니라 천년 만년에라도 무를 수가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땅에 이런 실패에 우는 남녀가 어찌 한 두 사람에 그치겠습니까? 일시적 찰라에 꿈꾼 향락이 영원히 무르지 못할 가련한 신세, 불행의 종국을 생각하여 방심하지 말라구요. 천국 가는 행인들아, 만사 만단에 종국을 생각해라, 만사 만단에 종국을 생각해라. 
  그러나 아주 자포자기 낙담하지는 마세요.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오. 의인은 일곱번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난다고 하였소. 배전의 용기 백배로 은혜를 회복하시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기독도는 그 밤중에 그 간난산을 천신만고로 올라갑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마침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집, 미궁(美宮)이라는 굉장한 궁전이 있어요. 천성중에 길 가는 나그네를 위하야 예비한 집이요. 그 집을 바라보고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데, 조금전에 심경(心驚)이와 회의(懷疑)가 보고 무서워 도망치던 사자 두 놈이 미궁 문 앞, 가는 길 좌우편에 엎디어 있지 않아요. 이것을 본 기독도는 본능적으로 공포와 의심에 눌리워서 뒷걸음질쳐 도망을 하려는 찰라에, 경성(警醒)이라는 사람, 깨울 경(警)자, 깨울 성(醒)자, 경성(警醒)이라는 사람이 “기독도야, 그 사자 무서워하지 말아라 발목아지 잡아맨 사자이다”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그건 왜 거기다 매어 두었소”, “이 사자를 매어 둔 것은 행인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래 위의 집인지, 반석 위의 집인지, 알곡인지, 쭉정인지, 선한 목자인지, 삮군 목자인지 시험하기 위함이다. 그대는 어찌 그리 담력이 약한가?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정로로, 가운데로만 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기독도는 새 용기를 내어서 “그래요, 그러면 내 어디 지나가 보지”하고 사자 두 틈으로 지나가는데, 왠걸, 좌우편에서 사자 둘이 으르랑 하면서 달려듭니다. 으아! 그러나 몸을 해치지는 못해요. 왜? 발목아지 잡아 맺거든, 만일 좌로 치우치면 좌편 사자에게 상할 것이요. 우로 치우치면 우편 사자에게 상할 것이지요.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그렇습니다. 악마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는 거예요. 성도들은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만사에 형통하리라고 하였소. 극단적 성질을 가지고 발목아지 잡아맨 사자를 보고 경거망동 하다가는 반다시 악마의 발톱에 찢기워, 좀더 심하면 아주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왜정시대나 해방후에 세상 술에 취하야 너무 앞장 서서 나아가면서 교회의 속화를 불러 들이는 발람의 길을 밟고, 또 한편 신령파라고 자칭하면서 뒤로 물러가서 좌편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니골라당, 즉 이단의 걸음을 걷는 자 많음은 얼마나 원통한 일인지 알 수가 없지요.
  교회의 강단을 땅땅 뚜다리면서 국가가 있은 후에 종교가 있다고, 국가가 없는 종교 무슨 소용 있느냐고 웅변을 토하는 목사를 보고, 야! 참 애국자로구나 하고 알고 보니 과거에 왜정시대에 황국신민 만드느라고 돌아 다니면서 시국 강연을 많이 해서 그렇게 애국 강연도 잘 하는 모양이예요. 이런 현상을 보고 소위 진리옹호파라고 자칭하는, 신령파라고 하면서 현대 교회는 다 마귀당이다. 다 마귀 자식이다고 악수도 하지 않고, 한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고, 현재 교회당은 다 불살라 버리고, 새예배당은 못 짓고, 개인의 집, 술집, 혹 우상숭배하던 미신자 집, 요리집에 뫼면서도 자기들만 신성하다고 하니, 신사참배하지 않은 계명은 잘 지켰는지 모르지마는 제일 되는 사랑의 계명을 버렸으니 그 무서운 죄를 어찌 할꼬, 사람 사랑하다가 죄를 사랑하지 말고, 죄를 미워한다고 하다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오십보로서 백보지요. 숨은 부끄러움이 적지 않습니다. 다같이 함께 회개하고 속화와 이단을 퇴치하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힘써 싸워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마사이다.
  기독도는 미궁에 들어가니 근신이, 경건이, 현지, 인애란 성도들이 나와서 영접을 해주어요. 근신(謹愼)이, 경건(敬虔)이, 현지(賢智), 인애(仁愛), 배고픈 기독도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기독도에게 마실 걸 주고, 병든 기독도에게 약 발라 주고, 평안방이라는 방에서 잠을 재워 몇날 동안 안식하야 피곤한 몸이 새힘을 얻었어요.    
  서재로 데리고 가서 구약의 성도들의 역사와 전기를 다 구경시키고, 무기 곳간으로 데리고 가서는 옛날 주의 종들이 사용하던 모든 기구를 구경시키고, 다시 기독도에게도 무장을 시켜 주면서 이제까지는 무장이 없어도 왔지만 앞으로는 더 어려운 시험이 있을 터이니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무장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구원의 투구, 의의 호심경, 진실한 띠,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성신의 검을 들려 주었습니다.
  기독도의 무장은 앞에만 시켰지, 뒤에는 시키지 아니합니다. 왜? 돌아 서지 말라는 거예요.

 

 

