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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독교식 장례식

주거시엔셩 2014. 11. 18. 16:22
기독교 장례의 의미
 
◆ 장례식의 의미
1) 교회사 속에서의 장례식
① 초대교회
초대교회의 장례식은 다섯 단계로 나뉜다.
첫째단계는 집에서 기도를 수반하여 시신을 씻고 기름 부은 천으로 감싸는 단계이며,
둘째 단계는 장지로 시체를 운구하는 단계이다.
로마인들은 장례를 악한 징조로 생각하여 밤에 운구하였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장례를 죽음을 이긴 승리로 이해해 낮에 흰 옷을 입고 개선의 노래를 부르며 하였다.
셋째로 찬송, 기도, 성서낭독으로 간단한 예배식을 가진 후,
넷째로 성만찬을 실시한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존재하는 성도의 교제를 의미한다.
끝으로 시신의 발을 동족으로 하여 매장하는데 이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희망을 상징한다.
이후에도 아가페라는 친지들의 의식이 뒤따랐다.

②동방교회

동방교회의 장례식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는 부활 신앙이 그 기본 성격을 이룬다.
장례식은 교회에서 이루어지며 시신은 제단을 향하여 교회의 중심에 놓으며 관 뚜껑은 덮지 않는다.
이는 죽음의 궁극적인 비극을 노출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그 후 이 비극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정복되었다고 선포하는 예배 의식이 집행된다.
동방교회 장례식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임재의 상징으로서 향불과 촛불이 피워지는 것으로,
죽은 자의 시신안에 우리 몸의 구속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징조로서 향을 계속 뿌린다.

③카톨릭
중세 초까지 카톨릭의 장례식은 찬미, 기도로 시신을 준비하는 일, 교회로 시신을 옮기는 행렬,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성찬, 장지로의 이동과 매장의 절차로 이루어졌다.
특이한 것은 중세 초까지 공식 예배와 수시로의 모임 중에서 죽은 자를 위한 시편 영창을 예전화하여 드렸다는 것이다.
카톨릭의 장례식은 이러한 기본틀 위에서 죄와 죽음, 연옥과 심판을 강조하였으며 몸보다는 영혼의 운명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카톨릭의 장례식은 1969년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개혁되었는데 의미면에서는 죽음의 부활을 강조하는 신앙적 성격이 강조되었고, 형식면에서는 나라나 지역, 관습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 강조되어 다양성과 유연성이 허용되었다.

④종교개혁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장례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첫째로 영국교회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중간의 입장이며, 둘째 루터교회는 교회의 개혁의 강조로 인해 예전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최근에 복구되고 있다.
셋째로 개혁교회는 예전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성례전적인 의미보다는 말씀을 강조하여 기독론적으로 장례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2)개신교 장례식
개항 이후로 우리 나라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면서부터 전통적 장례식을 고수하여 오던 사회적인 흐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가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교전통에 따른 복잡한 예식이 간소화되었고 장례에 대한 의미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위탁과 헌신의 의미를 지닌 예배의식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죽음의 의미와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 등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다.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만 보지 않고 부활과 영원한 삶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죽음을 이해한다.
즉, 기독교 장례는 죽음과 부활의 실재를 증언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장례는 교회 안에서 한 가족처럼 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라는 배경 안에서 행해진다는 점과 고인을 하나님께 위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전자는 산 자를 위한 선교적 기능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죽은 자에 대한 선교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재적으로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은 이미 세례식을 통하여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들이다 (롬6:3-4)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미연합감리교회에서 간행된 「The United Methodist Book of Worship」(1993)에서는 세례예식이 죽음에 관계된 성직수행에 있어서 재확인되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제안일 것이다. 개

신교가 장례의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바는 첫째로 신앙전승(信仰傳承)과 선교이며, 둘째는 친교와 공동체 의식의 강화이고, 셋째는 기독교 의식문화(基督敎 儀式文化)의 보편화이다.

장례식은 실천신학 부분에 속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교의신학이 그 근저(根底)를 이루고 있으며, 형식으로는 예배학으로 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장례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의식절차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임종식, 입관식, 출관식, 하관식 그리고 장사후의 의식으로 치러진다.

장례식은 교회가 슬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지도를 주기 위해 마련하는 예식이다.

이 식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슬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순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장례식 예배는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보이는 행위이다.

교인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친교에 힘써야 한다.

장례식은 또한 교인에 대한 적절한 추도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삶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뿐 아니라 또한 죽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례식의 절차들은 다음과 같은 신학적 근거와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진행한다.

① 임종에서 입관 전까지의 의식절차의 신학적 근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임종예식은 운명 직전에 있는 임종자와 운명 후에도 유가족을 상대하는 사역이다.

임종자에게나 유가족에게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임종자에게 인간의 죄인임을 인지시켜 고백하게 함과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음을 확신케 하며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죽음을 두려움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절차에서는 신론, 인죄론, 기독론 그리고 개인 종말론의 신학적 근거에서 설교와 위로 그리고 의식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과 신학적 근거에서 의식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감히 시신에 대한 배려나 제사 지내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② 입관에서 출관까지의 절차에 대한 신학적 근거
입관에서 출관까지는 교회론적 입장에서 진행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아 이루어진 유기적인 공동체이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회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그 몸에 붙은 지체들로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

고통을 당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그러므로, 입관식 때부터는 온 교회에 알리어 참여하도록 하여 슬픔을 당한 가정을 위로하며, 밤도 같이 새우면서 일을 돕도록 권유한다.

그리하여 교인 서로간에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고, 또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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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례의 절차

◆ 임종에서 입관전까지

1)임종
사람이 숨을 거두는 것을 운명이라고 하며,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임종이라고 한다.

임종시에는 우선적으로 교회 교역자에게 알린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둘러 앉게 하고 임종자의 유언을 듣게 한다.

▼ 임종을 아는 방법
♠ 가래가 끓는다.
♠ 숨을 몰아 쉰다.
♠ 말문이 막힌다.
♠ 혈압이 내린다.
♠ 눈동자의 촛점이 흐려진다.
♠ 탈지면을 코에 대면 호흡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
♠ 심장부위에서부터 차츰 몸(손,발)이 차가워지며 굳어진다.

2) 임종의식
임종의식은 운명적과 운명후로 나누어 진행하며 운명전 의식은 주로 운명 직전에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으로 되도록이면 의식이 분명할 때 거행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들려주고, 조용하고 은혜로운 찬송 또는 본인이 즐겨 부르는 찬송과 기도로 소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운명전일 때는 신학적 근거에서 그의 구원문제에 힘쓰며, 운명후에는 유족들이 믿음안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도록 권면하여야 한다. 미신적인 행위나 집안의 불신 어른에게 장례명절에 관하여 상의하지 않고 꼭 목회자와 상의하도록 일러주어야 한다.

① 운명전 임종식
식사, 묵도, 찬송, 기도, 성경봉독, 사도신경, 임종기도, 성례전, 유언, 가족화해, 찬송
▶ 축도(주기도문)

② 운명후 임종식
운명후 임종의식은 1부 수시(소염), 2부 예배로 의식 절차를 진행한다.
예배를 먼저 드리고 수시를 후에 하여도 상관없다. ♣ 수시 (收屍)

♠ 준 비

탈지면, 창호지, 칠성판, 휜 홑이불(기독교십자위생보), 병풍, 영정사진 및 모실 상,향로.향.촛대.양초(또는 꽃병.꽃)등

♥ 수 시
♤ 집례자가 흰 장갑을 끼고
식 사: 이제부터 운명 후 임종식으로서 먼저 수시를 하겠습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 기도할 때 - 시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기도문: 모든 위로의 아버지 하나님,

사랑하는 가족을 사별한 슬픔에 있는 유족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이제 시신을 거두고자 하오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중히 처리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수시 절차
a. 가족 중 제일 가까운 사람이 고인의 눈을 감기게 하고, 턱을 받쳐 입을 다물게 한뒤 머리를 높이 괸다.

b. 솜으로 눈, 코, 입, 항문 및 모든 구멍을 막고, 탈지면으로 얼굴을 가린 다음 창호지를 덮고 목댕기로 턱을 고정시킨다.

