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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북전쟁의 상처를 봉합한 그랜트 장군의 위대한 협상

주거시엔셩 2012. 7. 16. 13:44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남부와 북부 두 지역으로 나뉘어 노예제도 폐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내전이다. 5년여에 걸친 이 전쟁은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 주 애포매턱스에서 그랜트(1822~1885)장군과 리(1807~1870) 장군의 협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 협상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면 누가 승장이고 누가 패장인지를 알아보기가 힘들다. 항복한 남군 총사령관인 리 장군은 우아한 회색 장군 정복을 입고 장군도를 멋있게 찬 반면, 전쟁에서 이긴 북군 총사령관인 그랜트장군은 진흙 묻은 군화에 평소 즐겨 입던 구겨진 사병 셔츠를 입고 칼도 안 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만 봐서는 오히려 리 장군이 승장으로 보인다. 남군 총사령관 리 장군은 남부 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몬드가 함락당한 후 패잔병과 함께 서쪽으로 쫓겨 가다가 항복을 결심하고는 그랜트 장군에게 전령을 파견했다. 다음날 정오에 애포매턱스에 있는 매클린의 집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던 것이다. 리장군은 '어쩌면 이번 협상이 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랜트 장군이 적군 우두머리인 자신을 총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군 총사령관으로서 떳떳한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리 장군은 최고의 군복을 갖춰입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랜트 장군이 내건 협상조건은 너무나 관대했다. 리 장군은 물론 남군들은 모두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전쟁 포로 같은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더욱이 타고 있던 말도 그대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굶주린 남군 패잔병에게 2만 5천 명 분의 식량까지 제공해주었다. 이에 감격한 것은 리 장군만이 아니었다. 5년이 넘는 내전으로 모든 곳을 잃고 적개심에 불타던 남부 전체에서 북군에 대한 원한이 봄눈 녹듯 스러졌다. 만약 그랜트 장군이 남부 패잔병들을 전쟁 포로로 혹독하게 다루고 리 장군을 전범으로 몰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오늘날 미국인의 마음속에는 남부 USA와 북부 USA라는 두 개의 미국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그랜트 장군의 위대한 협상 덕분에 피비린내 나는 남북전쟁의 상처가 빨리 아물수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리 장군과 그랜트 장군이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동기라는 점이다. 리 장군이 수석 졸업을 하고 군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반면에, 그랜트는 실패한 군인이었다. 그랜트는 졸업 성적이 좋지 않아서, 그 당시 선망의 대상이던 기병장교로서 좋은 보직을 받지 못하고 변방인 서부 요새에 배치됐다. 인디언 몰이나 하는 군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전역한 예비역 육군 대위 그랜트는, 농사도 지어보고 사업도 해보는 등 이것 저것 손을 댔다.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에는 일리노이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잡화상 에서 서기로 일하면서 겨우 가족을 부양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랜트는 영락없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던 차에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일리노이 주지사는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고는,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그랜트에게 지휘권을 맡겼다. 그랜트는 일리노이 주 군대를 이끌고 아버지 잡화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결심했다. '전쟁터에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살아서 이 음침한 잡화상으로 되돌아오지는 않겠다.' 그랜트와는 대조적으로 군에서 승승장구하던 리 장군은 남북전쟁 초기에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북군 총사령관직을 제의 받았다. 그러나 리 장군은 당시 버지니아 주 방위군 장교로 근무하던 두 아들과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결국 사랑하는 고향 버지니아를 택해 남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매클린의 집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그랜트 장군은 잘나가던 동기생 리 장군을 알아본 반면에 리 장군은 생도 시절 무명이었던 그랜트 장군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장이었던 이들의 우정은 매클린 협상을 계기로 새롭게 피어났다. 리 장군은 전쟁이 끝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 동안 남부를 떠나지 않았는데, 딱 한 번 수도인 워싱톤을 찾았다. 바로 그랜트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 안세영 지음 "CEO는 낙타와도 협상한다" 에서 ♣ 德 ♣
출처 :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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