  [8]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전번에는 기독도는 간난산에서 졸다가 증표를 잃어버리고 그것 찾느라고 천신만고로 애써서 다시 찾아가지고 간난산 꼭대기의 미궁에 들어갈 때에 좌우편의 사자 보고서 그게 무서웠지마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정로로 들어갈 때에 무사히 통과해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갈 때에 그 미궁의 성도들, 근신이, 경건이, 현지, 인애가 마중나와서 영접해 주었습니다. 미궁의 성도들은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이예요.
  첫째는, 경성(警醒)이, 미궁의, 미궁문 지키는, 오는 사람을 경고시키고, 면려시키고, 영접하여 줍니다. 대개 주의 성전의 하루가 다른 곳의 천날보다 아름다우니 내가 하나님의 전 문을 지키는 것이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승하도다. 하였습니다. 성도들을 항상 깨우고 면려시키는 파숫꾼의 사명은 참으로 중한 거예요. 거짓 파숫꾼은 다 소경이요, 무지하야 벙어리 개와 같이 짖지 못하고 다 꿈꾸는 자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라고 이사야 56장 10절에는 말씀하였지요.
  진실한 파숫꾼은 자기가 경성하고 다른 사람을 경성시키는 엘리야와 같이, 나단과 같이, 세례 요한과 같이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참된 경성이랍니다.
오! 주여! 오늘날 우리 교회에 경성이와 같은 파숫꾼을 많이 보내어 주시옵소서.
  둘째는, 근신(謹愼)이, 자신에 대한 생활의 근신이요. 말에 근신해야 해요. 말에... 혀는 곧 불이라고 했소, 말에 허물이 없으면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소, 화살은 한번 쏘면 다시 집어올 수가 있지마는 말은 사람 귀에 들어가면 다시 빼내지 못하는 거요. 둘째는, 행위에 근신하라고요. 일거수 일투족, 한번 앉고 일어서는 것, 한번 웃는 것 근신해야 합니다.어떤 여자는 공연히 실없이 웃기 잘하다가 봉변할 뻔 했다고 합니다. 남의 남자 보고 공연히 웃기 잘하다가 그 남자가 밤중에 담넘어 들어오니 소리를 지르나, “너 나 보고 항상 웃지 않았니? 이제 새삼스럽게 왜 배척하느냐”고 했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어디를 가든지, 또 무슨 일을 하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덕되기 위해서 조심할 거예요. 그러게 우리 주님께서는 저들을 위하야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복 있는 자는 악한 자의 의논대로 행치도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입니다.
  셋째는 경건이요. 경건이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요. 세상의 도덕군자는 근신함도 있고, 의롭게 살기도 하나 하나님께 대한 경건은 없어요. 참경건은 하나님의 성임재 앞에서 항상 기도와 진리 묵상과 거룩한 봉사와 신앙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능은 버린 자가 되지 맙시다.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자구요.
  넷째는 현지, 어질 현(賢)자, 지혜(智)자, 현지(賢智), 세상을 향하여 지혜롭고 명철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순하기는 비둘기같이 하고 지혜는 뱀같이 하라고 하였소. 지혜는 홍보석보다 귀하고 많은 정금보다 귀하니 모든 하는 것이 다 여기에 비교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솔로몬은 이 지혜를 간구하여 만고 역대에 비교할 수 없는 현지의 인군이 되었고, 그 부귀는 더할 수 없이 얻었습니다.
  다섯째는 인애, 이는 다른 사람에게 대한 생활이요. 어질 인(仁)자, 사랑 애(愛)자, 인애(仁愛), 종교계에 위대한 것 다섯 가지가 있다고 고린도전서13장에는 말했소. 천사와 사람의 말을 하는 웅변, 모든 학술을 통달하는 지식, 산을 옮길 만한 믿음, 내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자선사업, 내 몸을 불사르는 순교, 그러나 여기에 사랑을 빼놓으면 쓸 데가 없다고 한 것이요. 진실로 그렇지요. 아무리 훌륭한 웅변,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가 있어도 사랑 없는 웅변은 앵무새와 축음기와 같고, 아무리 천문지리 상통하달의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는 지식은 인간 사회의 해독제가 되고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 없는 신앙은 미신이예요. 미신, 미신, 이단, 이단, 미신, 이단이 무엇인가, 사랑 없는 신앙이 미신의 극단이요. 이단의 괴수자랍니다. 아무리 구제와 자선사업을 많이 해도 사랑이 없는 자선은 위선자 밖에는 될 수 없어요. 오늘의 해방 후에 자선 단체가 많이 나왔어요. 고아원, 양로원, 자매원, 우후죽순같이 일어나지만, 대단히 좋지만 그러나 참된 사랑의 자선이 아니면 자선이라는 미명하에서 자기 사리사복을 채우고 자기 명예를 낚을랴는 위선자나 없지 않는지요.
  또한 내 몸을 불사르는 순교자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는 순교는 지옥의 밑창 귀신 밖에 될 것이 없소. 왜정시대에 50여명의 전도자가 없어졌다 하고, 6.25때에 이북과 이남에서 전도자가 없어진게 480여명이나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참된 순교자라고 할른지... 순교자란게 싸구려 순교자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의 죽음이 된 자라야 참된 순교자입니다.
  아! 위대한 사랑, 인애여! 미궁의 성도는 인애스러워야 합니다. 이들이 모인 교회는 참말 천국이예요.
  자신에 대하여 근신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하고, 세상을 향하여 현지롭고, 사람을 향하야 인애의 품성을 가진 자라야 미궁의 성도요. 참된 교회의 회원의 자격이 있는 것이예요.
  미궁의 사명과 특색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미궁은 하나님이 계신 궁전이요,
  둘째로, 미궁은 사랑의 뜨거운 가정이요, 
  셋째로, 미궁은 진리를 배우는 학교요,
  넷째로, 미궁은 안식을 주는 평안방이요,
  다섯째로, 미궁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단장시키는 미장원이요,
  여섯째로, 미궁은 그리스도의 정병을 무장시키는 무장장이예요,
  일곱째로, 미궁은 작은 천국이외다.
  이상의 칠대 특색이 있어서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요. 당신들의 교회는 이런 특색이 있습니까?
  교회의 사명,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궁전이요.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임재 앞에서 성별되어 있습니까? 어느 교회당에서는 돈 받고 영화를 구경시키는데, 미신자들이 구경 와서 담배를 피운답니다. 예배당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하니, “여보, 내가 예배당에 왔소? 돈 내고 활동사진 구경 왔지?” 할 말이 없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대개 말씀을 들으러 나가는 것이 미련한 자의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교회는 사랑의 뜨거운 궁전이요. 뜨거운 가정, 사랑 없는 가정, 사랑 없는 교회, 사랑 없는 사회는 지옥이예요. 마귀 소굴이예요. 어떤 교회에서는 밤낮 싸움과 파쟁으로 목사패, 장로패, 부자패, 가난뱅이패, 서울패, 시골패, 함경도패, 경상도패, 늙은이패, 젊은이패, 예배당에다가 패자를 쭈룩 쭉 둘러 붙였소. 이 다음 천국에 가서도 패자를 골라 차고 다닐려는가, 회개하라, 하나님 아버지 근심하신다고 하였소, 형제들 싸움에 제일 속타고 슬퍼하는 이는 부모의 마음일 거예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근심하십니다. 서로 사랑으로 한데 뭉쳐 나옵시다.
  셋째는, 교회는 진리를 배우는 학교요. 하나님 말씀만을 전해야 합니다. 신도들은 다른 소리 들으려 하지 말고 진리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을 사모하시라구요. 어떤 교회에 의사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답니다. 그 교회의 목사 생각에 야 이거 큰고기가 걸렸구나 어떻게 하면 내 설교가 저 의사의 마음에 만족하게 할까 하고 성경 한절을 보아 놓고는 위생 강연을 한참 했답니다. 의사는 그만 기분이 대단히 불쾌해서 마지막에 목사의 손을 붙잡고 “목사님 왜 그러시요, 목사는 성경 말씀을 전해야지, 왜 위생 강연했습니까? 아무리 위생 강연 잘하면 나만큼 하겠소?” 했답니다. 주의 어린 양들은 사이비한 독초를 먹고 다 병들어 쓰러지고 마누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기근이로다.
  넷째는, 안식의 평안방, 교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안히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진 기독도들을 영접하야 하늘의 평강, 주님의 가슴에 있는 참평안을 나누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했으니, 부드럽고 연한 가지가 연락하야 한데 엉크러진 그늘 아래로 오뉴월 염천에 길 가는 나그네를 늘 다 와서 쉬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하는 사명이 있는 곳이요.
  그러나 어떤 교회서는 갔다가 오히려 고통과 근심과 번민으로 돌아와서 다시 교회 가기 싫어하는 일이 많이 있어요.
  다섯째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병, 복음의 결사대를 무장시키는 무장장이랍니다. 오늘날 악마를 위해서는, 사탄을 위해서는, 자기들의 그릇된 사상과 주의를 위해서는, 재산을 버리고, 명예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생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악마의 결사대는 벌떼같이 일어나는데, 주를 위하야, 의를 위하야, 복음을 위하야는 적은 것 하나 희생하여 나가지 못하는 기독자들이 어찌 그리스도의 정병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기독도의 무장은 앞에만 시켰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전신갑주, 구원의 투구, 의의 호심경, 진실한 띠,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성신의 검, 앞에만 시켰소, 뒤에는 시키지 않아요, 앞으로, 앞으로, 나갈 것 뿐이요, 만일 작전상 계획으로 후퇴를 할지라도 싸우면서 후퇴를 해야 합니다. 뒤로 돌아소면 안 됩니다. 뒤에는 무장이 없는 거예요, 복음의 용사들아! 일어나라.  
  여섯째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단장시켜 오시는 주님을 맞게 함에 있습니다. 새신부가 새신랑 방에 들어갈려면 그래도 목욕도 좀 하고, 향수도 뿌리고, 화장을 하고 들어가야지, 더러운 몸 그대로 들어갔다가는 첫날 저녁에 소박을 맞을 거예요, 주를 향하야 이런 소망이 있는 자마다 자기를 깨끗게 하기를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하느니라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자가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깨끗하고, 허탄한데 마음을 붙이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아니하는 자, 깨끗해야 해요. 교회에서 우리 안과 밖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화장해 가지고 미구에 오실 주님을 맞는 아름다운 신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이 됩시다. 행여나 미련한 처녀와 같이 버림을 받는 신자들 없기를 바랍니다.
  일곱째는, 교회는 작은 천국이예요,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안디옥 교회와 같이, 서머나 교회와 같이,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아름다운 교회는 작은 천국입니다. 어떤 사람은 현대 교회의 부패함을 들어서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일이 있지마는 그러나 그것은 오해에요, 오순절 교회도 아나니아 부부가 있었고, 예수의 제자 거룩한 단체에도 가룟 유다가 있으니, 유형적 지상교회 아무리 이상적 교회라 할지라도 불순한 분자가 도무지 없을 것은 아니예요, 어느 교파를 물론하고 거룩한 참된 천국교회원들은 예수를 그 중심에 모신, 신령한 뵈이지 않는 성도들이 엉크러져 있는 곳이예요,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상대적 입장에 서지 말고, 절대적 입장에 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9]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 기독도가 간난산 꼭대기에 미궁에 들어가서 몇일 동안 안식한 것은 교회생활을 가르친 것이지요.
  교회 칠대 사명을 말씀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궁전이다. 교회는 사랑의 가정이다. 교회는 진리 배우는 학교이다. 교회는 안식을 주는 평안방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단장시키는 미장원이다. 교회는 복음의 결사대를 무장시키는 무장장이다. 교회는 작은 천국이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셋째 대지, 미궁에서 허화시까지,
  기독도는 미궁을 떠나 새힘을 얻어가지고 무장을 하고 떠났습니다. 미궁의 성도들은 전송을 나오면서 이 산에는 올라오기도 잘해야 하지만 내려가기를 잘해야 한다. 올라오기도 힘들지만 내려가기는 더 힘들 터이니 우리가 같이 산 아래에까지 가야 한다고 하면서 근신과 경건과 현지, 인애가 전송을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기독도는 내려가다가 조심하느라고 하면서도 몇번이나 미끌어져 떨어졌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불만이도 있고, 치선이도 있는 것이예요. 기독도 내려갈 때에는 없었지만은 진추(盡忠)이 내려갈 때는 있었습니다.이 골짜기의 이름은 겸손의 골짜기라고 하고, 굴욕의 골짜기라고 합니다.
  참말 천성에는 올라가기도 잘해야 하지만 내려가기를 잘해야 합니다.
  신앙에는 쏘프래노도 잘해야 하지만은 베이스도 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롭게 축복중에 만사 형통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무리 해도 실패를 거듭거듭하고 굴욕과 역경이 닥칠 때에 잘 참아서 감사와 찬송으로 잘 내려가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로 끝절을 보세요. 여기에는 분명히 신앙의 이중주가 있습니다. 저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허락하신 것을 얻기도 하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불의 기세를 멸하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고, 연약하다 강하게도 되기도 하고, 전쟁에 용맹이 되어 이방 사람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고, 부녀들은 저의 죽은 자를 다시 만나기도 하고, 여기까지에는 신앙의 쏘프래노라고 하는 것이요.
  그러나 그 아래로 계속하여서 어떤 사람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야 혹독한 형벌을 받으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은 희롱과 채찍을 받을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우는 시험을 당하였으며, 돌로 맞는 것과 톱으로 켜우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유리하야 핍박과 환란과 고생을 받았으며, 또한 어떤 사람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야 형편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베이스를 잘한 사람이요. 많은 성도들은 이 골짜기에서 실패를 합니다. 이 골짜기를 내려 가려면 불만이도 나오고 치선이도 나온답니다. 나의 경험을 보드래도 저간의 수십년간의 교역생활에 순경에서 일일 승승장구로 수백 수천명씩 앞에다 놓고 복음을 외칠 때마다 곳곳마다 환영이요. 칭송이 자자합니다. 조선에 무디가 났다고, 조선에 웨슬레가 났다고 추켜줄 때에, 야, 나는 행복자로구나, 무던하구나,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왜정시대에 복음 전하느라고 조선과 만주에서 종종 경찰에 검속되면 형편 없는 굴욕을 당할 때가 많았지요. 그중에도 사리원서 호시란 형사부장에게 검속이 되어서 유치장에 들어갈 때에 오동짓달에 쪽 발가벗겨 나체로 집어 넣습니다. 부끄럽다는 치선이가 나옵니다. 그때에 얼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쳐다보아 승리하였지요. 유치장에 들어가 보니, 모든 죄수들은 저희는 다 먼저 들어왔노라고, 나는 신입생이라고, 똥통 옆에는 나만 있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형편 없는 학대와 고통을 당할 때에 종종 불만이도 나오고 치선이도 나옵니다. 이때는 내가 항상 설교하든 굴욕의 골짜기가 여기로구나 어디 잘 내려가 보자 하고 감사히 받으면서도 때때로 실패를 하여서 미끄러졌습니다. 그때는 근신이, 경건이, 현지, 인애가 부조하여서 과히 상하지는 않았지요.
  하나님의 은혜는 달콤한 은혜도 있고, 쌉쌀한 은혜도 있습니다. 단 것만 너무 좋아하면 이가 상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쓴 것을 화채하야 당신의 자녀에게 대접하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유치한 신자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배앝아 버리니 애석한 일이 아닌가요.
  굴욕의 골짜기 잘 내려갑니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잘 내려 가셨는가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내려 오셔서 말구유에 탄생하사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제자의 발 아래 들어가시며, 십자가로 무덤까지 내려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높이 올리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시켰습니다.
  저 산 밑에 백합화, 빛나는 새벽별, 가새밭에 백합화, 아름답고 귀하다. 예수는 산 밑에 백합화예요. 산꼭대기에 피었으면 늙은 할머니들은 숨차서 못 올라가겠지마는 산 밑에 백합화입니다. 예수 만나 보려면 산 골짜기로 내려가야 합니다. 깊이 파고 내려갈 때에 만세반석 되시는 예수께서 나타나는 것이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나이다.
  미궁의 성도들은 산 아래서 전송하고, 떡 한 덩이와 건포도 한 뭉치를 주고 작별을 하고, 기독도는 쓸쓸히 가다가 얼마 가지 아니하여 보기에도 끔찍하고 듣기에도 무서운 마귀 대장을 만나니 이름은 ‘아볼루온’이요, 히브리 음으로는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는 ‘아볼루온’이요, 무저갱의 사자요, 왕이랍니다. 이 놈의 생김생김은 대가리는 사자, 발은 곰의 발, 어깨에는 용의 날개가 있고, 몸에는 물고기 비늘이 있습니다. 배에서는 불과 연기가 나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파괴자’요, 어깨에 날개가 있으니 공중에 날라 다니고, 짐승의 머리와 발이니 육지로 다니고, 물고기 비늘이니 물속에 다닙니다. 이 놈은 그래서 날라 다니는 공중의 권세, 기어 다니는 육지의 권세, 물속에 헤엄치는 수중 권세를 잡은 놈이요.  배에서는 불과 연기가 나오는 것은, 불은 질투와 시기의 불이요. 연기는 사람을 미혹케 하는 악한 사상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말세에는 많이 나오는 것이요.
  이 놈은 창세 이후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정의의 반역자입니다. 천사를 떨어뜨리고, 해와를 꾀어서 에덴 낙원에서 쫓겨나게 하고, 욥을 시험하고, 예수를 시험하다가 실패하고,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시험하고,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를 팔아 먹게 하고, 자살시킨 자이며, 개인으로, 교회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활약하야 역사 이래로 많은 성도를 해롭게 하는 흉악한 놈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 놈의 지배와 이 놈의 정치 아래서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사 이 놈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넣기 전에는 이 세상에 참된 평화가 없을 것이예요.
  이 놈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고, 여인의 후손 예수께서는 이 놈의 대가리를 부술 것이며, 그리고 그의 생명으로 얻은 성도만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 놈은 범죄하는 자이요, 거짓말하는 자도 되고, 거짓말 하는 자의 애비라고 하였소, 인간을 이간붙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간붙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간을 붙이고, 살인하는 놈이며, 자긍하는 자이며, 훼방하는 자이요, 참소하는 자이요, 간사하고 욕심장이이며, 가라지를 뿌리고, 마지막에 영원히 지옥불에 들어갈 놈이외다.
  이 놈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아서 있는 정성, 있는 수단, 있는 방법 다하야 최후의 발악을 합니다. 이 놈의 정체를 잘 알아서 대적하시요.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너희를 피할 것이요. 마귀로 틈을 못 타게 하라  
  이 놈은 기독도 가는 길을 막고, “너 어데 가느냐?”
  기독도 가라대 “나는 장망성 떠나 천성 가노라”고 했소.
  마귀란 놈은, “장망성? 장망성? 너 내 백성이로구나, 너 날 버리고 어데로 가니? 당장에 때려 죽일 것이로되 네 인물이 아까와 용서한다”
  기독도 가라대 “내가 이전에는 네 수하에 있었으나, 너를 셈기다가는 내 장래 망칠 것을 알아서 이 몸을 내 주께 드렸노라”고,  
  사탄이가 가라대 “네가 돌아가면 이전보다 더 좋은 부귀영화를 마음대로 누리게 할 터이니 돌아가라”고 합니다.
  기독도 가라대 “아니라, 네게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우리 주님을 따라 고생하는 것이 내 소원이로다”
  사탄이 가라대 “야,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고 떠나니? 고금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예수 따라 간다고 하더니 다 돌아오고 말더라. 김 장로도 돌아오고, 박 목사도 골아오고, 이 집사도 돌아오고, 정 권사도 돌아오고, 홍 속장도 돌아오더라. 그래도 고집쓰고 가다가는 중도에서 죽은 자가 부지기수이다. 주기철 목사도, 박관준 장로도, 이판일 장로도, 손양원 목사도, 다 죽은 것 네가 아지 못하느냐, 역사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순교당한 것을 네가 모르느냐?”
  기독도, “그것은 이미 나의 각오한 바이다, 죄를 짓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의롭게 살다가 의롭게 죽는 것이 성도의 떳떳한 일이니라”
  아볼루온은 그냥 낙심하지 않고 끈끈이 권유한다. “너는 올 때에 실패를 많이 한 자야, 네 주인이 그다지 귀엽게 생각하지 않을 거이다. 너 보아라, 오다가 낙망소에 빠졌던 자이요, 세지 말 듣고 곁길로 가던 자이지, 간난산에서 졸다가 증표 잃었던 자이지?  미궁 문 밖에서 사자 보고 도망치려 하던 비겁한 자가 아니냐” 기독도의 잘못을 꼬박꼬박 꼬집어 정죄합니다.
  그러나 기독도는 거기에 넘어갈 사람은 아니예요, “흥, 사탄아, 네가 아무리 나를 정죄해도 그것 밖에는 알지 못하느냐. 나는 네 권세 아래 살 때에 죄를 고슴도치 오이 걺어지듯 하고 댕기던 나의 무거운 짐을 십자가 밑에 다 소멸하고, 네게 얻어 입었던 남루한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이 좋은 새옷을 갈아 닙고, 주님의 것 된 증표를 받아 사는데, 내 비록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야 종종 실수와 허물이 많아도 내 주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 잘못해도 용서하시는 그 사랑을 의심치 아니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누가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것인가? 환란이냐, 곤고냐,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날이랴”
  아볼루온 사탄은 그만 대노하여 당장에 쳐죽인다고 우는 사자 모양으로 들이 덤빕니다. 날카로운 창날이 번개같이 들어올 적에 마침내 기독도는 믿음의 방패로 막아 던지고, 성신의 검을 빼어 단병접전이 있었습니다.
  한참 싸우다가 불행히도 기독도는 검을 놓쳤답니다. 이것 놓치면 한계예요. 아볼루온에게 깔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예요. 그래도 범에게 물려가도 제정신 잃어버리지 말라고 죽도록 충성하여 항복을 하지 아니하고, 손을 더듬어 하나님의 권고로 잃었던 검을 다시 찾아서 가지고, “나의 원수야,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라, 내가 비록 엎드러졌으나 다시 일어날 것이라” 하면서 최후의 죽을 힘을 다하여 찌르니 아볼루온은 치명의 상처를 받은 모양이요. 상한 날개를 툭툭 치며 날아가고 맙니다. 기독도는 용기 백배하여 새힘을 얻어 승전가를 부르니,
  이당장에 보는일이 참진실로 이상하다
  첩척감은 성도앞에 악한마귀 당할소냐
  성신검을 다시빼어 아볼루온 패망하네
  우리주님 크신능력 이기고도 남음있네
  할렐루야! 우리 성도 앞길에는 사탄이 천사 모양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는 사자 모양으로 위협을 하며 달려 들기도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 죽이러 나갈 때에 돌 다섯개 가지고 나가서 한 개로 때려 죽이고 아직 네 개가 남은 것이요. 골리앗 같은 악마는 아직도 네 놈이 아니라 백 놈을 대적할 여유가 있는 것이요. 너희는 환란을 받으나 안심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승리, 승리, 우리들은 항상 승리,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들은 항상 승리할 것이요.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10]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기독도가 미궁에서 떠나 겸손의 골짜기 내려가면서 ‘아볼루온’과 싸워서 승리하고, 계속하여 기독도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승리 얻게 하시니 그 은혜 감사합니다” 하고 생명나무 닢사귀로 상처를 발라 치료하고, 미궁 성도들이 주신 떡과 포도로 요기를 하고 새기운을 차려서 검을 뽑아 손에 들고 길을 떠났습니다.
  겸손의 골짜기가 끝나매 사음의 골짜기가 또한 있었습니다. 죽을 사(死)자, 그늘 음(陰)자, 사음(死陰)의 골짜기, 여게는 ‘아볼루온’과 싸우던 곳보다도 더 위험하고 무섭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바와 같이 “광야의 암혈이 있는 거친 땅, 메마르고 사망의 그늘 있는 땅, 사람이 지나지 아니하고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땅”이라고 한 곳입니다.
  이 골짜기의 지경에 다달았을 때에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가나안 땅을 훼방하던 사람의 자손들인데, 도로 가자고 권합니다. 자기들도 가다가 너무 위험한 곳이어서 도로 가노라고 합니다. 그곳은 캄캄한 골짜기, 적막한 골짜기, 위험한 골짜기, 매(魅), 망령(亡靈), 각색 괴물의 괴이한 소래가 사면으로 나오고, 항상 형벌받는 사람의 부르짖는 소래가 나오고, 검은 구름과 음산한 기운, 항상 덮여 한편에는 수랑통, 한편에는 연못, 그렇다고 기독도는 물러갈 수도 없습니다.용기를 내어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데, 정신이 어지러워서 자기 소랜지, 귀신 소랜지 분간할 수가 없어요. 아마 미치고, 정신병 들고, 신경쇠약 되는 사람이 이런 때에 드는 모양이예요. 이때에 잡은 검은 집에다 꽂고 모든 기도라는 무기를 취하야 “주여, 간구하오니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하면서 천신만고로 지나가는데, 앞에서 찬송 소래가 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염려하고 두려워할 것 아무 것도 없겠네 주가 항상 우리들과 한가지로 계시매 주의 지팽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시도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진충이라는, 다할 진(盡)자, 충성 충(忠)자, 진충(盡忠)이라는 사람입니다. 진충이는 기독도와 한 고향 사람인데, 기독도 떠난 후로 자극과 감화를 받아서 뒤로 따라 나섰으나, 기독도가 간난산에서 졸다가 증표 찾느라고 시간 허비하고, 또한 미궁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진충은 앞선 것이예요. 뒤 선 자가 앞서고, 앞 선 자가 뒤 선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기독도는 진충의 찬송을 듣고 새 용기가 나고 격려를 받아서 세 가지가 위로가 있었사오니,       
  첫째는, 이런 골짜기에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있구나.
  둘째는, 나는 걱정하고 근심하는데, 저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시는 찬송을 하누나.
  셋째는, 나도 따라가면 저 사람과 같이 동행하겠구나.
  그래요, 우리도 위험하고 쓸쓸한 사음의 골짜기에 들어갈 때에 먼저 앞서 간 진충이와 같은 성도들을 바라볼 것이요. 고금의 많은 성도들과 우리 주님의 당하신 일과 십자가를 생각하니 우리 시험의 승리의 가장 좋은 비결입니다. 앞서 간 성도들을 바라보세요.
  첫째, 이런 곳에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도 있구나.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핍박으로 사음의 골짜기에서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칠천 명을 냄겨 두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험당할 때에도 혼자만 당하는 줄 알지 말아요. 나 혼자 가난한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있구나. 나 혼자 자식 죽은 줄 알았더니 삼대 독자 죽은 집도 있구나. 욥이는 십남매가 한꺼베 참살을 당하였구나. 나 혼자 과부인 줄 알았더니 안나 할머니는 과부 된지가 80살이라 하였고, 나 혼자 전재민인 줄 알았더니 이중 삼중의 전재민이 얼마나 많은가...
  믿음을 주사 완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구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너는 나를 앙망하고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나님이니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내 주님 세상 계실 때에 받은 그 고생은 내 마음 속 깊이 새겼네. 예수 나의 주님, 갈보리 산의 어린 양, 죄인 괴수 이 몸 위해 참 귀한 생명 주시려 고난당하셨네.
  둘째로, 나는 걱정하고 근심하는데,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찬송하는구나. 역경 중에서도 찬송은 환란을 극복하는 승리의 무기입니다. 너는 하나님을 기뻐하라, 네 마음에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너의 힘이니라.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옥중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할 때에 옥터가 진동하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욥이도 가진 재산 일조에 없어지고, 십 남매 함께 몰살을 당하였다는 보고를 듣고도 “내가 적신으로 모태에서 나왔으니 또한 적신으로 돌아 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시고 여호와께서 빼앗으셨으니 여호와의 이름을 가히 찬송하리로다”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완전히 기쁘게 녀기라, 환란중에도 즐거워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악하다 하는 거짓말로 비방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에서 상받을 것이 크니라, 어려운 시험이 올 적에 거기에 눌리우지 말고 한번 용기를 내어 찬송을 부르면 악마가 무서워하고, 나 자신이 새 힘이 되고, 사람에게 격려가 되는 것이랍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기뻐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범사가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예요, 쓴 것이나 단 것이나, 괴로운 게나 즐거운 게나, 행복이나 불행이나, 넘어지는 것이나 일어나는 것이 범사가 하나님께로 오는 줄을 알아서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 올 때에, 악당들이 예수를 잡으러 달려들 때에 베드로는 칼을 뽑아서 말고의 귀를 깎았지마는 예수께서는 “베드로야, 칼을 집에다 꽂아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아바지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아니 하겠느냐. 이 십자가가 유대 사람들한테서 오는 줄 아느냐? 이 십자가가 로마 병정한테서 오는 줄 아느냐? 이 십자가가 가룟 유다한테서 오는 줄 아느냐? 이 십자가가 말고한테서 오는 줄 아느냐? 아바지의 주신 잔, 아바지의 주신 잔”이라고 감사히 받아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도 자기 아들 압살롬이한데 쫓겨서 피란을 갈 때에 시므이라는 작자가 나와서 다윗이를 욕을 하고 저주할 적에 아비새라는 장군이 칼을 뽑아서 저놈 목을 자르갔다고 달려들 때에, 다윗이는 “아비새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야, 너 나하고 무슨 상관 있느냐, 그거 시므이가 나를 저주하는 줄 아느냐? 하나님께서 시므이더러 날 저주하라고 했단다” 감사히 받았습니다.             
  욥이는 있든 십 남매 한꺼번에 죽을지라도, 있든 재산 다 없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셧다가 하나님께서 가져가셨으니 가히 찬미하리라고....
  요나는 뱃사공들이 들어서 바다에다 던져 고래 뱃속에 들어갈지라도,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도 “주께서 나를 깊음 가운데 던지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범사가 다 하나님께로 오는 줄 압시다.
  둘째는, 환란과 고통과 시험은 모든 인격을 시험하는 시금석,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곡인지 쭉쟁인지, 모래 위의 집인지 반석 위의 집인지 시험하는 시금석이요. 알곡인지 쭉쟁인지는 까불어 보아야 알아요, 반석 위의 집인지 모래 위의 집인지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장마 물이 나봐야 아는 거예요. 선한 목잔지, 삯꾼 목잔지는 이리가 와봐야 아는 것이요. 어떤 환란과 고통은 사람의 인격과 그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셋째는, 고난을 즐거워할 것은, 고통은 즐거운데 근본이랍니다. 적은 고통이 있으면 적은 기쁨이 있고, 큰 고통이 있으면 큰 기쁨이 있습니다. 꽃이 떨어진 후에는 열매를 맺고, 비가 올 때는 늘 올 것 같지만 해 난 날이 있구요, 바람 불 때는 늘 불 것 같지만 잔잔한 날 있구요, 어둔 밤 지나가면 빛난 아침 오구요, 엄동설한 지나가면 양춘가절이 옵니다.
  넷째는, 참된 인격을 완성시키는 도구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금은 패물들은 불속에 들어가고, 물속에 들어가고, 방맹이로 얻어맞아서 좋은 보물, 패물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좋은 인격을 만들라고 여러 모냥으로 연단을 시키고시험을 하야 완전한 인격, 하늘나라 백성 되기에, 예수의 짝이 되기에, 오시는 주님을 맞기에, 그 거룩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랴고 우리를 이렇게 연단시킨답니다.
  내 사랑하는 짝은 가새밭 속에 백합화와 같다고 했으니 가새밭에 백합화, 그 연약한 꽃송이가 가새밭 속에 찔리고 찔릴사록에 아름다운 향기를 잘 들어내는 것이요. 가새밭에 백합화, 가새밭에 백합화에게 불행이 아니요. 왜? 가새밭이 없으면 못된 장난꾼 아이들이 와서 그 백합화를 꺾어가는 것이요, 가새밭은 백합화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주 명월구에서 감사 장로가 있었답니다. 왜정시대에 경찰서에 미움을 받아서 민족주의자라고, 독립운동자라고 유치장에 들어가서 똥통 옆에서 밥을 자시다가 일어나서 한바탕 춤을 추었답니다. 그 소문이 서장의 귀에 들어가매 서장이 감사장로를 불러 “영감이 유치장에서 춤을 췄다지?”, “예, 추었소”, “뭘 그리 좋아 추었는가?”, 감사장로는 벙글벙글 웃으면서 “나는 육십 평생에 이런 맛을 처음 보았소, 이 좋은 경험을 얻어서 감사합니다. 성경에서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찬송을 할 때에 옥문이 열렸어요. 나도 이 옥문이 열리라고 춤을 추었소” 서장은 보고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이 영감 내보내라, 정신병자로구나”하고 감사장로는 춤 한 번 추고 석방되었답니다.
  참말로 갑종 신자들은 이런 것이예요. 방울은 흔들사록 더욱 소리가 나고, 향주머니는 건드릴사록 향취를 더욱 발하는 것이랍니다.
  셋째로, 나도 따라가면 저 사람과 같이 가겠구나 하는 소망입니다. 소망중에 즐거워해라, 그 때는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감람나무가 기름을 내지 못하고, 양무리가 우리에서 멸절당하고, 외양간에서 육축이 다 없어질지라도 오직 나는 여호와를 기뻐하리라고 하박국 선지자는 부르짖었습니다.
  환경과 주위와 사정을 돌아보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고 앞서간 성도들을허다한 간증자들이 구름같이 둘러 있음을 바라보세요.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친구들, 우리들 오기를 고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온 세상이 캄캄하고 나의 갈길 몰라도 여호와는 광명한 빛 나의 갈길 되시네
  겸손의 골짜기, 사음의 골짜기를 다 지나가고 한 적은 고개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올라 앞길을 바라보니 진충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독도는 크게 소래를 질러서, “여보세요, 앞에 가는 양반, 같이 좀 갑시다. 거기 기다리세요”하니,
  진충이는 쓱 돌아보면서 “여보세요, 따라올려면 빨리 따라오구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내 신앙의 발걸음은 못 멈춥니다. 길 바쁘니 내 발길 조금도 멈출 수 없소”하면서 그대로 가는 것이요.
  참말로 진충의 걸음은 이런 것이요.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신앙의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까? 가정 형편에 끌리우고, 친구 사정에 얽매이고, 사회 풍조에 밀리워 가는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요, 이 한가지를 위하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취하신 뜻을 취하라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랴고 푯대를 향하야 달음질치는 바울과 같이 용진하여야 합니다. 젖 뗀 송아지 뒤에 두고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가는 벧세메스 길의 암소처럼 충성되이 나아갑시다.
  오늘은 이만침 하고 그치겠습니다.

