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팀설교/2009년9월10일
하나님의 전신갑주(2): 영적 씨름에서 끝까지 서있기 위해서
에베소서6장12~13
이번 임진강의 물을 방류해 버려서 6명이나 사상자가 난 것을 보면서 북한은 왜 이렇게 무례하게 행할까 아쉽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때때로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려 보게 됩니다. 남북은 아직 전쟁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간마다 잊어버려서은 안되는 또 다른 전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 전투입니다. 이 영적 전투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싸우는 대상입니다. 분명하게 ‘혈과 육’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하면 사람과 싸우다가 기진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사람 뒤에 역사하는 배후의 세력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 상대방의 사람을 ‘마귀’니, ‘사탄’이니, 혹은 ‘사탄에게 속했다’느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 뒤에서 사탄이나 그 졸개들이 마귀들이 있다고 영적으로 감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그런 식으로 부르거나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한 것은, 베드로의 뒤에서 작용하는 세력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사단이었다면 베드로가 예수님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 그렇게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싸우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통치자들’(옛, 정사, principalities), 권세들(Powers),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Rulers of Darkness of this age),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Wicked Spirits in heavenly places)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선한 천사들도 여러 등급이 있는 것을 압니다. 천사장 가브리엘이 있습니다. 미카엘도 있습니다. 그룹과 스랍도 있습니다. 천군천사들이라고 하는 표현도 나옵니다. 이처럼 하늘의 천사들 3분의 1이 사탄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들도 영향을 미치는 영역들이나 등급이 다른 것으로 나옵니다. 통치자들은 각 나라를 담당하고 있는 악한 천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니엘서에는 ‘파사군’ 혹은 ‘파사왕국의 군주’라고 나옵니다. 국가 뒤에 악한 천사가 영향력 미치는 것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정치적인 악한 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상의 정치적인 인물들 뒤에서 역사합니다. ‘권세들’은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다른 면에서 ‘능력’ 곧 파워를 행사하는 존재들입니다.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행하는 일들을 이들이 합니다. ‘어둠의 주관자들’은, 이들 중에서 점성술, 마술, 신비주의나 온갖 사이비종교들 속에서 역사하는 영들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란, ‘악’이 특별히 ‘사악함’(wickedness)로 번역되는데, 간교하고 사악한 영들로서 자신을 사탄의 조직이 아닌 것으로 가장하는 존재들로 보입니다. 정통을 가장하고, 참된 신앙을 가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현혹하고 속이는 것들 말입니다.
이 모든 악한 존재들, 천사들, 한마디로 하자면 마귀들을 사탄과 함께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두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의 머리를 쳐부셨습니다. 그들은 쫓겨났습니다. 그들이 쫓겨난 그 진지를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 싸움은 진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차지한 진지를 계속 고수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주로 방어용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면을 고려할 때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서 있으라’(stand)는 말입니다. ‘악한 영들을 대적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대적한다는 것은 대항해서 서 있는 것(stand against)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야, 모든 싸움 이후에 서있을 수 있습니다. 곧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신갑주를 입기 위해서도 또한 서 있어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서 있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첫째, 서 있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에는 휴가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들을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유혹은 참 달콤하지요. 금식하면서 그 유혹을 받은 것 말씀드렸지요? 입에만 넣고 깨물지는 않아야지, 깨물기는 해도 씹지는 않아야지, 씹기는 해도 삼키지는 않아야지....얼마나 달콤한 유혹입니까? 우리가 배워놓고는 그 배워놓은 지식에 만족하고 실천하지 않게 하는 것도 사단의 전략입니다. 사단은 너무 지나치게 사단을 생각하게 함으로 인해서, 사단의 종이 되게 하기도 하고,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게 함으로 인해서 또한 영적 전투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교묘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서 있는다는 것은, 낙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투중에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고, 환란이 있습니다. 유혹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4장12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싸움에 들어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혀 갈등도 없고 문제도 없는 세상에 들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믿을 때보다도 더 힘듭니다(직장에서, 가정에서, 신호를 어기려고 하면, 아이가 아빠, 목사쟎아요! 합니다).
둘째, 서있는 것은, 절망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능력은 어떤 사탄의 세력보다도 더 강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릴 수는 있어도, 결코 그리스도인들을 손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하나님의 권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싸움한다는 것 자체를
셋째, 서있는 것은, 한 마음, 정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곧 두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어떤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세류에 영향을 받아서 기독교의 진리를 어중간한 태도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종교들과 비슷하거나 좀 더 고상한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기독교만이, 예수님만이 진리이시다고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죄를 짓는 것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워야 할 싸움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서 있으라’고 권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입으라고 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속 되는 묵상을 통해서, 이 전신갑주 하나하나 모두를 취하여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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