(특히 간암, 간경화, 폐질환 환자는 탈지면으로 단단히 막아서 처리하여야 한다. 하절기시 쉽게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드라이 아이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c. 창호지로 손.발을 싸서 두손은 가슴위에 곧게 펴놓고 두발은 한데 모아 창호지 띠로 묶어 고정시킨다. 한 창호지로 가슴과 하체를 덮은 다음 창호지 띠로 시신전체를 5-7군데를 묶어둔다.

d. 칠성판을 창호지로 싸고 받침대 3개정도를 받친 다음 창호지 따방벼게나 수세용 베게를 사용하여 칠성판 위에 시신을 곱게 모신다.

e. 온기가 없는 적당한 곳에 시신을 안치하고 흰 홑이불(기독교십자위생보)를 덮는다.

f. 소독약이나 살충제를 뿌려 벌레의 접근을 막고, 방향제를 뿌려 공기를 정화시킨다.

g. 시신을 성화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상을 놓고 영정사진과 고인이 사용하시던 성경책과 찬송가를 같이 놓는다.

h. 상앞에 향을 피우거나 좌우에 촛대를 세워 촛불을 켠다.

또는 꽃병에 꽃을 꽂아두기도 한다.( * 향과 촛불에 대해서는 유교의 제사법에서 왔다고 해서 이견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유교의 제사법을 따라서가 아니라, 향을 피우면 악취를 제거할 수 있고 촛불은 향을 피우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향과 초가 없어도 무방하며, 악취제거를 위해 꽃을 꽂아두어도 좋다.

그러나, 이는 목사님의 지도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

♣ 예배 (禮拜)
식 사: 우리는 지금 고인이 된 ㅇ ㅇ ㅇ님의 임종예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묵 도: 살전 4:13-14
찬 송: 364 (294)장
기 도: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고인의 시신을 거두고 유족과 함께 아버지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이제 장례범절을 주관하사 하나님께 영광되고
유족에게는 위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봉독과 간단한 설교
♠ 찬 송: 290장
♠ 기 도(주기도문)

 

3) 임종식을 마치고
임종식을 마치고 입관전까지는 시신을 병풍으로 가리우고 병풍 앞에 흰종이로 싼 작은 상을 놓고 상위에 검은 리본을 건 고인의 사진과 고인이 쓰던 성경과 찬소가를놓는다.

상 앞에다가 고인은 예수를 닮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신 기독교인이므로 배례 대신 묵념을 해주십시요라고 기록한 안내판을 붙여 놓는다.

4) 입관전의 절차와 준비
① 부고(訃告)
② 고인의 약력작성(장례예배시 필요하다.)
③ 관(상.중.하)의 결정
④ 장례당일 식사준비
⑤ 운구차(대.중.소)와 차량 결정 교섭
⑥ 조등(2개정도로 십자가와 성구가 있는 것으로 한다.)
⑦ 녹음테이프(성경, 찬송-장례 기간동안 시신이 있는 방에 항상 틀어 놓는다.)
⑧ 수의 제구-망인에게 입히는 의복과 부속품,
수의는 베로 만든 것을 사용하지만 사치스러운 것은 피하고,
망인이 평소에 즐겨 입던 옷을 깨끗이 하여 사용해도 무방하다.

♣ 겉옷 : 남자 - 두루마기, 도포, 저고리, 바지, 버선, 대님, 허리띠, 도포띠,
여자 - 원삼, 저고리, 치마
♣ 속옷 : 속적삼, 속바지, 속치마(여자)
♣ 폭건(輻巾): 검은 명주베로 만든 것과 같은 모자
♣ 두건(頭巾): 머리에 씌우는 수건과 같은 건
♣ 망건(網巾): 머리카락을 싸는 것, 검은 비단으로 한다.
♣ 멱목(冪目): 얼굴을 싸맨, 명주베로 사방 25cm사각에 끈을 단다.
겉은 검은색, 안쪽에는 붉은색으로 한다.
♣ 악수(握手): 손을 싸매는 것으로 길이 35cm, 폭 5cm로 한다.
♣ 충이(充耳): 새 솜으로 대추씨 같이 만들어 귀를 막는다.
♣ 지금(地衾): 시신 밑에 까는 겹이불
♣ 속포(束布): 시신을 묶는 것(한지나 삼베)
♣ 기저귀(여자용)

⑨ 입관제구 - 시신을 관에 넣을 때 쓰이는 물품
(관 .칠성판 .횡대 .초석 .정상목 .창호지(한지 약20매정도) .탈지면)
⑩ 기타 준비물
[명정(銘旌) : 명정의 보기 - 성도 밀양 박씨 000장로의 구(세로로 쓴다.)]
♣ 聖徒 密陽 朴氏 0 0 0 長老 之 柩
[관보(棺褓)][칠포(漆布) : 관 위에 붙이는 헝겊. 화장시 필요.]
[상복(喪腹) : 남자(검은색 양복), 여자(흰색 한복)]
[상장(喪章) : 나비 넥타이 형식 - 7cm x 3cm]
[완장 형식 - 폭 15cm의 띠 ;상주 직계 후손 친족] 5) 염습(殮襲)

보통 24시간이 지난 다음에 입관을 한다.
그 이유는 혹 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입관 작업(염습)은 입관예배 1시간 전에 시작하는 것이 적당하다.

① 준비 : 습할 때-크레졸, 알콜, 탈지면, 화장수, 향기, 마스크, 빗.
염할 때-수의, 탈지면 큰 것 4개(베개 1개, 턱받이 1개, 기저귀 1개, 얼굴덮개 1개)
♠ 창호지(염할 때와 입관할 때 관 속에 까는 데 쓴다.) ♠ 드라이아이스나 비닐
② 염습 : 곡을 하지 않은 정숙한 상태에서 고인의 맨살이 보이지 않도록 시신을 조심스레 다룬다.
♣ 칠성판에서 시신을 내리고 수세했던 모든 것을 푼다.
♣ 먼저 상의 단추를 풀고 소매를 가위로 자른다음 상체를 약간 들고 자른 반대방향에서밑으로 상의를 벗긴다.
♣ 알콜을 적신 탈지면을 사용하여 손, 가슴, 배, 허벅지, 발 순으로 닦은 다음 옆으로 제껴 등을 닦고 창호지와 솜으로 만든 기저귀를 채운다.
♣ 수의를 다음의 그림과 같이 벌려 놓는다.
수의를 입힐 때 상의는 상의대로 속적삼, 겉적삼, 두루마기, 도포 순으로 결합을 해놓고 하의는 하의대로 속옷과 겉옷을 결합해 놓은 다음, 하의부터 시작해서 수의를 입히고 상의를 입힌다.
♣ 시체의 머리 허리 다리쪽을 죄우에서 조심스럽게 들어 펼쳐진 옷위로 반듯하게 옮긴다 .
♣ 허리와 다리를 좌우에서 들고 홑이불을 떠들고 아래옷 가랑이를 꿰어 입히고, 머리와 허리를 좌우에서 들고 홑이불을 떠들고 웃옷의 소매를 꿰어 입힌다.
♣ 웃옷이나 아래옷이나 섭을 여미는 방법은 산 사람과 반대로 왼쪽을 먼저 여미고 오른쪽이 위가 되게 나중에 여민다. 옷그름 허리띠와 띠를 맨다.
♣ 모든 끈은 다시 풀 일이 없으므로 고를 내지 않는다.
♣ 버선을 신기고, 남자면 대님을 매고 행전을 치고, 신을 신긴다.

이어서 남자면 행전을 끼우고, 악수로 손을 싸서 묵는다.
♣ 깨끗한 홑이불이나 소렵금으로 시체를 덮는다.
♣ 가렸던 얼굴을 풀고 소독수.탈지면으로 얼굴을 닦고, 머리를 빗긴 다음 유가족에게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보여드린다.

그런다음 탈지면을 얼굴에 대고 창호지로 두상을 싼 다음 턱받침, 목댕기를 매고, 베로된 면모로 얼굴 전체와 머리를 싼다.

이때 얼굴에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려도 무방하다.
♣ 베이불로 시신을 둘로 싸고, 창호지띠로 시신을 서너군데 묶어 수의와 몸이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

⊙ 묶는 요령
♠ 시신을 묶을 자리에 삼베끈(매당포) 4개를 맞추어 가로로 놓고, 그 위에 장포(시신을 발에서부터 머리까지 세로로 묶는 베)를 세로로 놓고 베 이불을 그 위에 깐다.
♠ 베 이불로 시신을 둘러싼다.
♠ 장포로 먼저 시신을 세로로 묶고, 다음에 시신을 가로로 묶는데 4개의 삼베끈으로 7가닥으로 잘라서 묶는다.