 

 

  [11]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천당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입니다.
  오늘까지 잘 걸어 왔습니다.
  지난번에 기독도가 사음의 골짜기 내려갈 때에 승리의 비결을 말씀드렸습니다. 앞서간 성도들을 바라보라고, 환란중에도 즐거워하고, 시험증에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기뻐하라고요. 그 이유는 범사가 하나님께로 오는 줄 알아 환란과 시험은 그 신앙과 인격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라고, 고통은 즐거운데 근본이요, 우리의 완전한 인격을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기독도는 거기에서 지나가서 진충이를 같이 가자고 부르니, 진충이는 따라올려면 빨리 따라오지 친구를 위해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고 말씀했소.          
  기독도는 대단히 분개해서 힘을 내어서 따라갑니다. 미구에 진충이보다 앞선 것이요.
  기독도는 그제야 흡족하여 웃으면서 “그러면 그렇지 좀 앞섰노라고 그렇게 동정없이 가느냐”고 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스사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남보다 좀 앞섰너라고 껑충거리지 말라. 성공할 때 조심하고 득의할 때 삼가하야 합니다.
  웃시야왕을 보세요. 교만하다가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사울왕을 보세요. 교만하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헤롯왕을 보세요.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을 보세요. 칠년동안 정신병자가 되었습니다.
  자만하닥 불행의 구렁이에 떨어진 자가 얼마나 많은지, 마음을 스사로 높게 말고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진충이는 넘어진 기독도를 붙들어 일으켜 주었습니다.
  기독도와 진충이는 이로부터 매우 친애하게 동행하며저의 행로에서 당한 일을 서로 재미롭게 얘기하면서 신앙의 귀한 동지로서 나아갔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라구요.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는 일은 성도의 귀한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이 넘어진 것을 보면 좋아합니다. 은근히 기뻐해요. 도리어 가서 꼭꼭 눌러 줄라고 합니다. 남의 넘어진 것을 보고 좋아하면 내가 넘어질 때에 조항하는 사람이 많아요. 우는 자로 같이 울고, 기뻐하는 자로 같이 기뻐해라. 동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얽어매는 황금의 사슬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하고, 남의 성공을 내 성공으로 하는 자는 얼마나 행복스러운지요.
  신앙의 동지, 지기지우,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났습니다. 천성행로에 매우 귀한 것이예요.
  독립은 좋으나 고립은 못 씁니다. 개밥의 도토리 알처럼 혼자 굴지 말아요. 독선주의자요, 독불장군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격차이, 연령차이, 문벌차이, 유무식차이였으나 동고동락, 동행동사, 더불어의 생활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귀한 동지, 빌립과 나다나엘의 동지, 다윗과 요나단의 우애지정을 보세요. 피차 이해 깊은 우정, 생사를 같이 하는 친구는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배입니다.
  보통 세상의 친구란 그림자와 같아서 광명한 곳에서는 그림자가 잘 따라오지만은 어두운데 들어가며는 그림자는 곧 사라져 버립니다. 내가 성공하고, 부귀공명 누리고, 다자손하며는 친구들이 버글버글 따라 오지마는 환란고통에 들어가면 그 많은 친구들은 그림자 사라지듯 다 없어지고 맙니다.
  욥이 환란중에는 다 달아나던 가족, 친구, 친척들이 욥이 축복받을 때에는 다 와서 예물을 드리고 축하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소.
  우리들도 그런 친구의 한 사람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도 있습니다.
  진충은 오면서 시험받은 이야기를 합니다.
  진충이 당한 시험은 기독도와 다릅니다. 우울리에 빠진 경험도 없고, 졸다가 문권 잃은 경험도 없고, 악마와 싸운 일도 없고, 사음의 골짜기서도 찬송을 하면서 가는 귀한 존재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충이의 받은 시험을 보세요.
  기독도는 남성적 시험이면 진충이는 여성적 시험이랍니다.
  좁은 문 밖에서 탕부라는 음녀에게 걸려서 자칫하면 몸을 망치고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이 올 때에 눈을 꼭 감았더니, 그 여자가 조롱을 하였으나, 하나님게서는 나를 불쌍히 녀겨서 그 계집을 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성의 유혹은 눈을 잘 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욥은 말하기를, 내가 내 눈으로 언약을 세웠노니 어찌하여 남의 처녀를 주목해 보리요 하였습니다.요셉이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벗어남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이런 시험을 이길 것입니다. 저주의 자식은 그 눈에 음녀가 가득하야 범죄하기를 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눈동자를 잘 지킵시다.
  그 다음에는 간난산 밑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을 만났는데, 혼미성(昏迷城)에서 사는 인구성이라는 별호를 가진, 인칠 인(印)자, 녯 구(舊)자, 성품 성(性)자, 인구성(印舊性)이라는 별호를 가진 노아담 영감을 만났는데, 연세는 한 육천 살쯤 된 자가 진충이를 보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달랩니다.가면 무슨 좋은 수가 있느냐고 하니, 아름다운 딸 삼 형제가 있는데, 사윗감을 고른다고 합니다. 자기 집에 가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재미나고 쾌락한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 딸들의 이름은 첫째는 호색이, 좋을 호(好)자, 빛 색(色)자, 호색(好色)이, 둘째는 탐재, 재물을 탐하는 탐재(貪財), 셋째는 고맹이, 돌아볼 고(顧)자, 이름 명(名)자, 고명(顧名)이, 맏딸 호색이한데 장가 들라면 장가 들고, 둘째 딸 탐재한데 장가 들라면 장가 들고, 셋째딸 고명이한데 장가 들라면 장가 들고, 모두 원하면 딸 삼 형제 다 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소.
  진충이는 마음이 동하야 결혼하려고 그 영감을 따라가다가 그 영감 이마빽이를 보니까 ‘옛성질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라고 써 있습니다. 진충이는 그제야 깨닫고 “여보, 영감, 나 장가 아니 들겠소. 당신 니마를 보니까 글렀소, 옛성질은 죄악의 성질이니 이 성질을 따르다가는 자고 이래로 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노아담은 진충이를 부여잡고 “그 무슨 될 말이냐, 점잖은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 되느냐”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진충이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랴,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게 되는구나” 하는 바울의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힘써서 간절히 주님께 애원하야 물리치고 도망질쳐서 휴식정에 이르니 한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따라옵니다. 사정없이 때립니다.
  그때 인자하신 분이 급히 와서 “여보,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 어찌하오” 하면서 말려 주었습니다.
  그때에 기독도가 “그 말린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고 하니, 처음에는 알지 못했는데, 손에 못 자국을 보고 알았노라, 그는 주 예수님이었습니다.“따리던 사람은 누구냐” 하니, 그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내중에 알고 보니 모세 영감이 율법 몽둥이로 때리더라고 합니다.
  참말로 우리 천성 가는 길에 노아담네 딸 삼 형제 시험이 대단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라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바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쓴 요한 선생은 간곡히 권면했습니다.
  결혼은 안 했어도 약혼만 했어도 모세에게 매를 맞아야 합니다. 은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동감일 거에요. 실범의 죄는 없어도 마음으로 범죄해도 고통이 됩니다.
  남의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라도 이미 간음죄를 지었나니라, 탐심을 물리치라, 탐심은 곧 우상이니라. 
  어떤 이가 부흥회때 회개하는데, “아이구, 나는 도적놈입니다”, “무슨 도적”, “그림자 도적놈이외다 은행에서 돈을 찾는데 80원을 찾는 것을 90원이예요. 10원 지폐 한 장이 더 온 것을 알면서도욕심에 그대로 가지고 와서 ‘아 오늘 10원 횡재했다’하고 다시 세 보니, 웬일야, 70원이예요, 다시 뒤집어 세 보니 90원, 한 장, 두 장 세 보니 한 장이 접혔드랍니다. 그래서 한 편은 90원, 한 편은 70원, 이것이 그 마음에 가책이 되어 자기는 아이고, 이 놈은 먹지도 못하고 도적질을 했구나 나는 그림자 도적놈”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법률에 도적이 아니나, 하나님의 법, 양심의 법률은 벌써 도적인 것이요. 혹 우리도 그림자 도적, 그림자 음란, 그림자 허영이나 없는지, 주님의 빛 아래서 회개하야 털끝만치라도 어둠이 없이 죄 사함을 받으라구요.
  못 자욱에서 흐르는 피,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과 피는 지금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능력이 계십니다. 만일 죄가 없다고 하면 스사로 쇡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호색(好色)이, 노아담 영감의 맏딸 호색이, 옛날 다윗이도, 솔로몬이도, 삼손도 여기서 실패하고, 소돔과 고모라도 이 죄로 망했어요. 오늘날 내가 아는 신자, 교역자들까지라도 이 호색이로 실패하는 자가 부지기수요,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여, 여자의 생명은 정조인데, 여자가 정조를 잃으면 생명 잃은 것과 마찬가지요. 못된 사나이들은 왜 여자에게는 정조를 구하면서도 자기는 정조를 아니 지키는지 알 수가 없어요.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일남 일녀를 지으신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일남 일녀를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요.
  둘째는 탐재(貪財), 가룟 유다가 여기 장가 들어 자기 선생 팔아 먹고 자살하고, 지옥의 자식이 되고...
  발람이는 여기 장가 들어 아니 갈 길을 가다가 저주를 받고,
  엘리사의 제자 게하시도 여기 장가 들어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돈을 탐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래기가 되나니...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지사람이 돈을 따라 가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세요.
  셋째는 고명(顧名)이, 고맹이, 얌전히 사람을 뇍입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여기 장가 들어 망하고,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유방백세(遺芳百歲)못 하면 유취말년(遺臭末年)이라도 하겠다고 많은 사람은 허영과 명예심에 들떠 야단들이요. 감투 하나 얻어쓰느라고 오늘날 우리 나라에 해방전 죄보다도 해방후 죄악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요. 진정한 애국자들도 많겠지만은 고명이에게 장가 들어 목사, 장로의 성직을 모독하는 자가 적지 않습니다. 나는 보건대 날 아래서 하는바 모든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고명이를 삼가라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피차 시험을 받은 경험을 얘기하면서 가는데, 멀리서 보기는 좋아도 가까이서 보면 허수애비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떻게나 얘길 잘 하는지 진충이는 그 사람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천문지리(天文地理), 상통하략(上通下略) 구약의 얘기며, 신약의 얘기며, 종교, 철학, 과학이며, 율법이며, 복음의 도리를 청산유수로 무불통지(無不通知)입니다.
  진충이는 기독도에게 와서 좋은 신앙의 동지를 만났다고 그 사람을 극구 칭찬합니다.
  기독도는 피 웃으면서 “꽤 좋더냐”고, “말 잘 하는 것 보고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우리 이웃 동네 잡담(雜談) 평론촌(評論村) 사는 능언(能言)이라는, 말 잘 하는 사람의 아들 순도라는 자인데, 말과 행실이 다른 자라, 그 사람 때문에 주의 이름이 얼마나 비방을 받는지 모른다는 것이요.
  그가 기도와 회개와 신앙과 중생을, 성결을 말하기는 잘 하지만 말 뿐이요. 그 집에 가서 사생활을 보면 기도가 있을까, 가정예배가 있을까, 죄를 회개함이 있을까, 교회를 충성되이 봉사함이 있을까, 신앙의 실행이라곤 냄새도 없는 자이요. 내가 그 사람의 평론을 할랴는 것 아니요. 사실인고로 그대가 그 자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요.
  그래서 진충이는 속은 줄 알고 다시 순도에게 가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더니 체험적 신앙을 갖지 못하고 외식하는 순도는 본색이 탄로되고야 말았습니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가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를 가르친 것입니다.
  오늘은 그만침 하겠습니다.
  다 안녕히 계시기를 바랍니다.

 

 

  [12]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에 기독도의 친구 진충이가 시험받은 것 말씀드렸습니다.
  첫번은 좁은 문 밖에서 탕부의 유혹을 눈감아 이기고, 간난산 밑에서 노아담의 세 딸, 호색이, 탐재, 고명이의 유혹을 기도로 이기고, 잡담촌 사는 능언의 아들, 말 잘하는 능언의 아들 순도의 정체를 입술 순자, 길 도(道)자, 순도의 정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순도는 거짓 스승의 표본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갈지어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가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나니라. 순도는 가짜 목사, 가짜 장로, 가짜 집사, 가짜 권사, 가짜 신자, 표리부동하고 언신불합하야 이중인격자, 외식하는 바리새 교인과 사두개 교인과 같은 자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남은 가라치고 자신은 가라치지 못하는자, 참말로 멀리서 보기는 좋아도 가까이서 보면 틀렸습니다.
  어떤 목사의 부인은 이부자리를 가지고 강단엘 쫓아왔더랍니다. “우리 여게서 삽시다. 강단에서는 천사 같은데, 집에서는 마귀새끼 같애요”
  어떤 전도사 부인은 전도사가 강연을 하면은 돌아 앉아서 “흐, 제나 잘하지, 제나 잘하지”하고 있었답니다.
  어떤 목사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는 이중인격자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 중생의 경험이 없어요. 내가 타락하게 된 원인은 그것입니다.
  어떤 며느리는 “왜 교회에 아니 나오느냐”고 하니, “나는 교회에 아니 나가요”, “왜?”, “우리 시어머니 가는 천당에 아니 가렵니다. 밤낮 책보 끼고 20년이나 예배당에 다니면서도 집에 와서는 집안 사람을 못 살게 볶으니, 개꼬리 삼년 묻어도 황모 못 된다는 격이지요” 합니다.
  물론 사람인 이상에 아무리 잘 하느라고 해도 종종 허물과 실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 안에 있는 사람, 임마누엘 성 임재 앞에서 사는 사람은 아주 위선자라는 패는 차지 않을 거예요. 일부러 악한 감정을 먹고 그 사람을 중상시키려면 몰라도 정직한 사람은 알 것이지요.
  누가 아놀드란 사람을 평하여 이르기를 “아놀드의 설교는 참 좋드라” 하니, 다른 사람은 말하되 “아니, 그의 문장은 더 좋드라”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 “아니, 나는 그의 생활이 더 좋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력한 설교는 그 배후에 신령한 참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백묵으로 잘 쓴 설교를 검정 생활의 지우개로 다 닦아 버린다고 합니다.
  깨끗한 짐생은 쌔김질을 하고, 쪽이 갈라져야 하는데, 소와 양은 다 정결한 제물입니다. 쌔김질은 하나님 말씀을 잘 섭취하고 소화하고 증거하는 것이요. 쪽이 갈라지는 것은 행동과 생활이 세상에서 구별된 것입니다. 토끼는 쌔김질은 하되 쪽이 갈라지지 못한 순도 같은 위선자, 불결한 동물이외다.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아는 것이지요.
  순도에 대한 노래 일절을 들어 보세요.
  거짓선지 순도보라 진충이를 만났구나
  난조같은 저모양이 빛난날개 떨쳤도다
  겉다르고 속이다른 위선자여 회개하라
  불꽃같은 그눈앞에 누가감히 속일소냐
  순도는 멀리 떨어져 나가고, 기독도와 진충이는 서로 냬기하면서 행하여 들판으로 걸어 나갑니다. 마침 진충이가 뒤를 돌아본즉 어떤 사람 하나가 오는데, 기독도에게 은인이요. 진충이의 친구 전도였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만나서 인사의 말을 필한 후에 재미 있게 동행하였습니다.
  전도가 두 사람의 지나온 경험의 보고를 듣고 칭찬하고 다시금 앞길에 나아갈 믿음의 권면을 더하야 새힘을 얻게 하였습니다.
  전도가 말한 요령은, 썩지 않을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굳건히 믿을 것과, 모든 정욕을 주의할 것과, 모든 환란을 지나여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과, 너희 앞에서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니 두 사람 중에 누가 하나 먼저 살해를 당할 모냥이니 죽도록 충성하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자 복이 있으리라고 가르치고 축복한 후에 갈라졌습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의 정신 그대로입니다. 선한 목자, 참전도자의 생활입니다. 참목자는 자기의 양을 잘 알고 각각 그 이름을 불러 내어 그 앞에서 인도하고 양을 위하야 끝까지 목숨을 바랴 기도하야 영생을 얻게 하나니 저들은 한 주인의 머리가 되어 저희를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이 목마르고 굶주리고 병든 양들을 누구가 돌아볼 자가 있는가요. 목이 말라도 생수를 찾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병이 들어도 스사로 고치지 못하고, 악한 즘생이 와도 막을 줄 모르는 주의 어린 양들을 누가 돌아볼 자가 있나이까.
  오늘날 선한 목자 대신에 삯꾼 목자들이 많고, 삯꾼 목자 대신에 이 양을 물어 찢는 이리 목자들이 있고, 이리 목자 대신에 악령의 사도가 가득하였다고 하는 통탄의 부르짖는 사람의 글을 보고 나는 전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참으로 불타는 사랑의 사도여, 땅에 있는 성인은 존귀한 자니 나의 즐거움이 다 그에게 있나이다.
  두 사람은 전도를 다시 작별하고 흔연히 길을 갑니다. 앞을 바라보니 비(碑)가 있는데, 부허(富虛)한 물건만 파는 고로 허화시(虛華市)라고 합니다. 빌 허(虛)자, 빛날 화(華)자, 허화시(虛華市), 허화시 장거린데, 이 시장은 새로 세운 것이 아니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약 육천년전서부터 바알세붑과 아볼루온과 레기온의 무리들이 합작하여 세워 놓고, 천성으로 갈랴는 행인들이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의 발을 멈추는 곳이예요.
  이 저자에는 보기 좋고, 먹기 좋고, 듣기 좋고, 놀기 좋은 각양 물건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좋고 휴한 물건 다 있으니, 대개 가옥, 토지, 직업, 지위, 존귀, 명예, 승급, 국가, 왕국, 정욕, 쾌락, 창기, 갈보, 아내, 남편, 자녀, 주인, 종, 금, 은, 동, 옥, 비단, 보석, 요술, 술수, 무당, 귀신, 경비, 유희, 오락, 흉냄, 피 흘리는 소동들이요, 우상숭배, 이단 사교가 경기 좋은 모양이요, 동서양 육대주, 인민 중에 천국으로 갈랴는 사람은 이 저자를 지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고로 지나가기 싫어도 무가내하요.
  우리 주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이 저자로 지나가실 때에 주를 청하야 한 거리, 두 거리, 세 거리를 다 지나 일만 나라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다 구경시켜 주를 꾀어 그 물건을 사게 했으나 주님은 한푼어치도 팔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천만사가 헛되고 헛된 것뿐이지요. 일생 향락 좋다 해도 바람잡이 뿐이요. 험한 세월 고난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요. 너희는 어찌하야 은을 달아 양식 되지 못할 것을 사며 수고하여 얻은 것을 주고 배부르게 못 할 것을 바꾸겠나뇨. 허화시에 속는 사람을 경계하야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외다.
  음행하는 여인 같은 오늘날 중생하지 못한 교인들은 허화시에서 오금을 못 씁니다.
  몇날이나 살겠다고 썩어질 세상, 썩어질 물질, 썩어질 육체, 썩어질 허영에 날뛰는 친구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에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 세상도 가고 그 정욕도 가는 것이 아니냐. 무엇이 아직도 그립고 부러우냐.
  세상만사 살펴보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 옥답도 우리 한번 죽어지면 일장의 춘몽이랍니다.
  우리 심령이 하늘의 절대적 입장에 서지 못하고, 아래서 상대적 입장에 사는 허화시에서 속는 것이요.
  맘이 빈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오늘은 이만침 말씀드립니다.
  주 예수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넓은 사랑과 성신님의 감동 감화하심이 여러분 위에 항상 충만하심을 축원하나이다.

