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 피터슨과 메시지 성경에 관해
[질문] : 얼마 전 유진 피터슨에 대해 검색하다보니 이단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관상기도나 레노바레 운동, 존 파이퍼(이분은 제가 잘 모르고요), 리차드 포스터와 연관 지어서 조심해야하는 사람으로 분류 평가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즐겨 듣는 한 목사님은 메시지 성경을 자주 인용하고, 또 어떤 분은 성경 공부하는데 도움 된다고 권해주기도 했습니다. 조금 읽다가 영 이상하고 어색하여서 읽지는 않았지만 많은 목사님들이 추천하기도 하고 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관상기도는 어감조차 끌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자기 기도만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기에 저도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조용히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것도 일종의 관상기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측면으로 구분해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습니다.
[답변] : 기독교 신앙에는 성경이 확정적으로 선포하는 절대적 진리가 있고 또 각자의 판단과 적용에 맡기는 부차적인 주제들이 있습니다. 전자는 결코 변개 타협 포기 되어선 안 됩니다. 쉽게 말해서 사도신경에 담긴 내용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절대적 진리를 삶에 적용하여 구현하는 실천적 측면은 어느 누구라도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질문하신 주제는 비록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들이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신앙 성향, 특정 성경, 특별한 기도 방식을 평가해달라는 것입니다. 상기에서 후자에 해당되는 이슈들입니다. 말하자면 제가 드리는 답변도 성경이 말하는 진리라고 섣불리 판단하시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의견으로 참조만 하셔야 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전부 천주교와 관련되기에 앞선 WCC에 관한 질문에 제가 답변 드린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천주교와 관련된 진리적 측면은 그 글에서 어느 정도 다뤘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셋으로 나눠 원론적 차원에서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이단인가?
WCC에 관한 앞선 질문의 답변 글에서 불참 반대하는 쪽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눠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WCC에 참여하는 교단은 전부 이단이라 구분하고 또 그에 속한 사람들도 전부 백안시하여 배척하는 입장이 강경파입니다. 말하자면 천주교를 믿어도 구원이 가능하다거나, 혹은 협력 사역이 가능하다는 노선을 취하는 교단이나 사람 둘 다 무조건 이단이라 간주하여 상대조차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교단과 교리는 엄격한 거리를 두되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좋은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 온건파라고 했습니다.
만약 아주 명확하게 천주교가 가르치는 교리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인정했다면 분명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예컨대 조엘 오스틴 같은 분입니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 존 파이퍼, 리챠드 포스터 같은 분들이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했다는 말은 제가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마땅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복음을 확장함에서 천주교와 협력 사역을 하자는 노선을 취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레노바레 영성운동도 관상기도처럼 등 천주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앞선 글에서의 WCC 참여파 중에 선한 의도를 가진 온건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세 분의 WCC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모릅니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그렇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가르침과 글들에는 그 독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듯이 성경적으로 진리이며, 복음에 바로 서있고, 영적으로 깊은 통찰이 드러나 은혜가 되는 측면이 상당히 있습니다. 물론 평신도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이 이단으로 몰릴 만큼 비성경적인지 판단하기는 아주 힘듭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완전히 백안시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여서 나름대로의 노선을 분명히 정립해서 그들의 책도 많이 읽어서 얻을 것은 얻어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평신도가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만민제사장주의를 넘어서 이제는 만민신학자주의가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현재의 영적 혼탁상은 바른 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바른 신학은 있는데도 사역자들마저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물결에 휩싸여 동조하거나, 제대로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혼란스런 가르침을 받는 일반 신자들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역자만 믿지 말고 신자들이 자구책(?)을 구해야 할 때입니다.
실제로 이제는 누구라도 손쉽게 성경공부는 물론 신학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 않습니까? 옆에서 올바르게 가이드 해주는 분만 있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예의 세 분을 이단으로 분류해 놓고 상대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들의 가르침과 글에서 어떤 부분이 조금 과하고 약한지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메시지 성경을 보면 안 되는가?