(장포로 시신을 세로로 묶을 때 너무 세게 묶으면 시신 이 구부러질 수 있다.)
시신을 묶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기독교에서는 미신적 요소를 배제하고 시신을 운구하기에 적합할 정도로 묶는데, 보통 수의를 입힌 후 한지를 접어 끈을 만들어 가볍게 어깨, 팔꿈치 부분, 손목 부분, 무릎, 발목 등을 묶거나, 또는 수의를 입히고 베이불로 시신을 둘러싸기만 하기도 한다.
♣ 정상목 위에 관을 놓는다.(옮기기에 수월하다.)
♣ 관 내부를 깨끗이 닦고, 관 안에 숯가루나 석회를 고르게 편 후에 한지를 깐다.
(바닥에 깔고 다음에 상하와 양편으로 절반은 관 안으로 절반은 밖으로 편다.)
♣ 지금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모신다.(3인이 시신을 들되 上은 목밑으로, 손을 넣어 들고 中은 허리밑으로, 下는 정강이를 들어 관에 넣는다.)
♣ 上下 간격을 적당히 하고, 시신이 관 복판에 바로 놓였는지 확인한 후, 베게를 베이고,어깨와 머리사이, 머리와 관사이, 종아리 옆에 깨끗한 종이나 옷등으로 관의 공간을 채운다.

(이때, 고인의 성경, 찬송은 넣지 않는다.)
♣ 천금을 덮고, 한지로 마무리 한다.
♣ 뚜껑을 덮고 은정(隱釘: 나무못)을 박는다.

▼ 입 관

1) 입관식 예문

고인의 시체를 먼저 관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고 못을 치되 상주가 원하면 예배 후에 못을 친다. 관 앞에 상주와 가족들과 교인들이 관을 향하여 앉고 주례자는 관 머리쪽이나 발치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입관식을 주례한다. 교회 직분이 없는 고령자에게는 어른, 선생님,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 등 적절한 명칭을 사용한다.

1. 예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 형제(자매,장로,권사,집사등)의 입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2. 묵 도 ----------------------------------------- 주례자
(고후 5:1-3)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 되지 않으려 함이라
3. 찬 송 ---- 54장 저요단강 건너, 혹은 188장 만세반석 열리니 ----- 주례자
1). 저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뵈는집 / 예루살렘 새집에서 주의얼굴 뵈오리
(후렴)
빛난하늘 그집에서 주의얼굴 뵈오리 / 한량없는 영광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아멘
2). 주가내게 부탁하신 모든역사 마친후 / 예비하신 그집에서 주의얼굴 뵈오리
3). 성도들이 함께모여 할렐루야 부를때 / 나도기쁜 마음으로 화답하여 부르리
4). 이세상에 사는동안 주의일을 힘쓰고 / 썩을장막 떠날때에 주의얼굴 뵈오리
4. 기 도 ----------------------------------- 주례자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이옵니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도 못한 죄인들이옵니다.

고인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도 다하지 못하였사옵고 형제로서의 사랑도 그에게 다 베풀지 못하였음을 슬퍼하오며 하나님 앞에 참회합니다.

자비로운 하나님,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 절히 간구합니다.

이제 고 000 형제(자매)의 시신을 입관하여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오니 성령께서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더욱 굳세게 하여 주옵소서.

(고인이 신자인 경우 아래 부분을 첨가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형제(자매)가 세상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후사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귀한 신앙과 진실된 생활을 본받게 하시고, 좋은 신앙의 후계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저희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사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성 경(요 14:1-6) -----------------집례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 설교 또는 위로의 말씀(형편에 따라 간단한 위로의 말을 한다)
7. 찬 송(230장 저 뵈는 본향집, 534장 세월이 흘러 가는데)
1). 저뵈는 본향집 날마다 가까와 / 내갈길 멀지않으니 전보다 가깝다.(후렴)
더가깝고 더가깝다 하룻길되는 / 내본향 가까운 곳일세 아멘
2). 내주의 집에는 거할곳 많도다 / 그 보좌있는 곳으로 가까이 갑니다.
3). 내생명 끝날에 십자가 벗고서 / 나 면류관을 쓸때가 가깝게 되었네.
4). 내길의 원근을 분명히 모르니 / 내주여 길다가도록 나와함께 하소서.

8. 기 도 ----------------------집례자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의 눈을 밝히시사 영원히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가득찬 주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심령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장례를 마칠 때까지 모든 절차를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 축 도 ---------------------------집례자

▼ 입관 후
입관이 끝나면 관(棺)이라 하지 않고 구(柩)라고 부른다.

1) 입관 후 절차
① 입관후 십자가가 새겨진 관보를 씌우고 꽃으로 장식하여 발인(發靷)할 때까지 병풍이 나 휘장 뒤에 안치한다.
② 명정을 병풍에 걸어 놓는다.
명정은 보통 붉은 천에 금빛으로 쓰는 것이 상례이며,한문과 한글 둘다 사용한다.
-상여로 운구할 때에는 출상때에 장대에 달아 영구 앞에 들고 간다.
③ 시신을 덮었던 천으로 그 자리에 있던 필요 없는 지저분한 것들을 싸서 밖으로 갖다 두었다가 장례하는 날 장지로 가지고 가서 소각시킨다.

 

▼ 장례식 또는 발인식
1) 예배 순서
♣식사
♣기도
♣찬송
♣성서봉독 (살전4;13-14, 고전15;50.53-58, 마11;28-30)
♣설교 (죽음을 통한 강한 전도의식을 가지고 행해지도록 마련된 것이나 위로의 희망에 대한 설교를 간결하게 하고, 전도설교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식서도 있다.)
♣기도
♣약력보고 (고인의 약력을 간단히 보고한다.)
♣조사 (길어지지 않게한다. 광고는 목사가 출관 직전에 하게한다.)
♣모상인사 (인사만 하게한다.)
♣찬송 (고인이 즐겨 부르던 것을 하거나 희망에 관한 것을 부른다.)
♣신앙고백
♣축도
♣목사의 광고 (조객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한다.
장지까지 갈 사람을 위해 자세한 안내를 한다.)

2)하관식 이전까지
운구의 행렬은 목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가 사진을 가진 사람, 유족은 영구의 뒤를 따르며, 회중은 일어서서 결별의 경의를 표한다.

▼ 하관식
1) 하관식은 하관을 한후에 세 번째 횡대를 열어 놓고 한다.
2) 성경봉독 : 요5;21-29/ 11;25-26, 고전15;42-58 등을 읽는다
3) 취토식 : 상제가 먼저 하는 경우, 목사가 먼저 흙을 뿌린 후 상제와 유족들이 뿌리는 경우등등이 있다.
취토시에 흙으로 된 몸이 땅에서 왔으니...하고

또 한 번 뿌린 후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하고

또 한 번 흙을 뿌리고 부활의 날까지 안식하소서하고 세 번 흙을 뿌리게 한 경우도 있으며, 돌아간 이가 즐겨 부르던 찬송을 부르게 하며 취토를 하여도 무방하다는 권면도 있다.

예배의 기본적인 순서와는 별로 다를 바는 없다.