  [13]
  어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계속하여 천로역정을 강화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위선자 순도의 정체를 발견하고, 세번째 전도의 사랑을 받고, 허화시 들어가서 핍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기독도와 진충이는 거리를 다 지나가도록 허화시의 화려함을 한 번도 보지 않고, 귀를 막고 하늘만 쳐다보면서 “주여! 이 허화시를 보지 않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저자의 모든 사람은 그 모양을 보고 희롱도 하고 핍박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요.
  첫째로 두 사람의 의복이 그 시장 사람들의 것과 다르타는 것이요.
  둘째는 말이 다르타는 것이요.
  셋째는 저희가 그 상품들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고, 그 물건을 팔아 주지 아니 하였다는 것이요.
  진리로 사는 성도의 특색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다른 것이요. 복 있는 자는 악한 자의 의논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노니 눈이 거슬리고, 말이 달라서 하늘나라, 지옥,예수, 하나님, 십자가, 부활, 재림, 할렐루야, 아멘 등의 천국 방언이 싫다는 것이요.
  그리고 저의 물건을 팔아 주지 않은 것은 저희들과 동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변하여 새마음을 받은 새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 거룩한 물건을 개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요. 그러니 핍박은 자연히 올 것이지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저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소.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그 동료로 사랑할 것이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더러 내가 택하여 세상에서 나오게 한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나니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짝하지 마라.
  그러나 요새 신자들은 너무나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아첨하고, 구별된 생활과 하늘나라 방언에 침묵을 지키니 별반 박해가 없는 것이예요. 그래도 몇명의 사데 교인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정조를 지킨 것처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귀여운 성도들이 여게 저게 없는 것은 아니외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두루 다니며 살피며 그 거리에서 찾아라 너희가 만일 한 사람이라도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찾는 자를 만나면 내가 이 읍을 용서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기독도와 진충이는 핍박을 잘 참고, 욕하면 도리어 축복하고 원망하지 아니하니 그 저자 가운데도 의기 있는 두 세 사람이 핍박을 제지하여 말립니다. “저 두 사람을 보니 분수를 지키는 양민이요. 사람을 해하는 사람이 아니니 그런 수욕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은 너도 같은 놈이라고 하여 서로 싸워서 상한 사람이 많고, 저자가 수라장이 됩니다.
  경관이 와서 그 모든 책임이 기독도와 진충이에게 있다고 하야 혹독히 때리고 쇠사슬로 결박하야 옥에 가두어서 고생을 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검사부에 넘어가서 재판을 하는데, 재판장은 증선공, 선을 미워하는 증선공(憎善公)이요, 선을 지극히 미워하는 자입니다. 증인으로는 질투(嫉妬), 미신(未信)이, 아첨(阿諂)이를 불러서, 거짓 증거를 세워서 판결 언도를 받으니, 이 싸움의 선동자요, 위험사상을 수입한 자요, 이 저자를 문란케 한 자라 하고, 허화시의 죄를 심히 공격한 진충이를 사형선고하였습니다. 
  그 당장에 악당들이 달려들어 끄렁내어 채찍으로 치고, 손으로 때리고, 칼로 찢고, 돌로 치고, 창으로 찌르고, 나무 기둥에 결박을 하고 불 살라 죽일 때에 진충이는 저들을 위하여 축복을 하고 운명을 하였습니다.
  하늘의 불수레와 구름에 싸여 승천할 때에 천군천사의 나팔소리 장엄하고 갖은 풍로로 호위하야 올라 갑니다.
  기독도는 좀 연기되어 감옥으로 가서 얼마동안 있다가 만유의 권세를 가진 주님의 섭리로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여전히 순례의 길을 걸으며 진충이의 순교 조가를 불렀답니다.
  친애하는 진충위해 슬퍼할것 전혀없네
  순교자의 진충형은 주의영광 커졌도다
  우리성도 해한자는 제가저를 해함일세
  누가너를 죽였느냐 너는다시 살아난다
  죽은 물고기는 물에 흘러가지만 산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요. 생명의 신앙자는 어데 가서든지 그리스도인의 특색으로 허화시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랍니다.
  죽도록 충성해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래도 죽고 저래도 한번 죽을 바에는 이 말씀대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자금 이후로 주를 높이다가 죽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성신이 가라사대 그러히디 저의 수고를 그치매 또한 그 행한 일이 또한 따르나니라
  우리 주 기철 목사님, 손 양원 목사님 같은 분은 신앙의 정조를 더럽히지 아니하고 끝끝내 허화시에서 죄를 공격하시다가 순교하셨으니 온 세상이 다 저를 대적하여도 저희는 홀로 있어 이 세상을 대적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저희 신앙의 절정이었습니다.우리들은 그렇게 큰 순교자는 되지 못할지라도 적은 일에 봉사합시다. 크게 죽기 전에 매일매일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네가 죄를 죽이기에 용감한 순교자가 되지 못하면 정말 참된 큰 순교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어떤 선생은 명담을 하였습니다.
  동지들이여! 너무 잘 살으려고 하지 말고 잘 죽을려고 힘씁시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너무 잘 살을려고 하다가 잘 살지도 못하고 잘 죽지도 못합니다. 잘 죽을려고 하면 잘 살게 되는 이 비결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아도 뜻 있게 살다가 값 있는 죽음을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죽음에는 대개 다섯 가지 죽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기만 위하야 살다가 자기만 위하야 죽는 개죽음.
  둘째는 윤종의 죽음, 가족을 위하야, 효자가 아버지를 위하야, 열녀가 남편을 위하야 죽는 죽음은 윤종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애국자의 죽음, 나라를 위하야 살다가 나라를 위하여 죽는 애국자의 죽음.
  넷째는 인도의 죽음이 있습니다. 자기의 도덕과 자기의 주의, 사상을 위하여 살다가 죽는 것은 인도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요. 그것도 좋은 죽음이나 이것은 영생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요. 자금 이후로 주를 위하다가 죽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 예수를 위해 살다가 예수를 위하여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을 위하여 죽는 순교의 죽음, 값있는 죽음이랍니다.
  신앙의 동지를 허화시에서 잃은 기독도는 외롭게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허화시를 피하여 나왔습니다. 차라리 얼른 죽은 진충이가 부럽습니다. 얼른 죽기보다 오랫동안 값 있게 살기가 어려워요. 에녹이는 삼백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야 장기간에 거룩한 생활을 한 것은 일찍 순교한 아벨보다 못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하여 노아 홍수 전에 육신 승천의 영광을 얻은 것 아닙니까?
  순교하는 복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아무나 다 되는 것은 아니예요. 진충이는 순교했는데, 기독도는 죽지 않고 여전히 승리의 순례의 길을 계속하였습니다.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다 순교하였는데, 사도 요한은 고종명(考終命)한 것이지요.
  그때 허화시에서 미도(美道)라는 성도가 기독도를 따라 옵니다. 미도는 허화시의 사람으로서 기독도와 진충이가 그 시장에서 언어와 행동을 한 것이나, 또한 애매히 고생을 당하고 진충이가 죽으면서도 핍박자를 축복하는 그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야 단연히 허화시를 떠나서 기독도와 가기를 결심하고 나선 것입니다. 기독도와 결의형제(結義兄弟)를 맺고 끝까지 천성까지 동행한 사람이예요.
  이는 곧 진충이의 열매이니 생명의 면류관이외다. 진충이의 죽음이, 진충이의 피 한 방울이, 진충이의 눈물이, 진충이의 흘린 땀 한 방울이 결단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밀알 하나이 땅에 들어가 썩어져 썩으므로 좋은 열매를 맺음과 같이, 스데반이가 돌 무대기 속에 쌔여 죽을 때에 그 태도에 사울이가 회개하야 바울이 됨과 같이 진충이의 거룩한 죽음이 미도를 낳은 것입니다.
  만주 명월구 교회에 있던 이 원화 장로의 간증을 들으면, 그의 부인이 독신자였는데, 지성으로 자기 불신 남편을 위하야 기도하고 권면하다가 그 간증 당시전 3년전에 세상을 떠났드랍니다. 중병의 고통중에서도 자기를 불고하고 주야로 그 남편 회개시켜 달라고 열심으로 기도하다가 마즈막 운명시에 혀는 꼬부라지고 입술은 타서 말은 못하고 그 남편을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 남편은 무슨 유언이나 할려는 줄 알고 귀를 들이댔더니 뜻밖에도 죽어가든 그 아내가 정신이 나서 그 남편의 목을 쓸어 안고 귀를 쥐고 손가락으로 귓구먹을 한참 쑤셔 놓고 운명을 했답니다. 그 남편은 무섭기도 하고 일변 무서워서, 이 사람이 죽으면 죽었지 왜 남의 귓구멍은 쑤셔 놓는가 하고 생각할 때에 오! 깨달았다. 내가 너무 귀가 맥혀서 신령한 음성을 듣지 못하니 귀좀 열려서 들으라고 하는 일이로구나 하고 죽은 시체를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을 하고 그 다음에 믿는 녜식으로 장례식을 하고 그 날부터 예수 믿고서 훌륭한 장로가 됐답니다.
  허화시에서 나올 때 미도만 아니라 이도(二道)라는 자가 또한 따라옵니다. 저는 교언성(巧言城) 사람으로 재산가입니다. 그의 일가로는 기변(奇辨)이, 이심(二心)이, 두 이(二)자, 마음 심(心)자, 두 개가 다 좋다는 것, 그 중에도 그 성 교회 목사, 이언(二言)이, 두 가지 말하는, 이언이라는 외삼촌 목사가 있답니다. 그의 장인은 백설(百舌)이, 헷데기가 백개나 있습니다. 장모는 아첨(阿諂)이, 살살 뇍여 냅니다. 훌륭한 학교를 졸업했답니다.
탐심시(貪心시) 호리동(好利洞), 이를 좋아하는 호리동(好利洞)상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답니다. 교장은 어리선생(漁利先生), 어부의 이를 취하는 어리선생(漁利先生)이요, 동창생은 거재(巨財), 큰 재산가, 애전(愛錢)이, 돈을 사랑하는 애전이, 인색(吝嗇)이, 어떻게나 인색한지 주일날 연보 한푼 낼래도 파들파들 떠는 인색이, 학과는 매매하는 법, 이얻는 법, 쇡여 먹는 법, 대접하는 법, 후려 먹는 법, 형세 믿고 눌러 먹는 법, 종교적 가면을 쓰고 모리하는 법, 자선 사업 미명 아래서 명예와 사리사욕을 채우는 법, 다 배왔소, 저의 종교는 그렇게 엄격한 것이 없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고 결코 거슬러 다투지 아니하며 언제나 햇빛이 찬란하고 사람들이 환영할 때는 길거리에서 활보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입니다.
  기독도와 미도는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춥든지 더웁든지 모험적으로 나가지마는 이도의 무리들은 항상 꾀만 부리고 기독도와 미도의 이상과 맞지 아니하여 그만 두 패로 갈리워 기독도와 미도는 앞으로 나아가고, 이도와 그 동창생들은 뒤에 떨어져서 기독도의 일을 비평하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현대 교회도 기독도의 계통이 있는 동시에 이도의 당파가 있어요. 아벨이가 있는 동시에 가인이가 있었고, 이삭대 이스마엘, 야곱대 에서, 룻대 오르바, 여호수아와 갈렙대 불신앙의 열 정탐꾼, 열 두 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와 오순절 교회도 아나니아 부부가 있었습니다. 루터의 복음주의가 있는 동시에 교황의 교권주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영계의 계통 순복음신앙, 정통이 있는 동시에 육에 속한 인본주의자들이 많은 것이요.
  오늘은 이만침으로 그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항상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14]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기독도 천국가는 길을 강화하겠습니다.
  전번에 기독도와 진충이가 허화시에서 나올 때에 미도가 따라 나와서 좋은 신앙의 동지를 얻고 동행할 때에 이도의 무리가 따라 나왔으나 오래 못가서 서로 갈리워졌습니다.
  이도의 무리들은 앞서 간 기독도를 비난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동생의 눈에 티를 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실 적에 주머니 두 개를 주어서 남의 허물 주머니를 뒤에 차고 내 허물 주머니는 앞에다 차라고 했는데, 못된 인간들은 주머니를 바꾸어 차서 남의 허물 주머니를 앞에다 차고 자기의 허물 주머니는 뒤에다 차서 밤낮 남의 허물만 보고 제 허물은 모른다는 것이요.
  어떤 남의 냬기 잘하는 영감이 오동짓달에 남의 창구녁 안 막았다고 건넌집을 건너다 보면서 숭보고 있어요. 그집 부인네가 저놈의 녕감 남의 창구녕 막았던지 안 막았던지 무슨 상관 있노 하고 건너다 보니깐 이 영감 보시요. 저의 창구멍 크다랗게 뚫어진 대로 내다 보면서 남의 창구녕 안 막았다고 숭을 보고 있어요. 제 창구녕은 못보고 남의 창구녕만 본 것이요.
  오늘날도 제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남의 숭만 보는 이러한 불쌍하고 가련한 무리들이 많은 것이요.
  이도의 무리들은 그러한 자들이요. 성도들은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잘못, 자기 숭을 잘 보아야 합니다. 폄론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다른 사람을 폄론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을 폄론하는 폄론으로 너도 폄론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의 산상보훈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주머니를 똑바로 차야 합니다.
  이도의 무리가 기독도를 비평한 조건은 너무나 강경하고 고집하야 제 생각만 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무시하고 눈치도 모르고 모험적으로 나가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일을 너무나 지나치게 한다고, 마지막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모여서 기독도에게 질문을 토론했습ㅂ니다.  
  그 문제는, 첫째, 전도자가 봉급을 많이 받아야 성경도 부지런히 보고, 설교도 좋은 설교가 나오고, 전도자 인격이 올라 간다는 것이요.
  둘째는, 교회 법규를 너무 엄중하게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좀 어기어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맞추어 가면서 하자고 합니다.
  셋째는, 사업을 번창하기 위하야 교회 들어와서 장사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또한 부자의 아내를 취해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유익하게 쓰면 좋다는 것 등의 그럴 듯한 질문을 가지고 기독도를 따라와서 거재란 자가 선봉을 서고 이도의 무리들이 논전을 걸었습니다.
  이상의 문제로 질문하여 대답해 달라고 하니, 기독도는 그 말을 듣고 여지없이 반박을 하였습니다. 만일에 예수의 종교를 내세워 가지고 세상의 이익을 구하는 것은 제일 가증한 일이며 위선자요 이단자이며 악마와 마법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몇가지를 실례를 들어서,
  옛날 하몰과 세겜과 같은 자, 야곱의 딸과 재산을 탐해서 이스라엘의 종교의식인 할례를 하고 전멸을 당한 자와 같다고,
  둘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위선자로, 깔따귀는 걸러 먹고 약대는 통으로 생키는 착취하는 자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가룟 유다와 같이 금전을 사랑하다가는 배은망덕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넷째는, 마법사 시몬이 돈을 가지고 성신 살려고 하다가 저주받은 자와 같음이 아니냐고 반박을 했습니다.
  이도의 무리들은 다시 말을 못하고 뒤로 물러 갔습니다.
  기독도와 미도는 편안 안(安)자, 편할 일(逸)자, 안일(安逸)이라는 동네를 지나가는데, 재산(財山)의 데마, 재물 재(財)자, 뫼 산(山)자, 재산(財山)의 데마, 데마는 바울 선생을 따라가다가 세상 사랑하야 물러간 사람, 그들을 부릅니다. 여기 좋은 금광이 있으니 조금만 수고하면 큰 부자가 되리라고, 금강을 와서 보라고 합니다.
  미도가 그 소릴 듣고 “우리 좀 같이 가 봅시다” 한다.
  기독도는 단연히 거절을 하고, 미도더러 “우리 갈 길 바쁜데 한걸음이라도 빨리 가야 하지 않습니까? 돈을 탐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래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데마는 계속하여 만단으로 꾀입니다.
  기독도는 꾸짖어 가라대 “데마야 너는 우리 주님의 원수라, 너는 가룟 유다의 길로 우리를 가르치려는가, 그 앞길은 멸망이니라” 책망하여 물리쳤습니다.
  뒤에 따라오던 이도의 무리들은 데마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천성가던 길 멈추고 재산으로 가서 데마와 같이 금광으로 다 들어가서 죽었는지, 금을 캐느라고 안 나오는지 도무지 종무소식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노래 한 절을 읊으는데,
  네사람의 마음보소 금을보고 따라가네
  세상이만 취하다가 노상절명 하였구나
  온천하를 다얻고도 제생명을 잃으면은
  무슨유익 있으리요 모든탐심 물리치소
  이것은 인생 중년에 당하는 시험이외다.
  이도와 데마는 다 황금만능주의자들이요, 물질주의자들입니다. 특별히 데마는 바울 선생 따라서 전도사업에 몸 바쳤던 자인데, 세상은 사랑하여 나갔어요.
  청년시절에는 재물에 대한 욕망은 비교적 적으나 중년에 들어가면 가정에 대한 책임이 중해집니다. 우로 노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아이들은 많이 길어나고, 또한 사회사업에 대한, 종교사업에 대한 욕심이 왕성해짐으로 경제에 대한 관념이 강하여지고, 자보협득의 수단을 부리려는 자요.
  교역자들도 점점 식구가 늘어가고, 자녀들 교육문제가 박두하여지면 성직을 끝까지 봉행하지 못하고 그만 데마의 걸음과 발람의 길을 걷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랍니다.
  서양 격언에 악마의 콩을 삼가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돼지를 길러 팔면 사가는 사람이 돗박에다 콩을 담아가지고 돼지 우리 문을 열고 앞에서 뿌리면서 도수장으로 끌고 간답니다.도수장에는 그 돼지 에미도 죽고, 그 애비도 죽고, 돼지 형제 친구 다 죽은 곳인데, 그 돼지도 뻔연히 죽을 줄을 알면서도 고수한 콩 주워 먹는 재미에 꿀꿀 따라가다가 도수장 문 안에는 더 많이 쏟아져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갈까 말까, 들어갈까 말까, 거기 들어가면 죽을 줄을 알면서도, 예라 죽어도 먹구 죽자 하고 들어가서 콩을 입에다 물자 말자 장치했던 전기에 맞아 즉사하는 것이랍니다. 그 날로 사람의 밥 반찬감이 된대요. 그 돼지는 콩 먹고 살을려고 하다가 콩으로 죽은 것이예요. 돼지만 그런게 아니예요. 악마도 인생들 앞에 돈이란 콩을 뿌리면 돈, 돈 하다가 돈으로 망하는 것이요. 물은 배에게 대단히 필요합니다. 배는 물에 떠서 나아가야지, 만일 배에 구녕이 뚫어져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배는 물에 잠겨 물로 망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물질의 힘으로 삽니다. 그러나 욕심의 구멍이 뚫어져 물질을 탐하다가는 물질로 망하는 것이란 말이요. 황금(黃金)은 흑사심(黑士心)이라 하였고,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먼저 생명 있는 말을 앞세워라 물질마차는 따라가리라. 그러나 어떤 멍텅구리가 말을 앞에다 세우고 말을 뒤에다 세우고 가자고 하면 일이 될거요? 오늘날 유물주의 사상이나 자본주의자들은 다 말을 앞에다 세우고 말을 뒤에다 세우는 꺼꾸로 된 세상이랍니다.
  이리하여 세상이 복잡하게 되어가는 것이요. 유물(唯物)이냐, 유신(唯神)이냐, 오늘날 소위 신자들이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무신론자요, 유물주의자라고 비웃으면서도 실제로 신자들과 교역자들의 실생활을 보면 하나님 없는 자같이 너무나 물질에 인색하고, 물질을 사모하고, 물질을 따르다가는 망하는 자가 적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내가 도로 찾아가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두 사람은 멀리 가지 않아서 길 가에서 뒤 돌아보는 여자 소금기둥을 보았습니다. 그 이마에 기이한 글자를 썼으니, ‘롯의 아내를 생각해라’, 롯의 아내를 생각해라,
  기독도는 미도다러 이 소금기둥은 우리를 경계시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롯의 아내가 소돔 성에서 나와 가지고 재물 생각으로 뒤 돌아보다가 저 모양이 된 것이요. 우리가 만일 데마의 말을 듣고 재산으로 갔드라면 어찌 될 것이요. 저 여인과 같이 사람의 구경거리가 될 뻔 하였소.
  미도는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던 것을 후회합니다. 저 여인의 죄와 나의 죄가 구별이 없건만은 나는 롯의 아내처럼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이 일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유혹에 들지 말자”고 피차 결심하고 다시 나갑니다.
  그 소금기둥은 행길 한복판에 서 있어 가지구 저도 안가고 남도 못 가게 방해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소금기둥 신자가 많아요. 생명 없는 신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와 같이 교회문 가로막고 저도 아니가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소금기둥 신자가 얼마나 많은지...
  롯의 아내는 형식적 신자요, 물질 토대한 신앙이요, 구원을 경히 보는 자요, 불순종하는 신자, 두 마음을 품어 몸은 세상에서 나왔으나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자입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케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정결케 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갔으나, 광야에서 애굽 생각만 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 쓰러진 것도 이러한 소금기둥 신자, 우리의 전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도와 미도 두 사람은 점점 나아가다가 맑은 강가에 이르렀으니, 그 강의 이름은 ‘하나님의 강’이라고도 하고, ‘생명강’이라고도 합니다. 두 사람은 이 강변의 길로 매우 상쾌하게 걷고 있습니다. 강 좌우편 언덕에는 푸른 나무가 있어 여러가지 아름다운 열매가 맺혔고, 그 잎사귀는 여행중에 나기 쉬운 여러가지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재이었고, 그 양변에 싼 찌른 언덕에 있어서 기묘한 백합화가 만발하고 사시청춘이었습니다.
  여게서 두 사람은 목욕도 하고, 생명수도 마시고, 과일도 먹고, 누워서 자기도 하고, 즐거움으로 얼마나 기쁨으로 지나면서 노래를 부르니,
  생명강수 맑은물에 놀다가세 우리행인
  기화요초 만발하여 나의마음 즐겁도다
  생명과와 생명수로 피곤한몸 새힘주네
  천성복락 받는자가 오직우리 뿐이런가
  이는 우리 신도들이 때를 따라 일년에 수차씩 부흥 사경 열어 놓고 은혜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흥 성회중에서 굶주렸던 심령이 진리의 생명과로 배불러 만족하고, 목이 갈한 심령들은 강과 같이 흐르는 생명수로 해갈을 얻으며, 병들엇던 영육이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는 주의 말씀으로 치료를 받으며, 여러가지 시련으로 시달려 피곤하던 심령들이 방초동산 잔잔한 물가에서 안식을 얻음은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이 선한 목자가 되시고,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그 눈에서는 눈물을 다 씻어주시는 하늘의 은총을 지금도 맛보게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이 복을 받는 그 원인과 비결은 성신이 내게 계심이라
  그러나 이곳이 늘 있을 곳은 아닙니다. 다시 더나야 합니다. 변화산상의 베드로처럼 물질 장막 셋을 만들어 놓고 영계의 인물들을 머물게 하려는, 썩을 은혜 도취하야 자기 중심주의로 나가는 세 제자처럼 되지 말라구요.
  우리가 여간한 은혜 자족하야 은혜 뒤끝에 실패하기가 쉬운 것이랍니다.
  다음에는 두 사람의 하회를 보세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립니다.
  우리 주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여러분 가정 위에 항상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5]
  여러분 주님 안에서 안녕하셨습니까.
  전번에 재산의 데마의 유혹을 받았으나 기독도와  미도는 물질의 유혹을 승리하
고 생명강에서 안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강을  떠난 저희들은 쉬었다 갈
래니깐 다리가 더 아프고 피곤하고 생명강 생각만 납니다.
  그래서 좀 쉬운  길을 찾아서 노방원이란 언덕에 올라가 보니,  가히 좋은 사도
의 초장, 사사로운 풀밭, 사도(私道)의 풀밭이 있었습니다.
  미도는 이  길이 정도 같지 않다고  하니, 기독도는 관계없다고  하면서 자기만
따라오라고 합니다.  이거야말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지요. 그 앞에  또
한 사람이 마침 가는데, 이름은 자신, 스스로  자(自)자, 믿을 신(信)자, 자신(自
信)이라 합니다. 이  길이 천성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물론  그렇다 하면서 자기
만 따라오라고 합니다.  조금 가다가 날은 저물고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데
서 꾸르럭 소리만 나는데, 아마 자기만 옳다고 하는 구렁이에 빠진 모양이요.
  그제야 두 사람은  길 잘못 든 것인 줄 알고  돌아서니, 캄캄하고 풍우대작하고
천둥번개하며 창수가 나서  참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찌 할 줄을  몰라 헤메다가
남의 의심의 울타리, 의책(疑柵)이라는 울타리의  그늘에서 비를 피하고 앉았다가
피곤한 중에 둘이 다 잠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잠든 곳에서 멀지 않게 의혹성(疑惑城)이란 곳이  있지요. 그 주인은 절
망(絶望)이란 자인데, 장대한 자인데, 저가 일찌기  아침에 산보하다가 두 사람이
의책(疑柵)이라는 울타리에서 자는  것을 보고, 자기 지경에서 잠잔다고  크게 소
리하야 깨와 가라대 "너희는 어떤 놈들인데 우리  지경에 와서 잠을 자느냐"고 합
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되 "우리는 천성 가는  사람인데, 길을 잘못 들어  여기 있노
라"고 했소.
  절망은 "너희가 밤중에 내 지경을 범하였으니, 내게  죄를 지은 자이니 한 가지
로 가자"하고 두  사람을 잡아 끌고 나갑니다.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끌리워 갑니다. 절망이  한없이 때리고 절망옥(絶望獄)에다 가두니 그  속은 캄캄
하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 곳은 자살한  자가 많은 곳이예요. 거기서 수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밤까지 구류가 되어 한 조각 떡이나  한 방울 물도 주지 않는 적
막한 곳이요.
  기독도가 더욱 한탄하는 것은 자기의 경솔한  탓으로 미도까지 고생시키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래도 미도는 원망하지 않고 기독도를 위로합니다.  "이와 같이 고생하는 것이
오히려 굴러서 복이 될런지 누가 알겠습니까, 마음을 진정하라"고 합니다.
  방초동산 우거진곳 다리저는 사람들아
  무슨일로 실족하여 저지경이 되단말가
  정로버린 사람들은 저와같이 될것이니
  괴로우나 즐거우나 바른길로 용진하라
  은혜의 생명강을 지나  사도의 초장에서의 고생, 부흥회 뒤끝에서  방심하면 시
험받기 쉬운 것이랍니다.
  어느 교회 부흥회 후에 그 신자들은 잠깐  대녀간 부흥사만 사모하고 자기 교회
목사 배척운동이 일어났어요. 설교가 재미 없다는 둥  목회를 잘못한다는 둥 불평
불만으로 교회 파동을 일으키다가 자기 장래 신세를  망치는 자들을 종종 보게 됩
니다. 부흥사가 부흥회  잘못 시키면 신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자기
께로 인도하는  절도요 강도가 되기 쉽고,  신자들이 은혜를 잘못  받으면 더욱더
교만해지고 자만하여져서 자기의  고집과 자기의 자만으로 불순종의  사도의 초장
을 걷다가 절망옥에 빠지기 쉬운 것이랍니다.
  부흥사경이나 수양회에 참석한 것은 마치 환갑집에 가서  한밥 잘 얻어 먹는 것
과 같은데, 제 집에  와서 환갑잔치 생각만 하고 자기 집 밥맛 없다고  굶으면 자
기 혼자 배고플 것 아니요.
  그리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정도로 가야지, 사도의 초장을 가다가는  봉변을 당
하는 것이요.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것을 다시스로 가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이요, 우
리가 무슨 환란 질고에  들게 되면 먼저 사도의 초장의 걸음은  없는가 하고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하나님의  시련이요, 공중
에 부는 바람은 마귀의 시험이요, 지상의 창수는  세상과 인간의 시험을 가르칩니
다. 이 시험이  부닥칠 때에 반석위에 지은 집은 꾸준히  승리하려니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이런 때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요.
  당신들의 신앙은  반석위의 집입니까? 모래위의 집입니까?  알곡입니까? 쭉쟁이
입니까?
  그 절망의 아내는  불신이, 아니 불(不)자, 믿을 신(信)자,  불신(不信)이 마누
라, 두  부처(夫妻)는 날마다 때리고,  자살을 권고하고, 위협을 합니다.  그래서
기독도는 견디다 못해서 토요일날 밤에는 칼을 뽑아서 자살을 할랴고 합니다.
  미도가 그걸 보고,   형님 이거 웬일이오? ,  나 죽을께 ,  남  죽이나 저 죽이
나 살인은 마찬가진 줄 모릅니까? , 기독도는  우리가  이 고생하는 것이 죽은 것
만 못하니 죽어  땅속에 묻히는 것이 절망옥에 있는 것보다  낫다 고 같이 자살하
자고 합니다.
  미도 가라대  우리가 눈앞에 어려운 것만 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
시다. 노에 이전에 그렇게 매우 담대하더니 그제  용기 다 어디 갔소, 아볼루온과
싸우던 용기, 사음의 골짜기 지나가던 담력, 허화시에서  참던 그 인내가 지금 다
어찌 됐습니까? 이제 자살이란 말이 됩니까? 우리  기도합시다. 기도하지 않고 공
연히 걱정과 근심만 하였소  하고 두 사람은 밤새 철야 기도를 했답니다. 
  절망이 아내  불신이란 마누라가  여보 녕감,  내일은 일찌기 고 두  놈을 끌고
나가 때려 죽입시다.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는거요,  혹 누가 놓아 주기를 바라
든지, 혹 열쇠가 있는지 모르겠소
  절망이  아 그말 옳지, 내일은 그 몸을 뒤져 봐야지 
  그런데 그 밤중에  두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결사적으로  하더니, 기독도
가 홀연히 놀라 깬 사람과 같이  이것 보세요,  내가 자유로 걸어 다닐 만한 이때
에 있어서 이렇게 고통의 자리에 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가 없소  하
면서 그 품에서  열쇠를 꺼냈답니다. 그 한편은 약속의 열쇠요,  한편에는 희망의
열쇠,  이전에 은인을 만나서 받아 둔 열쇠인데,  아무런 문이라도 열면 열린다고
하는데, 내가 깜짝  잊었구료  하니, 미도는 천만다행이라고 하면서  빨리 시험해
보자 하고 열어 보니, 째깍째깍 다 열립니다. 그날 아침은 주일날 새벽이예요.
  이때에 옥문 열리는 소리가 덜컹 나니, 절망이  부부는  아! 이놈들 달아나는구
나  하고 따라 나옵니다.
  그러나 절망이가 밤에는 힘을 쓰지만 햇빛만  비치면 양각풍경련증이 나서 꼼짝
못하고 푸들푸들 떨다가 나가 자빠러지고 맙니다. 주일날 아침이예요.
  사셨네 사셨네 예수다시  사셨네 주님의 부활의 생명이 절망의 옥에  갇힌 자에
게 새소망과 새힘이 되는 것이외다. 그들을 위하야 노래를 부르면서 나오는데,
  천국가는 행인들아 왼편길로 들지마소
  무지하다 저절망이 가두와서 죽이려네
  불행중에 다행이라 구사일생 하였구나
  후세사람 경계코저 이돌비를 세우노라

