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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문화 - 폴 히버트
폴 히버트 -
복음과 문화
복음과 문화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 둘을 구분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으 면 우리의 문화가 메시지가 되게 하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렇게 되면 복음은 민주주의가 되고, 자본주의가 되고, 평신도와 설교자가 되 고, 일요일에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교회에 가는 것이 되어 버린다. 복음을 전 하는 데 있어 주된 장애물 중 하나는 복음의 메시지가 그리고 기독교가 문화 적으로 외국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인도의 복음 전도자인 `멀티'씨가 말하 듯이, “복음을 마치 화분에 심긴 나무처럼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 마십시오. 우 리에게 복음의 씨를 가져와 우리의 토양에 그 씨를 심어 주십시오.”
복음과 인간의 문화들을 구분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는 않다. 복음은 모든 메 시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문화적 형 식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는 개념적인 범주들과 상징 들 없이는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메시지가 우리의 믿음뿐 아니라, 우리 문화의 범주들과 가정들까지도 형성하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 가 있다.
성경적 메시지와 다른 메시지들을 구분하지 못하면 문화적 상대주의와 성경 에 나오는 절대적인 것들 간에 혼란이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때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거나 립스틱을 바르는 것, 혹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죄로 여겼던 많은 교회들이 지금은 그러한 것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 람들은 오늘날에는 혼전 성관계와 간음이 죄로 여겨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것들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죄로 여겼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인 절대성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각 문화가 특정한 행동들을 `죄'라고 규정하며,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죄에 대한 문화의 정의 역시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한편 성경에는 우리가 절대 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도덕적 원리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조차 주의해 야 한다. 어떤 문화적 규범들, 이를테면 매 7년마다 땅을 휴경하고 수확물을 거두지 말라거나(레 25장), 아니면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살전 5:26) 것 등은 특정한 문화적 상황들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상황화 VS 비상황화
문화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주변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궁극적 실 재에 대해 갖는 암시적인 가정에 근거한 믿음들과 관습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세계관들 및 세계관들과 관련된 믿음들과 관습들 중 많은 것이 비성경적일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와 관련해서 복음을 전하고 구현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반응은 옛 믿음들과 관습들 중 대부분을 `이교적'인 것이라고 거부하 는 것이었다. 북, 노래, 연극, 춤, 몸에 장식하는 것, 결혼풍습, 장례의식 등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전통 종교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 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종종 정죄를 받았다. 이 같이 옛 문화적 방식을 도매금으로 거부하면 여러가지 문제를 낳는다. 먼저 그것은 채워야 하는 문화적 공백을 남기며, 이러한 공백은 종종 선교사의 관 습들을 수입함으로써 채워진다. 북, 심벌즈, 다른 전통 악기들은 오르간과 피 아노로 대치된다. 토착 정서에 맞는 새로운 음악들을 만들어 내는 대신 서구 의 찬송가와 멜로디를 들여온다.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예배 드리는 대신 장 의자를 들여오며 서구식 교회가 지어진다. 그런 것들이 진흙으로 된 오두막과 초가로 된 집회실들과는 어울리지 않음에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외국 종교로 여겨지며, 그리스도인 회심자들이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여 겨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옛 문화적 방식을 억누르려고 할 때 두 번째 문제가 생겨난다. 이 러한 옛 문화적 방식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 버린다. 새로 회심한 사람들은 예 배를 드리러 교회로 오긴 하지만, 주중에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 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다시 무당과 마술사들에게로 간다.
전통 문화를 도매금으로 정죄하는 것으로 인한 세 번째 문제는, 그로 인해 선 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경찰관과 같은 존재가 될 뿐 아니라, 회심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성장하지 못하게 된 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복음의 가르침을 그들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법을 배 울 때 교회는 영적으로 성장한다.
전통적 방식들에 대한 두 번째 반응은 그 방식들을 기본적으로 선한 것으로 보고 무비판적으로 교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도 변화될 필요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입장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들을 매우 존중하며,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매우 귀중히 여긴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들은 또한 복음이 `외국 것'처 럼 보인다는 것이 세계 여러 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주요한 장벽 중 하 나가 되어 왔음을 인식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심각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 범죄들뿐 아니 라 공동적이고 문화적인 죄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죄는 그들이 문화적으 로 믿는 것들에서 발견되며, 집단의 교만,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 우상숭 배 등으로 나타난다. 복음은 개인들뿐 아니라 사회들과 문화들도 변화될 것을 요구한다. 상황화는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들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적으로나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도록 복음을 전 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무비판적인 상황화가 지닌 또 다른 약점은 그것이 온갖 종류의 혼합주의에 이 르는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과 반대되는 믿음들과 관 행들을 계속해서 그냥 놓아둔다면, 이것들은 조만간에 그들이 새로 발견한 믿 음과 뒤섞이게 될 것이며 여러가지 형태의 신이교주의를 낳을 것이다.
옛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선교에 해가 된다며, 우리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문화적 유산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번째 접근법은 그 유산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평 가하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옛 방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 회심한 사람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관 행들을 검토해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교회에서 그 문제와 관련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도자들은 결혼식과 장례식 행사를 통해 결혼과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을 가르칠 수 있다. 이것은 중 대한 단계이다.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은 문화적 방식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계는 회중들이 그 들 자신의 과거의 관습들을 그들이 새로 배운 성경적 이해에 비추어 비판적으 로 평가하고 그것들을 사용할 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옛 방식 중 많은 것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복음을 왜곡시키지 않기 때 문이다. 어떤 방식들은 비기독교적인 것이기 때문에 거부할 것이다. 또 다른 방식들은 기독교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재해석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그들의 토착 음악에 기독교적 가사를 붙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상징들과 의식들을 개발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경적이면서도 상황에 맞는 믿음들과 관행들을 만들어 낼 것이 다.
회심과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
문화적 특성들은 더 큰 전체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 한가지 이상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문화의 다른 영역들에서 예측하지 못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을은 더러워졌다. 그 이유는 그들이 쓰레기 속에 숨어있다고 믿 었던 악한 영들을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쓰레기를 치울 필요가 없었다.
많은 문화적 특징들은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기능들을 담당한다. 아무런 대 체물이 없이 이러한 것들을 제거하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둔 남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한 명만 빼 고 나머지 모든 아내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버려진 아내들에 대해 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매춘을 하거나 하인이 되 었다.
우리가 다른 문화권에서 사역을 할 때 문화 및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떠한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중심되는 과업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1.5m의 간격을 메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을 주기 위해 수만 리를 간다고 해도 아무 런 소용이 없다. 타문화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것을 이 해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타문화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이 사람들을 복음에 대해 준비시키시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성령을 통해 역사하신다 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참으로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인간들이라는 불완전한 수단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미숙 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마저도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시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신다. 이것은 타문화 의사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변명하기 위 함이 아니라, 결국 복음전도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에 좌우된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할 때에는 언제나 기도와 성령의 인도에 대한 순종이 수반되어야 한다.