▼ 추도식
1) 추도식의 의미
조상숭배나 조상봉사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예문에는 아예 추도예배의식이 없는 곳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추도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추도예배는 돌아간 이를 기념하는 순서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전통의례의 제사 의식과 유사한바 한국에 복음이 전래된 이래에 한국인의 전통적 사상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해를 위한 방법이라할 수 있다.
2)예배순서
♣ 식 사
♣ 신앙고백
♣ 찬 송
♣ 기 도
♣ 성서봉독 (사40;6-8, 살전4;13-18, 요5;24-29 등)
♣ 설 교 (간략하게 위로와 권고의 말씀)
♣ 특별순서 (추도가를 독창이나 합창한다.)
♣ 추모의 순 (고인의 약력보고, 추모사,

추모의 말씀, 교회 대표나 고인의 친구나 고인이 남겨 놓은 유언이나 유물을 소개하는 시간, 묵상의 순서 등)
♣ 찬 송(고인이 즐겨 부르던 것으로)
♣ 축 도 ♬ 장례와 관련된 찬송가

168장 - 하나님의 나팔소리            /  188장 - 만세반석 열리니
220장 - 구주 예수 그리스도           /  221장 -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222장 -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  224장 - 저 요단강 건너편에
226장 - 저 건너편 강 언덕에          /  231장 - 주가 맡긴 모든 역사
233장 -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  249장 -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290장 -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  291장 -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293장 - 천국에서 만나보자            / 294장 - 친애한 이 죽으니
295장 - 후일에 생명 그칠때          / 299장 - 예수께서 오실 때에  
300장 - 예수께로 가면               /  304장 - 어머니의 넓은 사랑
360장 - 예수 나를 오라 하네      /  432장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434장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459장 - 지금까지 지내온 것  
474장 -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  478장 -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492장 - 나의 영원하신 기업 /  524장 -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534장 - 세월이 흘러 가는데  /  535장 -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536장 - 이 곤한 인생이   /  541장 - 저 요단강 건너편에  
543장 - 저 높은곳을 향하여 / 544장 -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545장 - 하늘가는 밝은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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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

♣ 장례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과 루터의 장례식 설교에 관한 소고

I. 서언

1998년 가을에 모 재벌 회장의 자신을 화장해달라는 유언이 우리 사회에 화장문화에 대한 대토론을 이끌어 낸 적이 있다.
1995년 보건복지부의 추산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역의 묘지 면적은 982㎢로서 주택 면적 총대지 1,937㎢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고, 전국에 있는 전체 분묘 수는 1,961만 기로 서울 면적의 1.6배, 전국에 있는 공장 부지의 1.2배 정도이며, 그 중 800만 기가 무연고 무덤이라고 한다.
1년에 약 20만 기(약 30만평)의 무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여의도 면적의 1.2배 정도의 땅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장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어지고 또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고 본다.

모든 사람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육신의 죽음은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이별을 고하게 한다.
그러나 죽은 이에 대해 어떻게 이별을 고하는 방법의 문제에 있어서 사람에 따라, 사회에 따라, 특히 종교에 따라 현격하게 상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유교, 불교 그리고 샤머니즘의 문화적인 전통이 뿌리 내린 한국 사회에 짧은 전통을 지닌 기독교는 장례 문화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장례 문화를 정착하기에는 아직도 상당한 진통과 시련이 남아 있으리라고 본다.

이런 현실에서 기독교적인 장례문화의 정착을 위한 시도로 장례에 관한 교회사적인 변천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것은 유교적인 장례문화의 전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장례문화를 재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며, 어떻게 장례를 기독교적으로 치를 것인가는 복합적인 종교 사회 안에 있는 한국 교회에 최소한 장례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장례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음에 임하는 태도이다.
개신교에 장례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연 루터의 글을 통하여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죽음에 임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고 그의 장례식 설교를 통하여 의식과 제식에 그치는 장례 예배가 아닌 복음적인 장례 예배를 연구하고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II. 장례문화에 대한 교회사적 이해

1. 고대 교회

고대 교회에서 장례는 시체를 치우는 일의 기술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교회에서 가치있게 여겨진 장례는 인간적이고 기독교적인 의무와 경건의 계명이었다.

기독교 이전에 있었던 장례에 관한 예전과 풍습이 고대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이것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고대 교회의 통일된 장례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적응이 기독교적인 논증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거스틴은 장례에 대한 기독교인의 의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이며 부활을 맞이하는 사람이다(Cur. 18).

이러한 사실로부터 죽은 사람에 대한 자비로운 마지막 일들이 정당하게 여겨졌다.

사람이 숨을 거두고 나면 죽은 사람의 눈과 입을 막아주었다.

죽은 사람을 씻고 아마포로 덮어 주었다(Tertullian, An. 42; Prudentius, Cath. 10). 왕, 감독 그리고 사제에게는 때때로 그의 제복을 입혀 주었다(Eusebius, V.C.IV, 66 u.a.).

그 후 시체는 관에 눕히고 무덤으로 옮겨졌다. 매장은 처음부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유일하고 타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예수의 매장은 확실히 무조건적인 모범으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례는 늦어도 2세기부터 교회의 과업이 되었다.

스스로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대적자라는 아포스타타(Julian Apostata)는 기독교를 확장시키는 주요인으로서 죽은 사람들의 무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돌봄을 치겨세우며 내세우고 있다.

근본적으로 여기에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 뿐만 아니라 구원에 참여하는 육신의 영광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순교자에게 있어서 무덤과 신성한 장소는 일치하였다.

근본적으로 死者 崇拜(Totenkult)는 무덤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대 교회에서 묘지는 거룩한 장소에 속했으며 땅 위나 땅 아래에 자리 잡았다.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은 제2세기부터 4, 5세기까지 혹은 더 오래동안 죽은 이를 카타콤베( catacumbae)이 이름은 좁은 골짜기를 따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원래 로마 근교의 제바스티안의 카타콤베인데 각 묘지를 정해 놓고 표시하였다)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지하 묘지(특히 로마, 남 이탈리아,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몰타, 북 아프리카, 리비아)에 장사지냈다.

제8세기부터 붕괴하기 시작한 로마의 카타콤베가 1593년부터 안토니오 보시오(Antonio Bosio)에 의해 1849년부터는 데 로시(de Rossi) 그리고 1883년부터 빌페르트(Joseph Wilpert)에 의해 탐구되었다. 하나의 장례 양식에서 다른 양식으로의 교체는 제2세기로 넘어갈 때 일어났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을 근거로 하여 나타난 관습은 아무런 큰 어려움 없이 일반적인 변화 안에 삽입되었다.

구약 성경적이고 로마적인 관습에서 나온 장례의 세부사항들(예를 들면 주거지로부터 떨어진 곳에 안장하는 것)은 제4세기의 문서에서부터 정확하게 나옴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들로는 시신을 씻는 일, 수건으로 덮는 일, 수의, 입관, 곡(Conclamatio), 기름 바르기, 도유, 상복, 밤샘, 운구, 장례 행렬, 시편 찬송, 죽은 이에 대한 작별인사, 부장품들이 있다.

덧붙혀서 5일, 7일, 30일째 되는 연례기념일에 성묘하는 것과 40일간의 애도, 성만찬(영원한 구원을 위한 제사로서)이 있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의 얼굴이 동쪽을 향하도록 장사하였다.

이것은 그곳으로부터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가 있었다.

무덤은 꽃들로 장식되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장례와 죽은 자에 대한 제식은 전반적으로 죽은 사람에 대한 의무를 완수해야 할 가족의 일이었다.

또한 장례는 교회에서 교회의 의무가 되었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구성원은 신자들의 공동체로부터 소환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도와 시편의 찬송으로 그를 무덤까지 수행하였던 것이다.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340/50-420)는 이미 이것을 기독교의 전통(christiana traditio)이라고 했다.

닛사의 그레고르(Gregor von Nyssa, ca. 330-395)는 그의 자매 마크리나(Macrina)가 죽었을 때 처녀들이 시신 옆에서 기도하고 찬송했으며 그후 함께 온 교인들이 시편을 교창(交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시편 101편이 교창되었다 (Conf. IX,12). 교회는 예배 순서에 들어있는 기도에서 큰 소리의 조사가 아닌 평온한 기도로 교회에 어울리는 슬픔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바로 예배 의식의 기도로 발전하였다. 로마 교회의 성사집에는 임종과 장례에서 사용되는 기도 모음집이 들어있다.

이런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그레고리의 성사집(Sacramentarium Gregorianum)에 들어 있다.

임종시의 기도들(Orationes inagenda mortuorum),

죽은 사람의 몸을 씻고 난 후의 기도(Orationes post lavationem corporis),

무덤에 묻히기 전의 기도들(Orationes ante sepulcrum, prius sepeliatur),

장사 이후의 기도들(Orationes post sepultum corpus).

죽은 사람들을 위해 제물을 바치는 것과 기도를 드리는 것은 후에 신학적으로 문제되었다. 터툴리안(ca. 160-ca. 220)과 카르타고의 시프리안(ca. 210-258)은 이 두 가지를 언급하였다.