  악마도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실망케 합니다.  의심과 불신앙으로 우리를 가두
어 죽이려 합니다.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고 실망은 마귀가 주는  것이요, 소망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실망은 우리에게 죽음을 줍니다.  실망은 대적의 기세를 높
여 주고 소망은 난관을 극복시키는 것이랍니다.
  어떤 사람이 마귀 전람회를 갔더니 모든  죄악을 써붙였는데, 우상죄는 얼마요,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죄, 거짓말죄, 각색 죄악의 정가를  붙였는데, 그 중에 가
장 고가로 팔리는  것이 실망이란 방맹이랍니다. 그래서 전람회장  마귀에게 묻기
를,  살인죄, 도적질죄, 더 많은 죄보다도 절망의  방맹이가, 실망의 방맹이가 제
일 고가로 붙은건 무슨 연고뇨?  하니, 마귀  대답이  그거 무르느냐? 사람놈들을
가장 망하게 하는 것은 이 방맹이라 고 했답니다.
   옛날 가룟 유다도 이 방맹이에 맞아 자기  선생 팔아 먹고 자살했으며, 사울왕
도 이  방맹이로 망하고,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하던 항우도 이  방맹이에
맞아 오강변에서  자살을 하고, 유력한  정치가, 유력한 사업가, 유망한  문학가,
유망한 청년 남녀들이 이 실망의 방맹이로 다 망한다 고 했답니다.
  그런고로 실망하지 마라, 낙망하지 마라,  실망은 금물이외다. 질병중에도 실망
하면 병세가 더하여집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河川豊源)씨는 폐병으로 위지사경이었으나  신앙과 소
망으로 이적적으로 회생하야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동네 이  갑득이란 청년은
열 야들살  나서 중학교 삼학년에 그만  문둥병이 들려서 온 가족이  실망에 빠질
때에 갑득이는 하나님께  기도나 실컷하고 죽겠다고 그날 밤 산으로  가서는 밤새
와 기도하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소래가 있어  죽어도  영생이다  하는 음성을 듣
고 기쁨이 충만하여 한바탕 춤을 추고 내려  왔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신유
의 이적으로 그 병은 물러가고 지금 사남매를  두고 전도사의 일을 충성되이 보고
있는 실물 교훈이 있답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말로는 유신론을 주창하면서도  실제 생활을 보면은 참으로  가련하게도 하나님
없는 것과 같은 생활은 아닙니까? 무슨 걱정이요,  무슨 근심입니까? 무슨 고통이
요, 무슨 염려로  실망을 할까요?  오직 내가 항상 바라고  내가 주님께 찬송하기
를 더하고  더하리라, 오직 나는  여호와를 앙망하리니,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을
바라노니 나의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들으시리라, 내가 비록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지라
  소망중에 즐거워 합시다.
  절망옥을 벗어난 두 사람은 대변에 환락산에,  즐거울 환(歡)자, 즐거울 락(樂)
자, 환락산(歡樂山)에 이르렀습니다.  이 산은 임마누엘 산, 향기로운  꽃과 아름
다운 나무와 정결한  시냇가, 참말 한폭의 그림과 같이 가위  별유천지요, 비인간
이라, 여기서  목욕도 하고, 목 마르면  물도 마시고, 시장하면  과실도 마음대로
따먹고, 자유로운 곳 문자 그대로 즐거운 곳이랍니다.
  옳아요, 절망을 지나 낙산이 오는 것은  천리원칙입니다. 고통은 즐거운데 근본
이지요, 십자가 후에는  부활의 승리,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
이 옵니다. 적은  고통에는 적은 기쁨이 있고, 큰 고통에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한  대로 족한 은헤 주십니다. 인자의 날은  해산하는 수고와 같다고
하였지요. 애기 어머니가 해산할 때는 죽는 고통이  있으나, 아이만 나면, 출생하
면 기르는 그 재미, 즐거움을 해산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지 못할 거예요.
  지금은 세계적 고통, 세계적 절망이외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적 환락산의 기쁨
이 우리 앞에 전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즐거워할 것입니다.
  왜정시대에 삼십 육년간  고통중에도, 특히 구년간 전쟁중에 받은 그  고통, 경
제적으로 사상적으로 말 한마디도 자유가 없고, 자녀를  뺏기고, 성을 갈고, 숫가
락까지 뺏기고, 밤낮 방공연습 하느라고 떠들 적에  나는 돌아 대니며, 국내 국외
로 방방곡곡에서 지금은  해산하는 수고라고, 잠깐만 참으면 애기  낳는다고 부르
짖었습니다. 과연 일천구백 사십오년 팔월 십오일에 조선  독립만세 부를 때에 그
기쁨이 어떠 했습니까? 참으로 고통후에는 해산의  즐거움을 봅니다. 하늘 나라는
가까왔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전개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벗어나 광명한
세계로 빨리 나갑시다.
  오늘은 이만침 하겠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16]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나간 동안에 십오회에,  기독도가 장망성 떠나 좁은 문까지, 좁은  문에서 떠
나 미궁까지,  미궁에서 떠나 허화시까지,  허화시에서 떠나 환락산까지 온  것을
강화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환락산에서 천성까지 마지막 대지를 몇 회 하게 될 것입니다.
  낙산에는 양치는  목자들이 있어요. 이름은 지식(知識)이,  경건(敬虔)이, 근수
(謹守), 성실(誠實)입니다. 목자들은  하얀 양떼들을 푸른 방초  동산으로 잔잔한
물가으로 인도합니다. 그 목자들과 교제하며 지나온 모든  보고를 하고 많은 교훈
을 얻었지요. 그리고  그들의 장막에서 잘 대접을 받고 하룻밤  편안히 쉬고 이튿
날 아침 목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이단이라는 봉우리에 올라가  그 아래를 내
려다 본즉 그 밑에는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사람의 시체가 많아요.
  기독도 그것을  보고 "왠 해골이냐"고  하니, "그것은 순복음을 떠나서  이단의
교리에 떨어져서 저  모냥이니 너무 높이 올라갈려는 자와 이단산에  가까이 갈려
는 사람들은 저 해골을 보고 정신 채리라고 합니다"
  말세에는 미혹하는  세력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고  갑니
다. 항상 겸손하고 이단자를 멀리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다음에는 경계산(警戒山)이라는 산에 올라가서 보니 거기는  어떤 무덤 속에 소
경들이 굴러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의혹성(疑惑城)에, 의심 의(疑)
자, 혹할 혹(惑)자,  의혹성(疑惑城)에 절망에게 잽혀 두 눈을 빼이고  그 무덤에
던져 둔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도와 미도는 자기들의 지난 일을 생각할 때에 소름이 끼칩니다.
  다시 한 곳에 이르니 산 옆에는 한 문이 있어요.  문을 열고 들여다 보니 그 속
은 매우 캄캄하고 연기가 자욱한데, 신음고통하는  소리가 들리고, 유황불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지옥 구경을 시켜 주었어요.
  마지막 한 곳을 더 구경시키는데, 청경이란 높은  산으로, 청경(淸境), 맑을 청
(淸)자, 지경 경(境)자, 청경(淸境)이란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목자들이 망원경
을 주면서 저 건너편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대로  하였으나 전에 구경하던 너무
놀라고 무서웠던  것을 생각하야 손이  떨려서 자세히는 보지는 못하고  천성문과
약간의 영광만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목자들의 친절한 교훈으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상당한 높은 은혜의  경험을 가리킨 것입니다. 은혜의  고봉(高
峯)에 올라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목자의 자격에 도달한 것이요. 
  목자들의 이름이 지식(知識)이, 경험(經驗)이,  근수(謹守), 성실(誠實)인 만큼
진리에 풍부한 지식과 신앙의 모든 경험, 회개와  중생의 경험이 있고, 성결의 경
험이 있으며,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체험하는  사실을 하나하나
체득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삼가 지켜 법도대로 행하며  주님을 봉사
하고 교회의 맡은  사명에 충성되이 봉사하는 참된 목사와 거룩한  장로격을 이룬
자입니다.
  이단봉에 올라 이단과 사설을 분별하여 악한  사람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스사로
사도라 하되 아닌 자를 시험하야 그 허황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요. 경계산봉에서
의혹성으로 들어가는 순례자들을 경고하는 파숫꾼의  직책을 하는 자들이며, 청경
에 올라  바라보는 천성의 그리운 열정이  점점 더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절제를 더하
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절제에 형제 화목을 더하고, 형제  화목에 사랑을 더
하며 하나님의 품성과 그리스도의 분량에 향상을 더하는 귀한 존재들이지요.
  목자들에 대한 노래가 있어요.
  낙산청경 깊은곳에 양먹이는 저목자야
  녯적일을 거울삼아 오는사람 가르치네
  장래평안 얻으려면 저를따라 본을삼고
  지식경험 근수성실 네생활에 장식하라