성경은 알다시피 마지막으로 저작된 요한계시록의 기록연대도 AD 95 년경이므로 근 이천년 전에 저작된 책입니다. 현대의 독자와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 심지어 언어적인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쉽게 알아들었을 용어나 사건의 배경을 오늘날 독자에게 난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당시 상황이나 용어와 표현들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새로 번역하는 작업이 활발합니다.
그 중에서 유진 피터슨이 저작한 메시지(Message) 성경은 가장 파격적입니다. 다른 모든 번역본은 어려운 단어나 표현만 현대식으로 바꾸었지 원문의 문장 자체는 고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메시지는 전체 스토리가 주는 내용과 의미부터 쉽게 전달하려는 목적에 치우쳐서 문장 자체까지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어린이 성경에는 원문은 사라지고 단지 스토리만 동일하게 새로 저작, 정확하게는 각색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의 원본은 알다시피 일점일획도 버릴 수 없습니다. 실제로 원문에서 단어 하나라도 그 갖는 의미와 은혜는 대단합니다. 또 시제, 문장 형식, 수동태 능동태 같은 문법적 구조와 표현 방식에도 그러합니다. 심지어 접속사나 구두점 하나가 바뀜으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최초의 원본은 없어졌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하나님 말씀을 접하는 진정성과 열성을 봐선 우리에게 전해진 필사본들이 원본과 같다고 봐야합니다. 따라서 모든 성경번역은 가능한 원문과 일치하는 한도 내에서 현대적 용어나 표현만 바꿔야지 원본의 문장 자체까지 변경시켜선 그 의미나 은혜가 크게 떨어집니다. 질문자님이 “조금 읽다가 영 어색하고 이상했다”고 느꼈던 것이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메시지 성경이 백해무익한 것이 아니라 일부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성경의 전체 내용을 가장 손쉽게 빨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인 은혜나 감동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성경은 어렵고 지루한 책이라는 선입관이나 편견을 없애고 전체 줄거리에 대한 맥은 곧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진 피터슨이 영성이 뛰어나고 복음적인, 첫째 주제와 연결하면 넓은 의미에서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자라도 해도 인간인 이상 자기가 그 의미를 풀어서 저작할 때에 오류 내지 부족한 측면이 없었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스토리를 알려고 읽는 책이 아니지 않습니까? 날마다 말씀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개인적 인격적 체험적으로 대면하여서 자기 존재를 거룩하게 바꾸고 그분의 뜻을 삶에서 구현하려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고유의 목적에 비추면 메시지는 턱없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또 쉬운 성경을 읽을 목적이라면 최근에 우리말로는 “현대인의 성경”이나 “쉬운 성경”을 비롯해 개역성경보다 원문과 더 근접하면서도 개역보다는 쉬운 “표준 새번역” 같은 성경만 읽어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어떤 번역본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다 교단이나 목사님마다 같은 성경을 두고도 조금씩 그 해석이 다릅니다. 따라서 이제는 일반 신자도 이왕의 “개역성경”과 “현대인의 성경 혹은 쉬운 성경 중의 하나”와 “표준새번역”의 세 권 정도를 갖고서 서로 비교 대조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합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본은 창세기 1:1부터 잘못되었기에 아예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의 영어번역본에는 자유주의 신학을 반영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므로 전문가와 상의하여서 골라야 합니다. 예컨대 페미니즘 사상을 나타내려고 남성명사를 전부 중성으로 바꾸었기에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정말로 영적으로 혼탁해지고 성경 번역도 너무나 다양해졌습니다. 바로 이런 뜻에서도 평신도가 신학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를 하면 이단인가?
관상 기도에 대해선 이미 일부 보수적인 교단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어 놓았습니다. 물의를 일으켰던 유명 목사님은 최근에 관상기도와 관계되는 모든 활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압니다. 그만큼 온, 오프라인 상에서 찬반논쟁이 뜨겁게 이어져 왔습니다. 저는 깊이 알아보지 못해 구체적으로 평가할 입장은 되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런 자료들을 참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도 그 궁극적 발단은 천주교입니다. 오래 전 초대 교회 시절에 대표적으로 사막의 교부들이 주변의 잡음을 모두 끊고 홀로 칩거하면서 묵상을 한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자신의 간구를 아뢰기보다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시도하는 기도 양식입니다. 현실의 환난이나 일상적 염려는 완전히 제쳐놓고 그분의 뜻을 알려는 것입니다.