고대 교회에서 장례식의 아주 구별되고 확산된 전통이 사도적인 법령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죽은 다음 3일째 되는 날에 죽은 자를 위한 예배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3일째 되는 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9일째 되는 날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최고의 기념제가 열리며 40일째 되는 날에도 이와 같은 기념제가 열리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매우 오랫동안 애도한데서 유래하였다(신 34:8); 죽음을 기념하는 날에는 죽은 사람의 구원을 기원하는 성찬식이 행해졌다.

어거스틴은 '죽은 사람을 위한 보살핌에 관하여(De cura pro mortuis gerenda)'에서 죽은 자를 위한 중보의 기도의 유익에 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18,22)거룩한 관례에 따라 제단에 있는 제물과 우리들의 기도와 구제의 제물을 통해 우리가 죽은 자들을 위해 탄원한 바로 그것이 죽은 자들에게 유익하다.

물론 우리가 모든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중보기도의 축복을 확실하게 한 사람들에게만 유익하다는 것을 유보로 한다. 우리는 공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중보기도를 거듭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바쳐야 한다.

그렇게 하면 중보기도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받아야 할 사람 가운데 지나쳐 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중보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중보기도가 부족한 것보다는, 중보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중보기도의 잉여가 더 낫다. 마지막으로 고대 교회의 공동묘지와 무덤의 형태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평지로 된 공동묘지에 매장(나무관이나 벽돌로 된 무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개인묘지에 가난한 그리스도인들과 묘지를 함께 나누었다.

교회 묘지(Coemeterium)는 자유인들의 무덤 옆에 있는 황제의 빌라에서 시작되었다.

공동묘지는 제3세기 로마에서 정확한 경계가 없는 시의 외벽 밖에 있는 토지에서 시작되었다. 3세기의 초반부터 유래된 카타콤베는 가장 오래된 지하 대 묘지였다.

박해를 받던 시대에 사람들은 순교자 무덤들로부터 가까운 곳을 찾았다.

- 무덤은 일반적으로 3가지 형태를 띠었다.

1. 최상급: 장식이 있는 석관,

2. 아르코졸(Arkosol) 무덤: 땅으로부터 팽팽하게 반원형의 화살 모양으로 쌓아 올려진 무덤, 3. 가장 단순하고 흔한 무덤: 측면이 긴 좁은 면을 가진 무덤.

- 평화로운 시대에는 때때로 전 주거지역 주위에 교회묘지를 지닌 교회당이 성인숭배를 위해 건축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사도교회는 왕후의 영묘를 교회 안에 두고 있다.

이 교회의 원형으로 된 무덤 건축물 안에 콘스탄틴 대제의 석관은 12 사도의 가상 무덤으로 둘러 싸여 있다.

제5세기의 후반부터 무덤은 도시 안에 자주 생겨났다.

여러 종교회의에서 반대하였지만 6세기부터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무덤들이 도시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2. 중세 교회

고대 교회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신학적인 입장으로부터 중세 시대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미사(missa pro defuntis)'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마침내 '로마의 의식(Rituale Romanum)'으로 정착되었다.

여기에서 위령미사(Exequien)는 발인하기 전에 고인을 축복하고 보내는 교회의 의식,

초상집으로부터 교회로 운구,

시신을 다루는 예(Totenoffizium),

죽은 이를 위한 미사(Requiem),

교회에서 사죄(Absolution),

좁은 의미에서 매장, 3일, 7일, 30일째 되는 날과 매해의 죽은 이에 대한 기념의 날을 포함하고 있다.

라틴교회의 법전(Codex Iuris Canonici, CIC) 1204와 1231조는 위령미사라는 개념 아래 교회에서 행해진 의식만을 포함시키고 있으며 원래의 매장(depositio)과 구별짓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위령미사가 의식적인 순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은 이가 예배 의식서적으로 정해진 행위와 교회의 기도에 의해 마지막 시간으로 인도 받는데 있다.

임종에 가까운 사람들은 임종의 성사, 회개, 성만찬 그리고 환자에게 바르는 기름과 임종 기도(commendatio animae)를 받을 수 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이 세상으로부터 그곳으로 인도하소서 …라는 요청으로 시작되며 속죄에 대한 청원과 聖人들을 불러내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로 이루어진다.

숨을 거둘 때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스데반의 기도를 말한다.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행 7:59). 숨을 거두면 바로 위령미사가 시작된다.
이 의식은 시신이 얼마 동안 집에서 관대에 얹어 놓은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의식은 시체에 聖水를 뿌리는 일로 시작된다.
사제는 죽은 이를 위해 시편 130편을 낭독한다.
그후 죽은 이는 십자가를 앞세우면서 시편의 기도를 하면서 가는 행렬을 따라 교회 안으로 옮겨지게 된다.
교회의 중앙에 시신이 안치되는데 죽은 이의 발이 제단을 향하게 되며, 죽은 사제의 발은 회중을 향하여 안치된다.
그 다음으로 소위 시신을 다루는 예식(Totenoffizium)이라고 말하는 모든 영혼에 대한 특별한 경본 기도의 형식이 수도원에 속한 사람들과 동료들을 위해서 이어진다.
시작이라는 라틴어인 인트로이투스(Introitus)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한 미사라는 라틴어인 레쿠비엠(Requiem)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장례미사라고 불리는데 이것만 일반적으로 행해진다.

일반미사에서는 서원미사와 마찬가지로 '나를 판단하소서(Judica me)', '영광(Gloria)', '나는 믿습니다(Credo)'와 같은 몇 가지 부분이 빠졌다.

금식기간과 회개의 성격을 지닌 그 외의 날에 할렐루야 자리에 속창(Traktus)이 온다. 그 다음에 두 개의 성경구절들 사이에 읽혀지는 속송(Sequenz)인 디에스 이레(Dies Irae분노의 날)가 온다.

여기에 조사가 이어질 수 있다. 조사는 옛날부터 공식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인물에게만 널리 행해졌다.

1501년 루엔(Rouen)의 종교회의는 글로리오시(gloriosi, 영광스러운), 일루스트레스(illustres, 밝은) 와 베네 메리티 세르모네스 푸네브레스(bene meriti sermones funebres, 장례식 설교의 선한 공로)만을 인정하였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사면(Absolution)은, 여기에서 불러지는 찬송의 첫 구절이 리베라(Libera me, Domine, de morte aeterna…: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영원한 죽음으로부터…)라고 불러지기 때문에 리베라라고도 불러지는데 제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은 죽은 이의 생명을 시험해보는 행위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인데 죽은 이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주여, 나를 죽음의 날에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소서.

그리고 난 후 시신을 무덤으로 옮긴다.

이 때에 인 파라디숨(In paradisum, 낙원에서)이라는 답창가(Antiphon)를 부르면서 간다.
무덤에 도착하면 무덤을 축성하는데 전체 무덤을 축성하는 것은 아니다.

관에 성수를 뿌리고 향(Inzensation)을 피운 후 죽은 이를 묻는다. 이 때에 수메 테라,

쿠보드 투움 에스트 테라 에스 에트 인 테람 이비스(당신의 것인 흙을 맞아들이소서 당신은 흙이오니 당신은 흙으로 가나이다) 라는 형식을 지닌 말을 자주 하기도 한다.

그리고 통례적으로 메멘토 호모, 쿠비아 풀비스 에스 에트 인 풀베렘 레베르테리스(memento homo, quia pulvis es et in pulverem reverteris, 인간이여, 너는 흙이며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라는 말과 함께 땅을 세 번 파 올린다.

그 후 시편의 여러 찬송(시 42, 118, 130, 132)과 눅 1:68 이하의 송가(Benedictus)를 부른다. 아이젠호퍼(L. E. Eisenhofer)는 이 송가를 교회 장례식의 극점으로서 불렀다.

이것은 교회의 장엄한 감사 찬송이며 교회는 이 찬송을 모든 풍성한 은혜로운 도움을 위해 주 하나님께 바친다.

이 은혜로운 도움은 죽은 이에게 세례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그의 구원의 모든 원수들을 대항하도록 주어진다.

이와 동시에 죽은 이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면전에서 완전한 은총의 빛을 가능한 빨리 수여하도록 하는 의식적인 청원이 있다.

무덤에서의 일은 요한복음 11:25의 답창가와 죽은 이를 위한 중보 기도로 마치게 된다.

장례미사의 구조는 예배당에 시신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praesente cadavere).

이것은 오늘날 가능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각 지역에 따라서 영안실에서 교회로 운구하지 않거나 시신을 영안실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기기도 한다.