  다음에는 낙산에서 많은  은혜를 받은 두 행인은 발정(發程)을 할새  양치는 목
자들이 전송을 하면서 한 목자가 노정기를 적어  주고 또 한 사람은 자만(自慢)땅
에서 간사한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고, 셋째 목자는 미지 땅에서  행여 자지 말라
고 하고, 넷째 목자는 편안히 가라고 축복하여 줍니다.
  낙산을 지나 자만(自慢)이라는  땅에 이르러 보니 별별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무지(無知), 없을 무(無)자,  알 지(知)자, 무지(無知), 배도, 도를  배반하는 배
도(背道), 소신이, 조금 믿는 소신(小信)이, 목무천이,  눈에 하늘이 없다는 목무
천(目無天)이, 흑한자(黑漢子), 껌둥이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인생 노년의  시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생 일생은  사시절이니, 청
소년은 양춘가절(陽春佳節)이요,  혈기방장 장년은 근로의  하절(夏節)이요, 사오
십의 중년은  수확의 추절(秋節)이며,  백발노년은 설한(雪寒)의  엄동(嚴冬)입니
다. 인생 사시절(人生四時節) 노래가 있답니다.
  이팔청춘 소년들아 희망의 양춘이 왔으니
  좋은시절 허송말고 조물주를 기억해
  네일생을 주께바쳐 향기롭게 살아라
  생명새벽 어릴때가 살과같이 지낸다

  혈기방장 장년들아 근로의 하절이 왔구나
  땀흘리며 애를쓰는 그대사업 어떤가
  예수없는 그사업은 성공같애 실패라
  예수위한 수고밖엔 영원한것 없구나

  사오십의 중년들아 수확의 추절이 왔구나
  알곡이냐 쭉쟁이냐 심판날이 가깝다
  선한행실 천국복락 악한행실 지옥은
  금생내세 따라오는 천리원칙 이로다

  백발노인 불호들아 엄동의 설한이 왔어요
  일생향락 좋다해도 바람잡이 뿐이요
  험한세월 고난풍파 일장춘몽 이로다
  예수생명 소유한자 영원무궁 살리라

  기독도 순례자의 노선을 구분하면,
  장망성(將亡城)을 떠나 좁은 문은 유년시절(幼年時節)이요,
  좁은 문 지나 미궁(美宮)까지는 청년시절(靑年時節)이요,
  미궁 떠나 허화시(虛華市) 지나 낙산(樂山)까지는 중년시절이요,
  낙산 지나 천성까지는 노년(老年)의 태도로 생각하야 좋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노년은 위기입니다. 말년에 잘 깨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와 같이 처음 사랑을 버리기 쉽고,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스사로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자기의 곤고
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이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아지 못하는 자만 땅의 실패자
들이 많은 것이예요. 자만 땅에서 된 일을 자세히 보세요.
  첫째는, 무지의 자만, 무지란 자를 만났습니다. 정로로  오지 않고 꾸부러진 길
로 오며, 구원의 증표도 없이, 갈아 닙은 옷도  없이, 기독도와 미도의 충고도 듣
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 아무리 진리를  말하여 주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되지
못하고 된 체 하고,  알지 못하고 아는 체 하고, 스사로 쇡이는 자,  총명이 어둡
고 저희 마음이 완고하야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한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
신 생명을 끊어  버렸습니다. 네가 아무리 천성으로 간다 하나  빙거할 문건이 없
으니 장차 도적같이 취급을 받으리라.
  무지는 내가 주의 말씀을  다 알고, 항상 착한 일만 하고,  사람을 해롭게 하지
않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빈궁한 사람을 구제 잘 하고, 십일조  잘 하고, 교회
일 잘 도와 주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무지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무지하다 저인생아 제가저를 속였도다
  정도밖에 또있는가 어둔맘을 없이하소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대영혼 심판날에
  슬피울고 이를가나 후회막급 하리로다
  무지는 마지막 천성 문에까지 가서도 들어가지를  못하고 지옥에 들어가고 말았
답니다.
  현대 교회에 무지한 신자가 얼마나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댐에 둘째는, 배도의  형벌, 좀더 나아가다가 일곱 마귀가 사슬에  결박을 당
하야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을 보았어요. 미도는 무서움을 견디지  못하야 기독
도가 자세히 보니,  기신촌(棄信村), 믿음을 버린 기신촌에  사는 배도(背道)라는
자가 도둑질  하다가 잽힌 것같이 고개를  숙이고 사람 보기를  부끄러워 합니다.
그 잔등에는 글자를 썼는데, "이 사람의 이름은  신자라 하나 실상은 음란하고 악
하야 도를 배반하고 영원히 형벌을 받을 자"라고 하였소.
  아! 두려운 일입니다.  무릇 빛에 비취임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또
한 성신의  일체를 얻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권능을  맛보고 배도하는
자는 다시 새롭게 하야 회개할 수가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
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속된  물건으로 여기고, 또한 은혜 베푸는 성신에게  욕되게 하는 자
의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나뇨. 너희는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황해도 어떤 교회에 두 청년이 한날 한시에  예수 믿고, 한날 한시에 세례받고,
또한 집사를 거쳐 한날  한시에 장로 장립받아 한 사람은 김 장로, 한  사람은 홍
장로, 그 교회에 '야긴'과 '보아스' 같은 두  기둥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산도 유여하게 되고,  세상에서 명망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홍 장로는  아조 헌
신의 사명으로 신학 공부를 가고, 김 장로는  혼자서 교회를 잘 봉사하였지요. 그
러나 수년 후에 홍  장로가 여름 방학에 와보니 김 장로가  타락하여 교회를 나오
지 않습니다. 심방을  갔더니 빙글빙글 웃으면서 "동생도 내 사정  잘 알지? 사십
이 넘도록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으니  삼천가지 죄악 중에  무희재라 하였는데,
아무리 예수  믿어도 자손 하나 보아야  하겠는고로 소실 하나  두었네. 하나님도
내 사정 잘 아실거야, 아브람도 첩 두고, 다윗도  그리하고, 성경에 그런 사람 얼
마나 많은가?  내 작은 마누라도 잉태한지  오개월일세 이제 아들  하나만 생기면
첩을 내보내고 그때는 더 잘 믿을 작정일쎄" 합니다.
  홍 장로는 어이가 없어 "형님, 망령들었구려 하나님이  주지 않는 아들 당신 수
단으로 해서 잘 될 줄 아시요? 그렇게 가난하고  못난 우리들을 주 안에서 이만큼
축복하였는데, 배은망덕도 분수가 있지요. 주님이  슬퍼합니다. 속히 회개하라"고
경고하고 떠났습니다.
  수년후입니다. 그때 홍  장로를 작별하고 나서 그 소실은 좋은  아들을 하나 낳
아서 온 집안과 일가친척까지도 다 즐거워하고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서 '금
자동아, 옥자동아'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답니다. 그러나 하날의 생벼락으
로 귀여운 아들은 세 살 나서 제구실하다 그만  딸깍 죽어 버렸답니다. 김 장로는
기가 맥혀서 죽은 아이를 부둥켜 안고 삼일간을  먹지 못하고 밤낮 울다가 생명지
통이라고 눈이 멀고  말았다는 것이요. 그래서 홍 목사는 "형님  이제라도 회개하
시요, 사울이 눈 멀었다가  회개하고 눈 떴습니다. 만일 눈이 못  떠도 영혼이 구
원받아야 합니다" 김 장로는 아무리 해도 회개가 안  된다고 하더니 그 후에 물에
빠져 자살하고 그의 늙은 어머니는 목매 자결했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배도의 종말은 멸망입니다.  배도한다고 다 즉시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  이따만큼 그렇게 견본을 보여 줍니다. 죄가  금방 드러나서 심
판을 받는 것도 있고, 뒤로 따라오는 죄도 있다고 하였소.
  악한 자는 자기의 죄악에 걸려 그 죄의 줄에  결박한 바 되어 저가 교훈이 없어
죽고 미련함이 많으므로 버린바 되느니라.
  기독도가 이 배교자를 보고 그 근처에 사는 소신,  쪼끔 믿는 소신의 당한 일이
생각나서 미도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성실촌(誠實村)에  사는 소신이가 사망 어귀
문에서 졸다가  탈취(奪取), 의심이, 죄과(罪果)란  강도를 만나 물건을 다  뺏기
고, 죄과라는  자에게 큰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위지사경이 될  때에 독신(篤信)
땅에 사는 대은(大恩)이의 구조를 받아 생명에는 관계가  없고, 증표도 뺏기지 않
고, 제일  귀한 보화도 이상하게 주님의  도우심으로 잃지 않았으나  그래도 항상
감사할 줄 알지 못하고, 물질을 잃은 것을 종종  생각하고 때로 속이 답답하야 기
쁨없이 겨우 빌어 먹으면서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주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위에 항상 풍성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7]
  여러분 주님 안에서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계속해서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환락산의  목자들을 만나서 많은  교훈을 받고, 경고를 받고,  천성도
바라보고, 앞길에 주의할 노정기를 얻어가지고 자만  땅에서 무지를 만나고, 배도
를 보아 경고를 받고, 적게 믿는 소신앙의  봉변 가련한 상태를 보았습니다. 소신
앙, 조끔 믿는 소신앙(小信仰), 
  신앙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어떤 분은 말하였지요.
  곧 불신앙, 소신앙, 대신앙,
  불신앙은 마태 17장 17절에 "믿지 않는  패역한 세대여"하고 주님이 통탄하였지
요. 불신앙은 패역이요, 패역(悖逆)이란 글자는  꺼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신
앙의 생활은  모두가 꺼꾸로요, 보는 것도  꺼꾸리, 듣는 것도  꺼꾸리, 생각하는
것도 꺼꾸리, 생각하는  것도 꺼꾸리, 말하는 것도 꺼꾸리, 계획하는  것도, 일하
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실패요, 행복이라는 것이  불행으로 되어 버립니다. 사람
의 생각에는 바르다고 하나 필경은 죽는 것이 됩니다.
  소신앙, 우리가 물론  불신앙은 면하였으나, 소신앙자가 되기 쉬운  것이요. 그
래서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하여 소신을  책망하였습니다.  적게 믿는 자여  왜
염려하느냐 . 적게 믿는 자는 항상 염려가 많은  것이요,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
까, 무얼 마실까, 공중에 나는 새는 먹을 것  걱정하지 않건만은, 들에 피는 백합
화는 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옷보다도 더  아름다웠건마
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참말로 거지 생활  같지
않습니까? 두구도  가난뱅이 생활이  소신자입니다. 너희들이 염려함으로  생명을
일각이나 더하겠느냐,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릴지어다. 또한  적게 믿는
자여 왜 두려워하느냐. 세상을 두려워하고  마귀를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합니다.  비열한 자가 됩니다. 두려워
하는 자는 유황불  붙는 구렁텅이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비방받
는 것 두려워하지  말아요. 제자가 선생보다 낫지 못하고 종이  상전보다 낫지 못
하나니 우리의 선생이요  주님을 바알세붑이 들렸다고 하였으니  하물며 우리들이
랴. 몸은  죽여도 녕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구요.  왜? 우리의
머리털도 다 헤시고  우리의 만단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매  아무 두
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날, 군인이  결혼식을 해가지고 신혼여행에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일
어나서 배가 파선할  지경이요. 신부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남편을  부여잡고 애걸
합니다. 남편은 왜  이 야단이냐고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지요. 그  부인은 무정한
남편이라고 속으로 원망하고  대단히 불쾌한 중에 다행히 그 배는  무사히 건너갔
답니다. 그 아내는  무정한 남편을 탄핵하니 그 남편은 대노하야  검을 뽑아서 아
내의 목에다 들여대고 죽여 버린다고 야단이요. 아내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태연
자약하고 웃습니다. 남편은  이 칼이 무섭지 않느냐고 말하니, 그  아내는 말하기
를 "무섭기는 무에 무서워요", "어째서 안 무서워",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있는
칼이 무에 무서워요 , 그  남편은 "여보, 내 손의 칼도 아니  무서워하면서 이 바
다와 풍랑이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무어이 그리  무서워 야단
이요  할  때에  아! 참말그렇지요, 오!  주여! 나의 믿음의 부족함을  도와 주소
서, 내가 믿는 대도 가짜야, 가짜야 하고 통탄했답니다.  소신자는, 조금 믿는 소
신자는 의심이 많아요.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 포도원을 허는 여우새끼
를 잡아라 의심의  여우, 성경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사람을 의심하는
소신자는 의심의 강도에게 모든 것을 뺏겼답니다.
  소신자는 깨닫지를 못해요.  적게 믿는 자여, 너희가 아직도  째닫지 못하느냐.
영성의 감각이 둔합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매를 맞아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바리새  교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삼가라 하시니  떡 부스래
기 아니 가져  왔다고 말씀하신다고 오해하였고, 니고데모는 중생의  도리를 깨닫
지 못하야 사람이 늙으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되느냐 하고 어리
석은 말을 하고, 사마리아  여인은 생수 설교를 듣고는 그 물을 먹고 물  길러 대
니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독신 땅의 대은이가 대단히 그립습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내가 진실로  네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한번도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이 소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가 멀리  가지 못하여서 두 갈랫길을 당
하여 주저하다가 때에 마침 어떤 사람이 와서  친절히 인사하고 자기가 길 안내한
다고 얼른거리면서 데리고 갑니다. 두 사람은  좋아서 따라가다가 그만 흑한자(黑
漢者)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그 흑한자는 흰 옷을 벗어 던지고  웃으면서 달아나
는 것을 보니 속에는 껌둥이예요. 게서 그 놈의 이름이 흑한자요
  그제야 두 사람은  낙산에서 목자들의 부탁한 간사한 사람을 조심하라  하는 말
씀을 잊어버리고 봉변당함을 원통히 녀겼습니다.
  이 그물은  무슨 그물인가요. 잠언 29장  5절을 보세요. 그  이웃에게 아첨하는
자는 그 발  앞에 그물을 침이니라. 옳아요.  자만 땅에는 흑한자, 겉  다르고 속
다른 아첨하는 그물을  삼가야 합니다. 목사님, 장로님, 선생님, 존장님  같은 이
야 어디 있나요. 참 훌륭하십니다. 참 설교 잘  하십니다. 참 은혜 많이 받았습니
다. 꼭 천사  같아요 하면서 추어 주면 천만의 말씀이요  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
히 좋아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그물 속에 생겼어요. 잘못했어도  잘했다면 좋아하고, 잘못 생겼
어도 잘 생겼다면  좋아합니다. 자기 아이가 잘못 생겼어도 잘  생겼대면 얼른 나
가서 종자 암탉 쌂아 멕일려고 야단이지, 그러니  뒤에는 숭보고 욕하면서도 앞에
가서는 얼름거리는 흑한자가 되기 쉽고, 흑한자에게  속기도 쉬운 것이예요. 누구
는 말하기를 그 사람 있는 데서는 칭찬을 하지  않고 그 사람 없는 데서는 비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이예요. 쉽고도 어렵지요.
  그때에 광명한  사람이 손에 채찍을 들고  와서 어찌된 연유를  묻고 "아첨하는
스사로 변하야 광명한  천사인 체하는 거짓 사도이다. 간밤에  어디서 유숙하였느
냐"고, "낙산에서 유숙하였나이다",  물으되 "양치는 사람들이 무슨  부탁이 없드
냐"고, "간사한 사람 조심하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면 왜 조심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 말씀은  잊어버리고 흑한자의 말을 들으니 매우 친밀한  듯해서 이렇
게 간사한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광명한 사람이 두 사람을  엎어 놓고 채찍으로
매우 때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야 징계하노니  부대 조심하여 다시  이런 그물에
걸리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놓아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사랑에 감격하야 노래를 하나 부르니,
  노정기를 품에품고 흑한자를 따라가서
  바른길을 저바리고 고난중에 들었더니
  광명하온 저채쭉이 주의사랑 아니련가
  간사한자 칭찬보다 성도충고 잘받아라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하게 녀기지  말며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라
대개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 기뻐하는 아들을 채찍질하시느니라
  광명한 자의  채찍은 귀한 것이예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은 한  가지를 얻게
하시려고 사랑하는 자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그  채찍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한
징계의 채쯕, 혹  질병, 재패, 수욕, 각양의 환란고통을 당하는  것이요. 눈이 밝
은 사람은 이  채찍을 잘 보는 것이요.  발람이는 가지 못할 길을  가다가 천사의
칼이 앞을 막아 당나귀를 보았건만은 바람은 돈에  눈이 어두워서 그냥 가려고 하
다가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답니다.
  목이 곧은 사람은  자조자조 책망을 받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요. 지혜
로운 자는 무슨 뜨끔한 일을 당하면 속히 잘 깨닫는 것이요.
  질병은 제  이의 하나님의 음성입니다.진실로  하나님은 한번 두번  말씀하시나
사람이 깨닫지를 못합니다.  볼찌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일을  자조자조 하
심은 그 영혼을 구렁텅이에서 돌아오게 하사 생명의 빛을 비취게 하심이니라.
  필자도, 나도  여기서 어려서부터 주를 믿는다  하나 수박 겉핥기로  참 진리를
모르고, 열 야들살 나서는 아주 타락해서 사년간  부랑생활을 하였으나 스물 한살
날 때 중한 병마에 걸려서 삼년간 무서운  채찍을 맞고서야 회개하고 그물을 벗어
서 삼십 팔년간 신앙생활에, 삼십년간 교역생활에,  때때로 채찍으로 징계하야 거
룩함에 장성하게  하는 은혜를 체험하는 재미는  받은 자 외에는 알  자가 없습니
다. 눈이 밝아서 하나님의 칼날과 채찍을 보아라.
  그물을 벗어난  저희는 떠나가다가 본즉  어떤 사람이 시온을 등지고  돌아오는
모양입니다. 그는 점점  가까이 와서 만나본즉 목무천이, 눈에 하늘이  없다는 목
무천(目無天)이라는 자입니다.
  기독도와 미도를 보고 어디를 가느냐고 묻습니다. 두  사람은 천성 시온으로 간
다고 했드니,  목무천은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합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웃느냐
했드니, "그대들이 어림없는 노릇 하는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내
고향에 있을 때에 지금 그대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을 듣고 그 성을 찾아 보랴
고 이리 저리 얼마나  이십 년 동안이나 두루 헤메었으나 아무  것도 만나지 못했
노라고, 그것을 사모해서  세상의 쾌락 다 버리고 고향을 이처럼  멀리 찾아 왔으
니 어찌 부족타 하겠소. 아무리 찾으려 하나  찾지 못하겠는고로 이제라도 고향으
로 돌아가서 세상 행복을 누리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독도는 그 말을 듣고 미도다러 "동생, 그  말이 그럴 듯하다"고 하니, 미도는
펄쩍 뛰면서 "형님,  거 웬 말이요, 조심하시요, 전번에도 간사한  사람에게 속아
서 봉변을 당하고 또한 생각을 못할 이치가  있겠소, 무엇이라고요? 시온 산이 없
다고요? 될  말입니까? 우리가 조끔 전에  낙산에서 천성 문을  보지 못했습니까?
또는 성경에도 분명히 기록되지 않았는가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
에 뵈는 증거가  없어도, 귀에 들리는 증거가 없어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
니까. 자 그대로 갑시다. 채찍을 가진 이가  다시 우리에게 올까 대단히 두렵습니
다. 아,  형님이 나를 가르쳐야 하겠는데  내가 도리어 형님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니 어찌 할까요. 하여튼 우리는 저 사람의 말을 듣지 맙시다" 합니다.
  기독도는 그제야 "동생,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우리 믿는 진
리를 의심한 것이 아니요, 그대를 잠깐 시험한  것이요, 다만 당신의 마음에 맺은
정직한 열매를 자아내어  증거하려고 함입니다. 저 사람은 마귀에게  미혹이 되어
소경된 사람으로 압니다.  우리는 다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진리를 쫓
아서는 아무 거짓말도 없음을 아는 터인즉 우리는  단연 이 일로 매진하여야 합니
다. 하늘 위의 새영광을 바라보니 내 마음은 항상 편하고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뵐찌라도 우리는 믿음만 의지하고 걸어가야 합니다.
  귀에는 아무 소래 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우에 굳게 서서  믿음에 서서 힘차
게 걸어가야 합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것과  같이 굳게 믿
고 마음에 의심없이 걸어갈 때에 우리의 믿은 대로 성취되는 것이랍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끊치겠습니다.
  주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여러분 우에 가정에  풍성하시기를 빌어서 마지 않습니
다.