그런 의도로 기도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바울도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에 얼마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그런 묵상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갈1:17) 또 아마도 그 때에 그가 로마서나 기타 서신서에 기록한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정확하게 계시 받은 것이 아닌지 추측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질문자가 경험했듯이 그저 아무 말도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기다린다고 해서 쉽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에겐 오히려 잡생각이 더 들거나 졸리고 지칩니다. 신자에게 떠오르는 생각도, 때로 미세한 내면의 음성이든 간에, 그 근원은 셋입니다. 하나님과 사탄과 자신입니다. 그 셋 중에 정말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기도 힘듭니다.
저는 관상기도가 천주교와 불교, 기타 뉴에이지 같은 사교(邪敎, cult)에서 적극 활용하는 기도 방법이라고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도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모든 것을 끊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상기도만 하면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또 신자가 평상적인 기도 중에 듣거나 떠오르거나 깨달은, 실은 본인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내용을 전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간주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성도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절대적이며 근본적인 뜻은 이미 성경에 다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 진리를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당연히 기도로 물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듣거나 깨달았던 본인이 믿고 따르려는 그분의 뜻과 계획을 반드시 성경의 근본진리와 대조 평가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와 위반되면 아무리 기도 방식과 그 응답이 초자연적이고 비상했던, 그래서 심지어 음성과 환상을 직접 듣고 보았던 하나님의 뜻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사탄이 신자를 미혹시켰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요컨대 신자는 관상기도보다는 묵상기도를 해야 합니다. 묵상하기 전에 하나님에게 마음을 여는 시간부터 가져야 합니다. 가장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어떤 뜻이든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갖춘 후에 본격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온전한 기도가 되기 위한 기도를 먼저 간단히 하는 것입니다. 또 기도하기 전후에는 반드시 성경 말씀을 읽어서 기도할, 혹은 기도했던 내용이 성경의 진리와 부합한지 대조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 진리에 대해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은 신자들이 관상기도는 물론 묵상도 오래하면 자칫 혼동이 생깁니다. 심지어 믿은 지 얼마 안 되면 자기 간구하는 것만 기도해도 됩니다. 그리고 기도가 성숙해지려면 무조건 기도부터 하고 봐야 합니다. 특별한 기도 방식을 택할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무슨 일이든 일단 무릎부터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후에 되어져 가는 모든 형편을 기도한 내용과 연결시켜서 성경 말씀과 함께 묵상하다 보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터득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차츰 차츰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
놀랍게도 사탄이 신자를 가장 많이 공격하는 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예컨대 기도원의 일인용 기도 굴에 들어가 철야기도를 하다가 귀신을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미숙한 신자가 관상기도 뿐 아니라 특정한(금식기도 같은 것) 기도방식만 답습해선 안 됩니다. 잡념이나 혼란을 일으키는 차원을 넘어서 진짜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기도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특별히 주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기도하면 됩니다. 성경과 예수님 외에 신앙생활에서 따라야할 기준은 없습니다. 이단이나 오류를 판단하는 기준도 오직 그 둘입니다. 신앙 상의 어떤 의문, 논쟁거리도 성경과 예수님에게서만 정답을 구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세 주제는 무조건 이단 혹은 잘못이라고 무 자르듯 구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장점은 취하고 반드시 버릴 것들은 버리면 됩니다. 유진 피터슨의 책은 얼마든지 읽어도 되는데 단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메시지 성경은 아무리 성경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어도 성경이 너무 지겹고 어려워서 도무지 못 읽겠다는 사람 말고는 권할만한 사항이 안 됩니다. 관상기도는 할 필요가 없으며 묵상기도는 하되 반드시 성경 진리를 먼저 알고 함께 대조해야 합니다. 또 그러려면 지금 세대야말로 일반교인들이 성경과 신학을 제대로 깊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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