위령미사는 무덤에 묻히기 바로 전이나 후에 드린다.

교회에서는 관 대신에 관과 비슷한 돌관 모양의 성 유물 상자(Tumba)를 놓기도 한다.

죽은 이의 실질적인 혹은 대용적인 현존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장례식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

죽은 이를 무덤으로 보내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은총과 기도를 얻게하며 그 스스로 사제의 입을 통해 참회자가 된다.

시신은 축성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를 위해 장례설교가 행해지기도 한다.

교회는 죽은 이를 영원의 문까지 데리고 간다.

교회 스스로 행동을 통하여 직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회중에 게 죽은 이의 죽음이 간접적으로 경고될 따름이다.

신자는 직접적인 위로의 말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에게 의식을 행하는 교회의 현존과 신자의 기독교적인 자비의 사역의 참여로부터 받는다.

 

3. 종교개혁시대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죽음 이후에도 기도와 행위로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념을 버렸다.

이미 1517년 면벌부 논쟁에서 루터는 95개 논제, 특히 제22항 이하에서 이러한 견해를 비판하였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위령미사와 장례미사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특히 루터는 '弔歌 모음집의 머리말'(1542)에서 전통과의 논쟁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의 기초가 되는 신학적인 총괄이 될 만한 언급을 하였다.

우리는 교회 안에 대축일 전야의 철야 기도(Vigilien), 영혼을 위한 미사, 의식, 연옥 그리고 죽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고, 해치우고 그리고 순전히 없애 버리는 다른 모든 요술과 같은 교황적인 혐오를 가지고 있다.

우리 교회를 더 이상 초상집이나 고난의 장소가 되게 하지 말고 옛 조상들이 말한 것처럼 묘지가 되게 하자.

즉 잠자는 집 그리고 휴식처로 여기자. 우리의 죽은 이들과 무덤 옆에서 슬프고 괴로운 노래를 하지 말고 죄의 용서, 안식, 휴식, 생명 그리고 죽은 기독교인들의 부활의 노래를 부르자. 이로써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고 사람들은 바른 신앙으로 인도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장례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실행하는 것은 공정하고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고백의 만족한 조항들, 즉 무서운 원수인 사망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의 부활에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세례식, 혼례식을 집례하는 직무(세례 예식서, 1529년에 나온 루터의 소교리문답과 관련된 혼례 예식서)와는 달리 통일되어 각 지역들을 관장할 수 있는 장례식 규범이 루터교 지역교회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주목을 받을 만 하다.

이것은 또한 개혁교회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와 함께 호평을 받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장례식이 훌륭하게 거행된 것에 더 많은 가치가 부여되었다.

이 개념은 16세기에 걸쳐서 수많은 교회규정들(Kirchenordnung)에 스며들어 있으며 공동체의 동의에 근거하여 규정되고 유래와 관습을 존중하며 복음에 따른 장례식을 나타내고 있다.

장례식은 이웃과 친구들과 더불어 훌륭하게 거행되어야 하며 우리는 이러한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 가족에 대해서 가진 사랑을 표시하게 된다.

우리는 이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이 죽고 부활하며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먼저 보냄을 받았다는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

부연할 것은 우리가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헤어질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시간을 주실 것을 또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죽은 교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장례식을 치르는 일은 교회의 사랑의 의무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적인 사랑에서 온 교인에 대한 장례는 기독교적인 증거와 부활의 고백에 대한 동기를 일으키며 각 자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복된 마지막을 청원하기 위해 주의를 준다.

이렇게 하여 장례식 규정들은 종교개혁적인 인식에 따라 피해야할 모든 것을 삼가고 있다. 주로 죽은 이와 그의 영혼의 구원에 관련된 행위에서 죽음에 대한 부활의 알림이 되었다. 이 기본적인 결정들은 개신교적인 장례의 형태에 표준적인 것이 되었고, 장례의 구체적인 집행에 더 광범위한 자유와 다양성을 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종교개혁의 시대로부터 장례식이 거행되는 지역적인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a) 무덤으로 가는 코스-교회에서 의식

b) 무덤으로 가는 코스-무덤에서 의식

c) 집 앞에서-무덤에서 의식

d) 집 앞에서-무덤에서-교회에서

e) 집 앞에서-교회에서

f) 집 앞에서. 여기에는 지방적이고 지역적이고 관습이 대단히 지켜졌다.

특히 독일에서는 널리 사회적인 계층에 따른 구별이 나타나게 되었다.

성직자 없이 대부분 일찍 무덤에 장사되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 학생들과 함께 한 교사에 의해 자주 이른 오후에 묘지로 운구되는 중간층의 시민 그리고 모든 성직자들에 의해 무덤으로 인도되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세 계층들에 대한 장사는 논쟁의 여지가 있었으며, 이것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다른 지역, 특히 남서부에서는 이러한 사회적인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장례는 예배를 통해 거행되었다.

당시의 높은 수준의 도덕성에서 장례에 대한 성직자들의 부담은 특히 설교가 장례와 연결되어 있었을 때 상당한 것이었음을 덧붙여서 참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반박들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특별하게 독회(讀會)와 나란히 유용되었으며 복음적인 장례는 신학적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교회규정들에 설교나 짧은 권면이 배열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복음적인 장례식에는 3 가지의 표식을 가지게 되었다.

a) 부활에 대한 공식적인 기별,

b) 사랑과 친절에 대한 증거,

c) 각자의 죽음에 대한 훈계와 이의 준비에 대한 권면.

 

4. 화장에 대한 교회사적 관점

매장은 바빌론, 앗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에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관습이다.

고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을 매장했다.

시신을 화장하는 것에 대한 고대의 관습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거절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화장이 전혀 행해진바 없음을 볼 수 있다.

게르만족, 켈트족 그리고 슬라브족에게 선교한 교회는 화장을 접했을 때, 이것을 이교도적인 것으로 낙인찍었다.

칼 대제는 784년 화장 금지를 엄하게 공포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화형으로 순교한 사람에 대한 관점에서 매장이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결코 주장한 적이 없다.

오늘날에도 카톨릭이나 개신교 신학자들은 화장이 성경이나 교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위반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회는 화장을 악습으로 배척하였으며, 그 결과 카톨릭 교회법은 화장을 금하고 있다.

1) 화장을 지시하는 사람은 교회식의 장례권을 잃게 된다.

위령미사는 다른 이유 때문에 화장을 해야하고 아무런 불쾌감을 주지 않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성직자에게 화장터로 가게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Algermissen).

어떻든 고대 교회에서 기독교의 적들은 화장을 교회를 대항하는 무기로서 여겼던 것은 확실하다.

177년 리용(Lyon)에서 사람들이 순교자의 시체를 화장하였고, 기독교인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모욕하기 위해 재를 론(Rhone)강에 뿌렸다.

그후 17세기부터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교회와 멀어진 사람들은 화장의 고대 관습을 예찬하였다.

1797년 프랑스에서 혁명주의자들은 화장을 법률로 실시하려고 시도하였다.

1848년에 프랑스에서 다시 이러한 방향에서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었다.

독일에서는 유물론자들인 폭트(Vogt)와 몰레쇼트(Moleschott)가 화장을 운동하였다. 1870년 이들은 이탈리아의 프리메이슨 비밀단원을 선전하였다.

1874년 영국의 화장협회(The Cremation Society of England)가 설립되었다.

지멘스(Simens)가 화장을 위한 근대적인 화덕을 건조한 다음 1876년 고타(Gotha)에서 최초의 화장터를 지었다.

1905년 막스주의자들은 화장을 위한 무신론자 협회(Verein der Freidenker fur Feuerbestattung)을 결성하였다.

192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무신론자들은 화장과 교회로부터의 탈퇴를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카톨릭 교회는 화장에 대한 승인은 교회로부터 탈퇴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1885년 베를린의 개신교 고등 교회법원(Oberkirchenrat)은 목사가 목사복을 입든 안입든 화장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1898년 개신교 연맹 아이제나흐 대회(Eisenacher Konferenz ev. Kirchenregierung)에서 성직자가 화장터에 성직자의 신분으로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몇 년 후에 고타(Gotha)와 마이닌엔(Meiningen) 그 후 바덴(Baden), 헷센(Hessen), 안할트(Anhalt), 바이마르-아이제나흐(Weimar-Eisenach) 그리고 작센(Sachsen)에서 목사들에게 이와 반대되게 공식적으로 허락되었다. '구 프로이센 연합 교회(Altpreuische Union)'는 가장 늦장을 부렸다.