 

 

   [18]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또한 천국가는 길을 계속하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 적게 믿는 소신이의 가련과 흑한자 아첨의  꿈을, 목무천의 늙은이의 시
험을 이겼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건만  육안으로 볼
랴고 감정과 기분에 좌우되는 사람은 참신앙에 서지 못하는 것이요.
  눈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육안(肉眼), 고기 눈, 지안(知眼), 지식의 눈, 영안(靈眼), 신령한 눈입니다.
  육안은 청,  황, 적, 흑, 백을  분별하는 것, 밝고 어두움,  추(醜)와 미(美)를
보는 것이며, 세계만물,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구경하는 것이요.
  지안은 과학을 발명합니다.  에디손은 전기, 왓트는 증기, 라이트  형제는 비행
기, 제노는 우두  발명, 비행기, 모든 발명가들은 지안이 밝아서  보통 사람이 보
지 못하는 것을  보았소. 말세에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더니 지금은  태양, 월세계
까지라도 갈 연구를 한다고 합니다.
  셋째는 영안이 있습니다. 영안이 밝아서 인간은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자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아무리 육안이 밝아도, 지안이 아무리 밝아도  영안이 밝지
못하는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한 것이요.
  영안이 밝아질 때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인생관을 발견하게 되고,  말세를 깨
닫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영계의 일은 우리 정결한 양심으로만  아는 것이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보는 것이 다 달라요.  눈이 보는 것도 있고, 코로 맡아 보는 것도  있고, 귀로
들어 보는 것도 있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도 있고,  발로 가 보는 것도 있고, 혀
로 핥아 보는 것도  있고, 머리로 생각해 보는 것도 있소.  하나님은 우리 마음으
로 봅니다. 양심적으로 살랴고, 도덕적으로 진리대로  살을랴고 하는 사람은 하나
님의 존재가 명명백백하게 되는 것이요. 신앙의 영안이  밝아지는 것이 믿음은 하
나님을 보는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께 가는 발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소래를 듣
는 귀요, 믿음은  하나님을 붙드는 손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혀라
고 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 퇴끼 꼬리만한  적은 지식으로, 대양의 조그만  한
알갱이만한 인간의 지식으로  우주의 대진리가 아니 맞는다고  속단하여 배척하는
인간이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으며, 또한 수십년간 믿는다고  따르다가 그렇게 중
도에 물러가는 가련한 목무천이가 얼마나 많은지요.
  목무천이는 저희를 비웃으면서 제  길로 가고 두 사람은 자만 땅을  다 지나 미
기 땅에 다다랐습니다. 아득할 미(迷)자,  기운 기(氣)자, 미기(迷氣)땅에 다다랐
습니다. 거기는 공기가 이상하야 행인들이 여게 와서는 많이 잠 자는 곳이예요.
  그리하야 미도도 몽롱(朦朧)한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졸음이 어
떻게 오는지 눈을 뜨기가 어려우니 우리 여기 누워서 한잠 자고 가자"고 합니다.
  기독도는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잠이 들면 다시는  깨지 못
합니다. 잠시라도 쉬면  아니 돼요. 낙산의 목자들이 미기 땅에서  졸음을 조심하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성경에도 항상 깨어  있으라고 얼마나 자주자주 부탁을
하셨는가요"
  미도는 "아, 내가 잘못된 줄을 알겠습니다. 내가  여기 혼자 있었드면 잠자다가
망할 뻔 하였소. 지혜  있는 사람의 말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한 것이
참말이지요. 형님과 함께 동행한 것은 나에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기독도는 "우리 피차 좋은 얘기나 하자"고 하고  각각 자기의 지나온 경력을 간
증하야 새정신이 들게 되었소, 노래를 한 절 부르니,
  받은은혜 기억하여 이졸음을 깨와보세
  성신님의 감화함은 그진리가 오묘하다
  미기땅에 지나는객 항상깨어 기도해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네육신이 연약하다

  이곳은 천성 가까운  곳인데, 인생 노년의 시험이 계속됩니다. 육체도  늙고 신
앙연조도 오래게 되면  권태증이 생기고, 자연히 육체가 쇠약하게  되면 늙어지는
핑계로 게을러지고, 따라서 신앙이 침체하여지고,  은혜가 몽롱하여지고, 빼빼 마
른 교리만 붙잡고  있고, 생명 신앙은 고목이 되어 형식과  의식에만 흐르게 되는
것이예요.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와져야 하겠으며, 또한 소
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꼬꾸라지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어
서 독수리 같이 올라가고 사자같이 나아가야  하겠는데, 우리 목사님, 장로님들은
속히 늙어 교회에서는 배척을 받고, 팔팔하는 청년만  교회에서 원하게 됨은 무슨
까닭인고, 외국에서는 연로한 목사일사록 존경과  신임이 두터워서 환영이 많다고
하는데, 외국이나 우리  나라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흰  수염을 날리면서
많은 경험과 고상한 인격에서 뚝뚝 떨어지는 그  진리의 생수가 강과 같이 흐르면
얼마나 좋을 것이요. 우리 목사, 장로들이 케케 묵은  설교, 노루 친 막대기 삼년
우려 먹듯이 밤낮 졸고 있는 상태이니 신자들은 안타까와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큰 원인이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교회
의 잘못이예요. 교회에서는  교역자의 대우가 부족합니다. 물론  연약한 교회에서
식구 많은  교역자를 모실려면 곤란할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에서는
실력이 풍성한데도 불구하고 교역자의 대우가  너무나도 소홀해요. 경제적으로 정
신적으로 너무나 타격이 심합니다. 좀 실례의 말  같지만 교역자를 자기네 머슴으
로 알고 멕이기는 개처럼 멕이고 부리기는 소처럼  부린다는 말과 같이 되니 대단
히 황송한 일이  아닙니까? 청년시절에는 그래도 강끼로 잘  견뎌나가지만 영양부
족으로 차차 육체가 쇠약해져 가고 경제 곤란으로  가정에 여러 가지 염려와 고통
으로 정신이 소모되고 책 한 권 사 볼  여유조차 없어 목사들 서재에를 가보면 때
묻은 한문 주석껀이나 있고, 만국주일공과나 몇권 모아  놓았으니 무슨 새로운 연
구가 있으며 능력 있는 권위적 설교가 있을 것이요.
  외국에는 경제가 유여한 탓이겠지만 교역자는 생활에  대한 염려가 조금도 없고
자녀 교육문제, 기타  모든 문제를 교회에서 책임지고 교회마다  도서실을 만들어
마음대로 들어가 공부하고 기도와 말씀 전하기에만  힘쓰니 날마다 새로와질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너를 영접함은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함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도와  주기를 구함이 아니뇨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열매가 풍성하기를 구함이라고  하였소. 전도자를 대접하는 것은 곧  주를 대접함
으로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유익한 열매임을 알아서 교역자에 대한  개선이 요구
되는 바입니다.
  둘째는 교역 자신의  허물이예요. 그것은 나부터가 공부하기를  싫어합니다. 책
임감이 부족한지, 재주가 없는지 좌우간 향학열이  부족하고 게으른 편이 많아요.
밤낮 아이나 안고 돌아 대니고 낮잠을 잘지언정  심지어 신자 데리고 장기 바둑을
둘지언정 향상 발달을 위하야 새로운 연구와 노력이  부족한 것이요. 서양 격언에
'쓰며는 범이 되고  안 쓰며는 쥐새끼가 된다'는 말이 있어요.  양들을 잘 먹이면
자연히 젖은 잘 나올 터인데, 양은 먹이지 않고  젖만 짜내라고 하니 양들은 그만
병들고 쇠약하여 이리저리  스러지니 가이 없기 그지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생아 너는  예언으로 이스라엘 목자들을 치되  예언하여
목자들에게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들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여 목자
들이 어찌  양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는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으며 그 살진 것을 잡으되 오직  그 양무리들은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연약
한 자를 너희가 강하게  하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지 아니
하고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저
희를 다스렸으니 목자가 없으므로 저희가 흩어지매  모든 들짐생들의 식물이 되어
흩으러지는도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주께 향하는 자
를 위하야 능력을  베푸시는도다 하였습니다. 밤중에 친구들이  찾아오는데, 우리
에게는 아무것도 없으니 떡 세 덩어리를 간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어찌
졸고 있을꼬.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줄로 아는  겸손과 책임감을 지고 깨어 기
도합시다.
  졸음을 깨우는 방법,
  미도와 기독도는 미기 땅의 졸음을 깨우기에 많은  노력을 하는 중에 새 정신이
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소.
  미도의 지나온 구원의 경로를 피차간  장시간 담화하야 간증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은즉 의에 이르고 입으로 증거한즉 구원함에  이르나니라 그때 여호와를 경외하
는 자들이 피차 서로 말하매 여호와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신지라  
  기독도가 미도에게  "당신에게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으니 당신이  지금과 같이
행하는 것은 어떤 동기로 됐습니까?"
  미도 가라대 "나는 그동안 오랫동안 허화시의  물건을 즐거워하고 있었지요. 만
일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 가운데 있었으면 나는 멸망할 뻔  했어요. 마침 형님과
특히 진충 씨의 당한 그 거룩한 일을 보고  듣고 생각하야 나의 일과 마지막은 사
망인 것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순종치  아니하는 자에게 임할 것을  깨달았습니
다. 그래도 즉시 다 회개하지는 못하고 일부러  하나님의 감화를 자조자조 소멸하
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를 재촉케 하심
을 알지 못함이요. 둘째는 죄란 놈이 내 육체에  매우 좋은 쾌감을 주므로 그것을
떠나기 싫어 했음이요. 셋째는 또한 내 친구를  떠날 수 없었음이요. 넷째는 처음
죄를 깨닫던 때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픈  시간이어서 그것을 마음에 기억하기 싫은
까닭이었지요"
  기독도는 말하기를 "그래도 종종 그 죄가 당신의  마음에 떠올라서 괴로움을 주
었겠지요?"
  미도는 "과연 그렇습니다. 내 죄가 생각나는 때는  길에서 선한 사람을 만날 때
에든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을 듣든지, 몸에 병이 나든지,  이웃 사람의 병들었
단 말을 듣든지,  장례식 소래를 듣든지, 내가 죽을 걸  생각하든지, 어떤 사람이
별안간 죽었단 말을  듣든지, 그 중에도 특히 내가 얼마  아니되어서 심판 자리에
나갈 것을 생각할  때에 내 고통은 심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랴 ' 아무리 해도  내 생활을 고쳐야 할 줄을 알아
죄악된 친구도 거절하고  종교적 본분을 다하야 기도와 성경 읽기와  죄를 통회함
과 이웃에게 전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래도 죄의  고통이 다시 나를 엄습하야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의라는
것은 더러운 옷과 같고, 사람의 율법의 의로서는  의를 얻지 못하고, 아무리 사람
이 주의 명령대로  살았으되 우리가 무익한 종이라고 밖에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의 조금도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의  의를 받지 아니
하면나 자신이나 또한 세상의  모든 의도 나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를
찾았습니다. 오직 그는 천상천하에 오직 한분 주  예수 그리스도뿐 되심을 성서를
통하야 깨닫고 그에게 결사적으로 내 죄를 자복하고  간구했습니다. 주신 모든 귀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였지요. 주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야 오
신 말씀, 그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는 말씀, 우리  죄를 위하야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야 부활하신 말씀, 그는 우리를 사랑하야  그 피로 우리
죄를 씻어 깨끗케 하신  말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의 중보  되신 말씀, 우
리를 위하야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살아계시사 대신 기도하시는 모든  말씀을 그
대로 받아 내 것으로 삼을 때에 나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넘치는 사랑으로  주를 봉사하고, 모든 성도와 교회를 사랑하며  나와 세
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님 한 분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도는 그 간증을  듣고 "참말 확실히 당신 영혼에 주  예수께서 일하시고 계
신 것을 감사하노라"고 하면서 찬송을 하였답니다.  
  죄인괴수 무지한자 예수품에 앤기워
  모든문제 해결되니 나의지혜 주예수
  하나님이 세워노신 그리스도 예수는
  죄인괴수 우리에게 모든것이 되시네
 
  죄인괴수 불의한자 예수품에 앤기워
  공로없이 의인되니 나의의는 주예수
  죄인괴수 불결한자 예수품에 앤기워
  거룩함을 이루었네 나의성결 주예수
 