1925년에야 총회는 목사에게 화장에 대한 구속에서 자유를 주었다.

독일 루터교 연맹의 생활규범은 이제까지 통례적이던 루터교 목사가 카톨릭 신자의 화장에서 직무를 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멈출지 모르는 화장의 증가에 교회는 더 이상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1933년에는 109개의 화장터가 독일에 있었고, 1939년에는 459,271 건의 장례 가운데 46,091 건이 화장으로 치루어졌다(89.8 : 10.2.%).

오늘날에는 단지 화장에 대한 위생적이고 다른 실제적인 고려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독일 루터교 연맹(Vereinigte Evangelisch-Lutherische Kirche Deutschland; VELKD)은 1955년 생활규범(Lebensordnung) VIII, 10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교회는 매장과 마찬가지로 화장도 공포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에게 매장을 기독교적인 관습으로 권유한다.

루터교 예배 의식서 또한 화장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제공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III. 루터의 죽음에 대한 준비와 장례식 설교

1. 죽음의 준비에 대한 루터의 견해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을 때 장묘(葬墓)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죽음의 준비에 대한 루터의 설교는 우리에게 장묘 문화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1519년 5월 초에 루터는 슈팔라틴(Spalatin)의 주선 아래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현공의 고문의 한 사람인 샤르트(Marx Schart)의 부탁을 받고 같은 해 11월 1일에 죽음의 준비에 관한 설교(Ein Sermon von der Bereitung zum Sterben)"의 인쇄본을 발송할 수 있었다.

루터는 샤르트에게 헌정사를 썼다. 이 글이 수많은 판을 거듭한대서 그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이미 1520년에 루터는 이 글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루터는 이 글을 쓸 충분한 시간이 없었으며 이와 더불어 이 글에 만족함을 가질 수 없었지만 평신도들을 위하여 이 글을 인쇄했다.

16세기에는 죽음에 대한 위로의 글이 베스트 셀러 이었다.
이 글은 20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졌다. 루터는 이 글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운 모습과 죽음, 죄, 지옥의 표상을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루터는 이 글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에게 복된 죽음을 위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루터는 인간에게 생의 확실한 경계선인 죽음을 배제하지 않고 기독교인으로서 이 경계를 현실적으로 주목하고 있다.

먼저 루터는 죽음 이후의 다툼과 싸움을 피하기 위해 이 세상의 일들을 정리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영혼이 고통 속에 있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들과 화해해야 한다고 한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일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밀어 젖혀질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홀가분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서는 일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길은 하나님에게 인도될 것이다.

루터는 죽음에 임박하여 가장 좋은 것은 성례전의 집행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믿음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성례전은 단지 신앙을 보조하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성례전을 집행해야지 죄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임종시 죽음은 고려할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이 있을 때에 자꾸 되풀이하여 3 가지 저주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죄에 대한 혐오 그리고 지옥과 영원한 저주에 대한 견디기 어렵고 피할 수 없음이다.

이것을 죽을 때 가서야 행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위험하고 쓸데없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 죄 그리고 지옥과 영원한 저주를 극복하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루터는 고전 15:57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루터는 이 3 가지에 대한 싸움이 사사기 7:16절 이하에 암시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기드온이 300 명을 3 대로 나누어 하루 밤에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어 항아리 안에 감춰 둔 횃불을 든 일밖에 없었는데 미디안 군대는 도망하고 서로 칼날을 쳤다.

이와 같이 우리가 밤에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거룩한 사람들의 빛나는 형상에게 우리 안에 있는 자리를 내어 준다면 죽음, 죄 그리고 지옥은 모든 권세와 함께 도망하게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악한 형상을 알지 않으며 알 수도 없는 믿음이며 나팔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기를 얻으며 강해지게 된다.

이러한 국면에서 죽음, 죄 그리고 저주가 아닌 생명, 은혜 그리고 구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죽음을 이긴 생명 자체이며 십자가에서 죄의 숨통을 끊고 없애고 지옥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

루터는 이에 대한 표식을 성례전에서 찾고 있다.

이 성례전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 순종과 사랑으로 죽음, 죄와 지옥을 지시고 이기신 것을 나타나는 참된 표식이다.

그리하여 성례전에 참여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혹자와 파괴자는 그의 마지막에 가장 엄청나고 교활한 일을 행한다.

자신이 가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절망적인 의심으로 당혹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함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과 표식을 신뢰한다.

이런 점에서 믿음은 가치가 있으며 이 믿음 안에서 모든 성도들과 천사들의 강력한 공동체를 체험하게 된다.

루터는 유혹자의 절망적인 의심을 극복한 사람은 죽음과 멸망의 위협을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미래의 삶에 그의 은혜와 사랑을 굳게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이미 죽음을 극복한 사람들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성도들. 신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모습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죄가 극복되었으며 이곳에서 또한 지옥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사람은 멸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아무도 이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신앙을 지속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극복할 수 있게 된다.

 

2. 장례식 설교의 기원

기독교에서 장례설교의 시작은 조사(弔辭)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러나 일반적으로 행해진 것은 결코 아니며 어느 시대에서나 이것이 없을 때는 없었다.

교부시대로부터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신분이 고귀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까운 친척들의 조사뿐이다.

이것은 고대 시대의 송사(頌辭)의 전승을 이은 것이다.

이것은 쉽게 기독교화 되었으며 죽은 이에 대한 매우 전형적인 찬가이다.

그리고 성 게미니아노의 요한(Johann de St. Geminiano, 1346년 사망)의 '장례설교의 모음집(Sermones funeberes)'이 있다는 중세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희미한 보고가 있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세후기에 개별적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종교개혁 시대에서야 비로소 장례식에서 조사 내지는 장례설교가 전지역적이지는 않았지만 넓은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있게 되었다.

루터는 1519년에 죽음의 준비에 대한 설교(Ein Sermon von der Bereitung zum Sterben)를 통하여 신앙의 역사에 새 장을 열었으며 동시에 정신적인 모체를 만들었다.

이 모체 위에 200년 (1550-1750) 동안 장례설교들의 장르가 번영하였다.

루터 자신도 1525년 5월 10일과 11일에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현공(Kurfurst Friedrich der Weise)의 장례식에 즈음하여 살전 4:13 이하를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그리고 1532년 8월 18일에 작센의 선제후 요한(Kurfurst Johann)을 위해 두 개의 장례설교를 했다.

루터의 장례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 위로, 경건 그리고 교인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루터와 동시대이거나 후기 종교개혁 시대의 인물들인 멜랑히톤(Melanchthon), 부겐하겐(Bugenhagen), 마테지우스(Mathesius), 젤넥커(Selnecker) 그리고 헤르베르거(Herberger)와 같은 사람들은 루터에 의해 세워진 이러한 전통 안에 서 있었다.

부겐하겐도 1546년 2월 22일 루터의 장례식에 살전 4:13-18을 본문으로 장례설교를 했다.

실제적으로 장례 설교는 지역적인 관습에 따라 묘지(이곳에서는 조사라고도 불러짐), 교회 혹은 집에서 행해졌다. 설교의 내용은 죽음, 부활 그리고 이에 대한 논증으로 이루어졌다. 설교본문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신약성서의 살전 4:13이하, 요 11:21이하, 고전 15:20과 같은 본문을 주로 택했다. 이러한 성경 본문으로 신학적 요구가 정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약 몇 십 년 후에 장례설교 본문의 선택에 대한 사례가 완성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예를 든다면 비뎀바흐(Felix Bidembach)는 1640년 '교회 목회의 용례(Manuale Ministrorum Ecclesiae)'에서 장례식 설교를 위하여 10 단계로 된 500 개의 본문을 제시했다.

이 본문들은 본문의 선택에 있어서 개별적인 경우가 주된 원칙이 되었다.

노인이나 젊은이, 어린이들이나 여성들, 태어난 후 바로 죽은 아이들, 회개한 사람들 혹은 회개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에 관한 성경본문이 예시되었다.

사람들은 이 본문으로 구체적인 경우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본문은 구약성경에서 왔다.

 

3. 루터의 장례 설교

1)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현공의 장례 설교

1525년 5월 5일 프리드리히 현공은 기도회와 참회 그리고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성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로하우(Lochau)성에서 눈을 감았다.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자신을 비텐베르크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수도원 교회의 제단에 (비텐베르크의 城敎會)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멜랑히톤은 장례식 전날 저녁 라틴어로 된 조사를 했고 루터는 독일어로 장례식의 설교를 했다.

당시 토르가우(Torgau)의 목사였던 츠빌링(Zwilling)은 이 설교를 훌륭한 것으로 평가했다. 슈팔라틴(Spalatin)은 이 설교가 기독교적이었으며 매우 흡족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츠빌링을 통하여 당시 높은 신분의 장례식을 또한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이 우리의 자비로운 선제후의 시신을 완전히 무덤으로 옮길 때에 학생들로 앞에 가게 하면서 몇 명은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

리고 몇 명의 귀족들이 관을 지고 가게 하고 조신(朝臣)들은 모든 백성과 더불어 그 뒤를 따르게 한다.

그 후 선제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묻는다. 시신을 묻고 난 다음 백성들에게 권면이나 설교를 한다면 이것이 최고일 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장례식 전날 밤 멜랑히톤은 라틴어로 조사를 그리고 루터는 독일어로 설교했다.

5월 10일 시신은 로하우에서 예센(Issen)과 엘스테르(Elster)를 거쳐 비텐베르크로 운구되었다.

시신이 비텐베르크의 성교회에 도착되어 교회의 중심에 놓여지자 합창단이 우리 모두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후 시편 118편이 라틴어로 불러졌다.

다음으로 멜랑히톤이 라틴어로 선제후의 장례식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 후 루터 박사가 살전 4장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고 죽은 자에 관하여 기독교적으로 이 때에 루터가 살전 4:13-18을 중심으로 설교하였고 설교가 끝나자 선제후의 시신이 교회의 제단 밑의 무덤에 안장되었다.

5월 10일의 첫째 설교에서 루터는 먼저 슬픔과 괴로움에 잠긴 사람들을 살전 4:13-18의 말씀을 통해 위로하고자 한다.

그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지도자들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제후의 죽음은 국민들을 슬프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루터는 선제후의 신앙에 대하여 칭송하면서 그가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가졌으며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했기 때문에 그가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루터는 선제후의 공적에 대하여, 특히 신앙적인 면에서 치하하고 있다. 그는 독일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였으며 광신주의자(Schwarmer)들을 타파하는데 공을 세웠다고 본다.

다음으로 루터는 살전 4:13에 관해 해설하고 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와는 달리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으로 생각하며 최후의 날에 다시 일어날 것임을 믿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만 이방인들과 다른 점은 소망을 갖는데 있다.

살전 4:14에 관해 루터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부활을 성취한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한 것뿐만 아니라 의롭게하고 구원을 이룬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부활과 바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루터는 사도신경의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 신앙고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5월 11일의 둘째 설교는 살전 4:15-18까지의 해석이다. 여기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종말론적 으로 해석하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일을 교황의 독재로부 터의 해방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불신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을 경고하 고 있다.

심판과 관련하여 루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와 불신자의 부활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 도는 산 자와 죽은 자, 선한 자와 악한 자,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심판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 는 믿는 자만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은혜를 입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그러나 불신자는 그의 불신앙으 로 죽게 된다.

그는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수 도 없으며 밑에 머물게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루터는 고인이 된 선제후가 거룩한 말씀 안에 거했으며 그것 때문에 고난을 받았고 그 의 생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가 자기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신앙을 고백하였으므로, 그가 그리스도를 통해 잠자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성경에 말씀한 것처럼 전혀 다른 몸으로 부활하며 휴거할 것이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

2) 작센 선제후 요한의 장례 설교 슈바이니츠(Schweinitz)에서 사냥을 위해 머물러 있던 선제후 요한(Johann)은 1532년 8월 15일 심한 뇌졸중으 로 임종의 자리에 눕게 된다.

다음날인 16일 저녁 요한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8월 18일 요한의 시신은 비텐 베르크의 성교회에 안장되었다. 이 장례식에서 루터는 장례 설교를 했다.

선제후 요한의 계승자인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Johann Friedrich)의 원에 의하여 8월 22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성교회에서 8월 18일에 했던 설교 의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했다. 8월 18일과 22일의 설교 본문은 살전 4:13 이하이다.

이 본문은 선제후 프리드리 히 현공의 장례설교시에도 사용되었다.

루터는 8월 18일 설교의 서두에서 위령미사나 장례미사를 더 이상 드리지 않는 것이 관습이 되었음을 상기시 키고 대신 설교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루터는 특히 설교가 예배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루터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다른이와 같이" 죽음에 대해 슬픔을 갖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말 하면서 선제후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비통하지 말라는 위로를 주고 있다.

본문에 의거하여 루터는 기독교인들 이 죽은 것은 죽은 것이 아니며 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게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인간 전체(der ganze Mensch)가 죽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육신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루터는 선제후의 높은 덕을 기리고자 함이 아니라 그가 죄인인 것을 말함으로 신앙고백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각하고 있다. 선제후는 매우 경건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으며, 루터는 그가 교만하거 나 화를 내거나 시기심을 낸 적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 주위 에는 열이나 되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었다.

루터가 이런 말을 한 까닭은 아무도 선한 일을 한 인간이 없다는 것 과 그의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선제후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 라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데려감을 받는다는 것이다.

8월 22일의 설교의 서두에서 루터는 더욱 위로를 주기 위해 하는 설교임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죽음에 서 이교도들과 다른 점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믿음을 통해 얻게된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죽 은 선제후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임을 루터는 확신하고 있다.

이 설교에서는 앞서 했던 설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언급하고 있으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선제후를 취 하셨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데리고 오신다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

선제후가 이렇게 되는 것은 그가 그리스 도로 세례를 받고 복음을 알며 기독교의 신앙 고백을 지켰기 때문이다.

루터는 선제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 나리라는 종말의 소망을 고백하고 있다.

루터는 장례 설교를 통하여 믿는 이의 죽음은 그리스도에 의해 극복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며 새 로운 피조물로 되는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는 이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속의 사역을 전파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IV. 결론

1. 장례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사실 요청되고 있는 시기에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필자 나름대로 생각한 것 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이다.

전도서 7:2에 "초상집에 가 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한 것은 죽음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허해지며 종말론 적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은사로 주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기독교 의 장례식은 단순히 장례식이 아니라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부활의 소망을 기다리는 설교 중심의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죽음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 중요한 것인가를 시사 해주고 있다.

2.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검소한 장례 문화를 실천해야 한다.

어거스틴은 땅에 묻히는 일은 죽음 이후의 계속 되는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시신, 장례의식에 대한 정성과 장례식의 화려함 같은 것이 죽은 사람에 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위로가 된다고 보았다.

화려한 장례식이 불신자에게 유익하다면 초라한 장례식을 치루거나 장례식을 전혀 치를 수 없는 신앙인에게 해가 될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자주색 옷 을 입은 부자에게 화려한 장례식이 치루었지만, 가난한 사람은 아브라함 품안까지 인도하는 수종드는 천사들 에 의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훨씬 더 화려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3. 서구의 교회 안과 교회당 주변의 무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나의 공동체(communio) 를 이루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교회 안과 주변에 무덤을 가질 수 없는 우리 나 라의 현실로 보아 매장보다는 교회 안에 납골당을 두어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인식의 전환 도 생각해볼 만하다.

몸의 부활을 맏는 기독교인들은 화장하면 부활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매장이든 화장이든 부활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왜냐하면 매장된 선조들도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결국 흙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4. 기독교와 우리의 장례 문화에 대한 접목을 기독교적인 안목에서 해석을 시도해야 할 점을 발견하고 기독교 화 하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기독교 전통에서 장사한 후 3일에 죽은 이에 대한 기념이 있었는 데 이것은 유교적인 전통의 삼우제(三虞祭)과 유사하다.

이것을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 위에서 언급한 중세 시대에 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과 같을 필요는 없지만 개신교 내에서 통일된 장례의식 이 실행되어야 한다.

각 교단마다 예식서가 있지만 이 예식서를 교회연합의 차원에서 통일된 예식서를 만드는 작업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예식서가 있어도 개 교회에서 이것을 준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개 교회는 독자적인 예식보다는 최소한 교단의 예식서를 실행하는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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