  죄인괴수 멸망할자 예수품에 앤기워
  속죄부활 완성하니 나의구속 주예수

  오날은 이것으로 끝을 맞습니다.
  삼위의 은총이 여러분 가정에 항상 풍성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9]
  여러분 주님 품안에서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에 미기 땅에서 조는 미도를 깨와서 피차간  신앙 간증으로 정신이 든 것
을 말씀드렸습니다.
  미도와 기독도는 피차 간증 바람에 졸음이 간 곳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신앙이 때를  따라 침체될 때에, 우리의 소망이 흐미해질  때에 과거에 주
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크신 사실과 지나간 경로를  회고해 보는 것이 매우 필요합
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주신  여호와의 말씀에 의를  좇고 여호와를
좇는 너희들은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를 캐낸  바위와 너희를 파낸 웅덩이를 바
라보라고 하였습니다. 캐낸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파낸  웅덩이는 회
개를 가르칩니다.
  녹음방초 우거질 때에 신작로 곧은 길 한참  가다가 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바라
보면 좌우에 가즈런히 서  있는 가로수, 비단 필을 펴 놓는 것 같은  길가는 나그
네의 기분을 도와주고 앞길에 많은 장려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나도 이 글을 쓰
면서 모태로부터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오십년간 지내온 길을 회고할  때에 달고
쓰고, 성공 실패, 행복 불행, 순경 역경,  어느 때나 어디서든지 임마누엘을 찬송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몸 바친지 삼십여년간에도  수양 삼년에,
목회 십년, 순회  이십여년간 전국 각지 방방곡곡 일본, 만주,  해방 전후에 이북
이남에서 전도할 때에  혹은 옥중의 시험, 바다에 위험, 산야의  적막, 병마의 고
통, 기차, 자동차, 마차, 도보로 다닌 집  자최를 돌아볼 때에 아슬아슬한 위험을
돌파하고 만단 통쾌한 사실을 필설로 다 발표할  수 없는 신기오묘한 하나님의 섭
리와 주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예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로라. 오직 그에게 감사할 뿐이고 내  심령은 더욱더욱 긴장하여 갑니다.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킨  바울의 개선가는 얼마나
상쾌한지요. 뒷자최를 돌아보아  앞길에 새출발이요. 회고와 전망은  기독 순례자
의 지팽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교지(狡智)  땅에 사는 잠신에게 대한 계감을 토론하여  졸음을 깨움
에 유익하였습니다. 잠신(暫信)이, 잠깐 믿는 잠신이, 잠신은  진실 땅에 사는 반
구, 반성하는 반구(反舊)라는 사람과 친밀하게 되어 자기  죄도 깨닫고 눈물도 흘
리고 구원얻은 것 같더니, 석신이, 애낄  석(惜)자, 몸 신(身)자, 석신(惜身)이라
는 사람과 사괴어 점점 떨어져 타락한 것이요. 
  그는 왜 그렇게 정로를 버리고 나갔는가? 두  사람은 연구하여 자기들의 신앙을
잘 반성하였습니다.
  미도가 본 잠신의 타락원인은 이런 거예요.
  첫째는, 겉으로는 죄를 깨달았으나 속으로는 죄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으며, 개
가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먹음과 같으며,
  둘째는, 저는 종의 마음을 가져 사람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물에 빠지게 하되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보전함을 얻으리라.
  셋째는, 사람의 치욕과 숭보는 것을 부끄러워함이요.
  넷째로는, 죄란 놈이 얼마나 무섭고 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을 모르는 까닭이랍
니다.
  기독도가 미도의  말을 듣고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감복을 하고,  다시 자기가
본 잠신의 타락한 이유를 부연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생각함이 없음이요.
  둘째는, 죽는 문제와 사후심판을 생각함이 없어짐이요.
  셋째는, 반성이 없고 밀실의 기도와 절제가 없고  게을러지고 근신이 없고 죄를
슬퍼함이 없어졌습니다.
  넷째는, 성도를 멀리 하고 성회에 불참함이요.
  다섯째는, 신자들의 결점과 단점을 얘기하기를 좋아하구요.
  여섯째는, 교제를 불근신하구요. 거룩한 물건을 개에게 던지지 말라고 했는데,
  일곱째는, 말에 불근신함이요. 말을 삼가지 않았어요.
  여덟째는, 적은 죄를 경히 녀김이요.
  아홉째는, 마음이 점점 완악하여 강퍅하여졌습니다.
  잠신의 타락  이유를 두 사람이 연구  발표한 것은 오늘날 우리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의 좌우명을  삼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우리의 전감이 되어  저들의 악한
것을 즐기는 것과 같이 악한 것을 즐기게 말게  함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
을 경히 보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듣는 자로
우리에게 확실히 증거하신  바라고 하였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특별
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았건만 큰 구원을  경히 보다가 광야에서 다 쓰러졌
습니다.
  롯의 아내가  소돔 성에서는 나왔으나 큰  구원을 경히 보다가 소곰  기둥이 된
것을 이미 보지  않았는가요. 이는 다 말세를 당한 신자들을  경계함입니다. 자갈
밭의 잠신이와  같이 일시적 감정 인물,  재형적인 믿음이 되지  말라구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했습
니다.
  두 사람은 미기  땅을 지나 취지 '쁄라'라는 땅에 이르니  즐거운 땅이요, 공기
맑고 시원하매 참을 경치가 찬란하고 아름다운 곳이요.  백화는 만발하고 각종 새
들은 지저귀며 곳곳마다  비둘기 소리 귀에 들리고 일상 낮이요,  밤이 없고 사음
의 땅은 멀어지고  절망이도 손 못대는 의심의 울타리도 없는  곳이요. 천성 지계
가 가까와  빛난 천사들이 내왕을 하고  신랑 신부가 두번 새언약을  맺는 곳입니
다. 하나님이 거룩한  회중을 기뻐하시기를 신랑이 신부를 좋아하듯  하고 포도즙
과 떡이 있고,  길 가는 사람들의 쓸  것이 없는 것이 없는 곳이요.  천당의 소리
있어 가라대 너희를 상  주려 하노니 빨리 오라 그래 사람들이  두 사람을 가르쳐
선민이라고 부릅니다. 점점 나아갈수록 더 즐거운  곳이요. 천성을 바라보니 진주
와 보석으로 꾸몄고,  길거리에는 황금으로 깔았으며, 즐거운 곳이요,  복된 땅입
니다.
  두 사람은 흠모하는 마음이 대발하야 병이 날  지경이요, 차차 마음을 진정하고
가다보니 좋은 과원과 아름다운 화원이 있는데, 동산지기들을  만나 이 동산은 누
구의 동산이냐  하니, 이는 하나님의  동산인데, 천성 순례자들을 위하야  예비한
곳이라 맘대로 와서 즐기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향기로운 꽃동산에서 편히 앉아
서 아름다운  실과로 만족을 하고 피곤한  몸을 드러누워 한참 자고  나니 기분이
매우 상쾌합니다. 때는 금빛 옷입은 태양 빛과 같은  광채나는 얼굴을 한 두 천사
가 두 사람을  마중 나와서 길을 안내합니다. 이곳은 낙원이예요.  개인으로는 은
혜의 경험이 고봉에  달하였고, 거룩할 성(聖)자, 될  화(化)자, 성화지경(聖化之
境)에 이른 곳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있어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의 품성, 그의 정신, 그의 인격에,  그의 분량에까지 화하여지는 생활이
요. 그 몸은 이  땅에 있으나 그 영은 항상 하늘의 생활이요, 거룩한  백성, 성민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이곳은 지상천국이요, 천국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심중천국(心中天國)
  둘째는, 교회천국(敎會天國)
  셋째는, 지상천국(地上天國)
  넷째는, 영생천국(永生天國), 무궁세계(無窮世界)이요.
  좁은 문 지나 십자가 은총은 심중천국이요,
  간난산 지나 미궁은 교회천국이요,
  사음 골짜기 다 지나가고 낙산도 지나가고  사하강(死河江)오기 전에 '쁄라' 취
지는 지상천국이요,
  사하강을 지나 천성은 무궁세계, 영세천국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신랑  예수 재림하사 사탄이를  정복하시고 당신의 신부를 영접하시니  그
때에는 황무지에 장미  꽃이 피고 사막에는 생수가 터지며 거기에는  악한 즘생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곳이요. 질병이나 눈물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  때에는 주의
사명이 완성이  되고 성도가 완성이  되고, 사회가 완성되며, 자연계가  완성되는
것이요. 만물이 이날  오기를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이날  오기를 고대하
야 병이 날 지경이요. 우리가 여기서부터 하늘로부터  오는 집으로 옷입듯 하기를
심히 사모하니 이는 벗지 않고 덧입음으로 주를  만나려 함이외다. 거기는 사람의
수명이 회복되고, 동물성이  회복되고, 식물성이 회복되고, 토지가  회복되고, 거
룩한 교제가 회복되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회복되는 것이랍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그 쾌락 내 쾌락
  이 세상 치운 일기가 화창한 춘일이 됩니다.
  두 사람은 일보 일보 전진하야 천성을 바라보면서  나아갑니다. 멀리 뵈던 천성
문은 한 걸음씩 가까와지고 그립던 새예루살렘은 눈  앞에 찬란합니다. 일각이 여
삼추로 고향 그린  가심을 조리면서 행진하는 앞길에 가로 놓인  하수가 흘러갑니
다. 그 이름은 사하강, 죽을 사(死)자, 물  하(河)자, 사하강(死河江), 천성 갈래
면 누구나 이 강을 건너지 않고는 무가내하(無可乃何)요,  물은 깊고 다리는 없고
또한 날도 저물었습니다.  
  금빛 옷입은  천사들은 이 강을 속히  건너라고 재촉합니다. 두  사람은 사하강
언덕에 서서 푸른 물결을 들여다 보면서 "이 강을  아니 건너고는 천성 갈 묘책이
없느냐"고 하니, 두 천사는  "아니 된다. 창세 이후로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 외
에는 이 강 건너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팔  소리에는 이 강은 말라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요. 인생일
생의 최후는 사하강입니다.  죽습네다. 사람이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받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주께서  사람에게 띠끌에 돌아가게 하시고 이에  가라사대 인생들아
근본으로 돌아가라 합니다.
  누가 이것을 피합니까?  여인(麗人)이냐, 장사이냐, 호걸 미인이냐,  빈부 귀천
이냐, 남녀 노소이냐, 누구나 한번은 다 거쳐야  하는 강이예요. 요단강물 거사릴
용사 있으며, 서산 낙일(西山落日)  지는 해 막을 자 있나, 홍안  소년 늙는 것은
유물 이치며 슬프도다  죽는 길 뉘 면할소냐.  고금 동서에 이 마지막  길을 피해
볼려고 애를 쓴 사람이 그 얼마입니까?
  여보세요. 이 죽음의 사하를 건늘 준비를 다  하였습니까? 사는 것 생각하는 건
범인(凡人)이요, 죽는 것 생각하는 건 철인(哲人)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성도는 사하강  언덕에 설 때에 매우 엄숙하여져서 답답하고  근심하여 사면
을 둘러보고  물의 심천(深淺)을 천사에게 물어  봅니다. 이 강이  얼마나 깊으냐
하니, 깊고 옅기는  당신의 믿음에 달린 것이니 믿음이 있으면  점점 얕아지고 믿
음이 적으면 점점더 깊어진다고 합니다. 이상한 강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했으나 사실 당하는 그때는  감개무량할
것이요. 인생의 최후  안 갈길 못되고 피할  길 없어 천사들 재촉에  따라 행종을
수습하여 가지고  강물에 발을 내어 디디니  아래부터 식어져 올라  옵니다. 물은
점점 올라올사록 숨은 바빠져 들어오고, 목에 담은  끓고, 이마에 진땀은 흐르고,
눈동자는 곧아지고, 정신은 혼미하야 집니다.
  미도는 정신 잃은 기독도를 자조자조 깨우면서 그  깊은 물에 잠겼다 나왔다 합
니다. 애쓰는 그 정경  차마 볼 수 없어요. 오랫동안 정들었던  영혼과 육신을 갈
르는 그 밤이요.  육신은 영혼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랴고 합니다.  참말 생나무
를 짜개는 거와 같은  몸부림은 눈물 없이 볼 자가 있을까요. 한번 쑥  깊이 들어
갔다가 불끈 솟아오르니  어느새 육신은 의복같이 벗어 강에 던지고  저편 언덕에
나서니 유명계(幽明界)가 달라집니다. 
  그 고통, 그  쓰라림은 안개 사라지듯 하고 악몽에서 깨인듯  상쾌한 그 즐거움
은 한이 없어요. 멀리 들리는 장례식 소리,
  날빛 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것으로 멀리 뵈네
  있을 곳 예비하신 주 우리들을 기다리시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또한 친족들의 애곡하는  소리, 처량히 들리고 이제 갔다 언제  올꼬 죽은 나무
꽃이 필 때 서편에서  해가 뜰 때 구름타고 오시려나 에헤야  하는 상두꾼들의 소
리도 멀리 멀리 들리는 듯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썩어져 버리고 그의 영광은 꽃과  같이 사라집니다. 금
일 꽃동산에  놀던 나그네 내일 아츰에  청산 낙일 마른 뼈다구  한심하지 않은가
요.
  육신으로 본 인생관은 참으로 이러한 것이 아닌가요.
  질병과 죽엄이 가득한 세상에서 주님의 평강과  영원한 생명이 여러분께 충만하
시길 축원합니다.

 

 

   [20]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마지막으로 천로역정을 마치겠습니다.
  장망성 살던 기독도는  천신만고로 인생일로를 다 지나서  사하강까지 건너가서
천사들의 안내를  받아 천성으로 걸어갑니다. 원래  천성이 높은 산  위에 있으매
강변에 기다리던 천사들이  붙들어 올라가니 강에 들어갈 때는 육신이  있어 건너
갔는데, 강에서 나올 때는  영혼만 남은 고로 날개 돋힌 것같이 날라 올라  갈 때
에 천사들과 같이  가며 강 건너 드니  천성 경치를 얘기해 줍니다.  많은 무리의
천군들이 나아와서 저희를 영접합니다. 빛난 사람들이  저희다러 "이 사람들은 세
상에 있을 때 우리  주님을 사랑하였고 그 거룩한 이름을 위하야  모든 것을 버린
자들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보내어 저희들을  데려오게 하신고로 우리들이 저희를
멀리 데리고 와서 기쁨으로 구주의 얼굴을 들어가 뵈옵게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천군들은  큰 소리로 외쳐서 "누구든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평안할지어다"라고  하였소. 이때 희고 빛난 옷을 입은  왕의 악대들
이 저희를 영접하려 나아와서 좋은 음악으로 천지가  진동하게 큰 소리로 불러 줍
니다. 이것이 끄치자 두 사람을 에워싸고 앞으로 가는  자, 뒤로 가는 자, 좌우로
나열하여 저희를 인도합니다. 이렇게 가는 동안에 좋은  음악 소리는 높은 곡조로
끊임없이 울리는데,  그 광경은 마치 하늘  전체가 저희를 영접하려고  날아 오는
것 같아요. 지금은 벌써  천당에 다 들어간 것 같은 감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저
기가 천성을 바라보았으며 울리는 종소리가 들리는  것이 저희를 환영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문에 이르러 본즉 금자로  문 위에 썼는데,  "주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와 그 옷을 씨츤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세가
있으니 문으로 들어오라" 하였습니다. 문 열기를  재촉하니 에녹이와 모세와 엘리
야가 성문에서 내려다 봅니다. 천사가 이 두 사람을  잘 소개하고 두 사람은 연하
여 증표를 내어  주니 그 사람들이 받아서  주께 드릴 때에 주님께서  보시고 "그
두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  문밖에  서서 기다리나이다 하니 명하여 가
라사대  진리를 지킨 백성을  속히 불러 들이라  하거늘 문 지킨  사람이 곧 문을
열어주매 두 사람이 문에 채 들어가지 못하야  모양이 변화하고 의복은 황금 빛같
이 찬란하여지며 광채는 영롱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 거문고를 갖다 주고, 어떤 사람은  금면류관을 씌워 주니 온 성
에서 풍류소리 일제히  일어나며, 흰 옷을 입은 성도들이 종려가지  손에 들고 천
군 천사들과 함께 주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을  만나볼 마음에 간절하야  두리번거리는데,
우리 주님은 황송하옵게도  마중 나오시면서 손을 들어 반기시니 손바닥에  못 자
국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그 머
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도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  발은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이한 검이 나오고, 그의 얼골은 햇빛이  유력하게 비치는 것
과 같습니다.
  두 사람은 그만 감격하야  그 발아래 엎드려 눈물로 따을 적시며  어쩔 줄을 모
릅니다.
  주님은 오른손으로 만져 주시면서 그 눈에 눈물을  다 씻어 주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과 내종이라 내가 전에  죽었다 살았노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아들이 되었으니 모든 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처음 일은  다 지나가고
축복만 있을지어다"
  두 사람은 면류관을 벗어서 주님께 드리며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소리 높여 복
과 영화와 권세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과 지혜와 감사를  하나님과 거룩한
어린 양에게 돌리며 대대로 갈리지 마옵소서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사면을 바라보니 성빛은 햇빛  같고 길에는 황금을  깔았으며, 해와
달과 등불의 비취임이  없어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영원무궁 비취니 항상  밝은 거
리요, 그 성  사면 방정하고 동서 남북 광활하여 장으로나  광으로나 일만리요 이
천리, 열 두 성터 견고하고 각색 보석 꾸몄으며  매 문마다 진주문이요, 열 두 성
문이 찬란합니다. 거리거리  돌아가며 정금으로 포장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유
리 바다, 수정 같은 생명강이 흘러 갑니다.
  매 달마다 열 두  종류 맺어 주는 생명나무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꽃과 열매 무
성하고 그 잎사귀 청청하야 만국 나라 소성합니다.  새 포도즙이 풍성하고 세마포
와 흰 옷이 무궁무진한 곳입니다. 의식주의 고통, 염려,  심고 거둘 수고 없는 평
화세계 여게로다.
  우리 주님 십자가로 벌써 정복, 죽엄을 정복하사  부활 승천하셨으니 원수 사망
이 다시 없고, 치료하는 광선 아래 우환 질고 씨도 없는 신천 신지가 여기예요.
  시온 산 그 장막에  있는 성도들을 바라보니 신구약의 모든 성도  육대 순교 전
도자와 세계  만국 각지에서 주님 위해  지사 진충 성도들이 면류관을  각기 쓰고
흰 옷 입은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
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시더니  참으로 진실한 증거가 되사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사 세상 인군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를 사랑하야  피를 흘려 죄를 없게 하시
고 우리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신 그 능력과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나이다.
  네 영물은 아멘 하고,  이십 사 장로는 경배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우리 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야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여 두었으니 곧 주께서 의로운 재판장이 되사  그 날에는 나에게 주시고 나
에게만 주실 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리라 아바
지께 복을 받은 너희들은 기뻐할지어다.

  영화롭게 시온성문 들어가서 다닐때에
  눈물없이 황금길을 걸으며
  금거문고 타면서 새노래를 부를때에
  세상고생 다잊어서 버리리
  나의주를 나의주를 내가그의 곁에서서 보이며
  나의주를 나의주를 그손의 못자국으로 알겠네

  우리 어머니께서 별세하시기 직전에 지어 주시고 가신 노래가 있는데,
  하늘나라 우리집 보석성의 내집은
  영원무궁 하도록 낡아짐이 없구나
 
  보석성의 우리집 해와달과 등불의
  빛의힘이 없어도 항상밝은 곳일세
 
  하늘나라 내집은 먹을예비 안해도
  열두종류 다달이 과실맺어 주도다

  보석성의 내집은 의복준비 안해도
  세마포와 흰옷이 무궁무진 하도다    

  하늘나라 성도들 우리임군 우리주
  영원무궁 하도록 경배찬양 하도다

  우리 어머니께서 이것을 별세하시기 한 월여  전에 지으시고는 날더러 작곡까지
해가지고서는 배우라고 하시는걸 채 배우지 못하고서  만주 들어갔다가 어머니 세
상 떠났단  말씀 듣고 오니 우리  어머니는 벌써 어젯날에  장례지냈습니다. 성경
갈피에다 이 말씀 써놓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시던 어머니 그곳에 가시고 나의  모든 친구들도 다 가 있습
니다. 나도 지금 그 곳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기독도와 미도는 재미있게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머리를 돌이켜 보니, 자만(自
慢) 땅에서 혼자 다 잘 알고 믿노라고 하던  무지란 자가 강가에 이르러 허광이라
는 사람의, 빌  허(虛)자, 미치광이 광(狂)자, 허광(虛狂)이라는 사람의  배를 얻
어 타고  빨리 건너 조금도 고생하지  않고 천성을 바라보며 올지라도  자기 혼자
뿐이요, 만나서 치하하는  자도 없고 성문까지 혼자 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두다
리니 그 생각에 무난히 들어가리라 했던 모양이요. 
  성위의 사람들이 내려다 보고 물으되 "그대는 어디서 오며 무엇을 얻으러느뇨"
  무지 가라대 "내가  주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께서  우리를 가르치셨사오며
주께서 나를 잘 알리이다"
  성위의 사람들이 "주님께 드릴 증표가 있느냐" 하니,  무지가 아무리 품을 뒤지
나 아무 것도 없어요. "왜 증표가 없느냐" 하니 무지가 유구무언이요,
  이를 주님께  여쭈니, 주께서 기뻐 아니하며  두 사람을 인도하여  온 천사에게
결박해서 내버리라고 하니 천사가 곧 무지를  결박하여 가지고 공중으로 날라가서
지옥에 잡아  쓸어 넣으니, "저주를 받은  너희야 나를 떠나 영원한  불에 들어가
라"고 했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바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다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도
내어 쫓고 주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능한  일을 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아지 못하노니 불법한 일을 행하
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두려운가  보세요. 지옥의 광경은  어떤가요. 그 곳은 캄캄하고  사면에
불이 나서 불똥  뛰는 소리가 있고, 사람들이 혹독한 형벌을  받으며 슬피 부르짖
는 소리도 처참합니다. 유황불이 일어나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애곡 절치하는
곳이요, 고통하는 곳이요, 영원히 벌받는 곳이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야 예
비한 곳이요, 지옥불  있단 말 분명하게 들었지마는 농담으로 인정했지,  이런 줄
은 몰랐구나.
  지옥에는 누가 있나, 전후 좌우 돌아보니, 제 일위가  사탄 마귀, 그 다음은 무
신론자, 지옥 부인 완악한 자, 예수 제자 가룟  유다, 오순절에 성신 받았다고 떠
들던 아나니아의  부부, 세례받고 신학하고  전도하고 병고친다고 기도하되  회개
못한 교역자, 잠시  쾌락만 생각하고 장래 복을 우습게 녀겨  팥죽 한 그릇에다가
장자 기업을  팔던 에서 같은 자,  성인의 도를 훼방하던 자,  알렉산더와 흉악한
행동하던 자, 복술,  우상 섬기던 자, 모든 거짓말하던 자,  두려워하고 음행하던
자들이 이리 굴고,  저리 굴고 이를 갈고 슬피 우니  보기에도 참혹하고 듣기에도
애처러워요.
  지옥불을 부인타가 지옥불에  빠졌으니 지옥불을 인제부터 시인한다  해도 때는
벌써 늦었어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참으로 믿지  않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진심으로 따르지 않고,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주보다 허탄한데다  뜻을 많이
붙이고, 주를 위하야  일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중심, 자기의  본위에 움직이고,
참된 회개와  중생의 경험이 없고, 속죄와  부활의 신앙이 없고, 믿는  것이 그저
한 도덕적으로, 한  수양적으로, 한 오락적으로, 한 사교적으로,  한 습관적으로,
한 형식적으로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지만 예수에게 바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요. 그런고로 안  믿으면 몰라도 믿을 바에는
철두철미하게, 분명하고 똑똑하게  주신 긍휼을 힘입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충
만함으로써 과연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하심과 기뻐하신 뜻을  분별하면서 실험
적 지식을 가지고, 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아래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며
내세의 영생의 기업을 누리게 됨을 감사하시면서 선한 싸움을 힘써 싸우자구요.
  죄로 더불어  싸우고, 마귀로 더불어  싸우고, 이단과 싸우고, 기근과  싸우고,
우상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자기로 더불어 싸우고,  영생을 취하는 복음의 결
사가, 결사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늘 깨어라  성도여, 복 있는 자 그 누군고,  우리 주님 오
실 때에 칭찬만 받는 그이로다.
  착하도다 신실한종 적은일에 충성했네
  네주인의 주시는복 더욱많이 누리어라
  예비하라 주의신부여 복있는자 그누구요
  신랑예수 오실때에 영접하는 그이요
  잘싸워라 주의용사 복있는자 그누군고
  우리주님 오실때에 개선장군 그이로다
  충성하라 선한목자 복있는자 그누군고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면류관을 받은자요
  회개하라 인생들아 불행한자 그누구요
  심판의주 오실때에 저주받는 그이랍니다.
 
  사람이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받는 것은 정한 이치니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
고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는 것이요. 사람은 무어이든지 심으는  대로 거두는 것
이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주신 은혜는 영생이니  또 예수 우리 주님 안
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야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아이나 어른이나 늙은이나 젊은
이나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나 안  믿으면 영생을 얻지 못하고 멸망한답니다. 그  아들 예수가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 위에 있나니라.
 
  천로역정은 불완하오나 이것으로 끝을 막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천국  가는 길에 다소간이라도 도움이 되신다면  참으로 영
광이요, 만족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항상 풍성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